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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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세계 역사나 종교, 종교서 등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간 이에 관한 책을 읽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도 이 책 『우신예찬』의 저자 에라스무스는 이름 정도를 안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비록 짧지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루터의 종교 개혁 시기와 맞물린 시대의 기독교 사제로서 활동한 사람이다. 중세 말은 기독교의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아가는 시기다. 은 1511년 출간된 고전문학의 범주에 자리잡은 작품이다. 『우신예찬』은 기독교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가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 유머, 관용 정신을 담아 내놓은 걸작이다. 종교의 영향력과 힘이 최정점이던 시대에, ‘우신’(愚神, 어리석음의 신)이 등장해 자신의 능력을 자화자찬하며 특권층과 사회지도자들의 온갖 부패와 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내용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이라는 신앙 운동이 맞물려 돌아가던 시대적 전환기에,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철학·사상 및 성경을 넘나들며 기독교 신앙(로마가톨릭)의 여러 폐해와 모순을 참신한 논리와 문학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비판했다. 에라스무스는 영국을 여행하던 중 친구인 토머스 모어(『유토피아』 저자)의 별장에 잠시 머물며 7일 만에 원고 대부분을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가 내세운 우신은 행복의 섬에서 태어나 만취와 무지의 보살핌을 받는 젊음과 부의 딸인데, 자아도취, 쾌락, 아부, 망각, 깊은 잠 같은 시종을 거느리고 다닌다. 그들을 통해 연출되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유쾌하게, 서글프게, 때로는 뜨끔하게 묘사된다. 이 책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었기에 1559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른바 ‘가짜 현자들’-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수도사, 귀족, 군주, 성직자 등-에 대한 속 시원한 풍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 현실을 꿰뚫는 통찰과 웃음이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현대지성 클래식이 45번째로 출간한 『우신예찬』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성실하고도 유려한 번역으로 호평을 받아온 박문재 번역가가 라틴어 원서에서 직접 옮겼으며, 에라스무스가 본문 곳곳에 사용한 그리스어 표현도 별도로 표시하여 읽는 맛을 잘 살렸다. 413개의 각주와 친절한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종교 및 문화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펴들었어도 한달음에 읽히도록 세심하게 문장을 다듬었다. 한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풍자와 해학의 막강한 힘을 이 한 권의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세계주의자이자 근대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으며, 20세에 정식 수도사가 되었다. 카메리 주교의 비서가 되어 일하게 되었고, 그는 사제로서의 의무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받기도 했다. 주교의 배려로 파리 대학에 유학하여 공부하고, 고전 라틴 문학을 연구했다. 1499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여러 인문학자들과 교류하였고 특히 존 콜렛(John Colet)의 성서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그리스어를 익혀 성서를 연구하기도 했다. 1506년에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토리노 대학을 졸업한다. 1511년, 그는 런던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 책을 구상하여 런던에 있는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집필한다. 그는 『우신예찬』에서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면서, 성직자의 위선과 신학자 허구성 등을 풍자하고 야유하였다. 1516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병기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간하였다. 『그리스도교 군주의 교육』, 『히에로니무스 저작집』 등을 발표하다가 스위스 바젤에서 생을 마쳤다.

 

 

『우신예찬』은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 유머, 관용 정신 등이 모두 담겼으며, 500년이 지나도록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풍자문학의 대표작이다. 종교의 영향력과 힘이 최정점에 이른 당시 서유럽 사회에, ‘우신’이 등장해 자신의 능력을 자화자찬하며 특권층과 사회지도자들의 온갖 부패와 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드러낸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미학적인 차원에서 문예의 부흥을 꾀했다면, 16세기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사회 개혁과 도덕적 실천을 보다 강조했는데, 그 중심에 에라스무스가 있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이라는 신앙 운동이 맞물려 돌아가던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를 꾀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시절, 인문주의의 매력에 빠져 그리스 고전을 섭렵하며 갈고닦은 비판적 지성과 글쓰기 능력이 자산이 되었다. 실제로 『우신예찬』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철학·사상 및 성경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기독교 신앙(로마가톨릭)의 여러 폐해와 모순을 참신한 논리와 문학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비판했다. 이 책은 그가 1516년에 편찬한 그리스어 신약 성경과 함께, 종교개혁의 효시로 인정받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1517)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 등에서 교화의 타락상과 부패를 고발하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도 사제가 성경 해석을 독점하는 현상을 타파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중세의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귀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루터를 필두로 한 종교개혁 운동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에라스무스는 학문적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지지를 받고자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에 함께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교회를 비판할 뿐 기존 체제에 근본적으로 반기를 들고 싶어하지는 않던 에라스무스의 성향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중립적 태도로 인해 말년에 가톨릭 진영과 신교도들의 사이에서 곤경을 겪기도 했다. 저서로는 『격언집(Adagia)』(1500), 『우신예찬』(1511), 『대화집(Colloquia)』(1518) 등이 유명하다.

