우아한 인생
저우다신 지음, 홍민경 옮김 / 책과이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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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은 그의 인생 여정과 궤를 같이한다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우다신은 일찍이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뒤 『안혼』을 썼고, 조금씩 늙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이 작품 『우아한 인생』을 썼다. 저우다신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 『우아한 인생』의 「추천평」을 쓴 리징쩌(李敬澤,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저자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의미다. 특히 노후에마저 그닥 즐겁고 평온한 삶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책을 읽어보면 누구나 독자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표지는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꽃이 그려져 있지만 반어법적인 표현인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노화와 질병, 죽음 등 중국의 고령화사회의 각종 문제를 사실적으로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아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저우다신의 수작이다. 소설에서 은퇴한 퇴직 판사 샤오청산은 절망적인 선택에 직면한 베이징의 수백만 노인 인구 가운데 한 명이다. 전통적인 가족 구성이 해체되어가는 고독한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육체적 노쇠를 홀로 받아들이거나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러운 현란한 광고에서 선전하는 기적의 치료법을 찾아 장수를 꿈꾸며 헛되이 헤매는 수밖에 없다. 그런 샤오청산의 집에 어느 날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간호사 중샤오양이 간병인으로 들어온다.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는 두 사람 앞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생의 격랑이 거세게 밀려든다.

 


 

오늘날 인간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고비와 내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중국 문단이 주목하는 작가 저우다신의 장편소설이다. 저우다신은 일찍이 2008년 장편 『호광산색(湖光山色)』으로 제7회 마오둔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30여 편에 달하는 장편과 단편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열을 발휘해왔다고 한다. 이 소설 『우아한 인생』은 저자가 모친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의 모친은 90세가 넘어서며 줄곧 병상에서 생활하다가 92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저자는 이후 노년의 삶과 질병 그리고 죽음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고, 이것을 주제로 작품을 써서 자신도 곧 마주하게 될 삶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해보기로 결심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그 또한 늙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작을 알리는 차례부터 독자를 현혹하듯,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베이징의 노인들은 돈을 내면 건강을 살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매일 밤 황혼녘 '장수 공원'에 모여든다. 장수 공원 남쪽의 노천 무대에서는 인공지능 간병 로봇 쇼케이스, 노화를 늦춰주는 장수환 판매, 가상 회춘 안티에이징 기술 체험, 미래 인류 수명에 관한 강좌 등 신기막측하고 화려한 판촉 홍보 행사가 연이어 열린다. 모두 일곱 개 장(章)으로 구성된 이야기 가운데 소설 내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부분은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 사이에 무대에 오르는 가정 상주 간병인 중샤오양의 회고담이다.

 


 

은퇴한 퇴직 판사 샤오청산은 이미 나이 70이 넘어 본격적인 노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점점 늙는 것이 두렵다. 그럴수록 남이 자신을 노인으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을 내고, 신체가 점점 쇠약해지는 것을 보며 초조해한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장수에 좋은 비법을 찾고 고민하지만 이런 조급함은 도리어 건강을 해치고 노화를 촉진하는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작가는 샤오청산을 통해 인간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갖가지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여기에는 몸이 늙어가면서 겪는 각종 신체적 노쇠와 질병,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물론, 가족의 해체와 고독, 노인 대상 범죄, 고령화사회의 양로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회문제가 포함된다.

