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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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작고한 고 이어령 교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울림과 무게감이 있어 좋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대학자였다. 글도 왕성하게 써 수많은 책을 통해 우리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여주었고, 사상적 치우침이 없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우리 민족 혼을 되새기고, 널리 인류에게도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 함께 나아가길 원했다. 이 책 『너 어떻게 살래』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창조의 아이콘'이 대명사처럼 불리웠던 이어령은 삶을 마무리하기 직전까지 천착했던 테마는 인공지능(AI)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해왔다고 책 출판 관계자는 전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출생의 비밀’과 그 의미를 밝힌 『너 어디에서 왔니』, 젓가락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조명한 『너 누구니』에 이은 책이다. 저자는 이미 60대부터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걸며 IT 강국의 정신적 기반을 다진 선각자였고, 70대에는 과학과 인문의 세계를 통섭하는 ‘디지로그 선언’으로 우리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던 프런티어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서양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는 풀 수 없는 ‘인간과 인공 사이’의 고차원방정식을 한국인 특유의 생명 의식과 동양의 인(仁)사상, 그리고 그것을 제일 잘 체현하는 한국인들에게서 해법을 도출해낸다는 데 큰 의의와 미덕이 있다. 동양과 서양, 인간과 문명, 기계와 생명, 시원과 미래를 연결하는 AI 스토리텔링의 최고봉,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 맞서고 있는 우리가 21세기의 교과서로 삼을 만한 책이다.

 


 

저자는 생전에 우리의 IT 기술을 이용해 새 밀레니엄의 첫새벽에 즈믄둥이의 출생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고, 평창의 상공에 드론을 띄워 오륜기를 그리던 초유의 하이테크 연출가이자, 최신 디지털 장비라면 가장 먼저 사용해보는 ‘얼리어댑터’, 여러 IT 기업에 조언을 아끼지 않던 멘토이기도 했다. 이 책의 서두는 역시 AI에 대해 전국민적 관심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사건, ‘알파고 쇼크’다. 바둑을 잘 두지 못한 독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말 것이라는 ‘AI 포비아’가 미디어를 잠식해갈 때, 그는 은거를 뒤로 미루고 일곱 대의 컴퓨터가 도열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충격을 먹고 사는 민족’ 한국인들에게 AI를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기회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도 이해해야 한다는, 또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접근해야만 인공지능 기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펼치며 동서양의 고전은 물론 인터넷 댓글부터 문명론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그 전개가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며 도처에서 무릎을 치게 한다. 책은 인공지능을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의 영역에서 구출해내 우리의 보편적 삶 위에 그 실체를 펼쳐낸다. 그러니 피상적인 지식에서 벗어나 총체적 이해를 가져다주는 AI 입문서이며, 기계와 생명의 본질을 살피고 그 관계의 의미를 톺아보는 AI 인문서이기도 한 셈이다.

 


 

저자는 역시 한국인들은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는 ‘생존력과 순발력’을 갖춘 민족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반면 과거를 돌아보고 문제를 정리하는 합리성은 다소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알파고 쇼크도 딱 그렇다. 딥 러닝을 탑재한 AI가 몰고 온다는 특이점(기계의 지적 능력이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순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음에도, 체계적인 대응은 별달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오히려 AI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거부감이 우려스럽다. 『너 어떻게 살래』는 그 ‘AI 포비아’를 해소하고, 인공지능이 몰고 올 세기적 전환점을 슬기롭게 대처하자는 뜻에서 기획된 책이다. 저자의 혜안에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80이 넘었던 당시에도 디지털이나 인공지능, 컴퓨터 등에 이 정도의 관심과 지식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도 못해 봤다. 새삼 존경심이 외경심으로 바뀔 정도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우리 손 안 스마트폰에 숨겨진 AI 테크놀로지가 어떤 단계의 발전을 거쳐 딥 러닝이라는 무기를 갖추게 되었는지, 그 진화사를 고찰한다. 알파고가 ‘어디서 왔고’,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분에서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만, 꼭 쉬운 설명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생명’이다. 아이들은 늘 살아있는 이야기를 원하며, 삶과 맞닿은 감각을 원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아이다움에서 벗어나 ‘반듯하고 직선적인’ 세계 안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그들 또한 어린 시절의 감촉과 생명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도 아날로그 세대다. 학교 다니는 동안 컴퓨터 교육도 받은 적 없고 사회 생활하는 동안 초기에는 컴퓨터로 업무를 보진 않았다. 그런데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컴퓨터와 인터넷의 결합부터는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미디어에서 전하는 소식이 다를 정도로 휙휙 지나갔다. 아날로그 세대로서는 용어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디지털 세대는 또 하나의 대변혁 시기에 들어선다.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AI)의 대중화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2016년 '알파고 사건'이다. 인공지능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바둑계의 평가도 나중에 들었지만 과소평가가 아니라 완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국 당사자인 이세돌 프로기사마저도 사실 5:0의 승리를 장담했었다.

