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강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에세이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책들이 종종 있다. 독자는 이 책 『우리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쉽사리 '아, 그 책!'이란 생각은 없이 막연한 느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한참을 읽다 드디어 이유를 알게 됐다. 읽었던 게 아니고 경험했던 게 아스라한 추억속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는 읽기도 이해하기도 쉽고 공감도 컸다. 한두 편의 시처럼 짧은 글들이 이렇게 강렬하게 기억속에 남아 있었구나! 하며 감탄도 했다. 그것은 연애할 때 감정도 있었고, 결혼 후의 느낌도 복합되기도 했다. 그렇게 가슴속에서 사라져갈 기억들이, 사랑의 행복한 느낌들이 하나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준 선물 같은 일깨움이었다.

이 책은 독립출판계에서 폭발적 사랑을 받고 입소문만으로 단행본 중쇄를 거듭한 저자 강송희의 에세이라고 한다. 저자의 기존 두 권의 저서 『어느 날 뚜벅이가 걸어왔다, 말을』과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에서 글을 추렸다. 이에 40여 편의 새로운 글을 더해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소장가치를 높여 출간한 '개정증보판'이다. 여러 번 읽고 곱씹어도 감성이 깊게 배어 나오는 글에 수만 명의 애독자가 지금껏 꾸준한 사랑을 보내와 가능한 일이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저자의 더욱더 따스해진 온도를 함뿍 담아, 기존의 독자뿐 아니라 사랑을, 상처를 위로받고 싶은 모든 이들이 기댈 수 있는 한 권의 멋진 에세이집이 나온 것이다. 저자는 이미 출판계에서도 소문난 유명 작가가 됐다. “두 번, 세 번 읽어도또 읽게 되는 마성의 책입니다.”는 독자평이 그 증거이다.

 


 

이 책은 표지에 '에세이'라고 씌여 있어서 에세이로 통용되는 것이지 내용이나 글은 시(詩)처럼 응축되고 간결하다. 또 길이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길고 짧음도 자유자재다. 길다고 결코 혼잡하지 않고 짧다고 부실하지 않다. 꼭 필요한 단어만 사용해 적재적소에 넣은 것을 보면 시에 가깝다. 어떤 내용은 '이게 저자의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사랑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지만 은유와 상징으로 필요없는 말, 덧대는 글이 없다. 이는 저자의 글솜씨에 따른 것이겠지만 저자는 사랑도 시인처럼 했구나 싶기도 하다. 한 예로 「당신의 밤하늘」이란 제목에서 저자의 사랑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을 이렇게 온통 밤하늘을 가득 채운 수많은 별(은하수)처럼 채워질 수 있을까.

 

옥상에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차오른 숨을 두근거림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두컴컴한 공간을 비추는 달을 향해

고개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밤하늘을 메운 은하수를

눈에 담지 못했을 것이고

 

당신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사랑의 몇 가지 정의」에서 속내를 내비친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를 쓰고 있다. 저자에게 사랑이란 이렇게 다정하고 아늑한 느낌이며 알 수 없는 안온함을 가져다 준다. "볼을 쓰다듬기 전 먼저 뺨을 손바닥에 가져다주는 것, 눈이 마주치기 전부터 입꼬리가 함께 올라가는 것, 흑백사진을 찍어도 따듯하게 출력되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라는 듯 저자는 애틋하고 진한 사랑의 마음을 「우리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에서 그려낸다.

 

매일 밤,

당신은 내 마음의 문턱을 스스럼없이 넘는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들어와,

홀로 덩그러니 있는 네게 손을 내민다.

 

그러면 나는 밤새,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당신도 아주 가끔은 내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웃는 당신을 보며,

나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깨닫는다.

길고 긴 밤이어도 좋다는 마음을 깨닫는다.

당신이 찾아와 웃어준다면

우리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내게 빛은 당신의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고.

 

 

함께 있을 때와 이별 후의 감정도 명백하다. 저자는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함께의 의미」에서 "그 사람과 네가 하나 된 것 같은 느낌은, / 열기 어린 체온을 나눌 때만 아니라 // 곤히 잠든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 / 뒤척이는 너를 돌려 머리를 맞댈 때, / 혹여 네가 잠에 깰까 /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덮지도 걷어내지도 못한 채로 / 잠이 들 때. // '우리는 함께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께한 사랑이 떠난 후 이별의 아픔은 「후회」에서 드러난다.

 

곁에 있을 땐 이해하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것들을,

상대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후회라고 부른다.

 


 

뒤늦은 후회는 아픔만 남을 뿐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실패에 대해 자세를 가다듬는다.

 

상대보다 나를 더 먼저 살피게 되었으며,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아픈 것이 싫어졌다. 그래서 실은 마음 한구석 온전히 그 사람 생각뿐이더라도, 내 시간 속에 나를 잠시 가둔 채 상대를 방관하는 법을 터득했으며, 그것이 상대를 마주함으로 상처받는 내 모습보다는 적어도 덜 초라하다고 믿게 되었다. 무엇이 정답이닞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씩,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의 무언가가 늘어갈 것 같은 기분이다.

- 「무엇보다 내가 아픈 것이 싫어졌다」 중에서

 

'열린 사고'라는 건 그런 것 같아. / '실패'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가령 무엇에 도전한다고 가정하고, 그것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거지. / 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 내가 쏟은 시간과 돈은 누가 보상해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닫혀 있다고 보는 거야. / 반대로 '이것이 실패한다면 나는 실패를 경험한 것이고, 실패 직전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나의 재산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는 말이지. /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하는지는 더 중요해. / 똑같은 실패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그저 씁쓸해하며 지나칠 수많은 날 중 하루일 테고, 누군가에겐 값진 경험으로 기록될 테니까. / 이렇게 보니 우리 인생에는 실패가 없겠다. 그치?

-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전문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뤄져 있다. 1장 〈온 밤은 한없이 너의 쪽으로 기울고〉, 2장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 3장 〈상처가 스미는 시간을 위한 말들〉, 4장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요〉이다. 사랑과 시간의 흐름이 함께 기울고(헤어지고), 추스리고, 살아가는 일을 염두에 두는 구성을 보인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나이가 든다고 하여 내면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많아질 때마다 고개를 숙이게 된다."며 "그저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하다고 겨기며 살아갈 뿐, 우리는 사실 지금도 서툴고 어리숙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힘든 것은 여전히 힘들고, 아주 작은 상처에도 쉽게 무너지곤 한다."고 말하고 "어쩌면 아파보았기에, 그 아픔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 겁쟁이가 되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며 되뇌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반드시 출구는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강조한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없다는 것을 이제 조금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그 믿음의 중심에는 늘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를 사랑하고 타자를 사랑하는 과정은 고단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을 일이라는 '삶의 진리'를 깨달아가고 있음을 슬며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저자 : 강송희

 

새벽산책과 간절기의 냄새, 그리고 올바르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불안과 걱정으로 물든 밤에 문득 들여다보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에세이, 동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단단히 뿌리내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날 뚜벅이가 걸어왔다, 말을》,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 《쉿! 세종대왕님이 보고 계셔!》(2018년 KB 창작동화제 입선), 《당신의 기억을 팔아드립니다.》(2019년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제3회 대한민국 창작소설 공모대전 작품상), 《열애설의 탄생》, 《자꾸만 네가 보여》, 《파 드 트루아(Pas de trois)》, 《소유의 밤》 등을 썼으며,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삶과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