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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푼 영화 - 술맛 나는 영화 이야기
김현우 지음 / 너와숲 / 2022년 6월
평점 :
독자도 술깨나 마신 사람 중에 속한다.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술이 가져오는 부작용 등에 노출돼 의사로부터 경고를 여려 번 들은 후에야 겨우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물론 몸이 회복될 때까지지만. 술은 의학적으로 5년 이상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야 그동안(5년) 술을 끊은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말도 들었다. 의사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 줄 뒤늦게 알았지만. 의학적으로 알코올에 중독될 경우 현재까지의 치료 방법으로는 죽을 때까지 한 잔도 마시면 안 된다고 책에 쓰여 있다. 알코올 중독은 진행성 질병이라 오랫동안 안 마셨다고 해도 '술을 끊었다'고 표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의학적 용어로는 '중독'이라는 말이 거부감이 있어 '의존'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영어 표현을 그대로 번역해서 쓴다고도 책에 나와 있었다. '알코올의존증(alcohol dependence)'이라고 한다. 알코올의존증은 개인의 신체적,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드러내 '공공의 적'이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백과사전에도 풀이돼 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병적인 음주의 양상을 나타내거나 음주에 의한 사회적 또는 직업적 기능 장애와 더불어 내성(tolerance)이나 음주의 감량·중지에 따라 금단 증상(이탈 증상)이 생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명은 최근에 사용된 용어이며 이전에는 만성알코올중독이라 했다. 그러나 음주를 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행동상의 변화는 중독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 행동상의 변화에 주목하여 알코올병(alcoholism)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의사의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알코올의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알려져 있다. 독자가 서평에 왜 알코올의존증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 『술푼 영화』가 술에 대해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알코올이 이렇게 심각한 질병인데 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야 이러한 내용이 알려질 정도로 알코올의 해악을 말하기에는 알코올이 주는 선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사실 단순히 술 자체가 좋아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술을 좋아하다 보면, 술기운에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렇게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그래서 알코올의존증을 '습관성 질환'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알코올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위, 간 등 내장기관은 물론 뇌신경에도 공격을 한다. 이 때문에 알코올 중독을 정신과에서 치료하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 속에도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 〈물랑루즈〉에 나오는 압생트는 독자가 마셔보지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술이지만 굉장히 관심이 간다. 압생트라는 술은 술병에 압생트 라벨이 붙어 있고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압생트의 원료인 향쑥의 라틴명 압신티움(absinthium)에서 유래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게는 80도나 되는 강력한 독주였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향쑥은 간질과 환각을 일으킨다고 해서 원산지인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압생트의 위험성은 조연으로 출연한 실존인물인 화가 앙리 드 톨루즈 포트레크의 생애에서 잘 드러난다.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과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똑똑한 남자였지만 로트레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독자가 알기로는 화가 고흐도 이 술을 함께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김현우는 '영화인'이다. 작가로도 영화제작사의 대표이사와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저자도 영화 못지 않게 술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이 영화 이야기보다는 술 이야기에 치우쳐 있어 하는 말이다. 읽다 보면 '세계의 모든 술'을 설명할 듯하다. 저자는 책에서만큼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무언가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또는 남보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전문가스러워지고 싶을 때, 대부분 다양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찾아 읽고, 듣고, 스크랩하여 각기 나름대로의 정보를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의 이야기는 거의 ‘탄생’이나 ‘기원’부터가 그 시작이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 우린 어떻게 태어나서… 이런 부분보다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뒤바뀌게 되었단 말이지’… 대충 이런 부분에 주목하게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무엇이든 정해진 룰보다는 변주곡이 가능해야만 대중의 흥미 역시 가능하다. 술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술에 관한 어떤 다양한 사실과 재미를 내 안에 쟁여놓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주저 말고 『술푼 영화』를 펴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술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서 그것을 마셔보는 경험도 덤으로 즐겨보시길." 독자도 한때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흥미를 느낀다. 특히 세상의 모든 술에 대한 설명은 듣고만 있어도 즐겁다. 지금은 아쉽지만 언젠가는 마실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술이나 영화에 관한 깊이 있는 전문서적이 아니다. 좋은 영화를 리뷰하거나 강력하게 추천하는 내용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도 편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친구 같은 에세이다. 읽다 보니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고… 가끔 그랬었지, 라는 추억이란 것도 돋고… 그래서 알고 마시니 그 술맛이 좀 더 좋아지고… 그렇게 쉽고 부담 없이 꺼내 보고 싶은 이야기 한 편씩을 엮었다. 굳이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이 책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얽힌 '썸씽 스페셜' 이야기다. 영화 내용과 출연 배우들의 이야기를 거쳐 본 내용에는 이 술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주인공 입에서 엉겹결에 튀어나온 '스페샬'이라는 단어가 연결고리다.
