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블루스처럼
권순정 지음 / 메리포핀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춤과는 거리가 멀다. 학교 다닐 때는 일부 친구들이 춤추고 놀아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고, 춤은 이른바 '불량학생'들의 놀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물론 대학생들에겐 그런 딱딱한 잣대를 들이대진 않았으나 못 배운 춤을 대학 가서 배운다는 것도 힘들었고, 그렇게까지 춤을 즐기지도 않아서다. 가끔은 이른바 디스코장에 갈 경우 술 기운을 빌려 다소 몸을 흔든 적이 있을 뿐 춤과는 친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역사 시간에 우리 민족은 '가무에 능했다'는 내용을 배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춤에는 또 음악이 동반된다. 아마 춤이 인류 역사와 같이 했으리라 건 상상이 아니라 원시 사회의 벽화 등에서도 춤추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예는 있다고 들었다. 그러던 인류 문화 발전과 더불어 고대 문화에는 각양각색의 춤추는 모습이 기록과 그림으로 남겨져 인류는 춤과 음악이 일상 특히 노동 뒷풀이에 자주 이용된 것으로 듣고 배웠다.

춤은 건전한 사회의 놀이 중에 하나로 출발했으나 문물의 발전과 더불어 춤과 댄스는 급격히 다양한 종류로 발전, 확대되었다고 음악 관련 책과 춤 관련 책들은 밝히고 있다. 노동을 위로하는 뒷풀이 성격에서 흥을 돋구는데도 사용되고 분위기 좋은 사교 댄스가 생기고 음악도 사교를 위한 곡들이 작곡되는 등 급격히 서구에서 변화 발전되었다고 음악사나 무용사는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춤은 지역적으로 다른 형태로 발전된 것으로 문물의 교류가 활발해진 이후에는 복합된 형태의 춤과 음악이 발전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유입된 춤과 댄스음악은 디스코의 열풍에 힘입어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공중파 방송에 등장했다. 뮤직비디오의 영향으로 더욱 널리 확산된 댄스음악은 당대에 유행한 춤과 영향 관계를 주고받으면서 한국 대중음악에서 춤과 함께 주류로 자리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현대 댄스음악의 기원은 서양 문물과 서양 춤의 도래에서 찾을 수 있다. 광복 이후 본격적으로 유입된 서양 문물과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나라의 댄스음악은 왈츠, 폭스트로트, 스윙, 맘보, 지르박, 삼바, 부기우기, 차차차 등 사교춤의 춤곡으로 유행했다. 1960년대 트위스트와 1970년대 디스코의 유행을 거쳐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학가에 허슬과 디스코를 추는 댄스 동아리가 형성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고고의 인기에 이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춤 디스코가 유행했다. 이은하의 「밤차」(1978), 혜은이의 「제3한강교」(1979), 그리고 나미의 「영원한 친구」(1979) 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춤과 함께 등장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중음악 갈래로 볼 수 있는 댄스음악과 주로 댄스음악에 특장을 드러낸 이른바 댄스 가수들이 등장하였다. 김완선, 소방차(김태형, 정원관, 이상원(도건우)), 그리고 박남정 등이 많은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전엔 가수는 노래만 부르는 데 몰입했으나 댄스 가수의 등장으로 노래 부르는 가수라도 누군든지 춤과 함께 선보였다.

1990년의 ‘현진영과 와와’를 시작으로, 1992년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록과 랩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댄스 음악이 나오면서 한국 댄스음악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1996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형기획사의 주도 아래 아이돌 그룹 중심의 댄스음악이 주류 대중음악으로 기능하였다. 댄스음악은 케이팝(K-Pop)의 인기에 부응하면서 한류를 이끌었는데, 특히 2012년 7월에 발매된 가수 싸이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싸이6甲 Part1』에 수록된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방탄소년단(BTS)는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등의 명실상부한 '가무를 즐기는 민족'의 위용을 드러내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음악적 시각에서 짚어본 춤이지만 현대의 대중에게 인기 있는 춤이 음악이 먼저 유행하고 그 가수가 추는 춤이 따라 유행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은 조금씩 다른 길을 걷는다. 춤에 대한 사회적 의식, 특히 사교 댄스는 성을 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채 사회의 비판적 시선에 노출돼 곤욕을 치른 일이 많다. 지금은 사교 댄스로 불리워지는 지르박은 1950년대 이미 유행해서 전쟁터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버리고 적과 싸우는데 후방에서 댄스홀에 모여 춤이나 추고 있다는 지적에는 이른바 '딴스홀'이라는 주부 탈선의 온상으로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 왔다. 1950년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영화로 만든 「자유부인」(1956)은 당시 춤 열풍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춤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아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춤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 댄스 음악과 춤은 1930년대 서양 춤의 도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도시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중심으로 춤이 유행했고, 광복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유입된 서양 춤의 영향으로 다양한 사교춤이 발달하기도 했다. 왈츠, 부기우기, 폭스트로트, 지르박, 맘보, 탱고, 볼레로, 룸바, 지르박, 삼바 등은 모두 리듬명이면서 특정 춤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의 따가운 눈총에서 음악이 주도하던 사교 댄스가 대중의 춤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다. 디스코 열풍 이후에 강한 비트와 쉽고 단순한 노래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댄스 팝(Dance Pop)을 주로 하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등의 음악이 우리나라에 유행하면서 이와 유사한 춤과 음악이 등장했다. 김완선과 박남정, 그리고 케이비에스(KBS) 무용팀 ‘짝꿍’ 출신으로 이루어진 소방차가 인기를 얻으면서 댄스음악은 주류 대중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댄스음악은 힙합과 록의 영향으로 새롭게 전개되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를 주도했다.

