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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중심국 카자흐스탄 이야기
전승민 지음 / 들녘 / 2022년 9월
평점 :
'중앙아시아'라고 불리우는 5개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은 예전 중국과 유럽을 잇는 교역로 '실크로드'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모두 초원에서 말을 타는 부족이란 의미에서 유목민으로 불리웠다. 한때는 중국과의 전쟁과 화친을 벌갈아가며 대치하고 싸움을 벌였지만 중국 당나라 이후 중국 변방으로 쫒겨나다가 카자흐스탄 근처에서 살거나 일부는 유럽으로 더 나아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등에 지고 산다. 그들은 중국에서 볼 때 모두 '오랑캐'라고 했다. 흉포한 노예란 뜻의 흉노(匈奴), 시끄러운 종놈이란 의미의 돌궐(突厥)족이라 불리었다. 이들 나라는 구 소련 연방으로 묶인 후 1991년 연방 해체 당시 독립국 지위를 유엔으로 보장받았다고 한다. 그런 탓에 우리와는 수교 전까지 친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각각 독립 후 우리와는 속속 수교를 맺어 현재까지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지금은 천혜의 자연 환경과 풍부한 자원으로 미래의 힘을 비축한 나라들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이지만 과거에는 이보다 더 컸다. 몽골제국의 킵차크 칸국 시대에는 지금의 영토에 남러시아 초원과 서시베리아 지역이 추가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영토가 넓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유라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 지역은 천산 북방의 초원을 바라보며 열려 있어 이곳을 통해 타림분지, 몽골고원, 중국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북부를 거쳐 볼가강을 건너면 남러시아 초원, 비잔티움, 로마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트란스옥시아나 및 페르시아의 정주세계와 연결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카자흐스탄에는 고대부터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 같은 강력한 유목국가가 등장했다. 이 유목국가들은 동쪽의 몽골고원에서 서쪽의 남러시아 초원으로 진출하거나 정주 지역인 트란스옥시아나로 나아갈 때, 카자흐스탄 초원 지역의 유목민을 규합하고 이 초원을 발판으로 삼았다.
이처럼 유목 세력의 이동로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유목세계와 정주세계를 연결했고, 실크로드 교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오늘날 신실크로드 시대를 맞이하여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 높아져, 중국과 EU를 연결하는 중국횡단철도(TCR)와 서유럽-서중국고속도로(WEWC)가 모두 카자흐스탄을 지나가고 있다. 중앙유라시아는 광대한 아시아 대륙과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중에서도 중심부를 말한다. 그 중심 범위는 대략 동쪽으로는 몽골고원의 상인링산맥에서 서쪽으로는 남러시아 초원,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남부의 삼림지대, 남쪽으로는 투르키스탄, 호라산(이란의 동북부지역), 티베트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몽골고원에서 남러시아 초원에 이르기까지 7,000km에 달하는 초원 띠가 있다. 이 광활한 초원지대는 유목민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초원을 이동하며 다른 초원지대에 사는 사람과 교류하면서 독특한 유목문화를 만들어냈다. 유목민은 다른 지역의 유목 세력과 연합하여 유목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이 그렇다. 특히 몽골제국을 구성했던 킵차크 칸국은 남러시아 초원을 지배하고 러시아 대공의 임명에 간섭하며 러시아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지역에는 유목민 이외에 오아시스 도시에 사는 정주민도 있었다. 유목민들이 몽골로이드(황인종)였던 반면, 이들은 이란어, 토하라어 같은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코카소이드(백인종)였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은 동쪽 방면에서는 중국, 서쪽 방면에서는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중간 지점인 중앙아시아에서는 페르사아의 정주세계와 이웃하며 이들과 평화와 전쟁을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책에 따르면 대략 16세기 이전까지는 기마술과 활쏘기 기술을 가진 유목민이 정주민에 대해 우위를 보였다. 특히 13세기에 건설된 몽골제국은 유목민의 우위를 보여주는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이는 16세기에 대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역전되었다. 몽골이 대포를 앞세운 러시아와 청나라에 무너지고 내몽골, 신장위구르, 티베트는 중국에, 남러시아 초원 지역은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렇듯 과거 유목 세력이 우위를 보이던 지역이 대부분 러시아나 중국의 중에 떨어졌지만, 이러한 운명을 피한 곳이 카자흐스탄이 속한 중앙아시아 지역이다. 