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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평점 :
글 쓰는 사람들의 방을 가보는 일은 쉽지 않다. 독자처럼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작가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여간해선 작가의 집 방문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작가들은 대체로 외부의 접촉보다 자신과의 내면 접촉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으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외향적인 작가들은 글 쓰는 시간보다 어쩌면 외부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은 작가들은 어떻까? 이 책 『작가의 방』은 독자의 이 같은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시켜 줄 뿐 아니라 작가와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사적인 버릇까지 모두 담고 있다.
저자 알렉스 존슨은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곧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고, 마치 방금 전까지 않아서 글을 썼던 듯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상에 앉아 봅니다. 친구의 집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진힌한데, 제임스 본드가 탄생한 방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면 얼마나 신날까요?"라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신의 글을 선전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썼다는 말이다. 저자의 집필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독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당연히 작가들의 방을 엿보는(?) 일은 무척 궁금하던 것을 풂과 동시에, 새로운 삶의 영감을 얻기에도 좋은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모든 글들이 존대어로 쓰여 있어 독자로서는 오히려 읽기에 불편함도 있다.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존대어로 된 것은 독자에게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서겠지만 저자의 뜻인지, 역자의 습관인지, 출판사측의 요구인지 모르겠지만 어린이용 그림책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 책은 근·현대작가 50명의 집필 공간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방 〈오직 홀로, 영감에 귀 기울이는 곳〉은 가장 많은 작가가 좋아한다는 ‘은둔형’이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는 “내게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책상과 타자기뿐”이라고 말했으나, 그가 살았던 집들에는 대개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집필실이 있었다. 사실 그에게 진짜 아이디어가 찾아오는 순간은 집필실보다는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책상과 타자기」란 제목의 이 글에서 "중동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남편과 함게 텐트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사과를 끝도 없이 먹고 있을 때 종종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했음을 상기시킨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 세상의 제약과 간섭, 집안일 등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은 더욱 절실했다.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제목에서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는 뒤뜰의 오두막을 ‘자기만의 방’으로 삼았다 썼다. 이디스 워튼은 코르셋을 입을 필요가 없는 침실에서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들보다 앞서 펜을 들었던 제인 오스틴은 독립적인 집필 공간 대신, 아끼던 문구함 위에서 혹은 다이닝룸의 작은 테이블에서 남몰래 글을 써야 했다고 귀띔한다. 은둔형 작가들의 대다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스스로 세운 규칙을 성실히 지키곤 했지만, 물론 예외도 있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자정이나 새벽 2시쯤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하는 완벽한 올빼미형이었다. 그가 커피를 50잔이나 마시고도 모자라, 원두를 갈아 그대로 먹기까지 했던 건 아마도 이 독특한 생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으리라는 소개에서는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기행을 하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되짚어보게 한다.
두 번째 방은 〈추억과 개성이 가득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집필 공간과 그 안의 물건들에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새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집이나 서재를 취향대로 꾸미는 일에 유독 열성적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직접 사냥한 짐승들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1만 장이 넘는 재즈 레코드로, 동화 작가 로알드 달은 자신과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사진과 기념품으로 공간을 장식했다. 이들이야말로, ‘누군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기를 여러 권 읽는 대신 그가 살던 집을 한 시간 둘러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위인들의 집〉)에 꼭 들어맞는 인물들이다.
한 번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투고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받은 수많은 거절 편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둔 커트 보니것의 방에서 그의 심정을 헤아리며 공감과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퇴짜 맞은 명작들'의 별도의 페이지에서는 『모비딕』ㅇ를 쓴 허먼 멜빌은 "무엇보다 꼭 고래여야만 하는지 몯고 싶군요"라는 출판사의 거절 편지를 받았다는 소문도 소개한다. 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파버앤드파버 출판사가 출간하기에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들었고, 앨리엇(T. S. 앨리엇, 영국 시인 겸 극작가이자 비평가. 대표작 『황무지』로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 현대시의 선구자, 독자 주)은 이 『동물 농장』의 구성에 대해 "필요한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공산주의가 아니라 많은 애국심 있는 돼지들"이라고 비평했다는 점도 소개해 준다.
