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산책 - 예술의 정원
강명재 지음 / 일파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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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스페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십수 년 전 일이라 기억에서 지워진 부분도 많지만 사실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아서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유럽 여러나라 패키지 여행이라 스페인에 할애된 날은 2박3일뿐이었다. 때문에 마드리드와 톨레도란 인근 도시 2곳만 갔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은 것은 마드리드는 숙박지와 플라멩고 공연 장소이고 톨레도라는 도시만 제대로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크지 않은 도시인데 큰 성당과 한 마을 자체가 강(해자)으로 둘러싸인 천연요새이자 성이었다.

특히 외부 침략으로 패배했을 때 어떻게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는지 도시 입구에 커다랗게 현장 유물과 함께 고문 살해 기구 등을 전시해 놓아 섬뜩하지만 기억에는 오래 남았다.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때 저렇게 당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존해 알림으로써 전쟁에 임할 때 필사의 항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낮 시간을 톨레도에서 보낸 후 저녁에 마드리드로 다시 이동해 식사와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갔었다. 다음날 낮에 미술관을 갔는데 아마 엘 그레코 미술관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모두 그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해 특별한 설명도 없이 그냥 한 바퀴 돌고 나올 뿐이어서 구경(?)하듯 돌아나아서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갖고 마드리드, 아니 스페인에서의 여행은 마지막이었다. 다만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에 비해 다소 거리가 덜 깨끗하다는 인상은 깊게 남았다.

 


 

독자의 스페인 여행은 이렇게 일부 관광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본 적은 있어도 본 적은 없다'는 말에 딱 들어맞기도 하다. 다만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을 갖지 못한 것은 인상적인 내용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이리라. 이에 비해 프랑스 파리는 꼭 다시 가고 싶은 도시였다. 파리에서도 2박3일 지냈지만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다녀도 극히 일부만 본 것이라는 가이드 말을 통해 몇 군데 더 얘기를 통해 들었지만 일정상 갈 수는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때문 셈이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었다. 이후 여행에서 늘 마드리드는 후순위였다가 빠지곤 했다. 자세하게 마드리드가 소개된 이 책을 보게 되면서 마드리드의 진면목을 처음 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패키지 여행이 얼마나 주마간산식 '관광' 이었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이 책은 마드리드를 '예술의 정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마드리드를 예술의 도시로 표현한 것은 처음 들었다. 파리나 여러 도시가 대표성 있는 이름을 갖고 있는 데 비해 마드리드는 큰 특성이 없는 도시로 생각했었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영국의 인기 미술작가 웬디 수녀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 목적지는 마드리드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피카소, 달리, 모네, 마네, 드가, 로트렉, 마티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의 수많은 대가들이 마드리드의 프라도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산티아고가 종교의 순례지라면 마드리드는 예술의 순례지다. 고전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오페라부터 재즈까지. 미술이든 음악이든, 고전이든 현대이든.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 수준의 예술을 한 도시에서 만나고 싶다면 마드리드만큼 적합한 도시는 드물다. 마드리드는 파리와 더불어 뮤즈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더 이상 찬사가 없을 만큼 예술 도시 마드리드로 저자와 함께 떠난다.

 


 

마드리드에서는 무엇보다 ‘예술’을 즐길 것을 저자는 권한다. 우리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여행길에 오르지만 여행은 끝이 있기 마련이고 결국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여행 중에 만났던 예술의 여운은 우리의 정신 속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다시 지쳐갈 때면 프라도에서 보았던 그림을 들춰보고 레알 극장에서 들었던 아리아를 들어보자. 당신의 뇌와 심장은 마드리드에서 느꼈던 감동과 전율, 위로를 고스란히 재현해 줄 것이다. 여행은 짧고 예술은 길다. 여행 후에도 나를 위로해 줄 예술을 만나기 위해 저자는 주저하지 않고 마드리드를 추천한다.

혹자는 저자가 마드리드에 살았으니까 마드리드가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즉 마드리드가 위대하다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 경험 때문이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도시에 살았다고 반드시 그 도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도 많다. 또 다른 분들은 유럽의 다른 도시를 보지 않아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 또한 그렇지 않다. 마드리드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유럽 곳곳을 여행하였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미술관이나 궁전은 빠지지 않고 방문하였다. 그렇게 둘러본 많은 도시 중에서 마드리드보다 대단하다고 느꼈던 곳은 거의 없다. 마드리드가 품고 있는 예술은 질과 양 모두 압도적이다. 많은 분이 유럽을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는다. 유럽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보다 ‘예술’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도시 마드리드는 유럽 여행을 꿈꾸는 분에게 혹은 이미 유럽을 여행하였지만 마드리드의 매력을 충분히 즐겨보지 못한 분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저자는 마드리드와 미술, 그리고 프라도. 이 3개의 조합은 완벽한 조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는 소피아 미술관을 가면 마드리드 여행은 절반 이상 이룬 것 아닐까 생각했다. 미술을 좋아하지만 문외한인 독자의 생각을 이 책은 금세 고쳐먹게 한다.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고야 정도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프라도가 고전미술관이고 종교화 역시 풍부하다. 유럽에 갈 때마다 접하는 고전미술이나 종교화에 질릴 만도 하다. 가는 곳마다 미술관에는 종교화와 고전미술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동유럽에는 아직 못 가봤지만 거기라고 다를 리 없을 터 유럽 전역이 종교화와 고전미술의 그림이 얼마나 오랫동안 주류를 이루었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프라도에는 티치아노, 틴토레토, 엘 그레코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들 역시 종교화나 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들이다. 뿐만 아니라 문외한인 독자는 당연히 모르지만 이름만 들어본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그곳에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는 프라도가 소장하고 있는 티차아노, 틴토레토, 엘 그레코의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있어서 이해가 쉽다.

