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입니다
원장경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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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등장은 20년 전만 해도 '먼 미래'로 예측했었다. 사실 인공지능이 체스를 이기고 바둑에 도전할 당시에도, 바둑과 체스는 다른 것이라며 우리나라 이세돌 선수에게 쉽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알파고가 등장하고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5전 4승 1패로 승부를 가르자, 인공지능의 발전이 이렇게 빠른가? 하고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바둑은 한 경기를 하는 데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변화가 '무궁무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공지능과의 대전을 계기로 시간과의 싸움은 무의미해졌다. 사실 바둑 알파고의 발전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발전이 가능했고, 걸리는 시간은 상상 이외로 짧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축적된 인공지능 바둑은 자체적으로 하루에 3만판의 시험 대국을 자체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쉽게 표현해 전원을 켜고 스위치만 누르면 하루 3만 판을 두고 자료를 축적해 나간다니 아무리 뛰어난 바둑 기사라 해도 일생 둔 대국 수가 3만 판에도 못 미칠 텐데...

이젠 바둑은 인공지능에게 배우고 있다.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자체 발전 능력은 인간이 제어할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 시간 문제란 이야기다. 이런 지능에다 인간의 생체와 비슷한 로봇만 만들어 낸다면 둘을 결합시켜 영원히 죽지 않는 인공지능 로봇, 즉 '인공지능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당장 산업계부터 시작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윤리와 도덕, 인간의 존엄성을 앞세워 인공지능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게 세계 과학계의 시각인 것 같다. 계속 개발한다면 인공지능 시대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 주인이 되고 인간은 거기에 종속되어 생명을 유지하다 결국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란 인류 최악의 재앙을 맞을 준비를 스스로 하는 격이 된다. 상상력의 최대 집합계인 문학계도 엄청난 지능과 과학기술을 동원해 SF 소설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지금은 SF의 시대다.

 


 

이 책 『나는 인간입니다』는 우리가 얼마 전까지 즐겨 읽고 보았던 '좀비(시체 인간)'와 첨단 과학이 좀더 발전된 양상을 띠는 소설이다. SF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출판하며 그 외연을 넓히고 있는 그래비티북스가 펴낸 두 번째 장르소설이라고 한다. 그래비티북스는 2019 SF어워드 우수상 수상작인 박문영 작가의 『지상의 여자들』, 2020 SF어워드 대상 수상작인 이경희 작가의 『테세우스의 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및 2020 SF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한 천선란 작가의 『무너진 다리』 등 과학 및 첨단 기술문명과 문학이 결합된 한국 SF 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뚝심 있게 출간해 왔다. 독자도 우리나라 과학과 기술 문명이 이 정도로 발달돼 있나를 '좀비 책'과 '좀비 영상'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소설은 대표적인 좀비 영화 〈부산행〉과 같이 그 외피는 공포·호러판타지 소설이지만, 작품이 내포한 내용과 주제는 가족소설이며 휴먼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좀비소설이나 좀비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좀비를 다룬 작품들이 인간이 주인공이요, 좀비들은 인간의 반대편에 선, 제거해야 할 주적의 위치에 서 있다면, 『나는 인간입니다』는 인간이 아닌 좀비가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은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된다. 성별·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그렇다.” 이 소설은 그런 가장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런 주인공이 괴물이 되어 버렸다. 주인공은 괴물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면서도, 자신만은 괴물이 되어 버린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본능과도 같이 사라진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러 길을 떠나지만, 가족을 찾아 나선 주인공은 인간 사회에도, 괴물인 ‘그들’ 사이에도 섞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외피적으로 좀비를 다룬 작품이니 호러물이다. 하지만 호러물임에도 저자 원장경은 좀비가 창궐한 아포칼립스 세상을 억지로 무섭게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내포한 주제로 보아 가족물임에도 저자는 억지로 눈물을 뽑아내려 하지 않는다. 장르물로서의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또한 뻔하지 않다.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영상 문학에 단련되어 있는 저자의 이력은 소설 속의 장면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듯 볼 수 있는 문장으로 묘사한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독자는 느낀다. 읽어가면서 그저 눈앞에 떠오르는 풍경 속에서 호흡하고, 느끼면 된다. 그렇게 그저 자연스럽게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주인공이 보는 것을 보고, 그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그의 고통과 절망을 가슴 아파하고, 그가 다시 일어서기를 온힘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가슴 가장 깊숙한 곳,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지니고 있던 것, 사랑과 휴머니티(인간애)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몰입의 정도가 조금 더 나아가면 급기야 아프도록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그저 살아내고 있던 자기 자신을 힘껏 응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고, 살아내왔기 때문에 독자들의 주인공 좀비의 언행이 자신으로 동일시되는, 동화(同化)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의 이 같은 휴머니즘은 주인공에 대한 애정과 독자들의 사랑스러운 시각으로 읽어주기를 이 책 제목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 표지 제목 '나'는 인간입니다로 시작해서 마지막 부분 제목이자 장(章)은 '우리'는 인간입니다로 끝난다는 점에서 유추 가능하다. 이 마지막 장의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소설이기도 하다.