이 지역은 18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지만 20세기 말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 같은 투르크계 국가와, 페르시아계인 타지키스탄공화국이 들어섰다. 이 책 『카자흐스탄 이야기』는 저자 전승민이 카자흐스탄에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기술했다. 저자는 카자흐스탄에 대해 원유를 비롯해 원소주기율표에 나오는 대부분의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나라, 신(新)실크로드 시대를 맞이하여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로 표현한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우리에게 많은 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와는 국교도 맺지 않은 공산주의 러시아 연방으로 소속했기 때문이다. 중앙유라시아에는 수많은 군소 유목 왕조들이 흥망성쇠했다고 한다. 유목민은 늘 이동하는 데다 고유 문자가 없어 자체로 기록된 사료가 많지 않다는 것. 저자는 카자흐스탄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책을 쓰려고 찾아본 문서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 책이 중국이나 로마 또는 페르시아, 러시아 사가들이 기록한 자료에 의존하게 된 이유다.
저자는 이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카자흐스탄의 역사는 돌궐, 흉노, 몽골제국 등 거대 유목 세력 역사의 일부분이었다. 이 책은 유목 세력에 관한 자료에서 카자흐스탄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부분 및 저자가 카자흐스탄에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기술했다고 밝힌다. 이 책은 카자흐스탄의 역사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서도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각종 자료를 조사하고, 외교관으로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내용들이다. 1991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카자흐스탄 공화국이 된 이래 이 나라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6,667km, 중국과 1,46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이들 두 강대국으로부터 쉽게 등을 돌릴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중국, 서방(미국, EU)의 국제관계를 간략히 정리하는 동시에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발전 잠재력을 해설한다. 7장 문화 파트에서는 그들의 음식문화, 놀이문화, 국민의 특징 등을 필자가 보고 겪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나아가 8장에서는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상술하고, 앞으로의 전망 그리고 과제를 짚어본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에게 에너지와 광물자원이 많은 나라, 실크로드 국가, 고려인이 사는 나라, 우리와 친연성이 있는 나라, 영토가 큰 나라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 이 나라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은 많지 않다. 이 책은 비록 한계는 있을지언정, 앞으로 우리와 관계를 깊이 할 카자흐스탄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최초의 책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자는 이들 중앙아시아 나라이름에 '~스탄'이라는 이름이 우선 궁금했다. 나라이름 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 막연하게 잉글랜드, 뉴질랜드 등 땅이나 국가를 지칭하는 이름인 것 같은데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고 지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시원하게 알게 됐다. '~스탄'은 페르시아 말이라고 한다. 땅이나 나라라고 짐작한 독자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카자흐스탄 외에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이 기억난다. 카자흐스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한 나라이면서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던 네 나라 중 투르키스탄 이야기도 나온다. 투르키스판은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나뉜다. 오늘날 동투르키스탄은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가 되었고, 서투르키스탄에는 다섯 나라가 들어섰다. 앞서 말한 중앙아시아 5개국을 말한다. 특히 카자흐스탄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이기도 한데 이곳에 카자흐스탄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야사위 수피 교단의 창시자인 야사위의 성묘가 있다. 그가 1167년 사망했을 때에는 성묘가 작았으나 훗날 티무르가 크게 확장했다고 저자는 책에 기술하고 있다. 무슬림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하다. 무슬림은 이곳을 세 번 순례하는 것을 메카를 한 번 순례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만큼 신성하게 여긴다.
