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짓지도, 잘 읽지도 않는 독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시의 역사』을 읽자고 달려들었다. 평소 시와 멀리 하는 생활을 하지만 아직도 젊은 날의 '시'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올라와서다.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감성이 한창 높은 시기에 우리들은 '시'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 그리고 아름다운 언어의 조합을 감탄하면서 시를 읽는다. 그리고 한 편쯤 써보자고 노트에 끄적끄적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감성에 치우쳐 감정 섞인 몇 마디 써놓고는 더 이상 잘 나가지 않는다. 한숨을 내쉴 때도 있다. 시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구나... 그러나 그 시에 대한 미련이나 동경은 삶의 일상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계속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를(번역시) 놓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짧은 시는 무조건 외워보기도 한다. 그러다 한 권 두 권 시집을 사다 읽어보기도 한다. 또 세계 명작 시집이 나오면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필사도 해보고 읽기도 하면서 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다. 독자의 청춘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시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해두어야 할 듯하다. 사전에서 '시(詩)'에 대해 찾아본다. 간단하게 한 줄로 표현한 사전도 있고, 장황하게 시의 형식, 시의 역사까지 늘어놓은 책도 있다. 국어사전에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고 풀이돼 있다.

 


 

백과사전류에는 장황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겠지만 시의 기원, 형식적 구분(서정·서사·극시), 시의 시대적 구분, 시의 변천 등을 함께 다루어 설명한다. 두산백과는 시대적 분류를 하면서 서양의 시의 변천사를 기술했다. 이에 따르면 서양의 시는 호메로스의 작품이라는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BC 800?)에서 비롯된다. 두 가지가 다 트로이전쟁을 제재로 하여 반전설적인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시로서 그 후 서양 서사시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 두 서사시로 출발한 그리스 문학은 서사시·서정시· ·산문의 순으로 새로운 문학형식을 완성해 나갔는데 그 서사시 시대는 앞에서 말한 호메로스와, 교훈서사시 《일과 나날》의 작자 헤시오도스에 의해 대표된다. 이어서 BC 7세기에서 BC 6세기에 걸쳐 서정시의 시대가 오는데 사포와 아르카이오스 두 사람의 작품이 두드러진다. 특히 사포는 그리스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명성이 높다. 그 후 그리스 문학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비극시인의 등장으로 극(劇)문학은 최전성기를 맞이하지만, BC 4세기의 산문시대 이후 시는 거의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리스의 시에서 배운 로마 시인들 가운데에는 BC 1세기의 철학 시인 루크레티우스와 서정시인 카툴루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3대시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가 유명하다.

 


 

굳이 백과사전을 들춘 이유는 이 책 『시의 역사』 역시 서양시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특히 고대시의 기원이나 발전 과정에 대표적 시와 시인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두산백과에는 베르길리우스는 『목가(牧歌)』 『농경가(農耕歌)』 그리고 로마 건국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등 3대 작품을 썼다. 호라티우스는 카툴루스로 시작되는 로마 서정시를 완성시켰으며 오비디우스는 사랑이야기를 꾸미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고 기술돼 있다. 이 책에도 앞 부분에 「길가메시 서사시」를 시초로 보고 있다는 부분만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앞에 붙였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 세계 최초의 서사시로 「일리어드」, 「오디세이아」로 배웠지만 이보다 앞서 바빌로니아 문명의 지금 이라크 지역에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적힌 발굴돼 일부 해석됨으로써 세계 최초 서사시를 「길가메시 서사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리는 왜 시를 읽을까?란 진부하지만 버릴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영문학의 거장 존 캐리가 주관적인 관점에서 써내려간 시 한 편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따듯한 위로를 건네줄까?에 대한 답을 대신해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우리가 '문학의 원형'이라고 하는 고대시가 수천 년이 흘렀는데도 잊히지 않는 시의 생명력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해답도 독자들이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현재를 사는 우리는 누가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 어떤 독자나 청중을 염두에 두고 지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고대의 서사시를 여전히 명작으로 받아들이며 그 의미를 곱씹고, 때론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다. 신과 영웅, 괴물, 전쟁, 모험, 종교, 죽음, 사랑, 정치 등 인간의 삶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쓰인 시는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리는데도 그 옹골진 파노라마는 쉽게 빛바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이자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저자 존 캐리가 고대의 서사시부터 현대시까지 시대별로 두드러진 시인과 그 대표작을 인용, 시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전해주고자 한다. 물론 시인이 언어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짧지만 의미와 운율이 조화를 이루는 시를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일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선호도가 다르고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곧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생활에서 놓쳐버린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들이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수많은 논쟁과 비판, 그리고 해석이 존재한다. 시어 하나에, 또는 시행 하나에 시인은 어떤 의미를 담으려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 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그 시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등 시대에 따라, 지역(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시의 변천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속도감 있게 정곡을 찌른다. 영시의 시초가 된 장편 서사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문예사조에 따른 변화, 근대의 미국 시인들, 동서양의 만남, 세계대전과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내는 시인들의 삶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술술 풀어낸다. 시의 형식 또한 끊임없이 변화했는데 주로 구술하거나 노래로 전해진 고대에는 특별히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았지만 이후 두운시, 수수께끼 시, 소네트, 무운시, 대화시 등 다양한 형식이 창안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고 반영되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시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된 역사의 중요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적 요구 사항을 담아냈다. 점토판에 새겨져 보존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폭군을 질책하고 경고하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편들은 후대 시인들에게 극적인 상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신앙이 투영된 시와 찬송가, 서정담시, 그리고 18~19세기를 수놓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거쳐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여정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사실 이처럼 광범위한 시의 발자취를, 서로 다른 언어와 주제로 쓰인 시를, 수많은 비평가의 논조까지 받아들이면서 작품 또는 시인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시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써내려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타임스 추천평)

