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껏 오해한, 세상을 지배한 단어들 - 단어들은 어떻게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가!
해롤드 제임스 지음, 안세민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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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즉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이다." 이 문장은 이 책 『당신이 지금껏 오해한, 세상을 지배한 단어들』의 '여는 글' 「논쟁의 대상이 된 단어들」이란 서문에 쓴 저자 해롤드 제임스의 말이다. 독자가 이 문장에 공감하고 크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위기'는 위험한 때이자 기회라는 의미로 설명하는 사전적 풀이에 식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다음 문장이 더 매력적이고 설득력을 높인다. "이 책은 중대한 사회적 전환의 순간들이 새로운 문제를 낳고 새로운 단어가 생기는 데 영감을 준다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즉, 단어는 사상을 요약하기 위한 수단이고, 사상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러한 전망은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경험을 일반적이거나 심지어는 보편적인 이해로 전환된다는 저자의 말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말로 자신이 가진 철학의 핵심을 설명했다고 한다. 저자는 '번역'에 대해서도 "번역은 때때로 상품, 서비스, 심지어는 약속 간의 등가성을 확립하는 손쉬운 교환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 정책, 경제 전쟁에서 일종의 탄약으로 발사되는 단어들(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제국주의와 헤게모니, 다자주의, 지정학, 포퓰리즘, 테크노크라시, 부채의 정치, 글로벌리즘, 세계화, 신자유주의)은 그 의미가 명료하지 않아서 교환을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고, 대신 논점을 흐리게 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에 사용된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검토하는 모든 단어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곰곰이 생각하는 대상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통화(通貨)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루는 단어들도 영향력의 중심에서 등장했다. 통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19세기를 지배했고, 미국이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다. 사상도 생산과 유통의 중심에서 등장한다. 이곳에서는 사상이 출현하고, 충돌하고, 개선되고, 왜곡된다.

19세기 전반, 혁명의 물결 속에서 프랑스 특히 파리에서는 국가, 사회주의, 민주주의 같이 그 의미가 잘 변하는 단어들이 등장했다. 19세기 후반 독일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독일도 지적 강국이 되었다. 과거에 프랑스 정치 용어들이 침투했던 것에 자극받은 독일 사상가들은 마흐트폴리틱과 게오폴리틱을 포함한 새로운 정치 용어들을 발전시켰다. 20세기 중반, 이러한 독일 용어들 중 상당수가 대서양을 건너 호된 시련의 장으로 들어갔다. 나치 시대에 박해받은 희생자들이 이 용어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세계 질서의 개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새롭게 떠오르는 초강대국을 위한 새로운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 또 19세기 초에는 정치적 근대성의 핵심 개념들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국가와 국민주의 이외에도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있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물론 훨씬 더 오래된 것이지만,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조직과 공직자를 뽑기 위하여 추첨이 아닌 선거에 의존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발견되었다.

 


 

이러한 용어들이 공생하는 예로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개념적 반의어, 즉 음과 양이다. 사회주의는 변화하는 세계의 불편한 특징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인 자본주의를 바판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구식 장인들, 새로운 제조업 노동자들뿐 아니라 재산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귀족들, 사회적 자본이 손상될지도 모르는 지식인들은 모두가 자신이 새로운 거대한 괴물 앞에서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꼭 사회주의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본주의를 개탄했고, 그중 집단주의적 충동에 호소하는 일부 사람들은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이 두 반의어는 여전히 서로 얽혀 있다.

20세기 끝 무렵,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사회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했다. 이들 두 개념의 상호의존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구소련의 농담이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의미한다. 공산주의는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앞으로 살펴보겟지만,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로 이들 두 개념의 수렴 혹은 통합이 가속화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등장하고 나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의미가 복잡했다. 이들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국경을 넘은 현상으로 상당히 일찍이 인식되어 세계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로 정치 질서를 실현하는 장소는 국가 체제의 특징에 의해 좌우되었고, 이러한 특징은 국민국가가 국가의 정상적인 존재 형태라는 믿음에 점점 더 좌우되었다.

