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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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특히 운동화에 대한 독자의 기억은 슬픔과 기쁨 두 가지가 다 있다. 지금이야 운동화가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물론 명품이라는 또다른 비싼 운동화가 있긴 하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브랜드 운동화가 유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사실 당시 물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러나 그걸 신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도 사주지 못한다고 해서 싼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기억이 슬프다. 그러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비싼 신발을 사주다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그때 우리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슬퍼지기도 한다.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에 돌입할 정도로 경제적 부를 이뤘으니 신발쯤이야 조금 바싸다 해도 그리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독자만 해도 5~6켤레를 갖고 있다. 가격이 싸서 사놓았다가 아직 한 번도 안 신은 등산화도 있다.

이 책 『풋 워크』는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신발'에 얽힌 발전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글로벌 사우스로 몰려가는 다국적기업의 무분별한 사냥, 사람들보다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적 결정,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 자연자원과 환경 파괴, 통제를 벗어난 과잉소비주의 등을 생생하게 파헤친다. 지금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되는 시대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던 신발이 전 지구적 교역과 세계화, 그리고 자동화 방식이 확산되면서 고유의 발 보호 역할에서 벗어나 소비재 상품의 상징이 되었다. 저자 탠시 E. 호스킨스는 신발 산업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각종 통계와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평범한 일상용품인 신발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로서 불합리하고 위태로운 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모두가 더 밝고 공정한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는 외침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21세기로 접어든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일반적인 영국 여성은 신발 스물네 켤레를 갖고 있으며 그중 몇 켤레는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다고 한다.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신발 수집 규모는 수천 켤레에 이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신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신발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열대 아프리카 지역의 농민과 어린아이들은 신발을 살 돈이 없어서 여러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242억 켤레의 신발이 만들어져도 세계 인구 77억 명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는 않는다.

지구상에서 추위와 위험한 땅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착용하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신발은 인류가 이족 보행으로 이행하면서 착용하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에는 식물섬유와 썩기 쉬운 원료로, 이후에는 가죽을 비롯한 좀 더 튼튼한 원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기계화·분업화되면서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발의 값이 싸고, 그만큼 지구에 가장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잘사는 나라들의 과잉소비에 따른 과잉생산은 우리가 일회용 세상에 살고 있는 양 착각하게 만든다. 혁신과 진보는 오로지 높이 쌓아놓고 헐값에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로 쏠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의 과잉생산은 전례가 없는,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주의에 탐닉할 돈이 있는 이들에게 세계화는 선택지와 풍족함을 놀라우리만치 끌어올렸다. 이에 응답하여, 소비주의는 세계화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뒷받침한다. 상품은 한 번에 수십억 톤씩 팔려나가고, 이윤은 쌓이고 또 쌓인다. 자본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건 오직 상품 생산과 판매를 통해서이며, 그토록 많은 이들이 과잉소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낮은 임금과, 그보다도 더 낮은 규제를 추구하는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통해서이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다. 신발은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중 하나이며 우리 세계를 조형하는 상호 의존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통신 및 운송 기술의 변화와 저임금 노동자의 세계적 분포 덕분에 신발 제조 공정은 전 세계로 분산되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 의류와 신발 관련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평범한 일상용품인 신발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복잡하고 불합리한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스니커광’이 모인 행사장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신발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귀담아듣고, 지구상의 신발 공장들을 탐사한다. 임시 난민 수용소의 절박한 실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파키스탄의 재택 노동자, 관련 기관의 담당자를 만나기도 한다. 다국적기업의 무책임한 관행과 제품 가격을 높이는 대신 노동을 쥐어짜는 것을 이윤 창출 전략으로 삼는 유명 브랜드의 행태도 비판한다. 브랜딩과 상표를 만들어내는 신화의 거미줄 뒤에 철저히 숨겨진 고통스런 진실은 때로 충격적이고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소들의 산업적 살해라는 일상화된 참상과 아마존 강 유역의 파괴 등은 현실로 다가온 기후 붕괴와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심각하고도 중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행동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발 산업이 수작업의 축소와 글로벌 사우스의 노동 및 성 불평등으로 인해 저항하기 힘든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국가와 비정부기구, 환경 단체, 인권 단체 등의 더욱 엄격한 규제와 감시를 촉구한다. 신발이 왜 그토록 많은 아수라장을 초래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신발 산업이 규제 완화와 하도급이 일어나는 자본주의, 즉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과 지구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하는 과잉생산을 수단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자본주의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발은 글로벌 사우스의 공장과 재택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 걷잡을 수 없는 소비주의, 그것이 낳는 산더미 같은 폐기물, 자본주의가 마술처럼 만들어내는 환영, 이주의 흐름과 장벽, 생물권 착취, 법적 보호 부재와 첨단기술 미래의 시작 같은 세계화의 특성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신발 공급 사슬을 추적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어쩌다 이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저자는 신발 산업의 험난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적 변화, 정치적 변화,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를 강조하면서 개인의 실천 지침까지 덧붙여놓았다.