하루에 다 보기 어렵다 하니 몇 개만 미리 지정해 봐도 좋을 듯하다.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객 입장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을 본 적이 없다. 저자의 프라도 미술관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라도의 좋은 점을 관람하려는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독자라면 이보다 자세하게 적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저자의 프라도 사랑은 깊고 크다. 프라도가 어떤 미술관이고 그리고 어떤 층 어디에 어떤 작품이 있고 어떤 식으로 관람하는 것이 좋을지도 이 책에 모두 적혀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마드리드를 "예술을 사랑하는 유럽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방문해야 할 '순례지'로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고 말한다.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유명 화가들도 엄청나게 많다. 단순 방문이 아니라 찬사와 함께 마드리드에서 영감을 받은 화가들 말이다. 르누아르, 마티스, 로트랙 등 이름만 들어도 그의 작품이 떠오르는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화가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마드리드는 눈부신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수많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발군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그 매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 해외여행을 활발할 때도, 스페인 여행 붐이 일었났을 때도 대부분 바르셀로나와 남부 안달루시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마드리드에서 3년 6개월간 근무하는 동안, 여가 시간 대부분을 예술 감상에 쏟았다. 마드리드는 마치 화수분 같았다. 주말마다 부리나케 미술관으로 공연장으로 달려갔기에 꽤 많은 것을 보고 즐겼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기어이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었다. 굳이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눈길 닿는 곳곳에 예술이 녹아 있었다.

 

 

마드리드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부가 아니다. 물론 그 두 작품만으로도 마드리드는 방문할 가치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5개 파트로 나눠 마드리드의 예술을 설명하고 있다. 1부 「고전회화의 천국, 프라도 미술관」, 2부 「전율 혹은 휴식, 나만의 미술관을 찾아서」, 3부 「마드리드를 감싸 안는 뮤즈의 선율」, 4부 「미술관 밖 예술」, 5부 「뮤직와의 산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화는 물론 고전주의 미술의 보고인 프라도 미술관뿐만 아니라 '서양미술의 종합 카탈로그'인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과 스페인 예술가의 요람 '왕립예술원', 부부의 컬렉션으로 채워진 시민 모두의 예술 '라사로 갈디아노 미술관도 소개된다.

'지중해의 햇살, 가족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소로야 미술관까지 민간미술관의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또 거장들의 콘서트가 일년 내내 멈추지 않는 '국립콘서트홀' 왕궁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연주는 1박 2일의 콘서트가 소개된다. 왕립극장에서는 호화스러운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고, '카페 센트랄'에서는 유럽 10대 재즈 클럽의 자유분방하고 매혹적인 재즈의 선율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도 '작은 베르사유'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그랑하 궁전, 성당, 산책로, 역사적 건축물 등이 즐비하다.

 


 

미술관의 소장 작품만으로도 유럽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과 독특한 작품, 스페인 왕실의 그림 등은 화려함과 예술의 열정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일년 내내 그치지 않은 마드리드의 예술의 향기와 빛은 기후와도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페인의 기후는 일년 내내 따뜻하거나 더울 정도의 생활하기에 매우 온난한 기후대에 펼쳐져 있으며 이술람의 침략으로부터 여러 차례 전쟁을 겪기도 하면서 이슬람과 혼재된 문화도 형성되었다. 또 스페인이 강대한 '무적함대'의 시절에는 엄청난 부를 쌓음으로써 유럽의 패권을 쥔 적도 있어 역사상 왕실 예술의 발달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예술의 열정이 넘치고, 음악의 흥이 매일매일 일어나는 곳을 스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추는 춤 플라멩고도 이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흥겨우면서도 아름다운 춤의 선울과 동작들은 열정적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아무래도 해외여행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도 지나갈 것이고 해외여행에 대한 그동안의 꽉 막힌 붐이 봇물 터지듯 다시 일어날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계기로 스페인 여행을 다시 꿈꾸고 있다. 많은 것을 알고 가면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저자 : 강명재

 

이야기와 지식, 예술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영화, 책, 음악, 게임, 만화를 고루 섭렵했다. 1994년 처음으로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고서는 ‘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미술을 추가하였다. 2003년 KOTRA에 입사한 이후 멕시코시티(멕시코), 산티아고(칠레), 마드리드(스페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였다. 2017년 8월, 마드리드에 부임하여 운명처럼 프라도와 재회했다. 이후 3년 6개월 간 근무하는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미술관들을 방문하였다. 마드리드를 알면 알수록 이 도시는 단순히 ‘스페인의 수도’가 아니라 ‘예술의 낙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드리드와 예술을 사랑하는 ‘열혈팬’의 입장에서 놀라운 보물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충 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마침 한국에 마드리드의 예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다면 본인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술을 사랑한다고 - 혹은 사랑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재테크’와 ‘자기개발’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해서도 활발히 이야기하는 세상을 꿈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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