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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평점 :
독자는 한 번도 장영희 교수를 만난 적이 없다. 당연히 그의 강의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지식은 독자가 문학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의 책 『생일』을 읽으면서다. 그의 문학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드러나는 책이고, 문학 지식의 일부를 느끼게 해준 책이다. 『생일』은 조선일보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1년간 연재되었던 칼럼 120편 중 사랑에 관한 시들을 50여 편 골라 담은 책이다. 셰익스피어부터 예이츠, T. S.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로버트 프로스트 등 영·미 시인들의 시와 더불어 그들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며 팍팍한 우리네 삶에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독자는 신문 연재를 읽지 않았지만 책으로 출판된 이후 그의 글을 읽었다.
길지 않은 책이어서 두세 번을 거푸 읽을 정도로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 책은 개성 넘치는 화가 김점선의 그림들이 훌륭한 시만큼이나 책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런 책을 만든 우리나라의 출판 능력에도 감탄과 감사를 하게 해준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작가 장영희를 좋아하게 됐다. 더욱이 이 책은 작가가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짚었으나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문학의 아름다움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돼 놀라움과 존경의 마음을 함께 갖게 해주었다. 책에 실린 그의 사진도 독자에게는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의 미소다. 그의 미소는 '꾸밈'이 없는 듯 눈동자도 맑고 빛났다. '천사가 있다면 이런 미소를 짓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은 독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의 책 『생일』은 지금도 독자의 책꽂이에 고이 간직돼 있다.
이번에 출판된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물론 초판이 아닌 개정판이다. 2019년 5월 9일 장영희 교수의 10주기를 앞두고 100쇄를 맞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시작으로 2021년에 『내 생애 단 한 번』이, 이번에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됐다. 이로써 출판사 샘터사는 작가가 생전에 출간한 에세이집 세 권을 모두 개정했다. 출판사는 장영희 교수의 문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오류만 신중하게 수정했으며, 세 권 모두 같은 판형의 양장으로 출간하여 통일성을 주었다고 밝혔다. 또 희망과 긍정, 밝음이 가득한 장영희 교수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이 책도 2001년 8월부터 3년간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시작할 당시 보스톤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던 터라 불가피하게 미국이 배경이 된 글들이 몇 개 있다.) 작가는 책의 「작가의 말」을 통해 집필 당시의 사정도 털어놓는다. "2004년 9월 말, 조금은 심각한 병에 걸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중단하게 될 때까지, 나는 이 칼럼을 통해 많은 독자를 만났다. 마치 숨겨놓은 보석을 하나씩 꺼내보듯, 일생 동안 내 안에 쌓인 책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새로운 감회에 젖었고, 위대한 작가들의 재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고맙고 행복했다."(p.8)
신문의 특성상 각 칼럼의 길이를 원고지 10매에 맞췄지만, 이 기막힌 고전들을 그렇게 짧은 호흡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작가 장영희는 잘라 말한다. 그나마 10매도 책과는 무관한 자신의 사적 이야기, 일상적 이야기를 많이 끼워 넣음으로써 주어진 길이도 다 활용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이도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글들이 되어버렸다고 덧붙인다. 이를 다시 책으로 낸 이유를 갈음한다.
투병이라는 힘든 시간 속에 쓰인 글들도 삶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작가 장영희의 특유의 명랑과 순수함이 빚어내는 마술 같은 언어들은 우리에게 힘이되고 문학의 숲에 차곡차곡 쌓인다. 장영희는, 시인은 ‘바람에 색깔을 칠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 바 있고, 이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동서고금을 통해 쓰인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힌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과업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작가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영희 저자는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실에 얼마든지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표출하지 못했던, 아니 내 안에 있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몰랐던 욕망, 분노, 고뇌, 사랑을 맞닥뜨리게 된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괴팍하고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 페이소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한다." 고 말한다.
이 책은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의상 장(章)을 나눴으며, 각 장의 소제목은 따로 붙이지 않았다. '문학의 숲'이니만큼 한 편의 에세이가 한 그루의 나무로 존재하듯 열거된다. 다만 비슷한 성격의 에세이와 작품 해석이 10개 그룹으로 나뉘었을 뿐이다. 책의 마지막에 '에필로그' 성격의 '서평' 「'문학의 숲'으로 가는 길에서」(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이 실려 있다. 각 장은 일상을 담은 에세이와 문학 작품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설명, 그리고 그 작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메시지 등을 담았다. 일상이라고 해서 신변잡기는 아니다. 교수로서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내용들이다. 당연히 우리의 삶과 닮은 점, 일어날 수 있는 일, 주제 탐구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사색, 그리고 사유의 변(辯)을 실었다.