노년의 샤오청산과 젊은 간병인 중샤오양이 한 집에 기거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기묘한 관계는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신적 사랑과 유대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한편, 독자에게 생명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의 주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소설가 홍예진이 「작품 해설」 말하듯, 간병인 중샤오양은 얼핏 평범한 젊은 여성의 표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존하지 않는 원형의 사랑을 품은 존재다. 이성과 모성과 선(善)의 이데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간병인을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노년에 접어든 인간이 얼마나 실재하기 어려운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어떻게 해서든 노화를 늦추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발판으로, 온갖 장수 상품과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를 꼬집는 풍자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모든 것이 한낱 스치고 지나가는 위안에 불과한 상술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도입부에 장치된 이 소설은, 그와 대비되는 중샤오양과 샤오청산의 사연을 풀어내며 기술이 해낼 수 없는 보살핌을 간구하다가 무력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취약성을 그려낸다. 취약한 인간은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 받은 것을 하나하나 되돌려주며 결국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 탄생과 소멸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속한 우리는 아무리 잘 대비하려 한다 해도 하늘이 주는 상실감을 무력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샤오 할아버지에게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진 건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진 탓이었다. 사람이 늙으면 이런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처음으로 늙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p.146)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주칠 어떤 풍경은 보기에 좋고 어떤 풍경은 조금 괴롭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말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소설을 통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최신 의학과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미래를 꿈꾸기보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노년의 죽음은 결코 우울하거나 비참하지만은 않으며, 결국 우리는 여름날의 황혼처럼 천천히 저물어가면서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무대에서 우아하게 퇴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중국 문학계의 소식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나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독자들을 위해 소설가 홍예진이 작품 해설 「폐허에 깃드는 신기루 같은 애상을 돌아보며」라는 글을 썼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이미 청년기를 지난 사람들에게 가상현실 체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체험 상품을 가장 많이 고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선택은 개인이 가진 결핍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테지만 대개 비슷한 종류의 환상을 원하지 않을까. 다시 청춘이 되어 가슴을 꽉 채우는 충만하고 달뜬 사랑을 해보는 것 말이다. 사랑에 관한 이 근원적인 갈구에 깃든 보편성은 이미 수많은 창작물을 통해 증명되었고, 그래서 모든 분야에 겇려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상에 나와 있는 이야기 속에는 남녀상열지사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작품 해설에서 홍예진 소설가는 "몸을 살리는 게 음식이라면 마음을 살리는 건 사랑이고, 인간은 결국 이 두 가지를 구하며 살다 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제시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증명하고 싶은 인간의 속성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말한다. 이 때문에 인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이라는 생명줄을 손아귀에 더욱더 힘을 가해 버티고 싶어지는 것 자연스러운 노릇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늙고, 자신에게 오는 사랑의 비축분은 제로를 향해 가고, 그러다 세상의 바깥으로 튕겨나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그 진행을 막고 싶은 역설을 힘겹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누구도 예외 없이 맞닥뜨리게 된 노년인 것을 우리는 선험의 기록과 직접 체험이라는 형태로 알게 된다는 작품 해설은 우리 사회, 중국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노인 문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문제를 짚어내고 싶은 게 아닌지 독자는 생각한다.

 


 

왜 이렇게 제게만 가혹하신 겁니까?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제 한쪽 팔다리를 마비시키시더니, 그다음에는 제 귀를 먹게 하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제 눈까지 가져가려 하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잔인하신 겁니까…….(p.395)

 

저자 : 저우다신

1952년 허난성 정저우에서 태어났다. 1979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중국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마오둔문학상을 포함해 전국우수단편소설상, 인민문학상, 펑무문학상, 라오서산문상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제20막》 《호광산색》 《안혼》 《어떤 노래의 끝》 등이 있다. 저우다신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체코어로 번역되었으며, 연극, 드라마,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다.

 

역자 : 홍민경

역자 홍민경은 숙명여자대학교 중문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번역학과 석사를 이수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돈 문제부터 해결하라』,『사장을 위한 심리학』,『나를 바로 세우는 하루 한 문장』,『화서인 상, 하』,『나는 직장인으로 살기로 했다』,『똑똑한 리더의 손자병법』,『생중계, 중국을 논하다』,『공자에게 사람됨을 배우고 조조에게 일하는 법을 배우다』,『삼국지 첩보전 1-4권 시리즈』,『느긋하게 홋카이도』,『교토감성』,『잘하는 거 없어도 잘살고 잇습니다』,『하버드 협상 수업』,『지금 외롭다고!』,『날개 없는 비행』,『이제야 기회를 알겠다』,『삼국지 조조전 1-15권 시리즈(공역)』,『열아홉, 마오쩌둥(공역)』,『씨즈더데이(Seize the day)』,『8760시간』,『일상의 유혹, 기호품의 역사』,『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성공하는 사람은 인맥을 디자인한다』,『실연33일』,『반생연』,『심리학 산책』,『CEO가 원하는 능동형 인간』,『사는 동안 버려야할 60가지 나쁜 습관』,『치유심리학』,『예술, 평범을 거부하다』,『CCTV앵커 루이청강의 삼십이립』,『다름을 배우다』등 다수가 있으며, EBS『와신상담』등 다수의 드라마와 영상물 번역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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