 


 

이 책 『인생은 블루스처럼』에는 권순정 교수가 춤을 추며, 가르치며 삶에서 느낀 것들이 담담히 담겨 있다. 주어진 작은 자리에서부터 인생의 한 단계, 한 단계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살아온 저자 권순정의 이야기에는 삶의 중요한 힌트가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시선을 남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자기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삶에는 도전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남녀가 춤을 추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절, 당당히 댄스스포츠를 자신의 길로 택했고, 또 무엇보다 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던 그녀는 그 가치를 커리어로 증명해 보였다. 춤을 배우고, 가르치는 워킹맘에서 박사와 대학 강의라는 성취 이후에도 그녀는 지금도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계속해서 사유하고 꿈을 꾼다.

남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는 것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온 그녀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아 글을 썼다. 그녀의 이야기는 팍팍한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내 삶을 자기 자신으로 뜨겁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도 처음 댄스를 시작할 무렵에는 춤을 배우러(리듬체조 선수였다) 학원을 찾았다가 기겁을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아직 사교 댄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그다지 좋지 않을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라 짐작된다. "처음 찾아간 학원은 간판에 빨강색 글자로 아주 크게 '딴스'라는 두 글자만 쓰여 있던 학원이었습니다. 댄스도 아니고 '딴.쓰'라니··· 생각지도 못한 간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들어간 교실에는 백바지에 백구두를 신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p.17) 이후 저자의 행동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어린 학생이 '딴스'를 배우러 학원에 제발로 오다니···

 

 

이 책 1장 「언제까지나 도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첫 꼭지 '운명 같은 일은 꼭 다시 만난다'에 나온 내용이다. 그러나 내려가는 계단을 두 계단씩 건너뛰며 도망쳐 나온 댄스에 어떻게 발을 들여놓았는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댄스 입문 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본격적으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하게 된 곳은 교육대원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중에 졸업 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보다는 더 접근성이 좋은 것이 '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밝힌다. 사실 저자는 자신의 댄스 입문기의 후일담을 적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만남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묘미 아닐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그저 스쳐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이다. 이 꼭지의 제목은 '만남의 나비 효과'다. 사실 독자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의 이 주장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꽤나 만족스럽고 달콤할지라도,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한 계단 더 올라가 보세요. 더 많은 인연과 기회가 보입니다."(p.29)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1장에 이어 2장 「인생을 블루스처럼 살고 싶습니다」에서는 인생이 늘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는 점을 누구나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대로 삶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삶의 재미가 없을 거라고 주위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생이 걱정도 없이 살면 좋을지는 몰라도 재미는 없어진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어려움 속에서 성취, 문제해결에서 나오는 것인데 아무 문제 없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재미 없을 듯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음악도 책도 스마트폰도 없이 먼 기차여행을 가는 것처럼 공허할 것 같습니다.(p.52)

 


 

3장 「좋은 어른이고 싶습니다」, 4장 「춤추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저자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장(章)이다. 지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앞으로도 춤을 가까이하는 '춤추는 인생'을 위해 인생 목표가 뚜렷한 분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불현듯 일본 영화 〈쉘 위 댄스〉가 생각난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스기야마(야쿠쇼 고지)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열심히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던 어느날, 전철 안에서 무심코 올려다본 그의 시선이 사교댄스 교습소의 창가에 서 있는 여인 메이(구사카리 다미요)를 포착하고부터 밋밋한 그의 일상에 예기치 않은 술렁임이 일기 시작한다. 스기야마는 부지불식간에 사교댄스라는 완전히 생소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그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불현듯 저자의 말도 독자에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우울해졌을 때 온몸을 사용하고 청각까지 사용하는 춤을 추게 되면 우울감이 많이 사라집니다. 약해지고 우울해지기 쉬운 노인이 이런 취미생활 하나 정도 가지고 있다면 노년의 삶이 더 윤택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멍 때리기를 좋아하는 저는 가끔 상상합니다. 해외 여행을 가서 노을 지는 해변가에서 그 나라의 사람들과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일, 이것보다 낭만적인 취미는 없을 겁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해보세요. 지루하던 일상이 음악과 좋은 사람들로 채워지면 분명히 웃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p.181~183)

 


 

길 가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참, 곱게 늙었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예쁘고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저자의 미래는 '춤추는 할머니'로서도 충분할 터이다. 그가 「에필로그」에 쓴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 꼭지의 글에는 이제 50살이 됐지만 '아직 50년을 더 살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고 독자는 느낀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50살에 책을 낼 수 있었고, 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저자의 글이 더 책으로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건 그가 아직 잘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표입니다. 그리고 나이 50이 되고서 더 좋은 점은 '배짱'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이뤄지면 어떻고, 또 실패하면 어떻냐 하는 배짱 말입니다.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게 되니까요. 그래도 아마도 내가 남은 꿈들을 이루리라고 믿습니다. 이런 희망 하나 안고 살아야, 나이가 들어도 살맛 나게 인생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p.206)

 

저자 : 권순정

 

평생 춤을 가르치며 살았다. 동서울대학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고, 동작FM [댄서의 순정]을 진행 중이다. 늘 당당하길 추구했으나 때로는 현실에 타협했고, 늘 좌절하지 않기를 원했으나 때로는 주어진 시공간 앞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늘 현재에 머무르기보다는 언제나 나아가길 택했다. 지금도 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더 잘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도전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