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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포크 트래블 - 세계를 바라보는 더 느린 방법
존 번스 지음, 김선희 옮김 / 윌북아트 / 2022년 8월
평점 :
〈킨포크〉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미국의 잡지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2011년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네이선 윌리엄스와 그의 아내 케이티 설-윌리엄스, 그리고 이들과 친구였던 덕과 페이지 비숍이 주축이 되어 창간되었다. 여담으로 네이선 윌리엄스는 부인 케이티의 사랑과 헌신에 힘 입어 킨포크를 창간했으나 나중에 네이선이 게이로 커밍아웃하고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주된 주제는 라이프스타일, 음식, 집, 일, 그리고 공동체이며 매 이슈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한다. 큰 반향을 일으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깔끔한 표지 디자인 덕에 국내에서도 온갖 분야에서 디자인 소품으로 자주 접할 수 있다.
물론 킨포크의 주제는 디자인이 아닌 미니멀 라이프이며 이 분야의 성장과 연관되어 함께 주목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에는 그 자체로 디자인 소품이 될 정도로 깔끔하고 유려한 디자인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표지 뿐만 아니라 내부에 실린 사진들도 굉장히 호평 받고 있으며 이런 부분 때문잡지를 구매하는 이들도 적잖을 정도이다.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지역 예술 공동체에서 출발했지만 창립자 네이선에 이 2015년 코펜하겐으로 거점을 옮기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소재한 디자인 하우스인 퍼스펙티브 스튜디오(Perspective Studio)와 협업을 하게 된다. 킨포크는 21세기 대중 미학의 중심을 이루게 된 소박하고 심플한 북유럽 디자인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약 3년간의 팬데믹 동안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연결’과 ‘여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갈증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점점 더해간다. 이 책은 이 같은 목마름을 해소해줄 〈킨포크〉의 여행 에세이 한국어판이다. 〈킨포크〉의 편집장 존 번스와 킨포크 팀은 ‘소통과 느림의 미학’으로 요약되는 킨포크 스타일의 전파자다. 『킨포크 테이블』과 『킨포크 가든』에 이어 이번에는 ‘여행’을 주제로 우리와 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6대륙 27개 나라를 방문해 각각의 지역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작가, 요리사, 뮤지션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이 소개하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가만히 이끈다.
킨포크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세상 구석구석의 이야기는 ‘여행의 클리셰’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선물한다. 고딕과 오스만 양식이 가득한 파리에서 포스트모던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거나, 사막 이미지가 강렬한 세네갈에서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 그가 말하는 패션 철학에 귀를 기울여보는 식이다. 꼭 먼 곳에 있는 장소와 사람만 다루는 건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서울은 이곳에 거주 중인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면 우리의 기존 인식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녔다. 킨포크가 제안하는 여행의 방식은 ‘천천히 바라보기와 느리게 느끼기’다. 이 책과 함께라면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법을, 그리하여 어느 곳에 있든 여행의 위안을 얻는 법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여행지 가이드’를 넘어 ‘참신한 여행의 방식’을 제안하는 동시에 ‘여행의 진정한 기쁨’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미 소셜미디어나 TV 프로그램에 각종 여행 정보가 흘러넘치는 지금, 킨포크의 여행이 주는 특별함은 무엇일까? 바로 킨포크만의 가만한 감성, 그리고 느림의 가치와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힘이다. 〈킨포크〉의 편집장 존 번스와 킨포크 팀은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라는 그들만의 모토에 따라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탐방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결코 최고의 호텔이나 레스토랑, 명소 등 고급스럽고 ‘인스타그래머블’한 곳을 소개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곳을 들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저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세상 한구석에 숨겨진 장소들을 보여주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북적북적한 런던의 모퉁이에 남몰래 자리한 아기자기한 탐조 명당부터, 누구에게나 각자의 내면에 고요한 파장을 일으킬 스코틀랜드 먼로 하이킹 코스, 자연의 향취가 가득 담긴 조그마한 슬로푸드 레스토랑, 걷는 속도보다 느린 보트를 타고 바라보는 영국 그랜드 유니언 운하의 잔잔한 풍경까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외지인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한 장소에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발붙여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소개해주는 그 여행지의 모습에 주목한다. 『킨포크 트래블』은 이처럼 화려하고 자극적인 매력이 아니라 자세히 보아야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전하고, 안에서 보는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소개한다.