저자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고려인을 생각하면 된다.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로 조선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실려 강제 이동해 정착한 지역이 카자흐스탄이다. 고려일보라는 신문을 통해 카자흐스탄과 비로소 인식했었다. 한글로 적힌 고려일보를 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신기해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고려인의 삶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고려일보 경우에 대부분의 지면이 현재는 러시아어로 작성되고 일부 지면만 한글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에너지와 광물자원은 물론 실크로드와 고려인이 사는 나라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지만 사실 저자가 외교업무를 하면서 아무래도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카자흐스탄 조선인들은 구소련 스탈린 시절 1937년 강제로 이주해 온 이후 우리의 부지런함으로 황무지를 일구고 농사를 지을 정도로 잘 인식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소련 체제 아래서 북한과의 교류나 외교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고국으로 인식한다든지,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살실도 독자를 놀라게 했다. 카자흐스탄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슬림(약 70%)이다.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말한다. 카자흐스탄에는 국교가 없으므로 이슬람이 국교는 아니지만 이슬람은 카자흐스탄의 국가 정체성에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카자흐스탄의 이슬람화는 이 책에도 자세히 조사해 저자가 써놓았다.
카자흐스판의 이슬람은 킵자크 칸국 시대에도 장려되었고 특히 베르케 칸은 독실한 무슬림이어서 그의 사촌인 홀레구가 1258년 바그다드의 칼리프를 살해하자 그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중동이나 이란, 터키와 달리 거리에서 히잡이나 차도르를 쓴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무슬림의 기도 장소인 모스크도 그리 웅장하지가 않다. 그리고 무슬림이 기피하는 돼지고기와 술도 쉽게 살 수 있다니 굳이 이슬람교로 표기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은 아마도 전통적으로 유목민의 천신숭배나 샤머니즘에 익숙해져 있고 또한 260여 년 동안 러시아의 통치를 받은 배경에 기인하기 때문으로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외형상 이슬람 신앙이 약해 보이지만 이슬람은 오랜 세월에 걸쳐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도시는 물론 시골 곳곳에 모스크가 있으며 결혼, 장례, 할례, 신생아 이름 짓기 등 삶의 대소사가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이맘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다고 하며, 식사 전 알라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p.113~114 독자 발췌 요약)
"외교관들은 외국에서 근무할 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려고 노력한다"는 저자의 말대로 외교관 업무의 중요성은 한 나라를 대표해서 그 나라에 머물며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동포나 여행객까지도 모두 외교관 업무에 속한 것이 많을 터다. 이처럼 외교관의 활동은 자신이 주재하는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어 소통하는 데 유익하고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도 아제르바이잔에 처음 발령받아 갔을 때 '이슬람 국가'란 점 때문이었다고 술회한다. 과격한 이슬람 단체들의 테러 활동으로 무질서한 상황이 나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후 근무하다 자신의 생각은 '기우'였다고 밝히는 저자는 이슬람 국가의 대부분의 국민은 이슬람교를 믿고 의지하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봤지만 이들의 음악, 춤, 음식 등의 문화도 친밀하게 다가왔으며,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울 때도 많았다고 한다. 아제르바아잔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이유였다고 저자는 「맺음말」을 통해 강조한다.
저자 : 전승민
서울에서 출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외교부에서 32년간(1986-2018년) 재직하는 동안 본부 감사부서를 비롯해 싱가포르, 독일(함부르크, 베를린), 미국(괌, 알래스카),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알마티)에 소재하는 재외공관에서 근무했다. 독일 괴테연구소 및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1989-1991년 수학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에 1996-1998년 파견 근무했다. 주알마티 총영사 재직 시(2015-2018년) 카자흐스탄의 역사, 문화, 발전 잠재력, 한류 현황, 고려인 등의 주제로 국내 언론에 7회 기고하였다. 2018년 5월 매경미디어그룹과 통일문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후원하는 제11회 통일문화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10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소재하는 투란대학교에서 명예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