 

 

좀비에 관한 얘기는 이미 많다. 영상물로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최근 K-좀비물로는 〈킹덤〉까지 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잘 보면 궤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 역시 흔히 우리가 아는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다. 하지만 그간의 좀비물과는 또 좀 다르다. 지금까지의 좀비물에서는 대부분 주인공은 좀비와 대적해 인간을 구하고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좀비이다. 인간이 아니다.(참고로 작품에서 좀비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주제로 보자면 이 작품은 가족물이다. 그런데 그 정서가 아내로 편중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편한테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다만 생존하려고 애쓰는 존재가 주인공일 뿐. 작품 속 주인공은 그저 본능처럼 가족을 찾아갈 뿐, 그렇게 가족의 존재를 알아갈 뿐, 작가는 어떤 쪽에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잔인할 정도로 주인공과 제삼자와 적의 존재까지 다 조명하려 든다. 따지고 보면 매우 잔인한 처사다. 인간이 무엇인지의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지도, 아포칼립스 시대에 인류의 구원 같은 거대 담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시민의 생각과 행동을 담담하게, 하지만 끈질기게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는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과연 인간인가, 괴물인가? 주인공은 과연 인간일까, 괴물일까?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기준은 그럼 무엇일까? 인간으로서의 이지와 이성을 잃는 순간,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과연, ‘이성’이 인간임을 확증하는 조건일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과 인간들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 내고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처음 떠올렸다고 밝힌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꿈 이야기라고 한다. 꿈속에서 자신이 괴물이었고, 수많은 사람에게 쫓기는 게 너무 무서웠다는 것이다. 그걸 이야기로 만들어 당시 업계 사람들에게 찾아갔을 땐 한국에선 좀비물이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작가는 긴 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놓지 못했다. 작업 중간에 〈나는 전설이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너 표절이야, 인마.”라는 소리를 듣고 많이 고통스러워했다는데, 실상 저자는 그 작품보다는 오히려 이후 〈부산행〉의 성공을 보며 작품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아포칼립스 시대의 영웅으로서의 거대 서사가 아닌, 한 개인 또는 가족에게 일어나는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가치가 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인 듯하다.

〈부산행〉 이후 〈킹덤〉까지, 어느새 K-좀비물은 흥행보증수표로까지 여겨지곤 한다. K-좀비, 좋은 말이다. 다만 전 세계 어디에도 좀비에 관한 기준은 없다. 또한 이 책의 좀비 역시 대중들에게 익숙한 K-좀비가 아니다. 주인공이 좀비인 이야기 역시, 굳이 찾으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오히려 좀비란 말 자체를 작품 속에 쓰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나는 인간입니다』라는 작품 안에는 다만 ‘자신을 잃은 자’와 ‘자신을 잃지 않은 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더 매력적이다. 좀비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좀비들이 가진 사회적 은유와, 주인공이 뿜어내는 가정적 은유,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이 책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그 누구한테라도 코끝에 걸린 찡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는 작품 속에 좀비인 주인공이 자신은 좀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말을 묘사하고 있다. 배를 내밀고 숨을 거칠게 쉬며 뒤똥뒤똥 걸어오는 좀비와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지만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넷을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녀석들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고, 주인공은 이들을 지켜가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위기도 모면할 수 잇고, 특정 상황에선 목숨까지도 구걸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녀석들은 생각할 줄 모른다."(p.140) 인간과 짐승과 분명한 차이점은 '생각'이다. 인간은 생각을 가졌기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고, 그 생각을 더 요구하고 있다. 생각에 대한 중요성을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강조해온 것을 우리 인간들은 다 알지 않는가. 생각하면서 사는 게 인간이다.

 

“잠깐!!”

조용해졌다. 난 손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나 사람이야! 쏘지 말고 말을…….”

총알 세례가 이어졌다.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도 사람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총을 쏴댔다. 온몸이 저릿한 게 아마 여러 발 맞은 모양이었다. 난 눕고 말았다.(p.103)

 

저자 : 원장경

 

시작은 전자공학도였으나 문학도로 급선회, 영상시나리오전공으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대학 강사와 시트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각본 담당으로서 생계형 글쟁이로 지내왔다.주로 영상을 다뤄 온 원장경 작가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면서도 또한 새롭게 느껴질 문장을 구사하며 장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화 보듯 생생하게 저절로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들에 몰두하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이 독특하면서도 경계 없는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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