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베르나르 피보 지음, 배영란 옮김 / 생각의닻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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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는 소설이다. 제목은 마치 노년 생활의 평온한 행복을 적었을 것 같지만 실상 평온보다는 적막에 가깝다. 저자는 베르나르 피보로서 프랑스 문화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란다. 얼마 전까지 중견 출판사 대표로 있었다. 그의 지금 나이는 여든 둘. 주인공 기욤은 저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전 소설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은퇴한 삶은 어느 나라든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대가족 제도도 무너진 지 오래고, 자녀들도 하나나 있든지 그나마 없는 사람도 많다. 선진국 프랑스는 수십 년 전부터 인구 절벽을 느낀 나라다. 자녀의 수가 부부당 1.0 이하로 떨어진 지 30~40년 됐다. 당연히 대가족 제도는 중세 봉건주의 시대나 있을 법하다. 우리나라도 그 뒤를 잇고 있으니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있을 수만 없으리라.

주인공 기욤이 곧 나의 미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스토리가 더욱 독자에게 현실감을 준다. 주인공은 길고양이 한 마리와 연금생활자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뒷방으로 물러앉으니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서로를 돌보고 약해진 마음을 우정으로 달래기 위해 기욤은 친구들과 ‘80대 파리청년회’ 모임을 이어간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소개팅 앱에서 만난 여자와 일흔의 나이에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선 외눈박이 코코, 이야기가 늘어지고 재미 없어지면 언제나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지병인 전립선을 화두로 던져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법무사 출신의 옥토, 부부가 서로 말꼬리 잡느라 혈안이 되어 으르렁대는 게르미용 부부, 댄디한 신사이자 유능한 번역자 남편과 은퇴한 파리시 공무원 아내 블라지크 부부, 아흔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딸들과 쇼핑을 즐기는 ‘칼주름’ 노나까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덟 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네들 사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무슨 소리. 늙어도 사는 건 다 똑같다. 여자에게 주책없이 들이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내기에 져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부부끼리 별거 아닌 일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치사하게 나이를 앞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간혹 넘어지거나 뾰루지라도 날라 치면 서로를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뿐인가? 질병과 외로움, 불안 때문인지 혼자 있을 때면 ‘또 다른 나’가 나타나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사실인가 싶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문단의 교황’이라고 불렸던 남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공쿠르 문학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이 장편소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어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호기심과 유머, 다정함까지 두루 갖춘 저자의 지혜와 통찰이 귀부 와인처럼 달콤하고 쌉쌀한 여운을 남긴다. 덤으로 행복한 노년을 누리기 위한 몇 가지 레시피와 작은 교훈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노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하면, 시시콜콜 아픈 곳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잔인한 나이 탓을 해댄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 인사는 짧게 끝나는 법이 없다. 80년 정도 살면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알약과 물약, 좌약까지 먹어야 할 약도 한 사발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것이기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니 예민하고 신경질적일 수밖에.

 


 

독자도 중년이다. 중년에 가장 걱정되는 게 노년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여야 할 텐데, 독자는 노후 대책을 시작도 해보지 않아서 돈 걱정이 가장 크다. 그러나 젊었을 때 못 벌던 돈을 지금에서야 나선다고 될 일이겠나 싶어 열심히 은행을 드나드는 수밖에 없어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 노후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대안은 짜내지 못한데 걱정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근현대 사회엔 나이 드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죽을병’ 때문이 아니다.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다.

노동하는 사람만 근력이 떨어지고 일상에 가끔씩 지장이 생길 정도로 에너지도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무직에만 있었다고 해도 나이듦, 늙음을 피해갈 순 없다.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거나 단추를 채우거나, 신발 끈을 묶는 것처럼 평생 일상적으로 해온 동작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느릿느릿 움직여야만 할 때가 차츰 횟수가 늘어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바로 실수를 연발한다. 양손에 서너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쥐고 있으면 십중팔구 그중 하나를 떨어뜨린다. 떨어진 물건이 신문이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신문을 줍겠다고 몸을 숙이는 순간 우유나 달걀을 놓쳐버려 일이 더 커진다. 바로 얼마 전까지 현직에서 힘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모습은 정말 처량해서 봐줄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인 것을.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죽는 것보다 꼼짝 않고 지내며 재미난 일 하나 없이 위축된 삶을 사는 게 더 무섭다고 한다.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없어져 낮도 밤처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p.42)

 

 

그렇다고 과거에 빠져 살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이 들고 고약한 성미를 드러내던 윗세대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닥쳐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큰일이 닥치면 용기가 부족할까 걱정된다. 몸이 심각하게 무너져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지면, 과연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오랜 병치레로 생활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도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성격이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은 많아지고 몸은 말을 안 듣고 성격은 갈수록 예민해진다. 하지만 늙어서 좋은 것도 있다. 이젠 다른 사람 시선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낼 자유가 생겼다. 이제까지 사회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꿈꾸는 게 가능해졌다.

