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 미스트랄 - 덜컥 집을 사 버린 피터 씨의 일 년 기록
피터 메일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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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피! 미스트랄』은 영국인 피터 메일이 쓴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1년 살기' 경험을 묶어 만든 에세이이다. 원제는 『A Year in Provence』이다. 프로방스(Provence)란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에 면한 지방을 일컫는다. 부슈뒤론·보클뤼즈·알프드오트프로방스·바르·알프마리팀의 5개 주로 이뤄져 있다. 론 강 하류 유역의 평야 지대로 휴양지로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역이다. 세계인문지리사전에 따르면 프로방스 지역은 고대 페니키아의 식민지였으며, 그 뒤 로마가 점령, 일찍이 도시문명이 번영했다. 17세기에 프랑스 땅이 됐다. 프로방스(프랑스어: Provence, 오크어: Provenca, 라틴어: Provincia)는 과거 로마 제국의 속주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에 기원을 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서부 일부를 가리킨다. 프로방스에는 유사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나르보넨시스의 일부인 동안 내륙에는 켈트족이, 해안지역에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했으며, 이 시기의 가장 큰 도시는 마실리아(현대 마르세유)였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로마인들의 진출이 시작되어 결국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우리말 번역서‘에는 『아피! 미스트랄』란 제목으로 변형됐다. 여기서 '아피’는 ‘해피’의 프랑스식 발음이고, ‘미스트랄’은 프로방스에 부는 계절풍이라고 한다. 살갗을 파고드는 삭풍이 때때로 휘몰아쳐도 마음만은 따사롭고 행복이 충만한 프로방스에서의 삶을 저자는 '경이로운 삶'으로 표현해 냈다. 책은 처음부터 경이로움으로 이어진다. 1988년 어느 날 런던 생활을 접고 프로방스 시골의 200년 된 농가를 덜컥 사면서 시작된 작가의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경이로운 경험은 무명 작가의 소박한 일기를 무려 25개국 1,0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이 무슨 매력을 담고 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걸까.

 


 

프랑스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거의 모두 프로방스를 잘 안다. 프로방스는 유럽인들이 늘 동경하며 꿈꾸는 지상 낙원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별장이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코트 다쥐르의 에메랄드빛 바다, 지평선 넘어 노랗게 물든 해바라기밭, 프로방스의 상징 보랏빛 라벤더가 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생각만 해도 멋진 풍광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작품을 냈으며 예술가들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은 '뭔가 있는' 곳이 프로방스다. 햇살 가득한 파라다이스에서 별세계 같은 삶의 이야기로만 이어진다면 이 책이 과연 1,0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한적한 시골 뤼베롱 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사계절 빛나는 프로방스의 명소만 돌아봤을 것 같지만, 아니다.

저자 피터 메일의 ‘충동적 선택’에서 비롯된 프로방스에서의 삶은 온통 일상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이웃들은 답답할 정도로 느긋하고, 음식을 대할 때는 유난히 유쾌하다. 포도 경작자 포스탱과 그의 가족, 산속의 엉뚱한 사냥꾼 마소, 집수리를 맡았지만 일 년 내내 밍기적대는 메니쿠치와 그 무리 등 등장하는 이웃들은 특유의 낙천적 기질에 우스꽝스럽다. 느리고 속 터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소박한 시골의 참맛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마치 천국이나 유토피아를 설명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시골의 참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독자도 십수 년 전 프랑스 여행 때 프로방스 지역에 들렀다.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시골까지는 못 가봤지만 풍광이나 사람들의 표정을 느끼기에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저자가 살고 묘사한 곳은 시골 뤼베롱이 중심이지만 프로방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책에는 프로방스 사람들의 일상과 여유가 넘치는 말, 행동들이 마치 천국을 묘사하듯 전개된다. 눈 뜨자마자 알코올 향 가득한 파스티스 한 잔을 들이켜고, 포도밭을 찾아다니는 행복감만큼이나 올리브유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손꼽아 기다린다. 게이트볼과 유사한 불르 게임의 승리를 위해 온갖 반칙과 생떼 쓰는 일화, 암암리에 이뤄지는 송로 산지 조작 이야기 등은 덤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충만한 삶에 관한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지루할 틈이 없다. 이 맛깔나는 열두 달의 기록을 통해 소박하고 정겨운 삶이 주는 기쁨은 정말 멋지다. 인생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쉼표가 무엇인지 정겹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독자는 부부의 짧지만 긴 일 년의 사계와 행복한 동행을 한다. ‘사람 사는 맛이 물씬한’ 프로방스의 진면목을 맛보는 것은 정말 어떤 가식도 없는 햇과일을 접하는 풋풋한 느낌이다. 이들 부부는 점점 ‘프로방스 시골뜨기’로 변해 간다. 파리 사람들이 주로 모인 이웃집 야간 파티에서 피터 메일은 말한다. “프로방스의 기준으로는 대화는 속삭임이나 다름없었다. 옛날이었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정상으로 비췄겠지만, 지금은 갑갑하고 위선적이어서 막연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복닥거리며 메마르고 파편화된 도시 생활은 언제나 한적하고 정겨운 시골의 삶을 꿈꾸게 한다. 이를 실행에 옮긴다는 건 적잖은 난관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늘도 꿈꾸는 사람들은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수도 없이 클릭하며 책을 뒤적이다 주저주저한다. 그러나 저자 피터 메일은 달랐다. 30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여건은 아주 달랐을 것이다. 프로방스 햇살을 받으며 아침잠을 깨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200년 된 오래된 농가부터 샀다. 말 그대로 '덜컥'이다. 충동적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때부터 저자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 관료주의, 지나치게 느긋한 일꾼들 탓에 일 년 내내 공사 중인 낡은 집, 괴팍하고 지저분한 이웃 등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모두 외지인, 특히나 도시인의 시각에서 문제일 뿐이다. 아마 저자가 시골살이의 불편함만을 마음속에 담았다면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 시시콜콜하고 평범하지만, 특유의 유머 가득한 에피소드들은 도시인으로 살아왔던 저자와 그의 아내에게는 불편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불평만 늘어놓지 않았다. 부부가 프로방스의 자연환경과 주변 이웃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요즘 말하는 ‘도시 생활자의 시골 적응기’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성을 쌓고 아름다운 풍광을 그저 눈요기 삼고자 한다면, 이웃 누구나 불친절하고 고깝게 굴 것이고 생뚱맞게 대할 것은 뻔한 이치다.

