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독서평설 2022.8 독서평설 2022년 8월호
지학사 편집부 지음 / 지학사(잡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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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독서평설』은 수능 논술시험 대비 고등학생용 잡지다. 올 8월호로서 통권 377호이다. 어림잡아 21년이 훌쩍 넘은 지령을 갖고 있다. 독자는 대학 입시 때 논술시험이 따로 없던 세대라 논술 시험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다. 주로 암기에 의존해 지식을 겨루던 시대였으므로 영어 듣기시험이 새로울 정도였던 때다. 다 늦은 나이에 웬 고교 논술시험 대비 잡지를 보려고 했느냐는 곁눈질도 있을 수 있으나 이 잡지에 대한 평가도 좋은 데다 어떻게 논술 시험을 치르나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거란 긍정적 시도이니 이 책을 읽는 나름의 이유는 갖춘 셈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다양한 분야의 알찬 내용에 깜짝 놀랐다. 독자가 고등학교 때는 입에 익숙지 않은 '철학'이란 단어부터 다소 위축감이 든다. 거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관련된 내용이라든지,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리기 쉬운 인간의 감정이나 감성 분야까지 조목조목 항목을 나누어 다루고 있다. 물론 처음 들어본 논리적 분야까지 담고 있다. 잡지가 원래 다양한 색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격의 책이라 '그러려니' 생각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책을 요즘 고등학생들이 본다는 게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내용에 또 한 번 놀랐다.

 


 

독자가 대입으로부터 멀어진 지 수십 년이 흐른 데다 독자의 학창 시절에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못 들었기 때문에 깊은 공부를 못했다는 비난보다 사회생활하면서 책이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책을 군데군데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느낌은 사회 비평이나 잘못된 사회 시스템,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 능력을 키우는 데도 이 책은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나 다름없는 「문화, 사람을 잇다」에서는 인권·동물권 기록 활동가 홍은전 씨 인터뷰를 통한 활동 모습을 담았다.

홍은전은 흑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그들이 들판을 뛰노는 모습을 구경한 뒤 고기를 구워 먹는 농장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방금까지 쓰다듬고 눈 맞춘 돼지와 구워져서 내 입에 들어오는 고기를 불판 앞에 앉아서도 연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감하던 홍씨가 인권·동물권 기록 활동가로 활동키로 마음을 먹은 것은 한 편의 수필 때문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 수필을 읽으며 "함께 사는 고양이가 얼마나 생생한 존재인지를 실감한 뒤로, 동물을 착취하는 식생활부터 멀어지기도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읽은 한 편의 수필은 '세상을 거대한 문제로 보게 하는, 세계의 전복이었다고 표현한다. 책 한 권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그와의 인터뷰를 작성한 이 기사는 "고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대학교 4학년이던 2001년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대신 노들야학으로 갔다. 일생 동안 겪어 온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야학에서 그는 국어·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하지만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통과하도록 돕는 일보다 중요한 건 학생에게 당장 필요한 이동을 지원하고, 장애인권을 다루는 법과 제도를 이야기하고, 이동권 투쟁 집회에 참여해서 학생의 삶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듯한 마음으로 노들야학 활동을 하던 홍은전은 2014년 교사직을 내려놓았다.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결정이엇따.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작업은 그의 첫 '기록' 활동이엇따. 이후에는 선감활동(1942~1982년 부랑아 선도를 명목으로 약 4,700명을 감금하고 노역시킨 경기도 안산의 아동 수용시설)·형제복지원(1975~1987년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시민들을 감금하고 노역시킨 부산의 수용시설) 피해 생존자 등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한 글로 옮겼다.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경험이 글로 남은 것이다. 살 만한 세상,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사회운동가로서의 첫 걸음의 기록일 터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배우는 학생들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들어도 배울 만한 말들이 담겨 있다. "추상적인 마음을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글로 풀어내는 과정은 괴롭지만 즐거워요. 어떤 결말에 도착하든 저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죠." 그는 10년, 20년 뒤를 생각해 보낟면 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한 이 움직임이 우리를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끌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란다. 세상은 분명히 바뀐다,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다. "세상이 문제라고 느낀다면 고립되지 않길 바랍니다. 혼자서는 '나'만 문제인 것 같은데, 생각을 공유하면 이것이 모두의 문제라는 걸 알게 돼요. 그때부턴 자기 에너지를 자신의 별남을 견디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타인을 위해, 곧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죠.

저 역시 동료들에게서 힘을 얻어요. 여러분도 좋은 화살표를 찾아 가세요. 좋은 커뮤니티를 찾아내서 '함께라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미 있는 활동'을 해 나가다 보면, 이전의 나보다 훨씬 나은 방향으로 가 있을 거예요."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며 이 글을 옮겨 적은 취재기자는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기사를 마감하고 있다. "그의 칼럼은 자주 어떤 글이나 영상, 단체 등을 소개하며 끝맺는다. 이번 인터뷰를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한겨레〉에 실리는 홍은전의 칼럼을 읽어 보시라. 당신도 이전과 다른 세계를 만나길 바란다."

