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는 언제까지 인간에게 내어주기만 할까? 독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무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나서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면 어떤 것일까? 독자는 단연 '나무'를 꼽고 싶다. 살아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산소 공급 장치와 더위를 막는 그늘로 봉사한다. 수명이 짧은 나무들은 추울 때 난방용, 취사용으로도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태운다. 물론 잘생기고 큰 나무들은 집, 가구 등으로 인간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한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들을 위해 안전을 위하고, 휴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기여한다.

이 책 『집의 탄생』은 1970년대 말부터 40년 간 나무와 함께 산 저자 김민식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는 『나무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나무 인문학'을 펼쳐 냈다. 제목이 '집의 탄생'이고 부제가 「반 고흐의 들판 위 오두막부터 르코르뷔지에의 호숫가 집까지」여서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집'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긴 나무로 만든 집이라면 집 얘기가 나무 얘기고, 나무 얘기가 집 얘기가 될 터, 아무래도 좋다. 저자의 이력은 '나무 장사'에 다름 아닌데 어떻게 나무에 대해 생물학적 특성은 물론 인문학적 해석도 가능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자는 한국의 목재 산업이 활황을 띠던 1970년대 말부터 40년 간, 캐나다, 북미부터 이집트, 이스라엘, 파푸아뉴기니 등 나무를 위해 55개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공간의 움직임은 비행기 여정만 400만km, 지구 100바퀴에 이르는 이 기나긴 시간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삶을 만났다. 40여년의 긴 여정이 저자에게 남긴 것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나무를 떼 놓고 말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나무를 매개로 톨스토이의 소설과 고흐의 그림,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던 느티나무 좌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사과나무로 가구를 만든 메타포와 안도 다다오가 나무를 심는 이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놓인 테이블의 의미를 되새기는 등 사유의 시간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나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를 아낌없이 내놓는다. 나무와 오랜 세월 함께해서 나무를 닮아가는 걸까?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우리들의 집 이야기」를 시작으로, 1장 「집에 살다」, 2장 「집을 보다」, 3장 「집에 머물다」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집의 미래」로 마무리된다. 모두 간단한 순우리말로 제목을 정한 것이 이채롭다.

 


 

저자는 프롤로그 「우리들의 집 이야기」를 통해 강원도 산골짝으로 들어온 지도 20년이 되었다며, 제일 먼저 자신의 집을 짓고 몇 년 지나고 나서야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몰려왔다고 언급한다. 금세 서울로 돌아올 줄로 짐작했고 심지어 산골 목수로 산다는 것이 농담인 줄 알았다는데. 산골짝 20년 동안 지은 집이 아파트 한 동에서 못 미치는 20여 채에 불과하다며 "초고속 성장을 계속해온 대한민국은 집 짓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저자의 집에 대한, 나무에 대한 인문학적 소견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쩌면 집을 재테크나 축재에 쓰이는 물건이지 집의 원래 목적에 맞게 지어지는 집이 없다는 뜻일 게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 집에 얽힌 이야기, 집에 대한 국내외 명사들의 시선을 잡아내는 데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이 책은 흥미롭고 가치를 더한다. 독자들에게 집과 나무에 관한 한 몰랐던 '신세계'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는 강연회 청중 모드로 독자는 걸어 들어간다. 특히 책 곳곳에 그려진 그림과 짤막한 설명은 독자의 눈의 피로가 한순간에 가시는 효과를 준다. 가장 먼저 참나무 이야기를 꺼낸다. 아마 우리 나라에도 가장 많은 수종 중의 하나일 것이고 집을 짓는 목재로도 자주 쓰여서일 것이다. 생물학자 못지 않은 나무에 대한 지식과 책을 통해 읽은 지식, 그리고 저자의 경험과 사색이 더해진 설명은 매우 높은 설득력을 갖고 독자들의 흥미를 돋운다.

 


 

