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훈희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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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영상예술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데 꼭 필요한 어려운 '미학'과 '기호학' 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 이훈희는 영상이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고 인류의 문화적 성취를 집약한 장르이기 때문에 관련되거나 파생된 학문의 수는 엄청나다고 말한다. 영상미학은 영상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인가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현대적 영상예술을 설명하려면 미학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존에 소개된 영상미학 서적들이 번역학문으로 주관적이고 학술적인 개념 풀이로 어려웠던 반면 이 책 에서는 인류가 창조했던 수없이 많은 미학적 요소들을 대중적으로 유명한 회화, 조각, 건축, 영화 등 작품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태생 이후 예술의 발전과 아름다움의 기준, 아이콘, 화풍의 변화, 사진의 발명, 영화의 등장 등 인류 예술의 서사를 철학적 가치와 엮어내 문화와 예술의 관점으로 이해를 돕는다. 이미지와 영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초심자라면 구체적인 영감과 길잡이가 되어줄 영상미학의 입문서이자, 교양서로 집필되었다. 미학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현상,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학문적 탐구 영역으로 알고 있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개념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미학은 그렇게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이론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미학(Aesthetics, 美學)은 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굳이 학문 분야로 분류하면 철학에 가깝다. 플라톤이 미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제기했다. 이 사전에도 여러 학문의 상위에 있는 미 그 자체의 학문을 제창한 플라톤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 전통적 미학은 초월적 가치로서의 미를 고찰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학이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이프니츠볼프학파의 A.G.바움가르텐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문으로 수립하고, 그것에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에 근대 미학의 방향이 개척된 것이다. 고전 미학은 어디까지나 미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어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근대 미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 즉 ‘미적인 것(das Asthetische)’을 대상으로 한다. 이 ‘미적인 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의식에 비쳐지는 미이다. 그러므로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미학은 자연히 미의식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임마뉴엘 칸트는 감성적 현상으로서의 미의식의 기초를 선험적인 데 두었지만, 의식에 비쳐지는 단순한 현상으로서의 미적인 것을 탐구하는 방향은 당연히 경험주의와 결부된다.

 


 

오늘날에는 미적 현상의 해명에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시키려는 ‘사회학적 미학’이나 분석철학의 언어분석 방법을 미학에 적용하려고 하는 ‘분석미학’ 등 다채로운 연구분야가 개척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사전에 의하면 '추'(ugliness, 醜)를 미(美)에 대립하는 미적 범주의 한 부분이라 풀이하고 있다. 추는 미학상의 용어로서, 추와 미의 관계를 엄밀히 따지면 ① 추가 미 이전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② 반미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③ 보조적 의미로, 미적 카테고리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경우 ④ 자립적 의미로, 미적 카테고리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경우로 나뉜다. ①에서 추는 미적 형성화 이전의 소재로서 미적 가치에 대한 중성적 성격을 띠어, 다른 일체의 소재와 평등하게 취급된다. 예를 들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기치로 하는 입장(일종의 미적 형식주의)으로서 성모와 채소를 평등시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다. ②에서 추가 미적 형성화를 거부하는 경우 그것은 반미적이 된다. 예를 들면, 칸트는 추 중에서도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적 형성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추 일반을 구토적·반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고전주의 예술에서는 숭고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추는 반미적인 취급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③의 경우 미적 카테고리론의 대부분은 추를 우미·숭고·골계와 병행하는 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하지만, 엄밀하게는 이 경우 추는 숭고 및 골계를 위한 보조수단으로서만 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된다. 예컨대 고전주의의 숭고가 선을 목표로 하는 데 대하여, 진을 목표로 하는 사실주의(일종의 미적 내용주의로서)의 예술에서도, 추는 마찬가지로 보조적 의미로 인정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주의와 사실주의와는 어느 의미에서는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전자가 추에 대하여 무기적인데 대하여, 후자는 추에 대하여 수단적 의미에 있어 호의적이다. ④의 경우 추는 근대 데카당파의 예술에 이르러 비로소 자립적·미적 카테고리의 지위를 획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포나 와일드를 선구로 하는 불쾌·악·허위·배신 등으로서의 추의 예술이 그것이다. 또한 실존주의 예술에서는 보다 깊은 의미의 추가 자립적·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된다. 예컨대,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것마저도 거기서는 미적 카테고리로 인정된다.

 


 

저자는 현대 사회는 누구나 영상을 촬영, 편집,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발점을 잡았다. 심지어 대중화된 최신 장비로 미장센까지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물이 다 예술로 남는 건 아니다. 특별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유니크한 명품의 광고, 독보적인 드라마를 만들려면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인간의 사유 체계를 연구하는 미학과 기호학, 영상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해야 한다. 이 책의 집필 동기이자 저자의 독창적 연구에 기대어 미학과 영상미학에 대한 지식을 늘릴 수 있게 쓰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영상예술에 집약된 방대하고 심오한 미학과 기호학을 예술사와 관련지어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 서두에 “알타미라 이후 모든 미술은 쇠퇴했다.”는 말이 나온다. 거장 피카소가 한 말이다. 1869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의 동굴에서 벽화가 발견되자 벽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한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완벽한 아름다움을 완성한 예술은 당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과 가치를 담아 변화했다. 선사시대에는 제의의 성격으로 헬레니즘 시대에는 사실적인 묘사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쳤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은 아이콘을 해석하는 학문인 도상학이 발전했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예술은 회화의 고유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미지가 아닌 작가의 주관적 욕망과 의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있는 그대로의 태양을 담기 위해 사물의 원래 빛을 버리고 빛에 반사된 색을 찾아 그리거나 대상을 본 화가의 감정을 그린 추상화로 발전한 것이다. 예술사와 접목하는 부분이 자유롭고 일관돼 이 책의 가치를 높이게 한다. 인류 예술사에서 아름다움을 논하려면 그리스부터 시작하고, 미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한국의 일부 미학자는 이러한 점을 아쉬워한다고 귀띔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학이라는 개념은 동양에는 분화된 적이 없는 개념이다. 이는 동양에서 아름다움에 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서양과 달랐기 때문으로 저자는 풀이한다. 동북아에서 아름다움이란 사람의 행실과 내면이 하늘(天)을 닮아야 한다는 문인주의이며, 그림의 대상은 응당 사람의 선한 소망이 투영된 것이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동양의 세계관은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인합일의 생명주의 사상이다. 동양에서 사람의 내면을 투영한 자연을 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이 사람이고 하늘이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의 구성이 애초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접하는 방식에 따라 수천 가지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 기본적 관념이다.