이 책 『킨포크 트래블』은 크게 「도시」, 「야생」, 「교통수단」으로 나뉘어 있다. 직접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킨포크 특유의 압도적인 사진도 가득하다. 책의 판형도 기사의 내용에 걸맞게 보관 가능한 지질을 사용했고, 정감 있는 재질의 종이에 인쇄했다. 이 책의 사진들은 주변이 너무나도 정체된 것처럼 느껴져 마치 다녀온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편안한 컬러와 정적인 느낌의 풍경, 될수록 일상과 가까운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만약 생활의 환기가 필요하다면, 나를 일깨워줄 색다른 감각을 원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킨포크적 여행을 체험해볼 것을 권유한다. 당장 이 책에 실린 여행지로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을 이해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첫 장인 ‘도시(URBAN)’에서는 파리, 뭄바이, 산티아고 등 세계 곳곳 유명 도시의 숨겨진 면면을 담았다. 지명만 보고 가본 곳, 뻔한 곳이라며 안일한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원래 알던 장소라도 아주 조금만 새로운 각도에서 들여다본다면 놀라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서점, 건축물, 미술, 패션, 미식 등 한 콘셉트에 맞춰 한 도시를 탐험하는 팁도 가득하다. 두 번째 장은 ‘야생(WILD)’이다. 이 장에서는 자연의 장엄함을 오롯이 마주하며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야생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산을 오르고 물속에 몸을 담그며 자연의 일부인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 장에서는 탐조, 낚시, 하이킹, 사이클 등 야외 활동을 즐기기 좋은 세계 곳곳의 가볼 만한 장소도 소개해준다. 세 번째 장 ‘교통수단(TRANSIT)’이다.
킨포크 팀은 이동 수단 역시 여행의 일부로 바라본다. 한 목적지로 이동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좀 불편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방법을 선택해보자. 수단으로서의 이동이 아닌 이동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케이블카 너머로 펼쳐진 스위스 산자락의 모습, 배를 타고 바라보는 수면 위의 풍경들, 베르겐선 기차 창밖에 스치는 겨울의 한 장면을 감상하고 있다 보면, 어디로 떠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여행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꼭지마다 각 이동 경로를 한눈에 파악하는 지도가 실려 있으며, 특정 지역의 여행 팁과 숙박 시설, 식당 정보도 담겨 있다.
책에 따르면 1845년,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콩코드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10년 뒤, 자연에서의 생활을 담은 『월든』이 세상에 나왔다.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소로가 느낀 것과 같은 영감을 얻고자 야생으로 캠핑과 트레킹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책임 있게 여행하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소로가 살던 시대와 달리 전 세계 인구가 77억 명에 달하는 지금, 우리의 방문은 자연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소셜미디어 위치 태그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몰리는, 일종의 ‘침략’과도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장 말미에는 이처럼 각각 세 편씩 여행하기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담겨 있다. 탄소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여행, 여행지에 대한 보존을 넘어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재생 여행’ 등 여행에 관한 윤리적이고 인문적인 고찰은 물론 기내식이 주는 기쁨이나 발리의 ‘천국의 문’, 노르웨이의 ‘트롤퉁가’ 등의 세계적 포토 스팟을 대하는 씁쓸한 시선까지 여행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흥미로운 키워드가 가득하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했다. 낯선 지역의 낯선 사물과 공간을 마주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사유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지만, 이 책에서는 어떤 것도, 어떤 방식의 여행도 폄하하지 않는, 우리의 사유의 공간을 열어두는 멋진 글들로 여행의 의미를 채운다. 킨포크의 여행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낯선 세계를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변화일 터다.
작가이자 뮤지션 오지은은 "이젠 어딜 가도 비슷해 보여,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잠시 공감하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건 내가 어딜 가도 같은 스타벅스에 들어가고 같은 디자인의 호텔 체인에 숙박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시선, 깊은 시선을 가지기 위해서는 느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신비로운 뒷골목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 입구는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는 여행자들의 귀한 뒷골목과 마음이 있다. 겨울에 노르웨이에서 기차를 타면 어떤 기분인지, 런던에서 새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 윤리적인 여행은 무엇인지, 결국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압도적인 사진들."이란 추천평을 남겼다. 〈킨포크〉는 현재 미국 외에도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판이 출간되고 있다.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일정을 짭니다. 우리가 원할 때 일정을 변경하고요. 아름다운 외딴 해변을 보거나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그냥 거기에 머뭅니다. 그리스인들이 말했듯이 ‘시가 시가siga siga(‘천천히’라는 뜻)’, 주변과 하나가 되는 느린 여행을 추구합니다.”(p.301) - 「그리스 섬 주변 항해」 중에서
저자 : 존 번스(John Burns)
일상의 아름다움을 미니멀한 사진과 글로 담아낸 캐주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KINFOLK]의 편집장이다. 2011년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킨포크]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로,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잡지와 책을 출간한다. 절제된 글과 감각적인 사진, 새로운 삶의 태도가 담긴 계간지 [킨포크]는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젊은 세대들을 매료시켰고 미국은 물론 유럽, 호주, 일본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가 수많은 킨포크족을 낳으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바꾸고 있다.
역자 : 김선희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다. 번역가이자 한양대 국제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단편소설 「십자수」로 근로자 문화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 국제 청소년도서관(IJB)에서 소속 연구원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쓰고 옮긴 책으로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꿈의 나라, 유토피아』, 『얼음 공주 투란도트』, 『우리 음식에 담긴 12가지 역사 이야기』, 『둥글둥글 지구촌 음식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윔피 키드』 시리즈,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위저드 오브 원스』 시리즈, 『멀린』 시리즈, 『구스범스 호러특급』 시리즈,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 『팍스』,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공부의 배신』 『누나는 벽난로에 산다』 등 200여 권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