세 번째 방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에서는 옮겨 다니면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소개한다. 물론 글 쓰는 사람들이 특정한 집필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방에 소개되는 작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쓰곤 했다. 『증언들』, 『오릭스와 크레이크』를 쓴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거릿 애트우트는 아르바이트와 육아 같은 여러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바쁜 작가들은 집, 호텔, 커피숍, 자동차나 비행기 안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메모를 하고 글을 썼다는 점을 일러준다. 특히 '해리포터' 시리즈로 일약 세계의 작가 반열에 오른 J. K 롤링이 어린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에든버러의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에스프레소 한 잔 값만 내면 얻을 수 있고,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 가능한 이 공간들을 만족스러워했다. 영국의 에든버러의 카페들이 그의 집필실인 셈이다. 돌아다니며 글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펼치면 책상으로 변신하는 여행 가방을 주문 제작한 아서 코넌 도일 같은 작가도 있었다.
네 번째 방의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곳〉은 도시의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한적하게 글 쓰며 사는 삶에 로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형’ 작가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망 좋은 침실」에서 토머스 하디는 나고 자란 영국 전원 마을에서 영감을 얻어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와 『푸른 숲 나무 아래』에서 '웨식스'라는 무대를 창조해 냈다. 그는 이 웨식스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웨식스는 가상의 전원 마을이다. 이 웨식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생 동안 소설과 시에 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안톤 체호프는 벚꽃 동산에 지은 별채에서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정원을 내다보며 「갈매기」를 썼다. 매일 아침 숲에 들어가 글을 쓴 D. H. 로런스는 숲에서 신비로운 영감을 받으며, 나무들이 꼭 살아 있는 동반자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유형만으로 설명하기엔 아쉬운, 남다른 공간과 집필 방식을 고집한 작가들이 다섯 번째 방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집스럽게〉에 모여 있다. 브론테 세 자매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사제관 응접실은 오늘날의 드라마 작가실과 비슷한 분위기였을 듯싶다. 앤과 애밀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샬럿이 “내 글을 한 줄이라도 읽어 줄 사람이나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낙담하고 좌절했는지” 토로한 편지를 보면, 이들에게 공간 자체보다는 글쓰기 동료였던 서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이 된다. 또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남편이 그에게 강력한 집필 동기를 제공한 동료였는지, 아니면 단지 그의 재능을 훔치려 한 사업가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남편 윌리는 “글을 쓰는 것은 게으른 자의 즐거움이자 고통이다”라고 말하는 콜레트를 별장 2층 방에 가두고 원고를 독촉했고, 그렇게 완성된 ‘클로딘’ 시리즈를 자기 이름으로 출판해 큰돈을 벌었다. 콜레트가 자서전에서 “사실 감옥은 최고의 집필실 중 하나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의 관계가 동지였는지 적이었는지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라 해도, 그 과정에는 분명 재미와 즐거움 못지않게 괴로움과 외로움이 따른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영감과 집중력을 선사하는 더 나은 공간, 더 훌륭한 도구를 찾아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고요한 은신처가, 때로는 만년필이나 타자기, 반려동물이나 산책이 그런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는 어디에서, 무엇에서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앞선 작가들의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하나씩 찾아보자. 이 책 『작가의 방』 저자의 말은 묘한 여운과 함께 작가들의 집필 스타일과 저자 알렉스 존슨의 현대적 시각을 가진 방문자간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거리감을 독자에게 연결시켜 줌으로써 독자들과의 시공간의 거리감을 없애주는 독특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책에는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도 나와 있다. 위고는 나폴레옹 3세와 정치적으로 충돌한 끝에 프랑스에서 추방돼, 1855년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책이 성공하면서 돈도 좀 벌었던(원래 귀족으로 부자였다) 위고는 영국령 '건지섬' 세이트피터포트에 고딕 양식의 저택을 매입하고 '전망대'라고 알려진 집필실을 옥상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또 전망대는 커다란 유리창이 삼면을 둘러싼 데다 지붕도 유리로 덮여 있어 마치 집 꼭대기에 있는 온실 같다고 설명한다. 위고는 여기에 거울을 여러 개 달아 환한 빛을 강조하고, 또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도록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1851년 런던 박람회장으로 지어진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이 집필실을 '크리스털 룸'이라고 불렀다. 1862년부터 망명 생활 15년 동안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스탠딩 디스크를 두고 '험(Herm)섬'과 '사크(Sark)섬), 맑은 날에는 프랑스까지 보이는 전망을 즐기며 글을 썼다고 밝힌다.
