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템페스트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예용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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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문호'라고 일컬어지는 셰익스피어는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써서 남겼다고 초등학교 때 배웠다.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중 『햄릿』과 『리어왕』은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중고등학교 때 읽었다. 또 5대 희극이라고 일컬어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 여름밤의 꿈』은 『베니스의 상인』만 초등학교 때 읽었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이나 이후에 읽었다. 어렸을 때 읽은 것은 발췌·번역본일 것이고 모두 동화나 소설처럼 쓴 것이어서 번안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이라 역자도 모르고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던 작품이어서 읽었다. 이때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비극에 안 들어가나?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분은 만나지 못했다.

딱 한 분 아버지만 '5대 비극'이란 말을 해주셨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어렸을 때는 그런 의문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잘 생각이 안 난다.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줄거리와 결말은 대체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 이후에도 연극, 드라마, 소설 등으로 많이 읽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란 짐작만 남아 있다. 이때 독자는 '문학'이란 개념보다는 '책'이란 개념이 더 강했다. 책 읽으면 동화나 소설이었을 때니까. 독자의 경우에 한하는 일이지만··· 아무튼 대학 때는 연극 『햄릿』 등은 여러 번 보았고, 대학로에도 여러 번 갔다. 작은 소극장이지만 『햄릿』, 『맥베스』는 무대 공연을 했다. 그러나 희극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한 번 본 기억이 있고 나머지는 무대에서 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별칭은 '세계의 대문호'와 함께 '비극 작가'쯤으로 불러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란 걸 이제는 잘 안다.

 


 

이 책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번역했다. 다만 당시 영어로 된 것은 읽기 난해하다고 해서 현대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셰익스피어 문학 전문가라면 혹시 당시 말로 쓰여진 작품을 직접 현대 영어로 번역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 '템페스트(The Tempest)'는 폭풍우란 뜻이다. 템페스트란 제목의 예술 작품은 클래식 음악과 그림에서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딘지 익숙하고 뜻과 반대로 정감도 간다. 악성 베토벤도 '템페스트'란 제목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고 네이버 검색을 통해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베토벤의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 Op.31이 작곡된 시기는 베토벤에게 있어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서 그 절정은 1802년 10월 6일에 작성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위대한 인간의 고립과 그로 인한 정신적 분열이 야기한 사건으로서, 신이 자신을 보다 높은 임무를 위하여 선택했다는 신념 덕분에 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된 Op.31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세 폭의 제단화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16번 소나타인 Op.31 No.1에서 풍기는 그 지성 넘치는 우아함과, 18번 소나타인 Op.31 No.3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신선함은 가운데에 위치한 17번 소나타 Op.31 No.2의 그 우울에 대한 문학적 변용과 함께 어우러지며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콘텍스트를 통해 삶의 버거움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보다 자연스러운 접근, 생명과 창조력을 찬미하는 일종의 영웅주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포용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모든 불화 요소들이 화해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작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으나, 셰익스피어가 연극계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611년 무렵에 집필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기록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소속된 '국왕 극단(King's Men)'은 1611년 11월 1일 제임스 1세를 위해 이 극을 최초로 공연했고, 셰익스피어가 소재를 빌려 왔으리라 짐작되는 버뮤다 섬 근처의 조난 사건에 관한 체험기 또한 이 시기에 여럿 출판됐다.

이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작가관과 세계관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의 '최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특히 작품 속 '프로스페로의 에필로그'는 작가이자 연극인으로서 자신의 인생과 무대에 바치는 셰익스피어 자신의 마지막 헌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역자 신예용 역시 같은 의미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희곡 작품과 다르게 '에필로그'를 마지막에 붙여 '프로스페로의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의 짧은 인삿말을 남겼다. "저는 이제 모든 마술을 다 버렸습니다. 제게 남은 힘은 약하기 짝이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여기 가두시거나 나폴리로 보내시거나 하십시오. 하지만 부디 이 섬에서 지내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 공국을 되찾았고 저를 속인 자도 용서했으니까요. 여러분의 박수갈채로 저를 이 족쇄에서 풀어주십시요. 여러분의 부드러운 칭찬으로 제가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례적인 이 인삿말은 아마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이젠 극작을 더하지 않겠다는 뜻을 연극에서 밝힌 것으로 문학평론가들은 해석하는 것 같다.

 

 

모두 5막으로 무대에 올린 『템페스트』는 배경은 이탈리아이다. 나폴리와 밀라노란 지명이 나온다. 당시에도 같은 지명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현재 지명으로 표기됐다. 밀라노의 대공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에 의해 딸 미란다와 함께 추방당한다. 오랜 기간 섬에서 체류하며 마법의 힘을 얻게 된 프로스페로는 튀니스 왕과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알론조 왕 일행을 발견하고 태풍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알론조 일행의 배는 난파되고 승선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섬에 오게 된다. 배가 난파되는 상황을 목격한 미란다는 안타까워하면서 아버지에게 태풍을 멈춰 달라 요청한다. 이에 프로스페로는 딸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 준다. 이에 따르면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자신의 자리를 동생 안토니오에 의해 찬탈당한 데 이어 추방당했으나, 곤잘로가 마법 서적을 포함한 생필품 등을 제공한 덕분에 살아남아 이 섬에 당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다.

