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 시행착오, 표절, 도용으로 가득한 생명 40억 년의 진화사
닐 슈빈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22년 7월
평점 :
독자는 생물학·유전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는 고등학교 때부터다. 생물에 관심을 갖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학 과목 중 「지학」과 「물리」는 꽤 흥미를 느꼈지만 「화학」과 「생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DNA' 부터란 말을 하고 싶어서다. 고등학교 시절 '염기서열', '유전자'란 용어들은 있었지만 DNA라는 말을 제대로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물에 관심을 갖지 않아 교과서에는 쓰여 있었는데 기억에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신문에서 DNA란 말을 자주 쓴 것은 범죄 소식을 전할 때 많이 썼고, 그것도 사실 2000년 들어서야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진범'을 가려내는 데 이보다 정확한 방법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는 범죄 중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얼마 전에 가려진 것도 DNA 감식을 통해 범인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그때는 유전자 감식이 제대로 발전되어 있지 못해서 우연히 증거 채취 과정에서 유전자 감식이 가능한 증거를 채취해 증거물실에 보관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젠 유전자 감식법은 가장 발전된 과학수사법이며 국내에서도 정확하게 판별할 정도로 시스템을 갖췄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이 책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에도 당연히 DNA란 용어가 많이 쓰인다. 저자 닐 슈빈은 DNA를 통해 다윈의 '진화론'의 오류 등을 밝혀내 획기적 기여를 한 진화학자다. 그는 뛰어난 진화학자이자 '화려한 입담'의 걸출한 학자로 뛰어난 업적을 쌓았다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말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저자 닐 슈빈에게 화석 연구는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실제로 2004년 북극에서 목,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을 발굴해 일약 세계적인 고생물학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 화석은 진화 연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틱타알릭’ 발굴 과정과 연구 성과를 담은 『내 안의 물고기』는 국립과학아카데미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화석만큼 강력한 새로운 도구와 맞닥뜨린 것도 저자의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당시 동물의 몸을 만드는 DNA가 발견되고 파리의 머리, 날개, 더듬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지는 등 게놈 연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동안 화석 사냥꾼이 도맡아 온 ‘자연은 어떻게 발명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유전자 연구가 보다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자도 진화하지 않으면 결국 멸종되어 화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p.16) 저자는 화석과 유전자라는 양손의 도구를 활용해 진화사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팔다리, 날개와 깃털, 지느러미, 커다란 뇌와 뛰어난 인지 능력 등 생명의 진화를 이끈 혁신과 발명이 사실은 수십억 년 동안 베끼고 훔치고 변형한 결과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과학 스토리텔러인 저자가 들려주는 진화 연구사와 게놈 생물학의 최신 성과를 따라가다 보면, 40억 년 동안 뻔뻔하고 염치없었던 자연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대표적인 형질은 바로 큰 뇌를 가졌다, 저자의 지적은 독자가 궁금해하던 비밀을 말끔히 씻어주는 내용도 나온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 팀이 인간과 히말라야원숭이의 뇌 조직을 비교한 결과 인간에게만 있는 ‘NOTCH2NL’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이 유전자는 뇌 조직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유전자는 ‘NOTCH’ 유전자의 사본임이 밝혀졌다. 즉, ‘NOTCH’ 유전자가 끊임없이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 하나둘 새로운 기능을 얻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NOTCH2NL’ 유전자인 것이다. 결국 인간의 뇌가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자가 새로 만들어지기보다 원본 ‘NOTCH’ 유전자를 베끼고 베끼고 또 베낀 덕분이다.(p.203)
사실 동물의 몸과 유전자에는 이런 사본이 가득하다고 한다. 갈비뼈, 척추뼈, 팔다리뼈 등 인간을 비롯해 많은 동물의 골격은 전반적인 설계가 비슷하다.(p.187) 이는 여러 동물의 각기 다른 사지 골격이 태고의 골격 배열을 베끼고 변주해 각각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게다가 시각, 후각, 호흡, 단백질 생성 등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도 모두 복제된 것들이다.(p.200) 저자는 나아가 인간의 전체 게놈 중 3분의 2 이상이 이렇게 복제된 사본이라고 강조한다. 이 정도면 뼈든 기관이든 유전자든 베끼고 복사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저자는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라고 저자는 서슴없이 말한다.(p.199)
독자가 그동안 궁금해하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돌연변이 문제다. 생물학계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독자로서는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돌연변이에 대한 해석도 저자의 연구와 다르지 않은 결과다. 돌연변이는 유전자가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실수이자 시행착오다. 그런데 진화라는 엔진에는 변이(變異)라는 연료가 필요하다. 연료가 많을수록 엔진은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다. 자연은 이러한 시행착오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새로운 발명의 밑천으로 삼는다는 것도 밝혀낸다. 1940년대 활동했던 독일의 과학자 리처드 골트슈미트는 “최초의 새는 파충류의 알에서 부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변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명사에서 이 ‘한 번의 변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백 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비교적 낮은데 하물며 게놈 수백 군데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p.222)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1900년대 초,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의 위상은 매우 열악했다. 미국의 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은 대학교에서 유전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에게 허용된 원예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유전학 연구의 이상적인 재료 중 하나인 옥수수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옥수수알의 서로 다른 색깔들을 조사하다가 게놈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점핑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p.208) 그런데 이 유전자는 아주 이기적이다. 오직 자기 사본을 만드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유용한 돌연변이를 게놈 곳곳으로 뛰어다니며 실어 나른다. 점핑 유전자의 이기적인 성질 때문에 게놈 수백 군데에서 변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p.231)