이 책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었기에 1559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교회와 정치권력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속 시원한 풍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 현실을 꿰뚫는 통찰이 유머와 풍자라는 코드에 담겨 전달되었기에, 많은 사람이 쉽게 그 메시지를 깨달았다. 그의 풍자 정신은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나 영국의 셰익스피어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 우신은 자신을 최고 신으로 소개하며 그 근거를 든다(1-15장). 그런 후 이성과 정념, 남자와 여자, 술자리, 우정, 결혼에서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면서 우신 없이는 인간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16-21장). 국가와 영웅을 탄생시키고 모든 제도를 유지시키며 온갖 기예를 탄생시킨 것도 ‘어리석음’이므로, 이야말로 가장 유익한 것임을 설파한다(22-28장). 진정한 분별력과 행복의 근원이자 중심이 우신이며, 반대로 현자는 어떻게 불행의 중심에 있는지 설명한다(29-37장). 그런 다음 어리석음을 광기와 자아도취에도 연결한다(38-46장). 이때 우신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해학이 전면에 부각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우신은 다른 신들과 달리 자신은 온 세상에서 숭배를 받는다면서 도처에 널린 숭배자들을 하나하나 열거한다(47-61장). 여기서는 저자인 에라스무스가 전면에 등장해 나쁜 의미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을 차례대로 불러내어 그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결론은 “즐겁고 부유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자들을 피하고 짐승 같은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라는 것이다(61장). 세상만사, 돈이 있어야 돌아가는데 현자들은 돈을 멸시하니 그들을 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풍자에서 역설로 나아가는데, 여기서도 에라스무스가 전면에 등장해 이번에는 여러 유명한 저술가들과 성경을 중심으로 좋은 의미의 어리석음을 제시한다. “기독교인들의 행복은 광기와 어리석음”에 있고 “그들이 받을 최고의 상은 광기”라고 하는 데서 그의 주장은 절정에 이른다. 이렇듯 『우신예찬』은 해학에서 풍자로, 풍자에서 역설로 진행하면서 ‘어리석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드러낸다.

 


 

서유럽에서 14~16세기에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곳은 이탈리아였다. 특히 북부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화국, 남부의 나폴리 왕국 같은 도시 국가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경쟁적으로 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신곡』을 쓴 단테(1565~1321), 중세 가톨릭의 붕괴를 예견하고 스콜라주의를 배척하며 인문주의적이고 근대적인 면모를 보인 연애시 『칸초니에레』를 쓴 페트라르카(1304~1374),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1313~1375) 등을 중심으로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매개로 인간의 개성을 해방하고 완성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그들은 낡은 기독교의 내세주의적 질곡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부르짖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옹호했으며, 금욕주의 규범에서 벗어나 건전한 인간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것을 주장했다.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는 16세기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유토피아』를 쓴 톰머스 모어(1478~1535),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무스(1466~1536), 『어느 무명 인사의 일기』를 쓴 후텐(1488~1523)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p.305~306) - 박문재 「해제」 중에서

 

나의 추종자인 바보들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군주들에게 단순히 진실을 말할 뿐만 아니라 신랄하게 욕하기도 하고 조롱도 하며 야단법석을 떠는데도 군주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즐거워합니다. 현자들이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당장 목이 날아갔겠지만, 바보들이 그런 말을 하니 놀랍게도 큰 즐거움이 생깁니다. 진실은 본래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다가갈 때에만 그 힘이 제대로 드러나는데, 신들은 이런 능력을 오직 바보들에게만 주었습니다.(p.112) - 「36장 어리석은 자들이 군주의 총애를 받는 이유」 중에서

 


 

저자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으로 16세기 기독교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최초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역 성경을 편찬한 일로 당대에도 유럽 최고의 지식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고전 번역, 날카로운 풍자, 수많은 서한문 및 논문 집필로도 유명했다. 가톨릭교회의 세속화와 부패를 풍자하여 종교개혁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종교개혁의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면에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저서로는 그리스와 라틴어로 된 격언집 『아다지아』Adagia(1500), 『기독교 병사를 위한 지침서』Enchiridion militis Christiani(1504), 『우신예찬』(1509), 『그리스어 신약성서』Novum instrumentum omne(1516), 『기독교 군주의 교육』Institutio principis Christiani(1516), 『진정한 신학의 방법』(1518),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1524), 『아동교육론』De civilitate morum puerilium(1529),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Explanatio symboli apostolorum sive catechismus(1533), 『대화』Colloquia familiaria(1518~1533) 등이 있다.

 

역자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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