 


 

저자와 그의 아내는 프로방스의 삶과 자연에 녹아들려 했고, 이웃들의 진심을 보고자 끊임없이 다가갔다. 처음 해본 염소 경주 대회, 불르 게임에서 쭈뼛댔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기다리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시인의 눈높이로 시골살이를 미리 예단하지 않았다. 이주자가 먼저 다가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맞추려고 노력했다. 또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원했기에 그의 삶이 누구보다 풍요로워진 것이다. 오늘의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을 이 책은 알려준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참된 휴식과 삶의 의미가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이 주는 선물은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고, 삶의 의미다.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나 「서문」 대신 「들어가며」를 역자 강주헌이 썼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책의 첫머리에 둔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쪽만을 읽은 사람이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한다. 프로방스를 자세히 모르는 독자들을 위한 프로방스의 설명을 해준다. "프랑스에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 특히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마르세유, 영화제로 유명한 칸 그리고 니스"를 소개한다. 니스는 그레이스 캘리가 왕비로 있었던 모나코 공국이 30분 거리에 있다. 모나코 공국은 유명한 세계적 도박의 도시이다. 카지노 때문이다. 지금은 프랑스 영토는 아니지만 한때 프랑스령이었다. 인구 5만 명에도 못 미치는 우리 지방 군단위 읍 정도에 불과하다.

 

 

그림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독자들은 '프로방스' 하면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것이다. 반 고흐가 파리로 올라가 생을 마치기 전에 지낸 곳, 고갱과 말다툼을 벌이면서 귀를 잘린 곳인 아를이 프로방스에 속해 있다. 역자는 이 책 원고 번역 작업을 하기 전 프로방스 일대를 둘러보았다고 서두에 적고 있다. 니스에서 피카소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카페를 보았고, 아를에서는 반 고흐가 그린 랑글루아 다리를 보았다고 한다. 마르세유에서는 비린내 나는 선창을 찾았고, 니스에서는 모나코까지 건너가 카지노를 보았다고 한다. 이른바 '관광'이다. 이 책은 프로방스를 관광한 소감을 써내려간 여행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 살기의 글 속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낀 점도 번역에 많이 반영됐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역자는 말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일 년간의 삶은 곧 인간적인 삶의 축소판일 수 있다. 농사의 시작과 끝이 있고 여름 휴가가 있다. 프로방스에서 농사는 포도 농사이고, 이는 포도주의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프로방스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어 여름이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휴가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조용하던 농촌 마을에 도시인들이 몰려오면서 마을은 겉모습부터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프로방스는 이국적인 얼굴을 갖는다."

 

처음 한 시간 동안의 어색한 격식이 사라졌다. 모두가 윗도리를 벗어 젖히고 샴페인을 열심히 공략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아내들을 데리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작품을 구경시켰다. 영국식 목욕탕의 수도꼭지에는 ‘핫’과 ‘콜드’로 표시되어 있다며 수군댔고, 목수가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는지 점검하러 서랍을 열어보기도 했으며,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p.447)

 


 

왜 런던에서는 싼값에 맛있게 먹을 수 없는 것일까? 식사를 끝내고 이런저런 지혜를 모아본 결과, 우리는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외식을 적게 하기 때문에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여러 병의 포도주가 담긴 얼음통, 손가락을 씻는 물그릇, 단편소설에 버금가는 차림표,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랑삼아 떠들 수 있는 계산서를 원한다는 마무리였다.(p.217)

 

뤼베롱 산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산에 특이한 것들과 이상한 사람이 득실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버섯, 설령 야생버섯이라도 다 큰 성인 남자를 공격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버섯이 위험하냐고 물었다.(p.366)

 

저자 : 피터 메일(Peter Mayle)

 

영국인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서 자란 피터 메일은 ‘프랑스인보다 프랑스를 더 사랑하는 작가' 로 유명하다. 한때 광고업계에서 15년간 활동하며 카피라이터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남부 지방을 여행하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내와 함께 정착을 결심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 프로방스를 사랑한 피터 메일은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1989』을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책은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수백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기행문’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피터 메일은 9권의 소설을 포함해 총 15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작품들은 리들리 스콧을 비롯한 여러 제작자와 감독들에 의해 영화(어느 멋진 순간)와 TV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제작된 바 있다. 2002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작고했다. 『프로방스에서의 25년』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16번째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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