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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미술관 - 잃어버린 감각과 숨결이 살아나는 예술 여행
강정모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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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미술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어 미술에 관한 한 문외한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그림 잘 그린다"는 선생님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그림을 좋아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미술에 관한 책을 따로 사보거나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취미로 전시회에 자주 다녔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기존 예정된 전시회도 취소되는 사태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취미 생활이 막히나 했더니 미술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다. 화가가 호구지책으로 쓴 책이 아니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어쩌면 전공도 했을 분들이 앞다퉈 책을 발간했다.
그 얘기는 어쩌다 서점에 들러보면 최근 2년간은 신간도서 판매대에 언제나 미술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서점 관련자에게 질문했더니 "아마 코로나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코로나 극복 의지를 키워주는 데 '미술책'이 좋은 효과를 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답변을 대신 해줬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 이후 출판계도 힐링을 위한 에세이, 정신 주장과 심리적 안정을 위한 자기계발서 등이 압도적으로 많이 출판됐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대형 서점에서 발표하는 일년 간 판매 집계에서 분류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가 늘 1,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런데다 요즘은 미술과 클래식에 관련된 서적이 많이 발간된 점이 특이하고,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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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이 말에 공감한다. 독자 역시 미술 관련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코로나 이후부터니까. 또 그림에 관한 책은 명화 중심으로 깨끗한 컬러 인쇄가 필수적이라 눈에 쉽게 띄고 코로나 시대에는 대부분 예상 외로 많이 팔린다고 했다. 독자가 코로나 이후 미술 관련 책을 읽은 것만 10권이 넘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들 책 대부분이 서양 명화에 집중되고, 동양미술이나 한국화 등은 거의 배제됐다고 한다. 물론 전혀 발간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호응도가 낮았던 것 같다.
동양미술이나 한국화에 대해 책을 쓸 인적 자원도 훨씬 적은 데다 잘 팔리지 않으니 웬만한 결심 아니고는 출판되기 어려울 듯하다는 사실은 설득력이 크다. 이래저래 독자가 읽은 미술 관련 책 10여 권 중 두 권만 동양미술과 한국미술에 관련 책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책 역시 서양화 중 유명한 그림이 많이 눈에 띈다. 물론 그림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미술관이나 화가들이 활동한 무대(지역)를 중심으로 쓴 책이어서 조금 결이 다르다. 특히 이 책 『한낮의 미술관』은 저자 강정모가 쓴 책으로, 그는 VIATOR(저자의 설명이 없어 무슨 단체인지 모르지만)가 선정한 세계 10대 가이드이자 예술 여행 전문 기획자라니 기대해볼 만하다는 느낌이다. 저자와 함께 떠나는 고요한 여행이 기대된다. 이번 여행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곳곳의 아름다운 도시와 그곳에 서린 예술가들의 지난 삶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정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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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청년 시절 루브르박물관에서 우연히 〈목수 성 요셉〉 그림을 만나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느끼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강렬한 느낌이었음을 그는 이 책 '들어가는 글' 「예술, 여행이 되다」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이후 ‘예술은 곧 여행이 된다’라는 마법 같은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그림을 좇아 온 세계를 여행했고, 그만의 예술 여행을 직접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여행 기획자가 되었다.
그의 지난 여정을 담은 『한낮의 미술관』은 유명 작품 앞에서 인증샷만 남기고 바쁘게 돌아서는 여행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삶의 언저리를 채운 열망과 사랑, 삶에 대한 애틋함과 같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따라 걷는 여행을 제안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숨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한낮의 미술관』을 읽는 시간은 초여름 바람 속을 산책하듯 잃어버린 감각을 깨우는 청량함으로 새겨질 것으로 기대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찾고 발견하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한 말이다. 저자의 집필 취지와 책 저술 이유에도 해당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여행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던 지난 시간이었다.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은 일상의 무거움을 더 크게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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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되는 여행은 이전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꼭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에서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을 찾는 ‘눈’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상세한 미술 작품 해석만 가득 담긴 전문 미술서도 아니다. 『한낮의 미술관』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며 ‘무엇이 아름답고 어떠한 삶이 가치 있는지’ 의미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여행의 지도와 다름없다.
