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낸 7일 - 안기부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
신정일 지음 / 창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 『지옥에서 보낸 7일』은 저자 신정일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자전 소설이다. 부제 「안기부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에서 보여주듯 국가안전기획부(구 중앙정보부, 현 국가정보원)에서 간첩 혐의로 끌려가 겪은 고문 등 고초를 당한 경험을 토대로 썼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당한 분들의 자전 소설을 쓰기에 좋은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는 안 될 이야기들이다.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시절에는 간첩 혐의나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을 친북 활동 등 간첩 혐의로 무자비하게 끌고 가 고문은 물론 가족과 친구들까지 연쇄적인 고초를 겪는 일이 다반사였다. 독자는 운동권이 아니어서 직접 끌려가 고초를 당한 경험은 없었지만 친구들 중에는 있었다. 그는 그곳의 경험을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관심을 갖고 알아보려 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또 국가 정보 기관은 으레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수사상' 조사라면 누구도 폭로하기에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옥'으로 표현한 저자일 것이다. 저자가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후 시기에도 그런 일은 많았다. 오죽하면 5·18 피해 유가족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수많은 세월 속앓이를 했을까. 지금의 독자들이나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좀 과장된 것'쯤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 서슬 퍼런 시절 저자는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간첩 혐의로. 사실 저자의 일상 주변을 조금만 안다면(독자도 당연히 이 소설을 통해 알지만) 일부러 간첩 혐의를 씌워 끌고 가진 않았을 것 같다. 다른 혐의를 두고 간첩 혐의를 씌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이라든지, 아니면 요즘 안 이야기지만 '별건 수사'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건에 끼워맞추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때 안기부의 국가 공권력은 '죄 없는 사람도 그곳에 들어가면 죄 지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이 책 『지옥에서 보낸 7일』은 41년 전인 1981년 8월 어느 날, 지옥 같은 안기부에 인간 이하의 고문을 받은 7일간이 기록이다. 부제에서 암시하듯 최종 학력 국민(초등)학교 졸업인 그가 어떻게 ‘안기부로부터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되었는가를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어쩌면 엄혹했던 전두환 정권이 의해 이유도 모르게 간첩죄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지만 이름도 없이 살았던 많은 이들을 대신해 이 책을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삶이 힘들고 좌절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자전소설이 작은 위안과 함께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지옥에서 보낸 7일’ 이후 41년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삶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신정일, 내가 네 놈의 뒤를 8개월 동안을 쫓아다녔다. 너, 간첩이지? 맞지?”

뭐라고 해야 하는데,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낮게 깔려오는 무거운 목소리.

“너 간첩이 맞잖아.”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놀라서 여기저기를 바라보자 창문이 없는 것이 지하실이 분명했다. 둘러보니 사면이 다 하얗다. 하얀 방에 오래된 낡은 여관과 같이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나무로 만든 가리개 사리로 욕조와 양변기가 보였다. 견고한, 누가 망치로 내려쳐도 흔적도 남을 것 같지 않은 철제 책상과 그 앞에 의자, 그리고 의자가 두 개가 더 있다. 밝은 형광등, 눈이 부시다.

‘이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생각하는 사이에 그 사내가 의자에 앉은 채 내게 조용히 말했다.

“신정일, 옷부터 벗어!”(p.37)

 

 

저자는 지금 문화사학자로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라고 한다. 1980년 10월, 2년 6개월의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전주에 자리 잡았다. 그의 '방랑벽'은 타고난 것일까? 저자와 함께 활동했던 김용택 시인은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의 발문에서 신정일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찾아 나서서 겪어보고, 배우고 깨달아서 한 가지에 능통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왔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한 가지 것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살면서 온갖 것들을 겪어내며 산다. 어떤 이는 한 가지 것에 능통함으로써 한 가지 일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만 가지와 통하는 안목을 갖고 살기도 한다. 나는 뒤쪽이다. 인간이 몇 억 년을 산다고 해도 나는 이 작은 마을의 작은 산, 강, 논, 밭, 나무, 하늘, 별, 집,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다. 그런데 정일이는 나와는 다른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찾아 나서서 겪어보고, 배우고 깨달아서 한 가지에 능통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왔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벌려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 나는 모른다. 아니 신정일이 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그리고 꿈꾸는 높고 푸른 산맥들이 김제 만경평야에 들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일을 벌이고, 그가 곳곳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심어준 것이 옳다고 믿으면 그는 주저함이 없이 행함으로써 행복한 것이다. 어느 잘난 사람이 자기가 뿌리고 자기가 당대에 거두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려 하는가. 역사가 어디 그런 것인가.”

 


 

저자는 에필로그 「나는 방외지사의 삶을 살았다」에서 말한다.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오래도 살았다. 그러다가 보니 내가 사람 들로부터 여러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이중환’, ‘현대판 신삿갓’, ‘향토사학자’, ‘걷기 도사’라는 별칭 외에 작고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과 길의 철학자’라고 했고, 도종환 시인은 ‘길의 시인’, 조용헌 선생은 ‘방외지사’라고 했으며, 김지하 시인은 나를 두고 ‘삼남 일대를 걸어 다니는 민족민중사상가’,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걸어 다니는 네이버’라는 별칭을 과하게 붙여주었다. 그중 내가 살아가는 방식만 놓고 보면 거기에 가장 걸맞는 말은 아마도 ‘방외지사’라는 말일 것이다. 강호동양학연구소장인 조용헌 선생이 나에게 붙인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방외지사』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실었다.