"위스키에도 등급이 있따. 발렌타인 17년산, 로얄살루트 등 숙성 기간 15년 이상의 슈퍼 프리미엄(SP)급, 발렌타인 마스터스, 임페리얼 15년 등 디럭스(D)급, 윈저 12년 등 프리미어(P)급 등으로 구분된다. 이제 더 이상 '스페셜'하지 않은 썸싱스페셜은, 사실 태생부터도 가장 가격대가 낮은 스탠더드(S)급이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1991년 당시 썸싱스페셜은 이름 그대로 아주 특별한 술이었다. 광고 카피도 한껏 오만했다. '많은 분들께 제공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술의 팔자가 아닐 수 없다."(P.19)
저자가 영화인이자 작가란 말대로 그의 영화와 술에 대한 지식은 보통 사람들보다 매우 엄청나다는 사실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영화 속의 술 이야기는 영화를 더 기억하게 또는 필요한 장치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영화 속의 술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 책도 술 이야기로 집중되는 것 같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라는 광고 차원의 책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속의 저자가 사랑했던 술 이야기를 덧댄 것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기억속에선가, 아니면 책쓰기 때문인지 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책을 집필한 것처럼 느껴진다.
동서고금의 잘 알려진 영화 속 술 이야기니 대체적으로 영화가 생긴 이후의 술 이야기가 맞다. 술의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 술을 마셔본 사람도,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흥미롭다. 몰랐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으니 호기심 충족과 함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곁들이니 '안주 없이 술 마셔도(읽어도) 좋을(재미있을) 책'이다. 독자는 세상 모든 술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술이 있다. 바로 '소주'다. 저자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여주인공 배우 손예진이 한 잔 '원 샷'을 계기로 술 이야기와 연결한다. 그야말로 '술맛 나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러나 독자는 우리 술 소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술 회사 '진로'라는 브랜드이고, 한때 유행했던 CM송이 기억난다. 소주는 당연히 우리 '국민술'이었고 무엇보다 값이 쌌다. 그래서 가벼운 주머니에 알맞은 술이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열중할 때 산업 현장 최일선에서 뛰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주' 성격을 띠기도 했다.
국내에서 양주 수입이 허가되지 않았을 때도 간혹 양주를 시중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진빔'이나 '조니워커'라는 술이었다. 둘 다 위스키 종류였던 것 같다. 이 이야기도 이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란 영화를 저자는 가장 섹시한 남녀 배우의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영화 속 인연은 콜롬비아의 어느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임무를 끝낸 킬러 존(브래드 피트)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 암살자를 쫓는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번에는 역시 임무를 마친 듯한 여자 킬러 제인(안젤리나 졸리)이 술집으로 들어온다. 두 킬러는 일행인 척하며 위기 상황을 모면한다. 당연히 남녀는 함께 술을 마신다. 영화 속 두 남녀는 결혼도 하고 잘 지내다 서로의 직업을 숨긴 채 6년을 산다. 그러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실패함으로써 알게 된 두 사람의 정체. 그리고 남자를 죽이라는 동료의 조언에 괴로워하는 여자. 제인이 존과의 지난 사랑을 회상하며 마신 술이 바로 '조니워커 레드'다.
저자는 이 술의 원산지와 활약, 현재의 위치까지 모두 좔좔 꿰고 있다. 조니워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사람은 존의 아들 알렉산더다. 영국 내수용과 수출용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판매되던 술을 1908년 조니워커로 명명하고 레드 라벨과 블랙 라벨로 분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주가라면 조니워커의 상징인 '스트라이딩 맨'을 알 것이다. 만화가 톰 브라운이 그린, 실크해트를 쓰고 지팡이를 든 남자. 그의 모습은 활기차고 미래 지향적인 조니워커의 상징이다. 스트라이딩 맨도 알렉산더가 처음 만들었고 1996년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이 책에는 모두 44개의 영화와 같은 수의 술이 소개된다.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술이 멋진 인테리어로 디자인된 주류상점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한때는 수입금지 품목이었고(산업화 과정에서 사치품으로 분류됨),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서 파는 술보다 더 많이 소비될 것이다. 술이 삶의 한 부분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과, 어두운 곳에서 악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한자로 술을 표시하는 '酒'는 한자를 풀어보면 '물 수, 닭 유'자다. 닭이 물 마시듯이 조금만 마시라는 의미란다. 독자에게 누군가 술 좌석에서 해준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술과 어울리되 경쟁하지 마라."
저자 : 김현우
영화 만드는 사람이면서 글 쓰는 사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 누아르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시작으로 〈신세계〉, 〈브이아이피〉, 〈시간 위의 집〉, 〈살인소설〉, 〈뷰티풀 데이즈〉, 〈마녀: PART 1. THE SUBVERSION〉, 〈낙원의 밤〉, 〈미드나이트〉 등 많은 한국 영화를 제작한 ㈜페퍼민트앤컴퍼니의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콘텐츠투자 부문 이사, 산수벤처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이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인 〈명량〉을 비롯하여 〈국제시장〉, 〈설국열차〉, 〈수상한 그녀〉, 〈괴물〉 등 많은 흥행작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영화 이외에도 공연, 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 제작했다. 여성 잡지, 패션 잡지, 스포츠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소프트뱅크미디어에서 발행한 디지털 경제·문화 매거진 ENABLE 편집장으로 2000년대 닷컴 벤처 붐의 중심에 있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기업의 엔지니어였으나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 취직과 사직을 경험했고, 일찍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드라마틱하게 살았다. 최애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의 말미에 나오는 ‘꿈꾸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문구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 현재 영화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 개봉됐으며, 아울러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