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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하다 - 이어령 선생과의 마지막 대화
김아타 지음 / 맥스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 『이어령하다』는 올 2월 유명을 달리하신 고(故) 이어령 선생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쓰였다. 저자 김아타는 "시(詩)가 된 인간 이어령을 '사진했다'"고 말한다. 이 표현 '사진하다'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 조합으로 '명사+하다'의 형태로써 명사에 '하다'를 붙이면 동사가 되는 우리말 특성을 잘 살린다. '공부하다' 식의 단어 조합이다. 우리 국어사전에 '사진(寫眞)하다'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진하다는 말의 뜻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어사전 풀이는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내다'로 돼 있다. 우리말은 '하다'라는 단어가 등재돼 있다.
동사로 사용시 ① 사람이나 동물, 물체 따위가 작용을 이루다. ② 먹을 것, 입을 것, 땔감 따위를 만들거나 장만하다. ③ 표정이나 태도 따위를 짓거나 나타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풀이돼 있다. 그러나 '하다'가 보조동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④ 앞말의 행동을 시키거나 앞말이 뜻하는 상태가 되도록 함을 나타내는 말. ⑤ 앞말의 행동을 하거나 앞말의 상태가 되기를 바람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즉 '공부하다' '노력하다' '성실하다'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 이름 등 고유명사 뒤에 붙여 사용하지는 않는다. 표제어 〈이어령하다〉가 낯설어지는 이유다. 저자는 예술가이다. 주로 사진을 이용하는 아티스트다. 저자는 자신의 예술 바탕에 '스스로의 혁명'에 두고 있다고 밝힌다. 서문 제목도 「〈이어령하다〉를 엽니다」이다. 다소 전위적인 느낌이 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어령 선생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고유명사라기보다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뜻에서 존경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독자는 해석한다.
저자 김아타는 이 책이 자신의 예술을 설명하는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책의 목적이자 취지는 이어령 선생의 유고에 대한 아쉬움과 그간 관계해온 한 사람으로서 보은의 차원에서 영전에 바치기 위해 쓰였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밝히지 않고서는 자칫 독자들이 혼동을 일으킬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주력한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술가로 살았습니다. 나를 파격했습니다. 나를 혁명했습니다. 예술가로 사는 일은 새것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파격하지 않고 새것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혁명하지 않고 새것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파격하고 혁명한다고 해서 거창한 일 같지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상식을 깨는 파격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파격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내적인 혁명이 따라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상식에서 벗어나기에, 상처가 수반되기에 그렇습니다. 상식은 습(習)의 내레이션입니다. 습에 물든 몸은 본능적으로 상처받지 않으려 온갖 경우의 수를 대입합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관념이 목숨을 걸고 맹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혁명하지 않으면 혁명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를 혁명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습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혀명이라 이름했습니다."
저자는 작가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미친놈'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의 작업은 '파격'이고 '혁명'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의 혁명은 세상의 혁명으로 세상을 전복시키는 행위가 아닌 자신을 혁명할 의지이고 표현이라고 밝힌다. "스스로 혁명할 의지는 차고 넘칩니다." 자신의 작업(예술 작품) 중 〈해체 시리즈〉가 그렇고, 20세기 인간상을 유리 박스에 박싱(boxing)했던 〈더뮤지엄 프로젝트〉를 증거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렇듯 자신의 예술을 지켜왔고, 지속해 왔다. 싯다르타가 붓다가 된 장소인 인도의 부다가야에도 캔버스를 세우고 예술했고, 지구촌 어디에서도 자연해서 자연의 본성과 본능을 소외시킬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군의 포 사격장에도 캔버스를 세우고 포를 쏘았으며, 골 깊고 아름다운 강원도 인제 원시림에도 캔버스를 세웠다고 말한다. 세상의 열두 도시를 순회하며 작품했고, 모든 작업을 자연했다고 생각한다는 것.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독자도 한계를 느끼지만 저자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OO하다'의 표현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포 사격장에서의 포탄 파편에 캔버스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해체가 진화한 포의 힘으로 해체됨을 목격함으로써 포의 존재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확신에 다가선다. 본성과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인간의 역사는 없기에 그렇다고 저자는 믿는다. 갈등과 야만의 역사조차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이듯이. 저자가 야만적인 포탄에 캔버스의 하얀 속살을 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에서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외면하는 것은 자연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것이 〈자연하다〉의 실상이라고 밝힌다. 그러다 저자는 급기야 기존의 회화사에 충실한 일단의 무리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경고를 받았다. 〈자연하다〉를 한국에서 전시하면 한국 미술판에서 추방하겠다는 경고다. 〈자연하다〉가 미술사에 혁명한다는 이유였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예술계에서 '테러한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저자에게 힘든 시간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 좌표에서 이어령 선생을 만났고, 당시 대한민국에서 선생은 지성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이었다. '창조적 인간'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는 분이었다. 그 선생의 말씀 중에 "빅 데이터가 생명이다"라는 통찰은 저자를 감동시켰다. 거기에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주셨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저자에게는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다고 한다.