「어느 봄날의 단상」에 나온 내용을 요약 발췌한다. 수업 시간에 늦어 부리나케 학교에 들어서는데 어느새 피었는지 개나리 덤불이 노란 뭉게구름이 되어 교정을 덮고 있던 어느 봄날. 수업을 마치고 책상 위에 쌓인 우편물을 뜯어보니 미국 친구가 보내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얇은 책자가 있었다. 윤동주와 함께 기억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떠올린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인의 이름이다. 저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기억을 소환한다. 집앞 담장 밑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고등학교 교복의 학생, 그는 배가 고파 쓰러져 있었다. 그 고등학생의 손에 들려 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집'이라고 쓰여 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릴케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해서, 먼저 나 스스로의 성숙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안일주의에 빠져 어려운 것을 피하고 나의 ‘고유함’을 읽은 지 오래고, 남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기는커녕 여전히 옹졸한 마음으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사랑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는지 모른다. 중년의 어느 봄날, 배고파 기절하면서도 시를 읽는 어리석음이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릴케’라는 이름이 열정과 낭만을 잃고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나의 메마른 가슴에 작은 불씨를 지펴놓은 모양이다."(p.21~22)
「사랑과 생명」이라는 글에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의 유언과 동서고금 선인들의 '사랑'에 대한 말을 연계시켜 '사랑'에 정의에 대해 다가간다.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말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인쇄되어 있는 노트를 보고서 떠오르는 단상이다. 책에 따르면 대재벌 총수가 유서 세 통 달랑 남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대북 사업을 계속해 달라, 내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는 사뭇 사무적인 메시지, 그리고 "당신 윙크하는 버릇 고치시오"라는 허탈한 농담 외에 남긴 가장 슬픈 메시지는 아들에게 남긴 "너하고 사랑을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라는 말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 같던 사람이 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파한 것은 결국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회한이었다. 저자는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고 말한다. 작가, 성인, 철학자 등이 설파한 '사랑'에 대해 많은 문장을 설명하지만 독자가 몇 개만 임의로 추출한다.
*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 - 〈요한1서 4장 18절〉
*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 셰익스피어
*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 빅토르 위고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죽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명상뿐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 - 타고르
많은 예를 들었지만 정작 저자는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말을 압권으로 친다.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에필로그' 성격의 '서평' 「'문학의 숲'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담아서 에필로그 성격으로 '문학의 숲'에 접근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지적 목마름을 동료 교수였던 장영희 교수의 책에 드리는 '헌사'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즉 장영희 교수의 글과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한 방법을 설명해준다. 그는 이 글에서 "(장영희 교수는) 독자들의 온화하고 지적인 필치로서 현실과 문학 세계를 무리 없이 접목시키면서 성공적으로 충족시켜 주었다. 만일 여기서 필자(장영희)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이 당면한 문제를 배제하고 문학작품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더라면 진부하고 평범한 문학 사전의 범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영희 교수의 글은 그가 보고 느낀 현실 세계의 아름다움과 누추함을 고전적인 문학 세계와 비교 분석해서 다시 그것을 비평적으로 의미화한 후 독자들의 삶에 새로운 충격을 던짐으로써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게 해준다."고 썼다. 이어 그는 "장영희 교수가 이렇게 우리들을 무한한 기쁨이 가득한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된 가장 큰 힘은 그가 지닌 고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따뜻하고 지적인 문장, 명료하면서도 섬세한 구성, 그리고 유려한 번역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통해 조명한 현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김살 없이 진솔하지만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가 지닌 '마음의 눈'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그의 글이 가져다주는 매력은 천부적인 그의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장애인이라는 인간 조건을 말 없는 침묵으로 극복해 온 불굴의 인간 의지 때문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이 밖에 "장영희 교수는 문학 텍스트와 현실에 나타난 삶의 의미는 물론 그 아픔과 슬픔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까지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장영희 교수가 장애 조건을 극복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현대인들보다 정신적으로 더욱 밀도 짙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p.336) - 「문학의 힘」 중에서
저자 : 장영희(JANG YOUNG HEE, 張英姬)
교수이자 번역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첫 돌이 지나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짚었으나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문학의 아름다움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199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인기로 ‘문학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내 생애 단 한번』,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다시, 봄』,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Crazy Quilt』 등의 에세이를 냈다. 『슬픈 카페의 노래』,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종이시계』, 『스칼렛』, 『톰 쏘여의 모험』, 『피터 팬』, 『살아있는 갈대』, 『바너비 스토리』 등 2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2002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2004년, [조선일보]에 칼럼 ‘영미시 산책’을 연재하던 중 암이 발병했지만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담은 시들을 독자에게 전했다. 2006년, 99편의 칼럼을 추려 화가 김점선의 그림과 함께 엮은 시집 『생일』과 『축복』을 출간해 출간 당시는 물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09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깊은 우정을 나눈 김점선 화백을 먼저 떠나보냈으며 두 달 뒤인 5월 9일,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57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