위고는 아침마다 집필실에서 글을 썼습니다. "새벽이 되기 전에 일어나 정오에 일을 마치는 작가는 성공한다"는 말도 남겼죠. 오트빌을 방문한 프랑스 저널리스트 폴 스태퍼에게는 글을 쓰기 전 언제나 아침 식사로 날달걀 두 알과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일이 항상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는데, 그건 아마도 스태퍼가 언급한 것처럼 "이 위층 방에는 무질서와 혼돈이 가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태퍼는 위고의 글쓰기 루틴을 묘사하며 재미난 일화를 하나 덧붙였습니다.
오전 11시가 되면, 글에 대한 열정과 겨울의 온실을 따뜻하게 데위 주는 난방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던 그가 발가벗고, 밤새 바깥에 내놔 차가워진 물을 몸에 끼얹었다. 이 시간에 그의 집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유리 집필실을 올려다본 사람들은 하얀 유령이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위고가 자신에게 세심히 맞춘 루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말총 장갑으로 몸을 마구 문지르는 것이었다.(p.184~185)
1946년 5월, 조지 오웰은 훗날 『1984』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쓰기 위해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의 외딴섬으로 향한다. 그가 3년 가까이 은둔했던 주라섬의 농가 ‘반힐’은 근방 30킬로미터 안에 전화기도 없고, 전기와 온수도 들어오지 않으며, 바깥세상과의 연결 고리라고는 라디오가 전부인, 철저하게 고립된 오지였다. 소설의 당시 가제였던 ‘유럽에 남은 마지막 인간’의 기분을 직접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마이클 셸든이 쓴 오웰의 전기에 따르면 “그에게 반힐은 한낱 농장이 아니었다. (…) 바깥세상의 전쟁, 지저분한 거리, 현대적인 공장, 권력 정치를 상기시키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경험한 광대한 자연과 금욕적인 생활은 오웰의 정신과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렇게 완성된 『1984』는 세상을 뒤흔들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오웰 자신은 주라섬을 벗어나 소설을 출간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뜩이나 폐결핵을 앓던 오웰의 건강이 주라섬의 추위와 혹독한 환경 속에서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저자 : 알렉스 존슨(Alex Johnson)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블로거.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현대사를 전공하고, 《선데이타임스》 《인디펜던트》 등에서 기자와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음식, 미술,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이며, 무엇보다 책에 관한 책을 쓰는 애서가다. 끝없이 펼쳐진 책의 세계를 탐험하며 《북타운(Book Town)》 《책 중의 책(A Book of Book Lists)》 《있을 것 같지 않은 도서관(Improbable Libraries)》 등을 썼다. 책뿐만 아니라 서가 디자인과 오두막 꾸미기에도 진심이다. 그의 이런 관심사를 완벽하게 반영한 《작가의 방》은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탄생한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 집필실에 앉아 보고, 제인 오스틴의 문구함을 열어 보는 이 특별한 여행이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책을 쓰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역자 : 이현주
펜실베니아 주립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대행사를 거쳐, 글밥아카데미 영어 출판 번역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킬러딜』, 『1등 스타트업의 비밀』, 『미라클 모닝 다이어리』, 『마법의 광고 디자인』, 『슈가 플라워』, 『타르트&케이크』, 『고양이 본능 사전』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