 


 

책에 따르면 시의 역사는 단순히 연대기로 살펴볼 수도 있지만 각각의 주제, 한 시대의 사상적 흐름, 지역 등과 같은 기준으로 읽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모든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죽음은 이 책의 출발점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드러난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순순히 따르는 시의 주제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그중 사랑은 흔히 이성 또는 동성 간, 신 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여러 형태로 시에서 표현된다. 때로 그것은 명료하고 관능적이고 열정적이다. 불투명하고 슬프고 절망적이기도 하다. 불행한 사랑을 다룬 담시도 있고 찬송가로 불리는 종교적 사랑도 있다. 전쟁 중에는 여성 시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을 시로 썼다. 그토록 많은 사랑시가 한 개인에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오늘날까지도 감명 깊은 시로 남아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시의 역사는 곧 시인의 역사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 시인들을 살펴본다. 중세 후반에 위대한 걸작 『신곡』을 쓴 단테, 타국의 문학과 그리스·로마인의 유산을 자신의 시에 녹여낸 『캔터베리 이야기』의 영국 시인 초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서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 과거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종류의 시를 발명한 미국 시인 휘트먼과 디킨슨, 현실로부터 도피해 예술, 신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 등이다.

 


 

왕정 시대에서 종교적 가치가 우선된 중세를 지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분야의 대변혁에 호응한, 18~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시인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이다. 17세기 말 영국의 권력 기반이 요동치는 중에 드라이든과 포프는 엄격한 양식의 시를 쓰면서 신고전주의자로 불렸다. 그리고 18~19세기에는 독일과 영국에서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선연했다. 낭만주의를 발명한 괴테에서 하이네, 그리고 릴케가 독일의 시를 주도했고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와 콜리지, 키츠, 셸리, 블레이크, 바이런 등이 개성 강한 시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세기 후반에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과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이 득세했고 20세기 초에는 엘리엇과 파운드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에 기반을 둔 모더니즘의 길을 열었다. 또한 미국, 스페인, 칠레,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주목받는 시인들이 등장하고 동양의 시가 영어권에 번역 소개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대다수 시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게 된다.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거나 성장배경이 불우했거나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생을 마감한 시인도 있다. 그런 중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희망을 짧은 시어로 그려내고, 때로는 시대의 부조리와 깊은 고뇌를 오롯이 뿜어냈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인용된 시들의 영어 원문을 함께 수록했다. 평소에 시를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흥미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20세기는 세계사에서 가장 정치화된 시기였다. 그 시작은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었고,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졌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종족 학살을 저지른 파시즘 독재정권이 세계 정복을 목표로 독일에 들어섰으나 1939~1945년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전쟁은 유럽의 식민주의 열강의 힘을 약화시켰고, 신흥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면서 제국들이 해체되었다. 전 세계의 민족국가 수는 약 50개국에서 200개국으로 늘어났다.(p.476)

 

저자 : 존 캐리(JOHN CAREY)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 비평가, 도서 평론가, 방송인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지식의 원전(THE FABER BOOK OF SCIENCE)」, 「역사의 원전(THE FABER BOOK OF REPORTAGE)」 등을 엮었고, 지은 책으로 「필독 실낙원(THE ESSENTIAL PARADISE LOST)」과 「예술의 효용(WHAT GOOD ARE THE ARTS?)」, 존 던과 에밀리 디킨슨 연구서, 윌리엄 골딩의 전기가 있다. 회고록 「뜻밖의 교수(UNEXPECTED PROFESSOR)」는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100명의 시인들(100 POETS)」을 집필했다.

 

역자 : 김선형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영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이노센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랑켄슈타인」, 「시녀 이야기」, 「미 비포 유」, 「수치」, 「도롱뇽과의 전쟁」, 「캐주얼 베이컨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센서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