 


 

저자는 오남용되는 용어들이 우리들에게 혼란을 주고, 세계 질서를 해치는 쪽으로 작동하는 점은 경계되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이들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되새기고,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정리한 후 새로운 개념의 용어 창출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앞선 잘못된 용어들은 그대로 놔두고 이른바 '포스트~'의 과도기적 용어 사용으로 세계의 평화적이고 안정된 질서 회복, 기후 변화 등으로 위협으로부터의 해방, 국제 관계의 질서 유지 등 많은 문제들이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고 있는 우리 앞에 놓인 당면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독자가 여러 용어들이 이 책에서 제 뜻을 찾고 질서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만큼이나 공감하는 것이다. 첵에서 '헤게몬'이라는 단어가 국제 관계를 다루는 문헌에서 하나의 표준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헤게몬은 1945년 이후 산업과 금융뿐 아니라 군사력과 정치권력에서 대단한 우위를 갖고서, 1970년대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상대적 쇠퇴와 변해가는 세계 질서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던 미국을 표현하기 위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코헤인은 헤게몬에 대하여 이탈에 직면해서도 체제 유지를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국가라는 가장 분명하고도 깔끔한 기능적 정의를 제시했다. 헤게몬은 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재정적 부담을 떠맡을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지적이 미국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다자주의는 국제 질서의 모든 구성원들을 복잡한 협상 과정으로 끌어들였다. 모든 측면이 상충 관계를 지니고 있어서, 어느 한 영역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을 양보해야 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45대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재임 당시 파시스트로 널리 불렸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역시 자신의 반대 세력을 좌파 파시스트 집단으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외에도 “글로벌리즘, 글로벌리스트”라는 단어를 남용하며 글로벌리스트를 국익을 해치는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 “자유”라는 단어를 35회나 외치고, ‘반지성주의’를 언급함으로써 많은 정치 비평가와 언론인들이 그가 사용한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연일 열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 심지어 국경을 뛰어넘어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그 뜻이 잘못 전달되거나 지도자가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남용하게 되면, 정치 세력과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는 분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만다.

30년간 세계화를 연구해 온 프린스턴대학교의 해롤드 제임스 교수는 우리가 겪는 정치, 경제적 혼란 중 많은 부분은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단어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산적인 정치 논쟁과 발전을 방해하는 단어들의 진짜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을 통해 각 개념들의 역사적, 언어학적 기원을 밝히는 데 천착한다. 또한 단어들이 세계사에서 어떠한 족적을 남겼고, 어떻게 잘못 사용되었는지를 통찰함으로써 정치 언어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가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제공한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포퓰리즘???’ 많이 들어는 봤지만, 명확한 개념을 몰라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비전과 공약을 명확히 드러내며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인, 혹은 정치 지망생이라면,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 세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이 그 지적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1970년대 이후 자기만족에 빠져들었던 여러 나라들이 세계화라는 새로운 물결에 의해 허물어졌듯,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가 극에 달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세계화는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지만, 지금의 세계화는 이전과는 다르다. 물리적 요소에는 제약이 더 많아졌지만, 비물리적인 요소, 즉 정보의 세계화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의 투쟁이 생산 수단의 소유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듯, 우리는 앞으로 데이터를 소유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처럼 새롭고도 잠재적으로 위험한 전개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역사적 맥락에 근거한 새로운 단어가 요구될 것이며, 이해를 증진하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단어도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의 세계는 우리에게 “단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앞둔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논쟁의 대상이 된 단어들을 단지 정치 논쟁으로 치부하지 말고, 명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지금껏 세상을 지배한 단어들, 혹은 앞으로 지배할 단어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는 당신에게, 새로운 세계화의 시대에 자기주장을 분명히 내세우고 싶은 당신에게, 단어의 명확한 개념과 역사적 해석, 그리고 지적 성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번영이 아니라 자유에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다. 그러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항상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했다.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고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종종 스스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의 역량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pp.403~404)

 

저자 : 해롤드 제임스

해롤드 제임스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유럽 연구(EUROPEAN STUDIES), 역사와 국제 문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가치의 창출과 파괴THE CREATION AND DESTRUCTION OF VALUE』 외 다수가 있다.

 

역자 : 안세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에너지공단, 현대자동차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지적 행복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안티프래질』, 『베조노믹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회색 쇼크』,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경쟁의 종말』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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