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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에는 그림이 필요하다 - 파도치는 인생에서 나를 일으켜준 명화들
이서영 지음 / SISO / 2022년 7월
평점 :
"명화에 담긴 화가의 결연한 철학, 시대적 사조와는 무관하게 오늘 내 인생에 힘을 주는 그림이 바로 ‘위대한 걸작’이다." 는 메시지가 이 책 『우리의 인생에는 그림이 필요하다』에 담긴 주제다. 저자 이서영은 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림 읽어주는' 전시 도슨트 활동도 했지만 인생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마다 명화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발견한 것으로, 그림을 배우고 미술 전공의 의의를 찾는다. 저자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림 속 주인공 혹은 그림을 그린화가의 마음에 공명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로와 치유를 얻곤 했다고 말한다. 그 강렬한 위안과 격려를 받았던 경험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모두 4개의 파트로 이뤄진 책에서 1부 「인생에 거센 파도가 몰아칠 때」에서는 유독 마음이 뾰족해지던 날들의 이야기, 2부 「내 영혼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에서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던 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3부 「희망 속에서 삶의 길을 발견할 때」에서는 인생에서 삶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던 순간들의 이야기, 4부 「진정한 나 자신을찾아야 할 때」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응원하고 일으켜 세우던 날들의 이야기가 명화와 함께 담겨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명화에 대해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미술을 보며 그 화가의 마음이 궁금해졌고, '내가 그림을 보며 느끼는 이 감정이 도대체 뭘까?'라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이때 저자에게 호기심으로 다가온 첫 명화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599)」이라는 그림이었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마르가리타 공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저자는 전제하고, "거울에 비친 두 명의 사람들 그림 속에는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거울에 비친 두 명의 사람들 그리고 복잡하면서도 모호한 시각적 장치는 화면 내부의 재현된 세계와 화면 밖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예술적 열망뿐 아니라 고귀한 신분에 대한 열망이 함께 투영되어 있다는 것. 화가로서의 영원한 명성을 보장해주기를 바랐던 벨라스케스는 귀족의 신분을 얻고자 했던 목표를 실현시켜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작품에 임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신분 상승에의 욕망 그 당시 저자가 가지고 있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듯해 더 이 작품에 매료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렇게 명화라는 매력을 알아갈 즈음 공허한 마음과 힘든 육체를 이끌고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고흐의 원작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렸다고 말한다. 머리가 멍해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뭔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게 도대체 뭔지 모를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후 빚을 내서라도 그림을 찾아다녔고 오랜 반추를 통해 조금씩 글로 풀어내고 싶어 이 책을 쓴다고 밝힌다. 이 책의 발간 취지다.
저자의 경험을 「프롤로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밝히는 이유는 독자들이 명화를 통해 인생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쉼표를 찾아보라는 의미에서다. 명화를 통해 인생을 만나고, 명화를 통해 인생의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저자는 '진정한 나' 를 찾는 데 명화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첫 그림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늘은 맑고 쾌청한데 불이 꺼진 듯 조용한 새벽녘 같은 느낌이다. 낮과 밤은 우리의 마음과 참 닮았다. 그래서 더 슬플 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라는 것.
저자에 따르면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저자의 마음에도 마술을 부린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은은하게 몽환적으로 비추고 있는 가로등이 저자를 그림 속으로 자주 끌어들였다. 꿈속에 서 있는 듯한 몽롱함을 안겨주며, 지금 슬프고 힘든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고 속삭인다. 하나의 슬픔을 애써 이겨내고 나니,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것도 더 밝은 모습 뒤에 숨어서 찾아왔다. 이번에는 안 속으리라 다짐했건만 또 속고 만다. 이렇게 세상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을 사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이렇게 또 알게 된다. 마치 철학자 니체가 외롭고 불안한 나에게 나를 낮게 평가하는 기준을 모두 해체하고, 사실은 내 모든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 데페이즈망(depaysement) : 미술상의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기법.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으로부터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이다. 원래 ‘환경의 변화’를 뜻하는 말로서, 이 방법으로 보는 사람의 감각의 심층부에 주는 강한 충격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이 그림은 명화에 관한 책을 한두 번 읽어본 독자들은 금세 알겠지만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선상 파티의 점심」이다. 대체로 부르조아적 삶을 표현했던 르누아르지만 그의 작품에서 저자는 자신을 가끔 발견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즐겁게 즐기고 있는 듯한 오후의 만찬에서 사람들은 날씨도 즐기고 분위기도 즐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림 속에서는 그 누구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이들은 없다. 마치 친구한테 속내를 털어놓지만 친구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나를 공감해주고는 있지만 나를 제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는 허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스쳐 간다. 그렇게 르누아르와 공감을 해본다. 그림을 알아갈수록 화가의 삶,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행복해 보이지만 사람들 속 고독을 표현하려 했던 르누아르의 모습이 보인다. 화려했던 미술계에서 많은 외로움을 느꼈던 르누아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자는 공감해본다. "나만 빼고 세상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만 힘든 것 같았고, 나만 늘 외로운 것 같았다. 혼자 아등바등 세상과 맞서 싸우며 살아가지만 모두가 평온하게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속에 르누아르가 없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내가 없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 관객일 분이다. 뜬금없이 친구가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혹독하게 살아가냐"고. 나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인지 나를 알면서도 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좋아 보일 뿐이고, 자신의 삶이 아니기에 더 나아 보일 뿐이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가는 나는 모든 가면을 벗고 나답게 살고 싶다고 허공에 외치곤 한다." 저자의 감상평이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르누아르의 작품에 투영시키고 르누아르의 답변을 그림을 보며 듣는 것이다.