회고 절정, 노인이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10대에서 20대까지의) 시절을 미화해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현상이다. 예쁘고 잘생겼던 시절, 꿈과 포부도 컸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젊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 때는’이 입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시간 보정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문제는 노인네들이 그렇게 미화된 당시와 현재를 끝없이 비교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현재가 탐탁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뭔지 모를 과거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게 달가울 리 없지 않은가.

 


 

독자처럼 중년에 들어서면 요즘 세상을 한탄하며 젊었을 때를 그리워한다. 심지어 청춘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동시대의 사람, 즉 같은 연령층이 들으면 공감하고 맞장구칠 일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꼰대'로 몰린다. 꼰대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꼰대처럼 보인다는 게 서럽다. 속마음은 아닌데 고지식하고 옛날 잣대만 들이민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스스로 체력이나 나이듦의 한계로 속상한데 꼰대로 몰리기까지 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 밥을 못 먹어 끼니를 거르거나, 옷이 헤쳐도 새옷을 사기 어려워 기워입고 남에게 얻어 입었다. 지금 중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아니 못 겪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별천지이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일도 실제 일상에서는 거의 없다. 사실 지금의 중년 세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가정보다 직장, 직장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시대였다. 산업화를 늦게 해서 그만큼 갑절 이상 노력했다. 적지 않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하루 24시간을 일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산업화를 우리만큼 단시일 내에 달성한 나라가 없다하지 않은가.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민주화도 병행했다. 지금은 당연한 두 가지의 것을 우리처럼 50년 만에 한 나라는 없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단결심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살아가기 쉽다. 물질적으로 부족했어도 사람간의 정과 위로는 그때가 더 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의 시간이 더욱 생생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이렇듯 노인이 빠지기 쉬운 ‘과거’보다는 ‘오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간다. 여든둘이라고 다르지 않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까. 여든의 삶과 마흔의 삶, 아니 스무 살의 삶도 본질은 같다. 어느 연령대에 있든,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젊어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앞을 향해 달려 나갈 뿐. 하지만 삶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삶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데 집중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만, 하루하루 소중함을 깨닫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삶. 생의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다. 저자는 죽을 때까지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숨 쉬고 있는 한 오늘은, 삶은 계속된다. 짧게 계획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라 격려한다.

오랜 시간 프랑스 ‘문단의 교황’이라 불리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남자, 세계 3대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이자 2014년에서 2019년까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저자, 하지만 이 모든 영광을 깨끗하게 내려놓은 남자, 장편소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든둘의 나이에 모든 직함과 일에서 물러나 집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좌절되었던 오랜 꿈을 꺼내들었다. 소설을 써보겠다는 젊은 시절의 꿈.

 

내 인생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내 앞에 남은 삶이 어느 정도일지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당장 내일을 준비하는 게 더 낫다.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 날이 최대한 뒤로 미뤄지길 바라면서 잔소리 심한 내 쌍둥이 자아가 조언하는 대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p.295)

 


 

그리고 여든다섯이 되던 해 그의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은퇴한 노년의 삶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아도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고 싶은 일에 모두 쏟아부을 수도, 낭비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다. 그는 노년에 주어진 자유와 시간을 젊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데 썼다. 대부분의 처녀작이 그러하듯 자신의 자전소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빠져 있지 않고 자신의 오늘을 돌아보고 다짐하는 이야기다. 고령의 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노년의 삶과 그 속에 숨은 묘미, 아직 젊은 사람은 모르는 어르신들의 고민까지 엿볼 수 있다. 노년의 지혜로 포장한 훈계를 늘어놓기보다 솔직한 투정과 반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채롭고 재미있다. 늙었다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면, 결국 시체처럼 누워만 있게 된다. 박차고 일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이야기하며 누려라. 오늘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노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저자가 스스로 증명하듯 말이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저자 :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

1935년 리옹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평론가다.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 잡지 〈리어LiRE〉를 창간했고, TV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피Apostrophes〉를 진행했으며 프랑스어 받아쓰기 대회 〈디코 도르Dicos d’or〉를 기획하기도 했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그는 ‘프랑스어의 수호자’로 추앙받았으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문학상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문학과 출판, 문화계의 정점에 있었고 그의 명성과 인기는 독보적이다. 프랑스어 바로쓰기에 관한 책과 평론집을 여러 권 출간했지만, 여든다섯 나이에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역자 : 배영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 통역 및 번역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출강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핵심 서양미술사』 『브랜드와 아티스트, 공생의 법칙』 『책의 탄생』 『꿀벌과 철학자』 등이 있으며, 《고갱》전 《밀레》전 《모딜리아니》전 《르누아르》전 《오르세 미술관》전 등 주요 전시의 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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