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토피아 -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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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사와 유토피아』는 책의 제목만큼이나 무거운 철학·종교·사상·국가 등의 개념을 동원해 부조리한 사회 비판의 에세이다. 에세이지만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세이의 정의에 한층 가깝게 간다. 에세이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 에세이는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는 사전적 풀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에세이의 종류를 기술할 땐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 혹은 공식적(formal) 에세이와 비공식적(informal) 에세이로 나누기도 하는데, 전자는 대개 지적·객관적·논리적 성격이 강하며, 후자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플라톤의 『대화록』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이 장르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프랑스의 몽테뉴(Montaigne)가 쓴 『수상록(Essais)』에서 현재의 의미로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후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찰스 램,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와 발터 벤야민, 미국의 랄프 에머슨 등을 통해 에세이의 현대적 모습과 각국의 문화적 특성에 따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역사와 유토피아』는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처럼 포멀 에세이에 속한다. 6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이 책 각 장의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이 포멀 에세이집이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1장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 2장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3장 「폭군들의 학교에서」, 4장 「원한의 오디세이아」, 5장 「유토피아의 매커니즘」, 6장 「황금기」이다.

 


 

나치 독일의 멸망으로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사회주의국가가 되어버리자, 파리에서 무국적자로 머물러야 했던 이 책의 저자 에밀 시오랑은 루마니아어와 이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역사와 유토피아』는 1960년에 출간된 그의 네 번째 프랑스어 작품으로 상까지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첫 에세이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는 루마니아 철학자 콘스탄틴 노이카(Constantin Noica)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권력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시오랑에 따르면 역사는 정해진 어떤 방향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저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무리 중 가장 강한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에서 그는 러시아, 러시아의 역사, 발전, 그리고 그가 “자유의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폭군의 학교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명쾌함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폭군과 폭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원한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이웃을 미워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복수를 하려는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꿈을 조사한다. 마지막 「황금기」에서는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의 유토피아인 성경의 에덴동산인 “황금기”의 개념을 분석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글들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와 독설과 풍부한 지식과 ‘무해’한 사상을 구사한 그의 문명 비평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독자는 사실 저자 에밀 시오랑(Emil Michel Cioran)도 처음 접하고, 그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진 못했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짧은 글로 이 책의 '서문'의 역할을 하는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1960년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출판된 시오랑의 『역사와 유토피아』는 역사와 유토피아라는 두 명제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수없이 다루어져 왔지만 항상 시사성을 잃지 않고 있는 주제다. 함축적인 짧은 글로 이루어진 다른 저자들과 달리 인용문과 세밀한 분석으로 통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특유의 날카로운 독설이 완화되어 있지만, 시오랑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혹하다.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 원한,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다. 경쟁과 투쟁으로 피로한 인간은 열렬하게 유토피아를 염원한다. 유토피아는 가능할까? 아니다. 유토피아는 경직과 침체를 피할 수 있는 개념으로 유용하지만 결코 실현된 수도 없고, 실현되어서도 안 되는 이상향이다. 악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만 존재하는 일원성의 세계, 갈등과 다양성이 진정된 세계, 영원한 현재가 지배하는 정체된 세계, 그 유토피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그 획일성과 단조로움에서 인간은 질식한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유토피아와 반대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사의 본질은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돌발성이다.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의식은 선택의 가능성을 열며 자유를 갖게 하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의식을, 자유를, 지식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용기를 내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을 인간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시오랑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본주의적이다.(p.7)

 


 

시오랑은 이 책에서 유토피아, 종교(가톨릭), 러시아, 사회주의에 대해 천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11년 루마니아 태생이다. 익숙한 이름 시오랑도 아니고 ‘치오란’이라고 한다. 루마니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장학금으로 수학했지만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의 활동이나 책쓰기에 몰두했던 것 같다.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철학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1937년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버리고 프랑스 전국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 1947년 조국 루마니아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소련 치하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책에서 나와 있지는 않은 사실이고 단순히 독자의 추정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명분이든 동방정교의 명분이든 러시아는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명성을 무너트릴 운명을 타고났다. 러시아인들이 가톨릭의 목표를 용납하려면 자신들의 사명과 계획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 치하의 러시아인들은 가톨릭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도구라고 규정하고 ‘저주’의 기도를 했다. 지금은 가톨릭을 반동의 앞잡이 사탄으로 생각하고 옛날의 저주보다 더 강도 높은 욕설을 퍼붓고 있다. 곧 모든 무게와 힘으로 가톨릭을 침몰시킬 것이다. 금세기 깜짝 사건의 하나로 베드로 성자의 마지막 후계자 교황이 사라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p.51) -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중에서

 


 