'나무 보헤미안'만의 고급 지식과 놀랍도록 흥미로운 이야기 책이라는 소설가 김진명은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나무 보헤미안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데, 일단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간 우리가 좀체 접할 수 없었던 저자만의 고급 지식과 놀랍도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토해냄은 물론이고 깊게 읽으면 과연 나무는 본질적으로 어떤 생명체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도 이르게 하는 것이다."란 추천평을 썼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의 저명 문필가이자 한때 쇼팽의 여인이기도 했던 조르주 상드는 “당신이 원하는 집이 초가집이냐 궁전이냐 내게 얘기해주오. 그럼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겠소”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집이 재산으로 취급되는 시대, 우리들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집, 외딴 숲속 철학가의 오두막, 휘황찬란한 왕비의 궁전, 마주 앉으면 무릎이 맞닿는 시인의 집, 골목길에 즐비하던 아무개의 양철집, 그리고 아파트. 사람이 집에 거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집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상드의 장담은 유효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무를 살갗 같은 집에 대해 무슨 고민을 시작해야 할까. 저자의 나무에 대한 사유가 시공간적으로 엄청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슬며시 집과 관련된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집이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며, 반 고흐가 머물던 들판의 오두막, 르코르뷔지에가 호숫가에 지은 집,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파트, 도연명과 추사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가집, 휘황찬란한 궁전을 버리고 마리앙투아네트가 지은 촌락, 대통령의 저택과 어느 시절 골목길의 판잣집과 양철집까지. 역사와 예술, 문학과 철학이 담긴 다채로운 집 이야기가 펼쳐진다.

40여 년 목재 관련 일을 한 저자가 어떻게 집의 이야기를 이토록 절절하게 펼칠까. 책에 실린 대로 1만 년 전 움집의 기둥과 대들보가 밤나무였고, 18세기 건축 철학자가 집의 기원을 원시 오두막으로 보는 것과 맞닿아 있을 것 같다. 나무에서 시작된 저자의 관심사는 자연히 집으로 옮겨 갔고,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독서광은 현장에서, 책장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수집했다.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 등장하는 나무와 집의 그림은 글의 여운을 더한다. 반 고흐의 오두막은 지붕에 풀을 이고 있고, 르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에는 잔잔한 호숫가 곁에 머문다. 저자가 써내려 간 집과 건축 이야기는 여느 건축학자, 민속학자의 기록보다 방대하고, 깊으며, 인간적이다. 알고 경험하고 이해하고 쓴 저술의 매력이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거래하던 독일의 목재 가공업체가 슈투트가르트, 오펜부르크에 있어서 독일 흑림 지역 경계에 있어 들렀던 흑림에서의 사색이 로마제국의 영화로 이어진다. 로마사에 기록된 광대무변은 아니지만 스키장, 온천, 트레킹 코스가 들어선 국립공원으로 변했다고 한다. 사색에서 이젠 지역 이동이다. 연결된 프라이부르크를 지나치면서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상흔이 깊게 드리운 지역이란다.

종전 후 연합군 프랑스군이 주둔하던 캠프가 1990년대 초에서야 이 지역을 떠나며 반환됐던 곳이라고 전한다. 이후 현재까지 이 역사의 현장은 지속 가능한 거주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환경 생태로 지속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상에 제공한다고. 작은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철학자 훗설, 아이데거, 아이에크 그리고 아렌트를 배출한 고장이란 것을 이제야 저자는 알게 됐다. 특히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시절 나치에 지지해 자신과 지역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지만, 건축가들이 그의 이야기를 자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오두막'은 흑림 속 토트나우에 있다. 안내판도 없어 현지인들도 매번 길을 놓친다. 하이데거는 1922년부터 이 오두막에 머물며 그 유명한 『존재와 시간』을 썼다. '짓기 거주하기 사유하기'의 사상이다. "눈 내리고 고립된 시간은 철학을 할 시간이다."는 말도 책 속 내용이다. 그러면 이 오두막집은 철학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저자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책을 읽고, 역사를 뒤지고, 사색을 계속했다는 것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심리학자 카를 융은 "돌을 다듬고 날라 지은 오두막에서 자궁과 같은 평안과 아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내로라하는 21세기 모더니즘 건축가가 지은 집은 소송에 휘말렸고 이제 누구도 살지 않는다.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유유자적하며 살아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사상가는 성치 않은 집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소수민족의 판잣집, 선로 변의 양철집, 거주자가 되는대로 지은 오두막은 과연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이 책은 집이 경제이자 재산으로 취급되는 시대에, 심지어는 축재의 대상이고 주체로 활용되는 세상에서 삶을 중심에 두고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 : 김민식

 

내촌목공소의 목재 상담 고문. 한국의 목재 산업이 활황을 띠던 시절부터 40여 년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일했다. 나무의 밭으로 꼽히는 캐나다, 북미를 비롯해 전 유럽과 이집트, 이스라엘,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남섬까지, 그의 나무 여정은 400만km에 이른다. 독일 목재 회사 Jacob&Sho¨ns Gmbh의 파트너로 일할 때는 세계 최초로 ‘엔지니어드 자작마루판’을 설계했고, 세계 공연장의 건축 음향을 연구한 이력이 길다. 2006년부터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건축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목재 컨설팅 및 강연을 해왔다. 저자는 나무와 함께한 오랜 경험, 인문학적 지식으로 나무와 사람,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