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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
사울 레이터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는 사울 레이터의 국내 최초 컬러 슬라이드 사진집이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사울 레이터의 초기 작품들을 엄선해 실었다. 예술PD 박형욱은 뉴욕 사울 레이터 재단과 공동제작으로 탄생한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는 "그의 '미발표 컬러 슬라이드'를 수록한 책으로, ‘레이터 스타일’의 핵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 평했다. 이 책에는 사울 레이터의 전설적인 초기작 중 출판 관계자들이 엄선한 76점이 담겨 있다.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 책은 슬라이드 필름의 깊고 선명한 색감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까다롭게 엄선한 종이와 양질의 인쇄를 사용했으며, 디럭스 사이즈의 커다란 판형과 고급 양장본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한 장 한장 넘길 때마다 전시회에 온 듯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윽한 사진들이 펼쳐진다. 긴 여운을 남기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더 가까이’ 간직하고 싶던 독자들에게 놓칠 수 없는 예술품 같은 책이다.
사진 에세이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과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서 사진과 그림, 글을 통해 레이터의 스타일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면, 사진집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에서는 레이터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인 ‘컬러 사진’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오직 흑백 사진만이 예술로 여겨지던 1940~1960년대, 갓 뉴욕에 정착한 스물다섯 살의 사울 레이터는 홀로 거리를 산책하며 뉴욕의 일상을 컬러 필름에 담았다. 과감한 구도와 색채가 어우러지는 이 사진들은 당시의 그처럼 거침없고 자유로우며, 한여름처럼 강렬하다.
“사진가는 세상이 미처 알지 못했던 근사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던 사울 레이터. 그는 평생 동네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작품을 남겼다. 익숙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했던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안겨다 줄 사진집이다. 사울 레이터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카메라가 있을 뿐”이란 말로 그는 ‘세상으로부터 잊히길’ 바랐지만, 세상은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2006년 여든두 살의 사울 레이터는 사진에 입문한 지 60여년 만에 우연한 기회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독일의 한 출판사 대표의 눈에 띈 것이다. 그 후로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레이터 열풍’이 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울 레이터를 최초로 소개한 사진 에세이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레이터의 팬들이 생겨났다고 출판 관계자들은 말한다. 2022년 5월까지 열렸던 사울 레이터 단독 사진전 또한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레이터 열풍’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레이터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초기 컬러 슬라이드를 오롯이 수록한 작품집은 이 사진집이 최초이며 유일하다. 이런 뜻깊은 작품인 만큼, 뉴욕 사울 레이터 재단과 공동제작한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는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된다. 2022년 8월 한국을 시작으로, 9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권, 10월 미국 등 사울 레이터를 기다려온 각국의 독자들에게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인 레이터의 사진에는 사진예술에 문외한의 독자가 보기에는 화려함보다 자유와 고독이 동시에 내재하는 사진들이 많다고 느꼈다. 뉴욕 시민들의 일상이 주로 사진에 담겼는데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몸짓이나 표정이 고독이 함께 묻어난다. 어쩌면 레이터가 노렸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표정에서 독자는 인간의 심연에 있는 고독을 느꼈고, 일상의 행위에서 자유로움을 보았다. 이 경험은 독자를 사진에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은 다른 예술에 비해 역사가 짧다. 독자들도 다 아다시피 사진기의 발명이 19세기에 이르러 완성됐고, 20세기에 사진예술의 개념도 확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사진술은 1839년에 다게르가 은판사진술을 완성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스트먼은 1879년에 우수한 젤라틴 건판을 발명했고, 1881년에는 롤필름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888년에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는 문구와 함께 출시된 코닥 카메라였다. 이를 통해 이스트먼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중용 카메라 시장을 창출했다. 이어 1889년에는 감광성 셀룰로이드 필름이 개발되었고, 1900년에는 브라우니 카메라가 출시되었다. 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카메라는 20세기 되어서야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이다.