태풍으로 조난당한 나폴리 왕은 아들 퍼디난드가 죽었다 생각하고 비통해 하고, 따로 섬에 상륙한 퍼디난드는 아버지가 익사했다고 믿는다. 요정 에어리얼은 주인인 프로스페로의 지시를 받들어 매혹적인 노래로 퍼디난드를 프로스페로의 거처로 유인하고, 그곳에서 첫 대면하게 된 퍼디난드와 미란다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계획대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 것을 알아채지만 퍼디난드의 마음이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단 생각에 이를 시험한다. 그는 퍼디난드에게 캘리밴의 일인 통나무 운반 일을 시키고, 미란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가두기까지 한다. 여기에 알론조 왕의 동생인 세바스찬과 안토니오는 잠에 빠진 왕과 충신 곤잘로를 죽이려는 역모를 시도하지만 에어리얼이 잠든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 저지시킨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암굴 앞에 모인 알론조 일행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죄를 묻는다. 알론조 왕은 아들을 잃은 애통함 속에서 프로스페로를 모략으로 쫓아냈던 과거의 일을 뉘우친다. 이에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본인의 정체를 밝힌 프로스페로는 그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결국 용서한다. 그리고 암굴의 문을 열어 퍼디난드와 미란다가 다정하게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알론조 왕과 퍼디난드는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되고, 퍼디난드와 미란다의 사랑으로 오랜 앙숙 관계도 해소된다. 이후 프로스페로는 마법의 능력을 모두 버리고 밀라노 공작으로 복귀할 것을 선언하고, 에어리얼을 해방시켜 준다.

역자 신예용은 "『폭풍우(The Tempest)』는 그저 비극이나 희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고, 단순히 로맨스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극과 희극, 로맨스에 가면극까지 결합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친동생에게 배신당하거나 배가 난파되고 아들을 잃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폭풍우』에는 분명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차차 풀리고 해결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비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는 여러 희극적인 요소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다스리던 공국 밀라노에서 쫒겨난 프로스페로,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결탁하여 그를 무자비하게 내친 친동생 안토니오가 작품의 무거움을 담당한다면, 공기의 요정 어어리얼과 괴상하게 생긴 야만인 캘리번, 캘리번에게 설득당해 프로스페로를 죽이려는 음모에 동참하는 술꾼 주방장 스테파노와 어릿광대 트린큘로는 이 작품에서 장난기와 익살스러움을 맡고 있다. 충직한 노신하 곤잘로와 알론조의 동생 세바스찬, 안토니오가 주고받는 재치 있는 대화도 배신과 음모의 드라마에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한다.(p.133~134)

 


 

역자는 이어 "작품에서 로맨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와 알론조의 아들 퍼디넌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미란다와 퍼디넌드의 결혼에는 두 연인의 만남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밀라노를 다스리는 프로스페로의 유일한 후계자 미란다와 나폴리의 왕자 퍼디넌드가 맺어짐으로써 밀라노와 나폴리의 결합과 동맹을 상징하는 것이다. (중략) 복수를 꿈꾸는 프로스페로가 그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었으니 작품의 주제를 "착한 자는 복을 받고 나쁜 자는 벌을 받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폭풍우』는 여러 가지 형식이 결합된 다채로운 구성만큼이나 전달하는 메시지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와 안토니오, 세바스찬이 뉘우치기만 한다면 자신도 복수를 강행하지만 않겠다는 뜻을 비친다. '용서가 복수보다 더 가치 있는 행동'(본문 제 5막 제 1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선과 악으로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는 일이 많지 않던가? 무언가를 빼앗으면 그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뺏긴 사람은 억울하게 당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렇듯 복합적이고 때로는 선과 악을 판별하기 어려운 지점을 반영함으로써 『폭풍우』는 보다 통찰력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거듭난다.(p134~135)

역자의 해석은 소설 문장에 익숙해 있고, 희곡을 통째로 읽는 일이 별로 없는 독자들에게 작품의 이해를 위해 좋은 촉매제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독자도 희곡을 통째로 들고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드라마 대본도 요즘 출판돼 나왔지만 연기자나 극에 관계하는 사람 아니고는 굳이 희곡이나 대본을 읽을 필요가 없을 터이니. 독자가 이 작품 『템페스트』를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일은 독자들의 '상상력'이 무척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경우 영상물은 없지만 문자로 배경이나 분위기, 말(대사)의 의미, 말하는 사람의 표정, 심리 등을 작가가 일일이 말해 주기 때문에 굳이 상상력을 많이 발휘할 공간은 적어지는 셈 아닌가. 물론 모든 것을 희곡식으로 써서 서사로 표현한다면 아마 서사에 대한 흥미는 반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희곡의 독서는 독자로서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됐다.

 


 

저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夜)』, 『자(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역자 : 신예용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방송사에서 구성작가로 일했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용기의 땅 1부 1: 흩어진 무리』, 『물의 무게』, 『히로빈 추격』, 『드래곤 템플의 전투』, 『하루 10분 책 육아』, 『북유럽 공부법』, 『가장 잔인한 달』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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