 


 

이 책은 논술 대비 잡지다. 잡지의 성격 때문에 분야별로 각 기사를 싣고 있다. 먼저 크게 5개 분야로 나누고 있다. 〈문화의 창〉, 〈시대의 창〉, 〈입시의 창〉. 〈비문학의 창〉, 〈문학의 창〉, 그리고 각종 문화소식이나 입시, 단신 등은 〈그루터기에 앉아〉에 따로 모았다. 네 번재 〈비문학의 창〉은 다시 '인문, '사회', '과학'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독자의 읽는 편의를 위해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8월호의 〈문화의 창〉에는 앞서 언급한 인터뷰 내용과 「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란 제목 아래 케이채의 사진과 글을 실었다. 여름이란 점에서 '강원도의 힘-여름 바다와 산에서'가 주제다. 독자가 보기에는 사진과 짧은 글이 좋아 '휴식의 페이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직업을 목표로 세울 수 있으리라 본다.

바다 사진을 게재했는데 동해안의 파란 바다가 아니라 일출의 아침 바다를 찍었다. "약간은 더 조용하게 일출을 마주하고 싶다면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 고성군의 해변에 서 보자. 여름의 새벽은 한낮과는 아주 달리 공기부터 서늘하다. 이른 새벽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껴보는 일, 올여름에 한 번쯤은 꼬 해볼 만한 경험이 아닐까? 이 란(?)의 케이채는 오대산국립공원의 숲길 사진도 올리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평창군 오대산국립공원의 월정사 전나무 숲(독자는 강원도 홍천 쪽만 알았는데 평창군 쪽에서도 가는 길이 있는 것 같다)은 너무 힘들이지 않으면서 여름의 녹음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장소다. 1,700여 그루의 전나무와 다양한 식물이 자리한 이 숲은 동그랗게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가 없으며, 급한 오르막 없이 완만해 누구나 천천히 편하게 누비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화의 창〉에 나오는 영화 소개도 볼 만하다. 독자가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눈에 확 띈다. 사진이 아니라 영화 제목이나 주연 배우 때문일까 싶다. 아무튼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이 책은 영화잡지도 아니고 문화잡지도 아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데 그친다면 '논술 대비' 목적을 벗어난 일이다. 영화감상법, 영화 내용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영화 속 캐릭터들의 갈등 요인, 이를 해결하는 과정, 그리고 여기서 도출된 문제에 대한 공감 등을 적어야 제대로 눈술 시험 대비 잡지란 성격에 맞을 것이다. 독자의 예측은 잘 들어 맞는다. 이 글은 영화잡지 전문기자의 외고를 받아 이 책에 실었다.

"선악의 경계에 연연하지 않는 「헤어질 결심」의 태도는 필름누아르(film noir, 암흑가를 다룬 영화) 장르의 도식을 닮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전복적 발상과 편집을 동원해 전례 없는 사랑 영화를 써내려 간다. 이 결과 익숙한 세속의 원리 위로 고답적인(속세에 초연한) 생(生)의 관념이 스며들고, 일상적 무대와 회화적 도상이 한자리에서 태연하게 뒤섞인다. 산과 바다, 침실과 범죄 현장, 한국어와 중국어를 오가며 전개되는 사랑과 의심의 교향곡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처럼 서서히 고조를 이루더니 마침내 객석의 장탄식을 더하며 악보를 끝맺는다. '결심'이란 단어의 무게에서 유추할 수 있듯 「헤어질 결심」은 '실패가 예정된 러브 스토리'다. 이야기는 부산의 어느 바위산에서 일어난 추락사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장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인 중국 출신의 송서래(탕웨이 분)를 만나며 시작된다. 시대극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처럼 고풍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서래에게 매혹된 해준은 강렬한 심리적 동요를 체험한다."

 


 

이 밖에도 이 책엔 읽을거리, 흥미거리, 읽어서 지식도 쌓고, 논술 시험에도 도움이 될 만한 기사로 가득하다. 〈시대의 창〉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개통령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왜 방송을 안 탈까?, 부총리의 '임금인상 자제' 요청, 타당한 지적? 부적절한 개입?, 한국은 유엔이 정한 물부족국가?,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 개편 추진 등 시사적인 문제도 많다. 또 〈비문학의 창〉의 「인문」 분야에서는 '에볼린의 역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정조는 독살당했을까?' 등 흥미거리와 관심거리가 섞였다. 그러나 만일 이 분야에서 문제가 출제된다면 어떤 형식의 눈술 문제가 나올지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크게 전해져 온다.

수험생에게는 빠짝 긴장의 끈을 당기는 역할도 함께한다. 「과학」 분야으 '플라스틱 행성', '모든 것을 기억하면 행복할까?', 4차산업혁명과 감시사회'를 다루고 있다. 〈문학의 창〉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 연재물로 '여덟 번째 세계 : 독사', '이 세계는 그냥 이대로 망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라는 〈한겨레〉 2020년 7월 4일자 신문 기사를 실었다. 「다독다독 시선」에는 이성복의 '사랑의 기술', 문정희의 「비망록」에 대한 시 설명과 해석 등 감상을 담았다. 소설로는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을 싣고 문학평론가 허희의 작품 해설을 함께 게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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