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보는 한국 근대사 - 조선, 세계의 화약고 EBS CLASS ⓔ
신효승 지음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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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20여년 전 말로만 많이 들었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었다. 독자가 읽은 책은 김종성 역, 위즈덤하우스 발간한 책이었다. 이는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부 고대사가 축소·은폐된 부분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저자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독자에게 깨우쳐 주었다.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해설과 주석을 별도로 추가한 고대사의 참모습은 우리 역사의 이해를 넘어 웅혼한 기상을 가진 민족이라는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조선상고사』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배웠던 우리의 역사 책에 낡고 패배주의에 물든 인식이 그대로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의 중심에서 서술된 《삼국사기》를 비판하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신라, 백제, 가야를 균등한 시각에서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확립하고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하는 신채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어서 의미가 깊고, 독자의 부족한 역사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제까지 《삼국사기》로 소외됐던 백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 책 『전쟁으로 보는 한국 근대사』의 저자도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는 시각에는 패배주의가 만연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상고사』를 읽은 독자로서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며 저자 신효승의 역사 인식에 박수를 보낸다. 이에 따르면 세계 열강이 한반도를 노리는 와중에도 왕은 무능했고, 정부 관료는 부패했다. 군대의 기강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나약했다. 국제 관계의 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외교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왕조의 마지막 숨결을 내주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더러 의병 항쟁의 영웅적 서사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민족주의의 시각에 갇힌 채 분노의 정서만 자극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사, 조선왕조의 마지막 역사는 과연 그렇게 패배주의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했을까? 병인양요부터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을 거쳐 청산리전투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과연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그저 당하기만 했을까? 저자 신효승(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전쟁사를 중심으로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풀어내는 역사학자이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조선에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부터 독립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청산리전투까지 살펴보았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정말로 패배한 전쟁이었는가? 강화도조약은 과연 불평등하기만 한 조약이었는가? 일본은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세계 열강은 왜 일본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는지? 전쟁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기존에 배우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신효승 저자의 이 책은 큰 설득력을 가진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연구를 위한 자료 범위를 국내 사정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질서의 중심이었던 서구 열강의 움직임과 기록까지 파헤쳤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과 물샐 틈 없는 자료 확보로 이 책은 당위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가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1866년 10월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인 피에르-귀스타브 로즈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군함 7척과 병력 1400명을 갖추고 우리나라 한강 입구에 위치한 강화도에 쳐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인양요’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의 조선 원정’이라는 전쟁이다. 병인양요의 결과 우리는 크게 패하여 강화도를 점령당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전쟁의 궤적을 살펴보면 이와는 다른 내용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조선이 프랑스의 침략을 무찔렀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조선 침공에 실패한 ‘패전’이라고 평가했다. 오히려 프랑스군이 각종 보물과 문화재를 약탈해간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비판하기까지 했다. 병인양요 이후 조선은 전통적으로 왕실의 피신처였던 강화도에 포대를 세우면서 수비를 강화했다.

 


 

1871년 미국은 아시아에 안정적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조선을 타깃으로 삼았다. 6월 10일 미국은 로저스 제독과 함선 5척을 앞세워 강화도의 초지진으로 향했다. 거기서 미군은 첫 번째 장벽인 갯벌에 부딪혔다. 작전 시간은 늦춰지고 병력의 절반이 전쟁도 치르기 전에 손실되었다. 결국 미군은 광성보까지 진출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군을 물리고 만다. 서구 언론뿐 아니라 미국 의회도 이를 패전으로 받아들여 해군을 질타하고, 로저스 제독은 군복을 벗게 된다. 전쟁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패배한 전쟁으로만 알았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과 왜 승리한 전쟁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1800년대 말 서구 열강은 동북아시아에서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실제 1880년대의 중국은 이홍장이 이끄는 북양함대를 중심으로 아편전쟁, 청불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서구 열강이 두려워하는 존재로 급부상하였다. 이에 프랑스는 청나라를 이기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면서 양면전쟁을 계획하고, 조선은 부득이 그 전쟁의 중심에 놓였다. 청나라는 이처럼 당시 동북아시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기 바빠 외부의 침략에 적극 대응하지는 못했다. 한족과 만주족의 다툼, 후이족의 반란, 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운동 등 사회적 모순에 따른 수많은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서구 열강 역시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 서구 열강은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선택했고, 일본에 자금과 군사 기술 등을 제공했다. 그 결과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또 러일전쟁은 당사국인 러시아와 일본뿐 아니라 그 전장이었던 조선은 물론이고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전쟁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러시아의 진출을 막으려던 서구 열강의 대리전 성격을 띄기 때문에 ‘제0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먼저 영국이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에 최신 군함과 아시아 각국의 함대를 제공했다. 러시아는 독일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웠다. 결국 내부 혼란과 서구 열강의 견제를 받은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일본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 역시 전쟁을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포츠머스회담으로 전쟁을 종료했다. 포츠머스회담의 결과만을 보면 러시아도 일본도 승자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피해자는 러일전쟁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된 대한제국이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프랑스와 미국을 간신히 막아내고, 강화도조약 당시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국제 관계의 역학 속에서 조선과 대한제국은 철저히 외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세계 열강이 나서서 대한제국을 일본의 제물로 만들어주었다. 다른 나라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의 민중이 외부 세력의 간섭과 침해를 견디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났다. 바로 의병이다. 의병 전쟁은 단순히 일제의 군대를 공격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일본은 1910년에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지만, 이 땅의 민중은 스스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이 대한제국을 불법적으로 침탈한 것임을 세계에 알렸다. 1920년 독립군이 일본과 싸워 첫 승리를 얻어낸 봉오동전투, 무장 독립운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승리를 거둔 청산리전역 등의 의병 전쟁은 한반도의 민중은 독립을 염원하고 있으며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음을 국제 사회에 알린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은 19세기 말에 세계 질서에 편입되었고, 일본과 서구 열강의 간섭 끝에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국가의 존립을 유지할 수단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은 의병을 일으켜 국권 회복의 주체가 되어 일제에 대항했다. 전쟁사라는 새로운 도구로 우리 근대사를 보는 이 책은 우리의 근대사를 패배와 좌절로 점철된 역사가 아니라 민이 근대 국민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각성해 성장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으로 해석한다. 움직일 수 없는 역사 사료와 당시 당사국들의 언론까지 파헤친 저자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책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흔히 의병 활동을 ‘봉기(蜂起)’라고도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의병의 저항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봉기는 벌떼가 모이듯 생각 없이 모여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의병의 저항은 ‘거의(擧義)’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의병은 무지몽매한 민중이 그저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저항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정치적 의사가 명확한 민중이 그 뜻을 세우기 위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거의라고 불러야 합니다.(p.195) 「8강 등 뒤의 칼 - 의병」 중에서

 

저자 : 신효승

 

전쟁사를 중심으로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풀어내는 역사학자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20세기 초 국제 정세 변동과 한인 무장 독립운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비역 육군 소령으로 작전을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심도 있고 폭넓게 전쟁을 연구해왔다.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미양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조명 3』, 『조선전쟁 생중계』(공저), 『고려전쟁 생중계』(공저), 『일제의 흔적을 걷다』(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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