그 지도에는 여행의 신선한 기쁨, 우리가 사랑하는 미술 작품의 위대함도 담겨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결같이 이 길을 따라 걸어온 저자 강정모의 생생한 경험과 감상이 함께 버무려져, 저자의 예술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이 점이 『한낮의 미술관』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독자의 생각과 일치한다. 이를 통해 예술이 주는 힘과 다채로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의 이 같은 생각 때문에 『한낮의 미술관』은 지금은 위대한 작품들로 높게 평가받는 예술가들이 생전에는 자신만의 아픔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했던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바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예술품으로 증명한 삶을 가만히 되짚어보는 여정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삶의 감각과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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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처음 맞이하는 화가 카라바조이다. 독자는 그의 그림을 많이 본 적은 없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어느 책에선가 봤을 이 화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낼 수 있었다. 저자의 설명은 미술사적 의미와 작품의 독특한 기법에 맞추지만 않는다. 그의 화가로서의 활동(지역) 배경, 시대적 배경, 그리고 특징, 삶과 예술혼 등에 중점을 맞추어 소개해준다. 특히 〈병든 바쿠스〉를 설명하는 부분은 강렬하게 남아 있으며, 그림 감상법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그를 「빛과 어둠을 살았던 천재 화가」로 표현한다. 그의 방탕한 생활로 유산을 탕진하고 힘든 생활을 하다가 병까지 걸려 심한 고생을 하다 극빈자를 위한 병원에서 극적으로 회복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림 설명에서 "녹색으로 표현된 그의 창백한 얼굴은 관람객을 정확히 바라보며 살아남은 자가 짓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손으로 포도를 움켜쥔 모습에서는 비록 술과 도박, 섹스로 유산을 탕진했지만 삶의 쾌락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결의마저 느껴진다."고 감상의 초점을 짚어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극단적인 명암을 부각하며 사실을 표현하는 카라바조의 화풍에 매료되었다. 그는 르네상스 때부터 사용되어온 명암을 강조한 '키아로스쿠로' 기법에서 더 나아가 배경을 어둡게 만들고 인물만 부각해 극적인 효과를 자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극적 효과를 강조한 기법을 '테라네브리즘'이라고 한다는 저자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천재적 화가이고,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좋아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감상법에 대한 더 없이 훌륭한 조언이다. 카바라보의 그림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예비 드로잉'이 없다고 한다. 아마 목탄 등으로 색칠하기 전 밑그림을 말하는 것 같다. 우여곡절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이어가던 그는 토스카나의 한 해변에서 고열로 쓰러져 사망한다. 그의 그림 〈그리스도의 체포〉는 배와 함께 사라져 그의 죽음을 앞당겼으나 그 그림이 1990년대에 영국에서 발견돼 여태껏 실종되었던 이 그림이 그를 다시 유명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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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장에 걸쳐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의 여러 화가, 작품, 미술관 등을 두루 설명하지만 독자에게 낯선 이름 '페기 구겐하임'이 가장 인상 깊다. 지금 베네치아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의 주인은 탁월한 안목과 재력을 지닌 현대 미술 컬랙터였다. 독자에게는 낯설지만 현대 미술가라면 이 컬렉터의 신세를 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국 여행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양 여행객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이곳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피카소, 브라크, 뒤샹, 레제, 브랑쿠시, 칸딘스키, 달리 등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이 300여 점이나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현대 미술사에서는 현대 미술을 사랑하고 후원했던 페기 구겐하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녀의 삶 또한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여행자들의 관심을 끈다. 페기의 전설적인 인생 이야기는 1912년 침몰한 타이태닉 호에서부터 시작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배가 가라앉을 때 "신사답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브랜디와 시가를 달라는 노신사가 나온다. 이는 페기의 아버지 벤저민 구겐하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타이타닉〉에서도 그려졌듯 일등석 승객인 그는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애인과 하인들을 배에 태운 뒤 자신은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아버지를 잃고 상속녀과 된 페기는 파리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는 현대미술을 천대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등을 받아들이고 여러 예술가와 작가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높여갔다. 하지만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보수적인 영국에서 현대 미술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모든 사람이 하루빨리 유럽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유대인계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파리로 향한다. 칸딘스키,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와 같은 파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들인다. 페기는 작품뿐 아니라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유대계나 반나치주의 예술가들도 뉴욕으로 탈출시켰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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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에 대한 설명도 무척 자세하다. 파리 여행자가 한 번쯤 꼭 들르는 곳이 몽마르트다. 저자는 몽마르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이곳에 숨겨진 예술과 낭만을 찾아본다. 19세기와 20세기 초 가난했던 예술가들은 꿈을 품고 이곳으로 들어와 서로 뒤엉켜 살며 저마다의 흔적을 남겼다.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고흐,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모네, 달리와 같은 수많은 예술가가 몽마르트를 거쳐갔다. 몽마르트에 있었기에 파리는 예쑬의 도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아직도 이곳에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던 장소나 예술가들이 살던 공간이 남아 있다고 확인한다. 골목을 꺾어 들면 이들이 술을 마시며 에술을 논하던 선술집이 보이고, 또 다른 골목에 접어들면 가난하던 이들이 그림을 그려 외상값을 갚던 레스토랑이 나온다. 저자의 섬세한 시선과 예리한 필치로 잡아내는 예술가들의 삶과 고난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핟. 대작을 남긴 예술가 등 유럽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저자의 시선과 손에 잡히면 독자들에게 모두 숨기고 싶던 비밀이 없다. 이 책이 그래서 특별하고 사랑스럽다. 다만 옥의 티를 하나만 짚어내라면 그림을 다루는 책이 그림의 크기나 인쇄 상태가 다소 아쉽다는 점이다.
저자 : 강정모
‘여행은 예술이 되고, 예술이 주는 힘이 곧 여행이 된다’고 믿는 예술 여행 전문 기획자. 유럽예술 전문 여행사 ‘아츠앤트래블’의 대표인 그는 2014년 VIATOR 10대 가이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런던 내셔널갤러리, 테이트모던, 니스의 샤갈 미술관과 같은 유럽의 대표적인 미술관의 전시 해설을 맡은 바 있으며, 삼성 인력 개발원과 교보 생명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에 출강하여 유럽미술과 예술 기행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아츠쌀롱’과 유튜브 채널 ‘아츠앤트래블’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예술 여행을 선보이며 구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늘 꿈꾸는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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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