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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ㅣ 현대지성 클래식 43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8월
평점 :
우리나라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한 전국의 도서판매량 분야별 집계는 늘 '자기계발' 분야가 1위를 차지한다. 대형서점은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놓는데 역시 거의 모든 서점에서 1위는 단연 '자기계발' 분야라고 한다. 이는 최근의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현상이라는 게 서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유는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발전해 가면서 경제적 성장과 함께 자기계발에 많은 독자들이 힘을 쏟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기계발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발전과 더불어 굳건히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자기계발서들은 대개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학, 칼 융(1875~1961)의 분석심리학, 아들러(1870~1937)의 개인심리학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온 심리학적 자기계발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생활과 경험을 중심으로 시작한 실용적 자기계발이다.
두 종류의 자기계발은 연구와 임상경험 등을 통해 발전해온 점과 실제 삶에서 얻은 지혜에 의한 자기계발이란 차이점일 뿐이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성공적이며, 행복한 삶에 이르기 위한 목표는 같다. 후자의 자기계발서는 시작점으로 단연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꼽힌다. 또 우리에게 수많은 명언을 남겨 인상 깊은 미국의 사상가이지 시인인 랄프 에머슨(1803~1882)도 손꼽히고 있다. 다만 에머슨에 비해 프랭클린이 약 100년 앞선 시대의 사람이란 점이 자기계발의 시작점은 프랭클린에 더 가까워진다. 또 심리적 연구를 통한 자기계발은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중심으로 제시됐고, 실용적 경험에 의한 자기계발은 신대륙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실용적 자기계발은 오늘날의 최강국 미국을 만든 청교도 정신, 개척 정신, 실용 정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에서도 ‘미국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으며, 무에서 시작해 맨손으로 여러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낸 삶이라는 데서 더 큰 평가를 받고 있다. 스스로 '개척'하고 신앙과 같은 '삶의 원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평생 그 신조에 따라 살아왔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부'와 '공익'에 헌신할 수 있었으며, 특히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을 대표할 만한 존경 받는 한 사람이 됐다. 그도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2년이 전부였다. 그러나 21세에 인쇄 일을 배우면서 성실과 근면함을 기반으로, 순전히 독학으로 짧고 명료한 글쓰기 능력을 연마했고, 글에 대한 안목 덕분에 인쇄업자로 성공했다. 물론 이 책을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나온다.(p.28)
그는 부유하지 않았고 대단한 권력도 없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학습 능력을 발휘하며 근면과 절약과 인내로 홀로 일어섰다. 작가, 우체국장, 발명가, 시민운동가, 정치인이자 외교관 등으로 활동했고, 정치와 과학 등에서도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일상의 불편함을 적극 개선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 이웃의 유익을 위해 자기 지식을 최대한 선용한, 실용적 지혜자였다. 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미국 정신의 대표, 미국인의 표상으로 추앙 받는 '특별한 인물'이 됐다.
프랭클린은 자수성가한 사람의 표본이기도 하지만, 초기 미국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미국적인 남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부유하지 않았고 대단한 권력을 쥐지도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면서 근면과 절약과 인내라는 덕목을 제대로 실천했을 때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 몸소 증명했다. 이런 점에서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기회의 땅에서 어떤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지난 200년 동안 막스 베버나 데이비드 흄, 카를 마르크스 등 위대한 사상가와 실천가들도 이 자서전의 탁월함을 인정했다. 실제로 프랭클린이 자서전에서 밝힌 절제와 근면 등 13가지 덕목은 발간 후 200년이 넘는 동안 자기계발의 키워드로 자리 잡는다. 많은 미국인은 이 덕목을 따라 실제로 성공했고, 그가 제시한 성공의 길은 인생 공식이 되었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화 100달러 지폐의 모델로 앞면에 등장한다. 그의 인생이 ‘미국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의미다. 현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 관리, 자기 관리, 인간관계 관리, 습관의 힘, 인격 성장, 공공의식, 실용정신, 개척정신, 신뢰라는 자산, 지식 축적 등에 관한 중요한 원리와 실천 사례를 우리는 프랭클린의 삶을 통해 발견하고 체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직간접적으로 밝힌 몇 가지 삶의 원리 중 하나라도 받아들여 적용해본다면 누구라도 자기 분야에서 큰 진전을 경험하고, 일가를 이루게 될 것이다.
프랭클린이 자서전 쓰기를 중단하고 10년쯤 지났을 때, 필라델피아의 상인 에이블 제임스가 프랭클린에게 자서전을 계속 쓰라고 재촉하는 편지에서도 그의 자서전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아직 뒤를 이어 쓰지 않았다면 더는 늦추지 말길 바랍니다. 삶은 불확실하지요. 설교자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친절하고 인간적이며 자애로운 벤저민 프랭클린이 친구들과 세상에 재미와 교훈을 주는 작업, 즉 소수에게만 아니라 수백만에게 유익한 즐거움을 주는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p.128)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윌리엄 프랭클린에게」, 2부 「내 삶에 관한 이야기」, 3부 「집에서 계속 쓰다」이다. 1부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아들 윌리엄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당시 65세이던 프랭클린은 할아버지, 삼촌들,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를 전해주는 것으로 자서전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열 살 때 정규 교육을 끝내고 제임스 형의 도제로 들어가 인쇄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형제간에는 다툼이 잦아졌고 벤저민은 형의 그늘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형의 입김 때문에 보스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뉴욕을 거쳐 필라델피아로 이주한다. 3부는 1788년 8월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자서전을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독립전쟁 중에 많은 자료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시작된다. 1부가 끝난 시점으로 돌아가 1732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 발행해 성공을 거둔 과정을 회상한다.
