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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투쟁 - 청년, 그들의 연대에 홀로 맞서다
정태현 지음 / 열아홉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오마이 투쟁』은 한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여행 에세이)이 표절한 주체에 대해 적절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데 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거대 언론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언론사가 어디인지 금세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오 마이 뉴스〉란 인터넷 매체다. 〈오 마이 뉴스〉는 ‘시민 기자’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며 참신한 언론의 출현을 알렸다. 이들은 이후 진보 언론의 목소리를 전하며 ‘정치 팬덤 문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언론사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를 향해서는 높은 책임 의식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시민 기자의 표절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 정태현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표절한 기사가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자 오마이뉴스 측에 빠른 조치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들의 무심한 대처와 모욕이었다고 말한다. 오마이 뉴스가 정태현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힘없는 젊은 무명 작가’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에 저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진보 진영의 연대와 차가운 시선을 홀로 감내하며 140일 간 투쟁을 벌였다.
이 책은 사실 2014년 출간된 〈오마이투쟁〉(헤이북스)의 내용을 일부 증보한 개정판이다. 이번에 2022년의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는 〈오마이 투쟁〉은 얼마 전 가요계 전반에 만연한 표절 소동으로 일부 인사들이 한바탕 홍역을 치른 가운데, 〈오마이 투쟁〉이 여전히 표절에 관대한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에서 출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상에서의 무분별한 표절과 도용 등 지적 재산권 침해 사안이 선진국에 돌입한 대한민국의 출판 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프롤로그' 「젊은 예술가들을 위하여」를 통해 투쟁 기간의 소회를 자평한다. "무명의 젊은 작가가 언론사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집단주의, 타당한 이유보다는 사회적 위치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문제를 덮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는 한국식 관습과도 싸워야 했다."
저자의 1인 시위를 두고 어떤 이들은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고작 책 한 권 낸 신인 작가가 별것도 아닌 글 표절당한 것 가지고 째째하게 일인시위까지 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쓰라는 핀잔과 함께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너 하나만 표절당하느냐, 너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도 다 표절당했지만, 그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작가 체면을 지켰다고 오히려 꾸짖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작가가 품격 떨어지게 직접 일인시위까지 나서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독자는 이런 말이나 충고에 대해 요즘 말로 '꼰대'들의 상투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작권 침해는 법으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정보기술 사회로 번지면서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한과 책임 등이 강화된 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별 수 없이 '꼰대'라고 불릴 만하다. 저자는 첫 책을 펴낸 후 표절을 당했다. 표절한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안 된다. 당연히 피해자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한다. 저자가 표절된 내용을 확인할 때 얼마나 절망감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들 말대로 '좋게 좋게' 해결하기 위해 사과를 요구한 것이고 그 방안으로 표절 매체를 통해 정중히 사과문을 게재하고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고 써야 한다. 언론에 관한 사항은 독자가 자세히 모르지만 표절하면 표절한 크기(분량)의 기사를 게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의 첫 책은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라는 여행기라고 한다. 독자가 못 읽어봤기 때문에 인터넷의 힘을 빌어 어떤 책인지 대략 살펴봤다. 책 소개글에 "매력적인 여행의 정수만 가려 모은 ‘소설’ 같은 여행기"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책은 예상처럼 많이 팔리지 않았고, 저자는 다시 글 쓰고, 노동하는 일을 반반씩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책 발간 2년이 지난 후 여행기가 뒤늦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인터넷에 책 리뷰가 달리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국으로부터는 다가오는 새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코너지기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잡지사로부터 처음 원고 청탁도 받고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연달아 오랫동안 끊겼던 강연 요청도 다시 들어왔다고 하니 역시 '인기 작가'나 '베스트 셀러' 작가를 저자는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D포털사이트의 메인를 읽기 시작했다. 〈오 마이 뉴스〉가 송출한 '회사 때려 치고 세계일주? 지옥을 맛보다'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저자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500일 넘게 세계 여행을 다녀온 터라 기사가 궁금했다. 읽던 중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기사에 자신의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일부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던 것이다. 명백히 저자의 글을 도용해 쓴 기사라고 판단했다. 저자가 쓴 대로 문단이 통째로 베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저자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독자는 책을 내거나 글을 어디에 발표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사전 연락이나 양해도 없이 남의 글을 가져다 쓰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글을 많이 쓰는 기자들도 원칙적으로 취재원을 밝히고, 밝히기 어려운 경우 익명이나 가명으로 쓰기도 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이건 글 자체를 통째로 가져다 쓰면서 사전 양해는커녕 마치 자신이 다녀와 쓴 것처럼 결론 부분마저 왜곡해 썼다면 이것은 표절의 수준을 넘어 도용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 관계에 입각한 팩트를 쓰다보니 투쟁 기록 등에 중점을 두었으나 독자는 표절을 확인하기까지의 저자의 생활 등에 더 신경이 간다. 잘 다니던 좋은 회사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할 때 어떤 결심이었을지 분명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든지, 아니면 뒤늦게 글 재주를 확인 받고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든지. 저자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결혼도 했는데 아내의 허락(묵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됐다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독자의 짐작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고통을 감내했으리라.