이에 비해 서양의 세계관은 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과 그렇지 않은 자연과 분리된 인간중심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리스·로마의 예술엔 단연 사람이 예술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독리적이며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동양은 '관계' 를 중심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발전시켰고, 서양은 단독자로서의 '존재' 측 '인간'을 중심으로 미학을 발전시켰다. 학문의 핵심도 서양은 '존재론'이며 동양은 '관계론'이라는(이었다는) 성공회대학교 고 신영복 교수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만 서양이 인간중심의 예술관을 가졌다는 것은 엄밀히 보자면 사실이 아니다. 신과 인간이라는 범주로 보자면 동양의 인간이 하늘과 땅의 중간자로 존재했던 반면, 서양의 경우 신의 의지에 따라 구원받거나 시련을 받는 복종자, 피지배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예술사를 토대로 한 미학의 탐구를 위해 쓰였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Before Cinema〉, 2부 〈After Cinema〉, 3부 〈Digital Cinema〉이다. 1부는 「아름다움의 탄생」「절대적 아름다움」「빛과 어둠」「아이콘 ①」「아이콘 ②」「인류 서사의 비밀」「사진이 바꾼 예술」「복제의 가치」「사진에 밀린 회화의 선택」이란 장(章)으로 나뉘어 있어 각 장의 소제목은 글의 성격을 한마디로 알 수 있게 쉽게 선택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2부는 「경이로운 전설」「영화가 밀어낸 것들」「영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야기를 명상할 수 있는 틀」「앵글의 노림수」「이끌림의 활용」「이차원 속 삼차원」 등으로 구성됐다. 역시 쉬운 단어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될 수 있는 한 전문 용어는 풀어쓰고 일반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책의 가치를 높인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3부에서는 「인류의 환상 구현」「위작 논란과 미적 가치」「색채의 영상미학」「영화인의 철학, 철학자의 영화」「언어와 영화의 세계관」「탈근대의 서막」「영화의 내러티브」「영화에서 그리는 사람」「디자인을 소비하는 광고영상」「가치를 파는 광고」「MZ 세대의 밈과 숏폼」「또 하나의 세계, 메타버스」「예술작품이 된 NFT」의 장들이 현대 예술사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디지털 문화를 짚어본다.

"조명, 세트, 구도, 색, 인물, 의상, 카메라 앵글 등이 시각적 부분이라면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의 결합, 내러티브, 이야기의 서사성 등도 영상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영상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려 할 때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인가를 다루는 학문이 영상미학이다. 기술적으로 분류한다면 5가지 기본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빛과 컬러(Light, Color), 2차원적 공간(2-Dimensional Field), 3차원적 공간(3-Dimensional Field), 시간과 동작(Time, Motion), 음향(Sound)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룰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영상으로 만든 것이 바로 프레임(Frame), 숏(Shot), 컷(Cut), 신(Scene), 시퀀스(Sequence)와 같은 기초단위다. 하지만 영상미학은 더 깊고 복잡한 영역까지 다룬다. 미학적인 요소들이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메시지를 소구하는지 다룬다. 영상은 인류가 창조했던 수없 이 많은 미학적 요소가 필요하다."(p.120~121)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철학적 토대에 기반한 독창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영화인이라면 흥행엔 실패할 순 있어도 망작은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흥행에 참패한 영화는 사조의 변화에 따라 다시 역주행의 신화를 그려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 토대란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영화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인이 고민해야 하거나 고민할 수 있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다."(p.183~184)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그린 계급투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선전되었던 설국열차가 사실은 부품이 하나둘 망가지고 있고 꼬리칸의 아이들의 희생이 없으면 더는 유지되기 불가능한, 몰락이 뻔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구했던 길리엄이 사실은 열차의 설계자 윌포드와 한통속이었다는 점 이 반전이다. 열차의 인구가 일정한 개체 수를 넘어서면 인위적으로 혁명을 조장해 살상을 통해 인구를 조절하는 시스템의 복무자였다는 것이 충격이다. 감독은 직선적 역사관에 기초한 계 급투쟁을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의 세력이 열차를 장악해 열차 안에 새로운 평등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으로 끝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열차는 불완전하고 언젠간 멈출 것이 분명하기에 열차 내에서의 계급투쟁은 살아남은 인류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p.221~222)

 

저자 : 이훈희

 

언론사와 광고회사 근무 이력을 바탕으로 문화전문 인터넷 신문 [뉴스컬처]를 창간하고, 서울에서 문화예술경영 석사와 예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문화 프로듀서와 문화예술 심사위원 및 공공기관 채용 면접관으로 활동하며, [한국미디어문화협회] 이사장으로 문화예술 및 디자인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브런치 작 가이자 세종도서 작가로 현장실무의 노하우를 중심으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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