우리의 DNA는 우리 조상에게 물려받거나 그저 복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때로 바이러스가 침입했다가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때 게놈과 바이러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기억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놀라결과를 낳기도 한다. 유타대학교의 과학자 제이슨 셰퍼드는 우리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아크 유전자의 단백질을 분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크 단백질이 에이즈와 같은 바이러스 단백질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237)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켜 자신의 사본을 무한히 만들어 증식해 나간다. 그런데 어쩌다가 감염 능력을 잃고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어 기억 향상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약 3억 7500만 년 전, 모든 육지 생물의 공통 조상이 고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의 게놈 안에서 아크 단백질의 한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게놈은 이 바이러스를 가만 두고 보지 않았고 곧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게놈에게 패한 바이러스는 무력화된 후 그렇게 게놈의 일부가 된 것이다.(p.241) 사실 이 외에도 우리 게놈에는 과거에 감염되었던 바이러스들의 흔적이 무수히 많은데, 우리 게놈의 약 8퍼센트가 불활성화된 바이러스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며 숙주의 활동을 돕고 있다.(p.243)
함부로 침입한 바이러스를 자신의 일부로 삼은 게놈처럼 세포도 병합하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1960년대, 과학자 린 마굴리스는 동식물 세포와 세포소기관을 연구하고 있었다. 세포소기관은 세포의 핵 주위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동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식물 세포의 엽록체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세포에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마굴리스가 핵과 세포소기관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둘은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전적으로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세포와 세포소기관이 어떻게 한 몸이 되었을까?
마굴리스는 후속 연구를 통해 과감한 가설을 제기했다. 아주 오래전, 원래 자유 생활을 하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다른 세포에 병합되어 결국 그 세포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합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는 얼토당토않다며 학계의 비웃음을 샀고, 15개의 학술지로부터 발표를 거절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980년대에 들어 더 빠른 DNA 염기 서열 분석 기법이 개발되자 세포소기관의 유전적 역사가 더 상세하게 밝혀졌다. 그 결과 마굴리스의 가설이 사실로 증명되었다.(p.280) 이처럼 서로 다른 개체들이 합쳐지고 조립되어 더 크고 복잡한 개체를 이루는 방법은 진화의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몸의 발명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되었다. 마굴리스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 냈으나 안타깝게도 2011년 73세에 뇌졸중을 겪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전에 자신의 이론이 입증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한다.
저자 : 닐 슈빈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컬럼비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공부했고 현재 시카고대학교 생명과학과 석좌교수이자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년에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2004년 북극에서 목,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Tiktaalik)’을 발굴했다. 이 화석은 진화 연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이 발견은 《가디언》 선정 ‘올해의 10대 과학 뉴스’로 꼽혔다. 그 과정을 담은 전작 《내 안의 물고기》는 국립과학아카데미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 외 대표작으로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가 있다.
그동안 닐 슈빈은 왕성한 집필 활동과 강의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진화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생명 다양성의 기원을 소개해 왔다. 40억 년에 걸쳐 고대 물고기는 땅 위를 걷도록 진화했고, 파충류는 하늘을 나는 새로 변했으며, 유인원은 두 다리로 걷고 말하고 글을 쓰는 인류가 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은 2세기가 넘도록 이런 변화를 설명해 주는 선사 시대 화석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아찔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 유전자 기술은 가장 근본적인 의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수많은 과학자가 화석과 게놈을 이용해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한 자연의 발명과 진화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닐 슈빈은 이 책을 통해 그 발견의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역자 :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로 과학과 인문 분야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를 비롯해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Vol. 1: 인류의 탄생』『신 없음의 과학』『호모데우스』『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디지털 유인원』『우리 몸 연대기』『위험한 호기심』『다윈 평전』『과학과 종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