사진을 가리키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말은 그리스어 'photos'(빛)와 'graphien'(그리다)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사진의 역사에서 1839년은 매우 중요한 해로 여겨진다. 이 해 8월 19일에, 프랑스의 다게르(1787~1851)에 의해 발명된 은판사진(daguerreotype)이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발명품으로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사진의 발견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오늘날 사용하는 카메라의 원형에 해당하는 카메라 오브스큐라(camera obscura, 어둠상자)를 발명한 바 있다. 이것은 본디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복제도구로 사용되었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는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예술의 특성은 그것이 종래의 예술과 달리 과학과 결합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선 찾아볼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E.웨스턴이 '렌즈가 눈보다 더 잘 본다'고 지적한 것처럼, 사진예술은 종래의 예술이 그려내지 못했던 새로운 리얼리티의 세계를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모습은 내면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감성이나 특성을 더욱더 충분하게 드러낸다"고 하면서 "사진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가장 완벽한 매개물"이라고 말하여 예술 사진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미국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수잔 손탁은 그의 사진론에서 "사진의 힘은 이미지들과 사물, 복제품과 원제품들과의 차이에 따라서 우리들의 체험을 반영하기 위해서 현실을 점점 더 근사하지 않게 하는 힘, 즉 플라톤의 철학을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미지를 '무상하고 유익성도 별로 없고 비물질적이며 현실의 사물들과 함께 존재하는 미망'이라고 본 플라톤의 이미지에 대한 파괴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사진이 지닌 이미지의 고유한 위력에 대하여 "이미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의 사진들의 시대적 배경은 레이터가 갓 뉴욕에 정착하여 사진을 시작했던 25세부터 40대 초반에 이르는 무렵이다. 당시는 오직 흑백 사진만이 예술로 인정받던 시기였다고 한다. 사진가들과 평론가들은 컬러 사진이 ‘광고에나 어울린다’며 폄하했으나, 레이터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레이터는 여러 제조사의 슬라이드 필름으로 실험을 했는데, 색이 바랜 느낌을 좋아해 일부러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을 쓰기도 했다고 그와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마깃 어브가 이 책 「머리글」에서 증언하고 있다. 마깃 어브는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에 담긴 풍부하고 로맨틱한 색감의 사진들은 컬러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1970년대 작가들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동시대 작가들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그는 홀로 거리로 나가 뉴욕의 일상과 센트럴파크에서 휴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생의 ‘비결정적 순간들’을 컬러 필름에 담았다고 설명한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무엇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은 그의 사진에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젊음과 자유로움, ‘레이터 스타일’ 고유의 빛나는 감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젊음이 인생의 여름이기 때문일까. 초기작을 엄선한 이번 사진집에는 유독 여름의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많다. 물줄기가 비처럼 쏟아지는 분수대 앞의 두 소년,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센트럴파크를 거니는 소녀, 뱃놀이를 즐기는 뉴요커들, 비 내리는 여름날의 창문과 어렴풋이 보이는 파란 하늘. 사진예술에 문외한인 독자가 보기에도 한없이 감성적이고, 다른 시선으로는 뉴욕 시민들의 일상의 자유로움과 여유마저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레이터가 ‘사적인 공원 시리즈’라고 이름 붙인, 센트럴파크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다. 사울 레이터 재단의 대표이자 사울의 오랜 친구였던 마깃 어브의 표현처럼 “꿈처럼 황홀한” 사진들이다. 레이터가 ‘S’ 혹은 ‘Sel’이라고 메모해두었던(셀렉션을 뜻한다), 인화를 염두에 두었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던 사진들도 이번 사진집에서 최초로 공개된다고 밝힌다. 당시 레이터는 인화 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되어 많은 사진을 인화하지 못했고 필름 그대로 보관해두었다. 마치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이 사진들은 유난히 특별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사울 레이터 재단이 2018년부터 5년 동안 몰두해온 ‘슬라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빛나는 결실이다. 사울 레이터 사후 설립된 재단은 ‘사진으로 발 디딜 틈 없는’ 레이터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6만여 장의 미발표 컬러 슬라이드를 발견했고, 현재까지도 주제와 시기, 필름의 종류별로 사진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발굴한 보물 같은 슬라이드가 사진집에 수록되었다. 사울 레이터는 1956년 뉴욕 태너저 갤러리의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컬러 슬라이드를 공개했다. 그는 슬라이드를 환등기에 비춰 벽에 영사했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이런 평을 남겼다. “레이터의 슬라이드는 오묘한 보석처럼 보이다가도, 벽에 영사하면 저 멀리 우주가 탄생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레이터는 종종 가까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슬라이드를 영사해 보여주기도 했다.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와 오롯이 앉아, 마치 레이터와 함께 슬라이드를 상영하는 기분을 만끽해보시기를 기대한다.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채 반쯤 부스러진 필름 상자처럼 눅진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사울 레이터는 언젠가는 어둠 속으로 일렁이며 사라지고 말 세계의 불완전한 파편을 찍기 위해 자신의 한정된 생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그렇게 얻어낸 필름을 동전이나 휴지 조각과 함께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굴린다. 겹겹이 쌓인 필름 사이로 기꺼이 사라지는 그의 웃음소리와, 숱한 필름을 끝없이 들여다보며 단 일흔여섯 장의 사진을 골라내는 동료들의 끈질긴 마음이 지면 위에 함께 놓인다." - 김현호 (사진비평가)
저자 : 사울 레이터(Saul Leiter)
1923년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나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1946년 학교를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이후 친구이자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푸세트 다트에게 포토그래퍼가 될 것을 권유받았고, 30년 가까이 성공적인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으며 「하퍼스 바자」, 「엘르」, 「에스콰이어」, 영국 「보그」, 「라이프」 등에 사진을 게재했다. 이후 업무 차 뉴욕을 찾은 독일 출판사 ‘슈타이들’의 대표가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60년 만에 레이터가 찍은 사진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그의 사진들은 ‘컬러 사진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비비안 마이어와 함께 영화 「캐롤」의 배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2년에는 그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In No Great Hurry: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가 개봉되었다. 작품집으로는 「Early Color(2006)」, 「Early Black and White(2014)」, 「In My Room(2017)」 등이 있다. 2013년 11월에 사망했다.
역자 : 송예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는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예스 민즈 예스』, 『기이한 이야기』, 『키스 해링의 낙서장』 등이 있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계간지 《뉴필로소퍼》 번역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고양이 말리, 니나, 잎새와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