연간 242억 켤레 생산, 미국에서 디자인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제조되고 유럽에서 구매되는 운동화는 제조 과정에서 독성 폐수를 쏟아내고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무두질 공장의 노동자, 50시간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나이키 운동화를 사려면 월급의 절반을 바쳐야 하는 중국인 노동자, 최저임금의 20~25%밖에 벌지 못하는 파키스탄의 재택 노동자, 거대한 쓰레기장을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목적은 신발이 만들어져 소비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따라가면서, 그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세계화라는 시스템이 야기하는 문제에 조명을 비추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각 장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발로 차」에서는 소비의 아찔한 세계를 탐사하면서 그 세계가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적은 사람들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강박적인 신발 수집가들을 만나 신발의 매력을 탐구한다. 제2장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는 중국에서 발칸 반도에 이르는 지구상의 신발 공장들을 탐사한다. 이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와 공장주를 만나고, 우리가 어쩌다 매년 242억 켤레의 신발을 만들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제3장 「신발 끈에 매달린 삶」은 1차 하청 공장 밑으로 이어지는 공급 사슬을 따라가 세계화를 떠받치는 비밀의 기둥, 즉 재택 노동자들을 만난다.

이 가려진 사람들은 누구이고, 수많은 가정을 공장으로 바꾸는 시장자본주의는 어떤 결과를 낳고 있으며, 도대체 우리 신발은 얼마나 유해한가? 기업이 신발 생산의 현실을 숨기는 능력은 제4장 「브랜딩」에서 다룬다. 브랜딩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업들은 왜 신발을 우리의 감정과 연결 짓고 싶어 하는지, 우리 신발에 붙은 상표를 믿어도 되는지, 그리고 짝퉁 스니커즈는 세상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제5장 「난민들의 신발」은 임시 난민 수용소에서 시작해 비에 젖고 낡아빠진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왜 돈과 상품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하는가? 튀르키예(구 터키)의 지하실에서 신발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수천만 명의 중국 아이들은 어쩌다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되었는가?

 


 

제6장 「지옥과 맞바꾼 가죽」은 가죽 생산에 관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희생되는 도살 산업에 관해, 열대우림 파괴에 관해, 노동자의 평균 기대수명이 50세에 불과한 방글라데시의 무두질 공장에 관해 폭로한다. 정치적 폭력에서 노예제와 기후 대재앙에 이르기까지, 가죽 산업은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대상에 벌을 내린다. 제7장 「폐기물이 되다」에서는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는다. 신발이 구매된 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자원집약적이고 복잡한 물품이 폐기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242억 켤레의 신발은 버려지면 과연 어디로 가는가? 구두 수선소로부터 중고품 창고와 재활용 공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회용 세계에 살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을 따져본다. 제8장 「로봇들이 몰려온다」는 현재의 쓰레기장을 뒤로하고 미래의 공장으로 떠난다. 로봇으로 인해 신발 산업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자동화가 더 확산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여성 노동자 수백만 명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이야기다. 제9장 「신발이 발에 맞으면」에서는 신발 같은 일상용품이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업은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그 많은 책임을 회피해왔으며, 인류와 지구를 지켜주어야 할 법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업 프로그램과 그린워싱이 어떻게 사회 진보를 막아왔는지를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제10장 「반격하라」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간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시도해왔다. 지금은 아래로부터 출발하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체제를 맞이할 시기일까? 좀 더 평등한 방식으로 재배치된 세계는 어떤 모습이며,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 : 탠시 E. 호스킨스(Tansy E. Hoskins)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가디언>, 알 자지라, 와 지에 방직 및 의류와 제화 산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 방글라데시, 케냐, 마케도니아 등지를 방문하고 영국 버밍엄의 위성도시인 솔리헐의 톱숍 창고에도 다녀왔다. 첫 책인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는 엠마 왓슨의 ‘궁극의 책 목록’에 올랐다.

 

역자 : 김지선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기사도와 테러리즘』,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북유럽 문화사』와 『살인자의 사랑법』, 『애프터 쉬즈 곤』, 『출구는 없다』,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등 다양한 서스펜스 소설과 더불어 『엠마』, 『오만과 편견』 등의 고전소설을 한국어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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