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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클래식 - 천재 음악가들의 아주 사적인 음악 세계
오수현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8월
평점 :
독자가 어렸을 때 음악 시간에 배운 클래식(기본적이고 성악곡 몇 곡 정도)으로 클래식을 배웠다고도, 안다고도 말할 정도는 안 된다. 그 당시에는 클래식은 일반 대중들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상류사회(이 말도 당시에는 없었고, 사회 고위층 모임 정도)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일주일에 한 시간 유지되던 음악시간도 2학년 때부터는 대학 입시 체제로 교과 과정이 짜여져 그마저도 사라졌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고 1 때의 음악 시간이 '마지막 수업' 이 된 셈이다. 그래도 당시 음악 선생님은 요즘 말로 일류대인 서울대 음대 출신이어서 성악으로 자주 불리는 '오 솔레 미오' '라 스파뇨라' 등 대여섯 곡을 수업 시작 전에 부르고 본격 수업에 들어갔다.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음악(당시엔 포크송과 팝송)과, 악기라고 해봐야 기타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클래식을 대여섯 곡씩 부르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때 불렀던 당시 클래식 노래 몇 곡은 눈 감고도 부를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클래식 관람료는 일반 서민들이 부담하기에는 엄청나게 비쌌다.(물가 환산을 해 따지면 지금보다 너댓 배는 되는 것 같다. 또 음악대학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는 데에도 돈이 많은 집안의 자녀가 아니면 꿈꾸기 어려울 정도의 학비가 든다고 들었다. 물론 대학의 학비가 비싸다기보다는 학교에서의 공부 이외의 이른바 '교습비'가 엄청나다고 했다. 기악하는 사람들의 악기 또한 상상을 초월했으니 부잣집 자녀가 아니고서는 꿈꾸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만의 교육으로는 흔히 말하는 '무대'에 서기도 어려워 당연히 해외 유학비까지 있어야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력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서양처럼 예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서양도 그랬다고 한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부자들이 예술가들의 그림을 주문해서 생산하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후원을 받기를 희망했다는 것. 생계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메세나'라고 해서 기업들의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당시 예술 지원 가풍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메디치가(Medici family)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으로 15~17세기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고 한다. 이 집안은 4명의 교황을 배출했으며,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메디치라는 이름은 1230년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 이전의 역사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메디치(Medici)'는 이탈리아어에서 '의사'를 뜻하는 '메디코(medico)'의 복수형이므로, 이들의 조상이 의사나 약제사, 염료 상인 등의 직업을 가졌던 데에서 그러한 가문의 명칭이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시대에는 직물을 염색하는 데 쓰이는 염료가 약재와 함께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메디치 가문에서는 '코시모(Cosimo)'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것도 의사와 약제사의 수호성인인 '성 코스마스(Saints Cosmas)'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여름, 우리 신문·방송은 이른바 ' K-클래식' 열풍으로 뜨거웠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부터 첼리스트 최하영,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특히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어마무시한 곡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는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에서만 음악을 배워 최고의 성공을 거둔 K-클래식 '천재 피아니스트'로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책 『스토리 클래식』의 저자 오수현은 ‘과연 우리는 세계가 극찬한 임윤찬의 연주가 주는 감동을 200% 느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임윤찬의 기교가 뭔가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일반인 중에는 대체 이 곡의 어느 지점에서 감동의 눈물이 나와야 하는 건지, 이 곡이 얼마나 어렵고 특별한 곡인지는 체감이 어렵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 클래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음악시간이 생각나서 우연히 들은 클래식 전문 방송을 듣다가 아는 노래가 나와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지금은 클래식 애호가(이렇게 칭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성공적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도 못했고 아직 그 음반(시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도 구매하지 못했지만 독자는 여전히 가벼운 일처리를 할 때는 여전히 클래식 방송이나 클래식 CD를 틀어놓고 듣는다. 저자의 지적대로 임윤찬의 피아노에 감동한 게 아니라 당시에 친 라흐마니노프도 잘 모르고,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는 처음 듣는다. 이 책 『스토리 클래식』은 클래식 애호가로서 깊이 있는 지식의 탐구를 채우고 싶은, 반대로 클래식을 알고 싶지만 도무지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클래식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집필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술술 풀어가는 이 책의 스토리텔링은 이제껏 없던 클래식의 몰입을 선사한다.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해 가장 사랑받는 천재 음악가 16인의 중요한 생의 순간들을 포착,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삶의 이야기로 클래식의 이해를 돕는다. 위대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이 그때 그 시절엔 하인이었다는 사실, 일평생 60번 넘게 이사 다녀야 했던 베토벤의 사연, 지휘하다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올 정도였던 워커홀릭 말러, 악마의 피아노 연주라는 별명을 가진 리스트의 사교계를 뒤흔든 연애 스캔들 등.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주는 왠지 모를 근엄함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어딘가 이상하고 요상한 파란만장 삶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피어난 명곡의 탄생 과정과 함께 300년 가까이 이어온 그들 작품의 위대함을 설명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거장들의 혹독하면서도, 현재의 우리와 별다른 것 없는 희로애락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리는 클래식 이야기는 그간 높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의 장벽을 확 낮춰준다. 