이 자서전 중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자기계발의 텍스트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 2부이다. 2부 「내 삶에 관한 이야기」는 프랭클린이 1780년대 초 파리에서 지낼 때 받은 두 통의 편지로 시작한다. 둘 다 그에게 자서전 집필을 계속하라고 독려하는 편지다. 그래서 파리 외곽에 있는 파시에서 프랭클린은 1784년 자서전 2부를 쓰기 시작하며 공립 도서관 설립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고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겠다는, 대담하면서도 몹시 어려운 계획”에 관해 언급하며 13가지 미덕을 나열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대부분 진실한 성품을 훈련하여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즈음 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겠다는, 대담하면서 몹시 어려운 계획을 마음속에 품었다. 나는 언제든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타고난 성향, 습관, 인간관계로부터 유혹당하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싶었다."(p.152)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았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항상 옳은 걸 선택하고 잘못된 것을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구분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시행착오를 겪은 프랭클린은 도덕적으로 완벽해질 수 있을 거란 사변적인 신념만으로는 일탈과 실수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힌 후에야 일관되고 올곧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란 결론도 얻었다. 이런 목적으로 도덕적 덕목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13개 덕목으로 '자신의 목록'을 만들었다. 프랭클린의 이 모든 덕목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덕목을 동시에 습관으로 만들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기보다 한 번에 하나씩 바로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한 주에 한 개씩 13주다. 일년이면 이를 4번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1년 안에 이 모든 덕목이 습관화될 것은 예상하지 않는다. 평생 지켜나갈 다짐도 함께한다.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을 앞두고 여러 식민지를 대신해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디언들과의 협상 대표로 선출된다. 이때 프랭클린은 식민지 연방을 제안하지만 그 제안은 채택되지 않는다. 두 연대를 이끌고 영국에서 들어온 브래독 장군이 군대 식량과 군사 장비를 운반할 마차와 말을 구하는 일에서도 사비를 털어 보증까지 서가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앞장선다. 특히 그는 종교가 달라도, 정치적 진영이 달라도, 불편부당한 일처리와 함께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끔 사업을 진행해 나갔기에 심지어 반대편에 선 총독까지도 사석에서는 그의 편을 들었다. 이후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후에 이 책을 썼다(어떤 이유에선지 그가 살아 있을 때 출간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잘못과 부족함, 실수를 소상하게 밝히고 인정함으로써,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근면하고 인내하며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 불리한 태생과 인간 조건에도 불구하고 깊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독학과 지적인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인생의 많은 약점을 벌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필라델피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인쇄소 두 곳과 경쟁해야 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매일 두세 시간씩 자신이 도입하고 만들어간 공공 도서관에 파묻혀 지내며 아버지가 허락해주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를 조금씩 만회해나갔다고 고백한다.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 물고 태어나 평생 가난과 씨름하며 형제들(17명의 형제자매 중에 15번째였다)에 치여 형들 눈치나 보며 주눅 든 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였지만, 균형 잡힌 지성과 치우침 없는 인간관계, 내면의 미덕 훈련 등을 통해 날마다 1%씩 성장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미국 건국 초기에 독립선언문 초안에 참여하고,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이끌어내는 등 외교적인 성과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 200년간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삶에 자기계발의 공식처럼 인정받아 온 프랭클린의 삶이자, 그것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저자 :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17남매 중 15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초와 비누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열두 살에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인쇄 기술을 배워온 뒤, 1728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하였다. 17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를 인수하여 발행하였다. 1732년 12월, 1733년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으로 발행하여 1758년도 달력까지 발행하였다. 그는 회원제 도서관과 병원을 만들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전신인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창설, 미국철학협회 창립 등 폭넓은 교육문화 활동을 벌였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토(Junto)’라는 독서토론 클럽을 결성하여 바람이나 일식, 월식, 지진 등 자연과학에 대해서 토론하고 연구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742년에 개방형 난로인 ‘프랭클린 난로’를 개발하였다. 1752년 6월에는 연을 이용하여 번개가 전기라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피뢰침을 발명하였다. 영국 왕립협회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프랭클린을 왕립협회 회원으로 임명하고, 코플리 상을 수여하였다. 1748년 인쇄업에서 은퇴한 뒤, 필라델피아의 시의회 의원,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회의 의원을 역임하였다. 1755년에 영국에 대한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이듬해에 프랭클린은 토마스 제퍼슨 등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 관계를 이끌어내었다. 1788년에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고, 1789년에는 자서전을 정리하여 영국의 지인들한테 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 실험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790년 4월 17일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공리주의(功利主義)에 투철한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가장 지혜로운 미국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서로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과 《자서전》이 있다. 뛰어난 기지와 경구가 넘치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프랭클린은 “나의 출판업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은 18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손꼽힌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그를 가리켜 ‘신대륙에 있어서 자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문필가’라고 하였다.
역자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언어학을 강의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어제까지의 세계》 《문명의 붕괴》 《12가지 인생의 법칙》 등 100여 권이 있고,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번역은 내 운명》(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