시오랑은 학계나 사상가, 철학자들과의 교류를 하지 않은 채 프랑스어로 쓴 책들에서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고 한다.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이 연달아 출간됐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생계를 이을 수입도 없어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다. 이때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시오랑은 특히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플라톤 이후 현대 사회까지 유럽 사회에서 떠나지 않는 욕망일 뿐이라고 강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유토피아, 즉 지상에 이상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는 이념은 허구라는 사실에 방점을 둔다. 유토피아에 대한 주장과 추구는 이미 그들이 말했던 완전함이란 결점이었고, 참신한 희망이란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감상적으로 상상했던 사회 유형이었지만 실제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고.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서유럽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역사는 보통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이상국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1516)를 시초로 하여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1623),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1627) 등 근세 초기, 즉 16∼17세기에 유토피아 사상이 연이어 출현한 시기를 그 탄생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토피아는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로 옮아가는 재편성의 시기를 맞아, 또는 거기에서 생기는 사회 모순에 대한 단적인 반성으로서, 또는 근세 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생긴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종교개혁 사상 가운데 가장 과격파인 '천년지복설(千年至福說)'의 비전을, 후자의 예로는 『뉴아틀란티스』를 각각 그 전형으로 들 수 있다. 이들 유토피아의 비전은 또한 18∼19세기의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이상사회의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근세의 유토피아 사상과, 나아가서는 루소 등의 원초적 자연상태로서의 황금시대에 대한 꿈이나 플라톤의 이상국에 대한 꿈까지를 포함하여 일관된 특징은, 그것들이 이상향을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하면서도, 실은 어디까지나 현세와의 시간적·공간적 연속선상에서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즉 유토피아는 '도원경(桃源境)'이니, '황천국(黃泉國)'이니, '하데스(Hades)'니 하는 원시시대 이래 인류 일반에게서 볼 수 있는 '타계관념'처럼 시공을 단절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에른스트 브로호, 마르쿠제 등 20세기 유토피아 사상의 계승자들의 사상에 있어서나 또는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등의 20세기의 '역(逆) 유토피아' 사상에 있어서도 같다.

시오랑은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카베의 공상 소설 『이카리아 여행』을 예로 인용한다. 토머스 모어에서 캄파넬라, 카베, 푸리에까지,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쓰여진 수많은 유토피아 문학을 섭렵한 시오랑은 거기에 그려져 있는 악의 부재와 사람 냄새의 부족을, 인간이 모두 로봇으로 되어버리는 환경에 깊은 위화감을 느낀다. 유토피아에서는 비정상적인 사람, 이단자, 모양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고뇌에 시달리고 목까지 악에 잠겨 있다. 그런데 이런 관리와 질서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악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만 존재하는 일원성의 세계, 갈등과 다양성이 진정된 세계, 영원한 현재가 지배하는 정체된 세계, 그 유토피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그 획일성과 단조로움에서 인간은 질식한다. 유토피아 기술에서 시오랑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예외는 『걸리버 여행기』로 스위프트가 그린, 그 희망이 가득한 나라뿐이다. 시오랑의 주장이 예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시오랑은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을 서슴지 않는다.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도 유토피아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들 간 불평등 해소, 같은 민족 내 평등의 진전 그리고 인류의 완성이다."라는 콩도르세(1743~1794,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의 말에 대해 역사는 이 주장을 긍정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실제 사회를 관찰하면서 우리의 희망이 어디서나 항상 실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해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고 언급한다. 타키투스와 같은 역사학자들에게 이상적 로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비유함으로써 스스로의 주장에 힘을 싣는 듯하다.

그는 "비극은 역사의 핵심이고 결정이다. 유토피아는 비극에 반대된다. 유토피아에는 비이성도 없고, 복원 불가도 없다.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에서는 갈등이 멈추고, 인간들의 의지가 억제되고 진정되어 기적적으로 하나가 된다. 우연이나 모순과 같은 성분이 사라지고 단일성이 지배한다. 유토피아는 위험한 이성주의와 인간적 순결주의가 합성된 것이다.

"사람은 불가능에 부딪혀야 행동한다. 유토피아를 생산할 능력이 없고 거기에 헌신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딱딱하게 굳어져 망한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현자들은 주어진, 가지고 있는 행복에 만족하라고 한다. 인간은 거부한다. 그 거부를 통해서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꿈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p.149) - 「유토피아의 메커니즘」 중에서

 


 

저자 : 에밀 시오랑(Emil Michel Cioran)

1911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에밀 시오랑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며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치오란’이 아니라 ‘시오랑’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3년에 독일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체계로서의 철학에서 멀어져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서의 글쓰기에 경도된다. 1934년 첫 책 『절망의 정점에서(Pe culmile disper?rii)』를 출간했고, 1936년에는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에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가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국어로 쓴 책 『사유의 석양(Amurgul gandurilor)』(1940년)을 출간하고 난 다음 1947년 이후에는 루마니아어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의 책을 출간하며, 고독과 처절하게 맞선 글쓰기,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는데,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5년 6월 2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역자 : 김정숙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4대학Paris IV Sorbonne에서 프랑스 현대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수 및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프랑스어권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역서로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사전: 알제리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 『북아프리카지역에서의 부족집단 간 갈등 양상에 관한 기초연구』(공저), 『마그레브: 북아프리카의 민족과 문명』(공역)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프랑스어권문학: 탈식민화 기획과 실천의 가능성」, 「마그레브 프랑스어문학: 모호한 정체성과 위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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