“방외지사(方外之士)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 자격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조직을 위해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방외지사가 될 수 없다. 월급쟁이치고 자유롭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 독만권서 행만리로 교만인우(讀萬卷書 行萬里路 交萬人友)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 권의 책을 읽었으면 만 리를 가 보아야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되도록 많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차를 타고 발통 위에 얹혀 다니면 주마간산에 그치고 만다. 산천을 두 발로 딛고 다녀야만 스파크가 튄다. 스파크가 튀어야 깊이가 생기는 것 아닌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인물이 전주에 사는 신정일이다.”(p.348~349)

 


 

말이 좋아서 방외지사지, 달리 말하면 할 일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직업도 없고, 비빌 언덕도 없었다. 가족이든 친구들이건 그 누구에게도 조그마한 금전적 혜택을 줄 수 없는 무능력자가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영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모두가 선망하는 프리랜서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소속이 없으므로 자유롭지만, 글을 쓰지 않거나 일을 안 하면, 통장에는 일 원 한 푼 들어오는 법이 없다. 프리랜서의 삶은, 철저한 자기 관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루의 3분의 2를 남을 위해 쓰는 사람은 노예고, 하루의 3분의 2를 나를 위해 쓰는 사람은 자유인이다.” 라고 니체는 말했는데, 나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자유인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올곧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길 위에 삶이 있다. 그 삶의 길로 머뭇거리지 말고 나서라. 그리고 받아들여라.’ 나의 운명, 나의 지론이다. 그곳이 천국이건, 지옥이건, 그 길을 따라 떠돌다가 어느 날 문득 지상에서의 삶을 ‘객사(客死)’ 로서 마감할 것을 소원한다. 왜 그런가? 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길에서 생(生)을 마감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 없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좋아하므로 길에서 죽는 객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옛사람들 의 말을 터득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세상에 살면서 길보다 더 좋아한 것이 어쩌면 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문자를 알고서부터 어느 날 문득 문자중독증에 걸려 문자 조립공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이것은 병인가? 기쁨인가? 이렇게 지금도 헤매고 헤매는 나, 나도 어느 날 용재 성현 선생의 말처럼 최후를 맞고 싶다.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각종 고문이 행해지는 안기부 취조실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벌써 40년 여가 지났는데도 저자의 기억은 생생한 듯하다. 하긴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이 국가권력에 의해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시절이었으니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잊힐 리 없다.

“악악!”

내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는 시간, 절망의 늪에서 점차 숨소리가 잦아들어 가는 듯한 그 시간에 뜻하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살살 녹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였다.

“어, 친구, 잘 쉬었나?”

친구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보았다. 그 취조관이었다. 재미있다는 듯한 그의 웃음이 더 가증스러웠다. 그렇게 부모 죽인 원수처럼 분노로 나를 개 패듯이 패면서 ‘간첩’이라고 닦달하더니, 지금은 친구라고 나를 놀린다. 웬 친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자, 다시 놀아볼까?”

뭘 논다는 걸까? 그들은 노는데 나는 아프다.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으랴. 잘 노는 것 때문에 사람이 아프고 슬프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에 있으랴. 그렇지 않아도 좁고 연약한 어깨가 으스러진 것 같았고, 갈비뼈가 부러진 듯 아팠다.

 


 

“내가 선생 집에서 가지고 온 책과 소지품들을 보니 문학도였지요? 나 역시 청소년 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요. 나는 소설가 김승옥을 좋아했고, 그중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이요. 얼마나 좋아했던지 필사도 했었지요. 시는 미당 서정 주 시인의 시와 폴 발레리를 좋아했었소. 〈해변의 묘지〉에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지금도 좋아하는 절창이지요. 당신은 어떻소?”

내가 그에게 지금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가? 지금 내 마음이 그토록 한가하지가 않은데.

“신정일 선생은 어떤 시인들을 좋아하시오?”

 

저자 : 신정일(辛正一)

 

문화사학자로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다. 1980년 10월, 2년 6개월의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전주에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고 해파랑길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한국의 산 500여 곳을 오르기도 했다. 2005년 시작된 우리땅 걷기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털 다음(Daum)의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글을 올리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이 시리즈의 ≪공주·부여≫ 편을 비롯해 ≪신택리지≫ 시리즈(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시리즈(3권), ≪꿈속에서라도 꼭 살고 싶은 곳≫ ≪동해 바닷가 길을 걷다≫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신정일의 동학답사기≫ 등 100여 권이 있다. JTV 전주방송 프로그램 ‘신정일의 천년의 길’에 출연했고, 유튜브 ‘길 위의 철학자 우리 땅 걷기’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