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스탠드 꿈꾸는돌 32
추정경 지음 / 돌베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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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처음 보는 작가와 작품인데도 신뢰감이 든다. 글을 굉장히 잘 쓰는 것은 물론 단순히 청소년 로맨스에 그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깊고, 삶에 대해 생각하며 성장하는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거기에 사회 부조리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것은 작가에 대한 신뢰보다는 '창비'에 대한 신뢰라고 해야 할 듯)가 잘 표현됐으리라는 기대감도 듬뿍 안고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개척”했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우리 청소년문학의 숨겨진 잠재력”이라는 찬사와 함께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추정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언더, 스탠드』다. 첫 작품 『내 이름은 망고』가 낯선 외국에서 살게 된 10대 여성 주인공의 성장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무대를 가상 세계로까지 넓힌다. 주요 등장인물 또한 10대 천재 소년부터 스타트업 대표, 죽음을 앞둔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색다른 상상력을 펼쳐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과학 기술’과 ‘가상 현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과 ‘이해’의 본질에 대해 또 한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대표인 목훈은 첨단 기술을 도입한 VR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던 중 해커 ‘반타 블랙’의 예상치 못한 개입으로 목훈과 팀원들은 위기를 맞는다. 그 와중에 의료용 재활 VR 프로그램을 구매하기로 한 병원의 함 회장은 목훈에게 실감 나는 멸치잡이 VR을 개발해 달라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을 한다.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함 회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던 목훈은 그 과정에서 뜻밖에 평생 원망하던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목훈의 프로그램에 잠입한 반타 블랙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함 회장은 왜 목훈을 거친 바다의 배 위로 보냈을까? 『언더, 스탠드』는 청소년에게 친근한 VR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기억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지, 또 그렇게 기술을 통해 복원한 기억이 한 인간의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을지 묻는다. 그리고 복원한 기억이 인간의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 작품 속에 오롯이 녹아 재미를 더한다. 스토리와 문장력은 꼭 청소년 문학이라 할 만큼 배경이 좁거나 단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 점은 한 단계 높은 청소년 문학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분도 좋다. 읽는 느낌이 좋다 할까, 뭔가 새로운 체험을 하는 좋은 느낌을 이 작품은 주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목훈의 아버지는 산업화 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우직하게 일만 열심히 한 세대의 전형으로 표현된다. 산업화 시대,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가난을, 끼니를 제대로 이을 수 없었던 오랜 세월의 가난을 탈피하고자 일하는 현장에서 평생 일만 했다. 그 일이 산업화에 관계가 있든 없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최선의 노력이자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 일이다. 이런 글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대체로 무뚝뚝하고 약간은 자식들에게 무서운 분으로 형상화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한없이 여리고 약한, 그래서 다른 쉬운 돈벌이에는 눈을 돌릴 줄 모르는 우직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 글들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청소년 교육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밖으로만 돌던 주인공 목훈의 아버지는 30년만에 귀가한다. 목훈에게 아버지는 안 좋은 기억들뿐이다. 어렸을 적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그런 삶 속에서 숨죽이고 벌벌 떨어야만 했던 목훈 자신의 어렸을 적 힘든 생활이 매일매일 계속됐었다. 그러던 아버지는 불현듯 사라져 버렸다 늙고 병든 후 다시 돌아왔다.

"노인네 버리기 딱 좋은 데 지었네." 아버지의 지병이 악화되어 요양병원을 가게 되었고 도착한 병원에서의 첫마디였다. 요양병원은 남자 환자 여자 환자 따로 있었는데 여자 환자 쪽은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환자 쪽은 표정이 밝지 않고 수심이 가득한 분위기이다. 이를 표현하는 저자의 의중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자 환자들의 대부분은 아내나 여자 보호자가 아닌 간병 조끼를 입은 사설 업체 간병인이었다. 이것이 그 노인들이 받아든 초라한 인생의 성적표이고, 가족들에게 대접받지 못한 아버지들의 미래일까 싶다.

 

 

이 소설에서 함 회장은 처음엔 부정적 이미지의 인물로 비쳐진다."'나는 젊었을 때 베링해 킹크랩 어선을 탔어요." 모든 걸 이룬 함 회장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 멸치잡이 VR을 개발해 달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함 회장은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야영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인도 록파족 이야기를 건넨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인도 록파족은 유목민이라 여자가 귀해 두 번 결혼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유목민이라 떠돌아다니다 보니 늙은 부모를 한 달 정도 먹을 식량과 적당한 장소에 텐트를 쳐 두고 떠나 가축을 치다 다시 돌아왔을 때 부모가 살아 계시면 다시 한 달 치 식량을 두고 떠나길 부모가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함 회장은 자신의 자녀들이 상속 다툼으로 골치 아픈 일이 있기에, 함 회장 본인이 아니라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는 자식들의 자녀를 바라보는 시뮬레이션을 바란 것이다. 현대판 '고려장'의 느낌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저자의 비판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늙은 부모를 두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아니 심하면 일년에 달에 한 번씩 들르며 먹을 것 채워두고 잠시 있다가는 일이 요양병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뉴스를 접한 적도 있는데 이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추정경의 소설들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면서도 서사적 긴장감과 읽는 재미를 잃지 않는다고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작품 역시 온라인 게임 도중 펼쳐지는 한 장면으로 시작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도입부터 곳곳에 암호처럼 심어져 있는 실마리들은 서사의 전말을 유추하는 장르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결말에서 밝혀지는 목훈과 반타 블랙의 숨겨진 인연 또한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여운을 준다. 윤리적인 성찰이 선행되지 않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반타 블랙의 경고와, 진정한 이해를 얻기 위해 진짜 같은 가상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 함 회장의 의도는 주제를 다각도로 사유해 볼 기회를 준다. 독자들은 『언더, 스탠드』를 읽으며 한 권의 책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를 앞서 상상해 보고, 준비하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은 결코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기에 그것을 향하다 결국 8부 능선쯤에서 멈춰 진실을 깨닫는다.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에 완주란 없으며, 페이스메이커의 운명이 그러하듯 다만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을 뿐임을.(p.120)

 


 

발전에는 필히 느린 구간이 필요했다. 스스로 사유하고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하는 단계를 지웅이 건너뛰게 만든 셈이었다. 그래서 지웅은 반타 블랙이 되어 목훈의 프로그램을 저지코자 했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랬으니.(p.196)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속에 바다 냄새가 실려 있었다. 오래전 그들이 소년이었듯 이 늙은 에베레스트 또한 어린 바다였음을, 그 산 아래 서고 나서야 이해했다.(p.196)

 

저자 : 추정경

 

울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방송 작가로 일했다. 엄마와 캄보디아로 떠나온 열일곱 살 소녀의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린 『내 이름은 망고』(2011)로 ‘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개척’했다는 평과 함께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대교 밑 비밀스러운 벙커로 숨어든 상처 입은 소년들의 이야기 『벙커』(2013), 감가하는 돈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2017), 어느 날 테니스 유망주에게 들이닥친 음모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검은 개』(2019), 읽고 쓸 자유가 사라진 강력한 통제사회를 그린 『월요일의 마법사와 금요일의 살인자』(2020)가 있다. 2021년에는 누아르와 SF가 결합된 장르소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를 출간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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