저자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바다는 잔잔한 것 같지만 때로는 커다란 파도로 감정을 표시하고 침묵하는 것 같지만 바닷속에는 고래도 산다. 저자는 바다가 있는 그림을 보며 감정을 바다에 실어 보내기도 한다. 저자는 바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윈슬러 호머를 떠올린다. 삽화가라는 경력 덕분인지 미국의 남북 전쟁 최전선에 기자로 파견되어 전쟁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 기회가 호머의 예술적 장르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된다. 자연의 웅장함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호머의 작품을 보면 가라앉은 저자의 마음도 힘을 얻는다. 호머는 암석 위와 주변에서 격렬하게 솟구치는 파도를 그려내기도 했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호머가 가장 좋아하는 낚시를 즐기기도 한 모양이다.
어느 한여름 어촌을 방문하여 어부들의 일과 삶을 보며 화폭에 담은 「The herring net(1885)」는 두 사람이 자연의 힘과 인간의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장면을 묘사했다. 자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을 그려놓은 이 작품에서 저자는 한없는 긴장감 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부들의 생계를 잡고 흔드는 바다의 날씨가 매서운 이 그림은 수평선의 안개가 배경이 되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닳고 낡은 목선을 타고 파도와 싸우는 어부들의 삶과 저자 자신의 삶이 같다고 공감한다. 어부들은 늘 그래왔다는 듯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준다. 균형을 자기 위해 한쪽 배 귀퉁이에 무게를 실어주고 한 어부는 열심히 청어를 잡아 올린다. 어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그들의 것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머의 작품은 다소 제한된 색을 사용한 듯하지만 그 제한된 색 안에서 휘몰아치는 물속의 작고 무력해 보이는 사람이 강하게 대응하는 장면을 보태 힘을 전달하는 것 같다.
저자는 자발적 고독을 자처한 이후로는 집중과 몰입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특히나 글을 쓰는 것은 몰입 상태를 길게 유지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짬이 날 때 쓰는 잠깐씩의 글은 글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후,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가 되어야만 했다는 소중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마음과 감정에 따라서 그림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존 앳킨슨 그림쇼의 작품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도시 풍경의 야경 및 거리 풍경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영국 빅토리아 시대 예술가인 존 앳긴슨 그림쇼의 작품은 저자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알려주는 메시지 같았다고 밝힌다.
"깜깜한 밤을 혼자 걷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만 하는 집으로 가는 길목이 기분에 따라 참 다르게 와닿았다고. 「Tree Shadows on the Park Wall(1872)」의 작가 그림쇼는 '달빛 화가'라고 불릴 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화가이다. 그가 그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달빛이 비치는 적막한 도시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풍기는 고독과 정적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빛에 비치는 작은 불빛에 의지하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따뜻하기도 하다. 고독과 달빛이 드리우는 적적한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하루 힘든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울컥한 마음이 되기도. 공감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도 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림 속 여인은 자신의 정신세계와 고독을 즐기느라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할지도 로른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를 지킬 수 없다."
저자는 또 고흐의 그림을 보며 사색에 잠겨보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예술가가 밤을 좋아했다. 고흐 또한 밤을 좋아한 화가 중 한 명이다.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 참 행복하다. 특히나 밤에 작업하기를 좋아한 고흐의 삶이 저자의 삶과 고스란히 닮아 있어서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밤만이 줄 수 있는 느낌들이 좋다고 한다. 독자가 끼어들자면 그래서 고흐를 좋아한다는 것은 조금은 '아전인수격'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독자가 밤을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독자와 저자의 느낌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잠시 눈을 감고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테라스에 앉아본다. 고흐의 그림 속 테라스에 앉아 별을 보며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는 행복한 생각을 해본다. 비로소 독자도 좋다. 공감하니 더 좋다. 저자의 그림 감상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 조금씩은 알아갈 것 같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릴 무렵 고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 중 일부가 소개된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저자 : 이서영
공예디자인을 전공했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경산에서 Giant코끼리 미술교육원을 운영 중이며, 전시 도슨트로도 활동했다. 초·중·고등학교, 기업, 문화공간, 공중파 매체 등에서 다수의 특강을 하고 있고, ‘그림 읽어주는 언니’라는 교육을 기획해 명화를 일상에서 좀 더 가볍게 만나는 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