서문의 마지막 단락에서 이어령 선생에 대한 절절한 그림움이 배어 나온다. "선생을 만났습니다. 절절했습니다. 봄 속에 겨울합니다. 겨울 속에 가을합니다. 선생은 가셨지만, 연은 여전합니다. 선생과의 연은 내 의식 속에 살아 있습니다. 내 의식은 내 의지 속에 살아 있습니다. 오늘도 선생께 편지를 씁니다. 존경하는 이어령 선생님!" 이 책은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대화하다〉, 2부 〈편지하다〉, 3부 〈아르테논하다〉, 4부 〈얼굴하다〉, 5부 〈실존하다〉이다. 책의 시작이 선생과의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 으로 보인다. 임종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진하기' 위해 만난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수를 놓듯, 들숨 사이 날숨 사이 말을 빚던 선생께서 당신을 사진하라 했다.
선생도, 나도, 침묵했다.
선생을 만난 지 7년, 선생은 언제나 당당했다.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우주를 지휘하듯,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당신을 통제했다.
(중략)
시(詩)가 된 인간 이어령을 사진했다. 아름다운 영혼이다.
선생은 이른 시간 동시했다. 동요했다. 시를 쓰고, 소설하고 희곡하고 평론했다. 평생을 인문의 정점에서 만다라보다 더 화려하고 섬세한 언어로 동서양을 직조했다. 그림하고 지우기를 90해를 계속했다.(p22~23)
아티스트 김아타는 이 책을 통해 ‘창조적 인간의 전형’이라는 이어령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글 중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을 혁명하는 사람,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았던 ‘소수를 위한 사람’이라 말한다. 자신이 촬영한 〈이어령하다〉는 이어령 선생의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후 오직 인간 이어령의 내면을 담았다고 강조한다. 이어령 선생은 매일, 매 순간, 파격하고 혁명해 왔다고 저자는 말하며, 선생의 생명자본 시대에 대한 통찰은 앞서 언급한 대로 빅 데이터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AI 시대 빅데이터는 하나의 생명이나 다름 없으며 이는 이어령 선생이 주창한 생명자본주의와도 맥이 닿아 있다.
우리는 때로 ‘길을 가라’라는 말을 듣는다. 길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길로 발달하고, 길이 만들어지면 질수록 길은 이동을 편리하게 해준다. 그러나 길은 목적지로 가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비록 지도에 있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다름이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김아타와 이어령 선생은 자신을 혁명하고 파격하여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온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그런 점에서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수십년 뒤에 선 김아타에게 “아!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유일한 지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다른 관점으로 문화와 문명을 바라보는 사진의 거장을 향해 이어령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이어령하다』에 실려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우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생명 같은 메시지들을 담고 있으며 둘의 대화는 지성과 인문, 철학과 예술 전 범주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21세기 생명 자본주의와 자연의 예술, 그리고 죽음을 아우르는 지성의 오케스트라를 펼치고 있다.