또 각 음악가들의 출생 순서에 맞춘 구성을 통해 자연스레 세계사의 흐름을 익히며,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의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독자처럼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애호가'를 위한 적절한 책이다. 독자는 그동안 클래식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입문서, 음악감상법이 적힌 책, 서양음악사 책, 기악이나 관현악 이론서 등 꽤 많은 책들을 읽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론서나 음악사 책은 딱딱하고 지루했다. 음악 감상 해설서는 너무 뻔한 이야기의 중복이다. 한 번쯤 들어봤던 유명한 그 곡을 쓴 음악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클래식 감상에도 클래식 지식 보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자 오수현은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는지 해당 음악가의 삶을 중심으로 써 내려가기에 누구나 쉽게 내용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 세계관과 곡 감상하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본문 속 작품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지점마다 QR코드를 넣어 명곡의 감동을 책 끝까지 이어주고, 역사적 사료를 더해 내용의 손쉬운 이해를 돕는 것은 실체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 클래식 용어를 쉽게 풀이한 ‘클래식 Q&A’와 함께 각 음악가의 특징과 함께 엄선한 주요 작품, 감상 팁을 정리한 ‘클래식 노트’를 담아 누구나 쉽게 클래식의 기초 지식을 정비하고 습득할 수 있게 썼다. 삶의 치열한 번민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곡을 만들어낸 천재들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 위대하지만 조금은 요상한 그들의 음악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껏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던 클래식이 절로 들리게 될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젠 가을이다. 가을이면 누구나 감상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가끔 느낀다. 그 요인이 음악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은 다른 무엇보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예술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특히 가을은 색으로도, 언어로도 미처 표현하지 못한 소리로 표현하는 클래식에 한 번 빠져들기 좋은 계절이다. 『스토리 클래식』이 그 길을 안내해 주리라 독자는 믿는다.
쇼팽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여자는 정말 질색이야. 진짜 여자이긴 한 걸까!” 예술사에 길이 남은 커플인 쇼팽과 상드의 첫 만남은 이렇게 비호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19세기 유럽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세기의 커플이 될 수 있었을까요.(p.115) - 「프레데리크 쇼팽, 사랑을 갈구했지만 허약하고 불완전했던 남자」 중에서
독자는 책은 조금 읽었지만 클래식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했고, 공부하지도 않았다. 클래식을 조금 들었다고 클래식 전문가가 쓴 책을 칭찬하기에도 버겁고, 비평을 할 지식도 못 갖추고 있다. 독자 같은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한 독자들에게 가장 멋진 추천평을 해준 분의 말을 여기에 대신 싣는다.
"열네 살, 가족을 떠나 낯선 땅 오스트리아 빈에서 맞은 첫 겨울은 무척 어둡고 추웠습니다. 어느 날 동네를 터벅터벅 걷다가 발견한 슈베르트의 생가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저에게 반가운 친구의 집처럼 따뜻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때 받은 위로 때문인지 지금도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면 제 안에선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샘솟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작곡가와 정서적으로 연결된다는 건 연주자에게 정말 특별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작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제가 어린 시절 슈베르트와 친구가 된 것처럼, 여러분도 『스토리 클래식』을 통해 위대한 음악의 거장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이들과 친구가 된다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이 친근하고, 따뜻하게 들릴 겁니다."
- 김정원 (피아니스트, CBS 음악FM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진행자)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일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평생 지휘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10개의 교향곡을 비롯한 후기 낭만주의의 이정표와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페라단 소속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연주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는 직책입니다. 말러에겐 오페라 시즌 후 여름휴가를 알프스에서 보내면서 교향곡 작곡에 매진하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에게 엄격했고, 가혹하리만큼 자신을 몰아세웠습니다. 말러의 일 중독 성향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연습 때 단 1분도 지휘대를 비우는 법이 없는 엄격한 지휘자였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런 말러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죠. 그러던 어느 날 말러가 연습 도중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1시간만 자리를 비우겠네.” 말러는 1시간 뒤 정확히 자리로 돌아왔죠. 연습이 끝난 뒤 한 단원이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왔다네.”(p.259) - 「구스타프 말러, 지휘하다가 결혼식 올리고 돌아온 워커홀릭」 중에서
저자 : 오수현
어릴 적 집에는 클래식 음반이 꽤 많았다. 돌아보면 부모님께선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셨던 것 같은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밴 클라이번 같은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명반이 많았다.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마침 집에는 큰 전축이 있었던 터라 ‘이게 뭘까’ 하는 심정으로 음반들을 한 개씩 꺼내 듣다가 또래보다 음악에 일찍 귀가 트였고, 전공까지 하게 됐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매일경제>에서 기자로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땐 위대한 작곡가는 아니어도 밥은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 줄 알았는데, 졸업 후 십수 년째 기자로 살고 있다. ‘음대 나온 신문 기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십분 살려 정치 기사처럼 쉽게 읽히고, 경제 기사처럼 중요한 정보만 추려낸 클래식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전문 연주자, 음대 교수님들보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어떤 지점에서 클래식 음악을 어려워하고 어떤 의문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보다 딱 반 발짝만 앞서서 클래식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싶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