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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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퀀텀 라이프』는 폭력과 범죄가 만연하던 빈민가에서 자라 미국 항공 우주국(NASA) 과학 임무국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흑인 물리학자의 이야기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겪은 인종차별과 대물림돼 온 가난을 뜷고 물리학자로의 입지를 굳힌 한 사람의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에는 “갱스터 물리학자” 하킴 올루세이가 위험하고 불안한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과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주변 사람들의 지지 덕분에 결국에는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던 그의 인생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영재와 문제아, 스탠퍼드 대학원생과 길거리 마약 중독자 등 여러 정체성을 끊임없이 넘나들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하여 상대성 이론을 시연하는 게임을 만들 정도로 똑똑했지만, 용돈을 벌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대마초를 파는 문제아이기도 했다. 그리고 뛰어난 지능과 집념으로 스탠퍼드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백인들로 가득한 스탠퍼드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마약에 빠져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이 책은 그의 입지전적 성공과 역경 극복의 과정을 되새기는 내용만 담기지 않았다. 그의 삶은 한 발 더 나아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과 연결돼 위대한 이론의 역사적 증인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은 올루세이의 행적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고 있지만 여정을 따라가며 제시된 것 중 여러 곳에서 한 가지 공통된 점을 보여준다. 그가 무너져내릴 때에도, 좌절하고 방황할 때에도 울루세이가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희망'이다. 저자 울루세이는 책의 뒷 부분에서 「에필로그」를 통해 그의 심경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구 물리학자로서의 미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리에서 살던 과거를 백미러로 비추고 떠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흑인 사회를 뒤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외톨이 과학자들의 다음 세대가, 나를 얽매었던 투쟁과 도피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고 싶었다. (중략) 아이들이 꿈을 꾸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 무한한 희망을 보았다."(p.415~418)

수많은 가능성이 복잡하게 얽힌 다중 우주들을 가로지르며 마침내 꿈을 이루어낸 울루세이의 눈부신 여정을 담은 이 책에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유머가 가득하다. 20세기 말 미국에 여전히 남아 있던 차디찬 인종차별의 장벽, 한 가족의 지독한 가난, 그리고 마약 중독의 아찔함과 개인적인 절망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가 된 그의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에 가득한 가능성, 즉 희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미시 세계에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거시 세계에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벽을 미시 세계의 입자가 뚫는 현상이다. 미시 세계 속 입자는 파동처럼 움직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성질 덕분에 확률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즉 0이 아니라면 놀랍게도 입자는 벽을 통과할 수 있다.

이로써 하킴 올루세이의 삶은 마치 새로운 벽에 부딪혀 세게 튕겨나가면서도, 결국에는 벽을 통과하는 데에 성공한 입자와도 같다는 비유가 가능해진다. 그는 어린 시절에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거의 자동차 안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서 네 살 때 그곳을 떠난 후로 빈민가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던 그는 친구를 사귀려고 하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야 했고, 새 동네에 도착하면 반드시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했고 일부러 더 거칠게 행동해야만 했다. 게다가 지긋지긋한 가난도 그의 삶을 밑바닥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했고, 그 역시 마약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과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애정이 있었다. 그는 주변에 읽을 만한 것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읽는 책벌레였고,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모두 답하는 “교수님”이었다. 그는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22권에 달하는 백과사전을 첫 항목부터 마지막 항목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었다는 회고는 우리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주 역할을 했던 세대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특히 그를 매료시켰던 것은 백과사전을 읽다가 알게 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어두운 밤 위험을 무릅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상대성 이론을 직접 실험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상대성 이론을 시연하는 컴퓨터 게임을 홀로 제작해 과학전람회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과학에 대한 애정과 집념으로 결국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물리학자이자 흑인인 아서 워커의 연구진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팰로 앨토 동부의 뒷골목에서 마약을 찾아 헤매는 그의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은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 갱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후에야, 항상 자신을 믿어주며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그를 인생의 승리자로 이끄는 주된 에너지다.

가난, 폭력, 마약 등 여러 위기를 넘나드는 빈민가의 삶과 태양을 연구하기 위해서 첨단 로켓과 망원경을 설계하고 우주로 발사하는 천체물리학자의 삶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하킴 올루세이의 인생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한다. 아주 희박할지라도 벽을 통과할 확률이 0이 아니라면 아무리 단단한 벽이라도 통과할 수 있다고. 우리의 운명은 결코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인생에는 이 양자역학적인 원리에 따라 무수한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고.