우선 1부 〈대화하다〉는 아티스트 김아타가 이어령 선생의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이 자신의 작업을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라는 크나큰 격려를 해준 것에 감동하며, 생각지도 못한 이어령 선생의 부탁(자신을 촬영해달라)을 받게 되는 과정을 담백하게 설명한다. 또한, 자연에 관한 철학을 설명하며 이어령 선생의 실존에 대해 질문한다. 2부 〈편지하다〉는 김아타와 이어령 선생의 철학적 대화가 주를 이룬다. 두 사람의 예술, 철학, 그리고 지성이 가득 담긴 두 사람의 편지는 감동과 감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본문 중 등장하는 아티스트 김아타의 자연하다-ON NATURE-를 보며 우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다름이란 무엇인지 등의 또 다른 예술의 경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부 〈아르테논하다〉에는 이어령 선생의 여러 조언과 김아타의 작품, 철학, 그리고 미술관 ‘아르테논’이 등장한다. 아르테논은 아티스트 김아타가 자신의 철학이 담긴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그 안에 품고 있는 철학과 지성은 헤아리기 힘들다. 4부 〈얼굴하다〉에서는 두 사람의 더 깊은 대화가 이어진다. 아티스트 김아타는 ON NATURE 〈자연하다〉의 철학과 이어령 선생님을 촬영한 기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인간의 내면에 관한 철학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등에 관해 설명하며 독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준다. 이어령 선생 역시 김아타의 철학에 동조하며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유일한 지기를 얻은 것 같다”고 흡족해한다. 마지막 5부 〈실존하다〉에서는 이어령 선생의 지식과 혁명을 용암과 마그마가 솟구치는 ‘시의 화산’에 비유하며, 그의 내면과 실존에 관해 설명한다.
저자 : 김아타 (金我他)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는 1956년 아름다운 섬, 거제에서 출생했다. 동양사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철학하는 아티스트인 그는 2006년 뉴욕의 국제사진센터인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타임스]는 문화면 두 페이지에 이 전시를 다루면서, 김아타를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아티스트”라 소개하였다. 그는 이미 한국인 최초로 2004년 세계적인 사진 전문 출판사인 뉴욕의 애퍼처 파운데이션에서 사진집 『뮤지엄 프로젝트The Museum Project』를 발간하며 세계 사진의 역사가 되었다. 2008년 리움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과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으로, 6개월간의 특별전을 하였다. 2002년 제2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가하였으며 2006년 베를린 슈타이들 ICP에서 『온에어ON-AIR』, 2009년 베를린 하체칸츠에서 모노그래프인 『Atta Kim』와 『ON-AIR EIGHTHOURS』 등의 사진집을 발간하였으며, 국내에서도 위즈덤하우스와 학고재 등에서 사진집과 함께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잠언집 등 열두 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2002년 런던 파이돈 프레스에서 꼽은 ‘세계100대 사진가’에 선정됐으며 2010년 프랑스의 로레알 파운데이션에서 인류 10만 년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책으로 제작한 『100,000 Years of Beauty』에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2010, 2011년 두 권의 미국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2008년 조선일보 주최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10인’ 에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은 빌게이츠의 Microsoft Art Collection,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Hood Museum at Dartmouth College,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선재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는 이명동 사진상과 동강 사진상, 하종현 미술상, 제1회 하남 국제사진페스티벌 국제사진가상, 사진예술사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사진의 역사를 만들어왔으며, 특히 전 세계 역사적인 열세 도시를 주유하며 도시마다 1만 컷의 사진을 촬영하여 하나로 만든 온에어 프로젝트 ‘인달라 시리즈’는 사진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 동양사상의 핵심을 다룬 작품이다. 그는 2010년부터 사진 표현의 영역을 초월하여 예술사에 전례가 없는 자연이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글로벌 프로젝트 〈자연드로잉The Project - Drawing of Nature〉을 진행하며 예술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경기도 여주에 사유와 성찰의 공간 '아르테논(Arthenon)'을 조성하였다. 아르테논은 손녀세대를 위한 공간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