저자는 첫 책을 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흔히 용기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남들처럼 용기가 있어서 간 게 아니었어요. 현실 도피에 가까웠어요. 회사를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그 허무함이 너무나도 크고 깊어서 도무지 회사에 다닐 수 없을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퇴사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돈은 많이 줬지만 돈 쓸 시간은 주지 않는 회사였거든요. 주말에도 일해야 했어요. 그래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처럼 워라밸과 주 52시간이 잘 지켜졌다면 아마 못 떠났을 거예요." 이렇게 다녀온 여행이고, 그 결과로 느끼고 알게 된 것을 자신의 힘으로 쓴 책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분신과도 같은 글을 도용당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걸 여행을 통해 알게 됐고, 그 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뀐 결과로 책을 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인데 그것을 실현시키자마자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짐작이나 했으랴. 저자의 첫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책일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작가가 꿈인 사람인데. 특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작가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 보는 눈이 확대되었다는 말도 이 책에 남겼는데.
저자는 처음에는 이 일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표절했다고 싸우는 일이란 마치 자기 것을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챙기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굉장히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을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는 이유는 그들(〈오 마이 뉴스〉)의 태도였다고 말한다. 독자는 물론 이 책, 즉 저자의 주장만 듣고 판단해서 조금 편향되게 판단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언론사는 오보나 사과문 게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 신뢰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신뢰를 잃으면 생명은 끝이다는 생각에서 그렇다고 말한 언론계 인사의 말을 사석에서 들은 바 있다. 그 말은 기자들이 발로 직접 뛰고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어쩌면 〈오 마이 뉴스〉도 그런 차원에서 선뜻 사과도 하지 않고, 사과문 게재도 될수록 미루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기자들이 직접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의미의 말을 자신들의 언론사의 방패막이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힘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참아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이제부터는 '감정'이 개입될 소지가 생긴다. 이후는 상식적으로 전개되는 글이다. 작가는 자존심과 품격을 모두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가? 그 사람들의 눈에는 뻔뻔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저자 역시 나름대로의 작가 철학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대의 지식인들인 작가가 부당한 대우나 행위에 눈 감고 있는 것은 다른 힘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도 역시 눈을 감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문제점에 대한 빠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찾는 사람이라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맨 앞에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고 매우 귀찮게, 그리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썼다. 책을 읽으니 이 말의 뜻을 이해하기 쉽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결코 이기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저자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더욱 노력하고 더욱 경계하며 더욱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어찌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저자의 세상살이 원칙에 공감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두 번째 책 『오마이 투쟁』(2014년 간)을 내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상대보다 힘이 약한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보다 힘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라 해서 그들의 잘못된 일에 눈감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간다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피해를 받을 것이고, 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용기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 일에 또, 그 문제에 대해 절실하지 않다는 거예요. 정말 절실하다면 그 일을 행하는 데에 용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자 : 정태현
1984년 출생.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다. 바다를 떠나기 싫어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이후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래에셋 자산운용사에 다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509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금융맨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를 쓰면서 사회적 책임과 소명 의식을 지닌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