 


 

이 책의 이야기는 스탠퍼드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한 그가 자신과 비슷한 입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젊은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뛰어들며 마무리된다. 이때 미래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믿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그가 단언한 말은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이 말은 우리의 가슴속에 와닿으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영어 'quantum'은 사전에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 복사 에너지에서 처음 발견하여 ‘에너지 양자’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빛으로서 공간을 진행할 경우 ‘광양자’라고 한다로 풀이돼 있다. 이 책의 제목이 『퀀텀 라이프』로 정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되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이 책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중심 테마는 물론 한 사람의 흑인 물리학자의 성공적 인생이지만,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에 나타나는 인종차별은 독자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너무 많이 오랫동안 들어온 이야기라서 '그러려니' 정도의 인식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독자는 얼마든지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삶과 자신의 사회적 위치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로 미국을 알고 있었다. 특히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온 이후로는 미국의 사회적 인종차별은 좀 줄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는 독자의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의 소년시절(1부)의 이야기 중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 한 편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나 홀로

 

어릴 때부터 나는 남들과 달랐다네

나는 세상을 남들과는 달리 보았으며

나의 열정은 다른 이들과 같은 샘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나의 슬픔도 다른 이들과 같은 근원에서 피어나지 않았으며

다른 이들이 즐거워할 때 나의 마음은 홀로 놀았다네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을 나 홀로 사랑했다네

 

나는 그 시를 밤새 암송하다가 잠이 들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는 기차를 타는 내내 그 시가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책을 번역 소개한 지웅배도 「역자 후기」를 남겼다.물론 이 책을 읽기 위한 도움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만의 독후감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역자는 책의 총평처럼 평가한 부분이 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도 무한히 시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 머리 위를 밝게 비추는 태양은 벌써 50억 년째 그 꺼지지 않는 불씨를 유지하고 있다. 붉게 이글거리는 표면의 불꽃과 태양 표면 멀리까지 희미하지만 뜨겁게 어른거리는 코로나의 모습은 오묘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저 가스덩어리가 쉬지 않고 오랫동안 빛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 그 비밀은 바로 태양의 뜨거운 중심에서 벌어지는 핵융합 반응에 숨어 있다. 태양과 같은 별의 중심은 아주 강한 온도와 압력으로 짓눌려 있다. 그래서 아주 높은 온도와 높은 밀도로 원자핵들이 바글바글 모여 들끓고 있다. 천만 도를 넘는 아주 뜨거운 온도 때문에 원자핵들은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 이렇게 원자핵들이 서로 고속으로 부딪히면 결국 하나로 합쳐지며 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작은 원자핵들이 함께 붙어서 더 큰 원자핵으로 융합하며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핵융합 반응이다." 이 부분은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양자 역학'의 마법(?)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가까이 맞붙은 원자핵들이 평소라면 서로를 밀어내겠지만, 아주 가끔씩 그 에너지 장벽을 뛰어넘어 한 원자핵이 다른 원자핵 쪽으로 넘어갈 때도 있다는 점을 인용해 저자가 사회의 장벽을 뚫고 통과한 사실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상기시키며 우주의 원리가 곧 우리 삶의 원리와 같다는 점을 비유하기에 충분하다.

 


 

 

저자 : 하킴 올루세이(HAKEEM OLUSEYI)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우주론학자, 발명가, 교육자, 텔레비전 방송인, 대중 강사이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플로리다 공과대학교의 항공우주, 물리 및 우주과학과에서 전공 교수로 재직했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워싱턴 대학교,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또한 미국 워싱턴 D. C.에 있는 항공 우주국(NASA)의 과학 임무국에서 우주과학 교육 관리자로 일했으며 디스커버리 사이언스 채널의 과학 자문가, 그리고 흑인 물리학자 국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넷플릭스, 디스커버리 사이언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PBS, BBC 등 많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국립 발명가 아카데미에 속해 있으며, 국립 흑인대학 동문회의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시그마 피 시그마 흑인 명예상을 수상했다.

 

저자 : 조슈아 호위츠(JOSHUA HORWITZ)

펜 E. O. 윌슨 과학문학상을 수상한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베스트셀러 『고래 전쟁 : 진짜 이야기(WAR OF THE WHALES : A TRUE STORY)』를 포함하여 다양한 책을 쓴 작가이다.

 

역자 : 지웅배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에서 은하천문학을 연구하며, 같은 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천문학 강의를 맡고 있다. 구독자 5만 명의 유투브 채널 “우주먼지의 현자타임즈”를 운영하면서 최신 천문학계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능력자들」에 출연했고 한국과학창의재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국립과천과학관, TEDX, 빨간책방 등 흥미로운 우주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종일 우주생각』, 『별, 빛의 과학』, 『우리 집에 인공위성이 떨어진다면?』 등을 썼고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등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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