사실 인공지능과의 대결이 이세돌과의 대국이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매번 졌었고, 그 시기가 당시로부터 2~3년 전까지 결과이니 당연한 예상이었을 것이다. 또 스마트폰도 그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온다 싶으면 다음날에는 우리를 지나쳐 저만큼 앞서 있었다. 놀라고 한편으론 우리는 감동했다. 특히 터치스크린을 선보일 때는 먼 미래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독자의 아날로그식 사고방식으로는 쫓아가지 못할 상대라는 좌절감마저 안겨주었었다. 스티브 잡스가 뛰어났던 건 무미건조한 터치스크린에 생명의 감각을 이식했다는 것이라고 저자 이어령은 이 책에서 평가하고 있다. 그게 바로 인터페이스의 출발이며 핵심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저자가 새 밀레니엄을 여는 2000년대 초반 테크와 생명의 통섭,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라는 화두를 제기했을 때가 생생한 엊그제 일 같다. 당시에는 하나의 아이디어였지만, 아이폰이 세계인에게 충격을 준 시점 이후부터는 우리 세기를 관통하는 핵심적 통찰로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딥 러닝의 출현 역시 저자의 오래된 논지를 재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알파고의 강화학습은 ‘딥 블루’ 시절의 기계적 단순계산방식 대신 생명의 작동방식, 즉 ‘인간다움’을 모방해가는 과정이므로. 이렇게 익스퍼트 시스템에서 딥 러닝으로의 전환, 쿼티 키보드에서 터치스크린으로의 전환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서양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놓치고 있던, 인간의 감각(목), 또는 인간적 삶(숨)의 재발견이다. 앞으로의 하이테크 경쟁의 화두는 이처럼 ‘삶’과 ‘인간’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AI)에서 인공지혜(AW)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며, 생명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한국인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저자의 통찰력을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으로 누가 기계에 단순한 지능을 넘어 ‘인간성’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다정함과 따뜻함까지 갖춘, 진정 사람다운 기계를 창조할 주인공은 누구일까? ‘한국인 이야기’라는 시리즈의 제목답게, 저자는 동양의 인(仁)사상, 그리고 생명사상을 제일 잘 체현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건다. 과연 한국인들이 저자의 기대대로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AI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기대반 우려반'인 아날로그 시대의 독자의 걱정을 덜어줄 인물의 등장은 실현될 것인지.

 


 

우리 한국인은 크든 작든, 알게 모르게 세계 문명 발전에 관여했고 앞으로도 관계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이 책에서의 종합 의견이라고 읽힌다. 인공지능의 전면적 대두로 잠시 멘붕 상태에 빠졌지만, 우리 한국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적응해 갔고,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디지털 능력이 앞서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라고 독자는 이해된다. 그 근거로 저자가 책 군데군데 해설해주는 「샛길」이 흥미롭다. 많은 「샛길」을 통해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통점과 다른점을 부각시켰고, 이를 위해 유래와 기원, 발전 과정 등에 대해 '백과사전'보다 광범위한 지식을 보여준다. 컴퓨터보다 더 정확한 지식에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고, 통찰력을 덧붙이니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의 디지털 민족으로서의 관계가 크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각 '고개' '꼬부랑길' ''샛길'도 예사롭지 않다. 이 책에서 사용되는 장(章), 항목, 세부 해설 등의 용도로 쓰이면서 묘하게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린다. 독자는 모든 내용이 새롭고 감격스럽지만 태극과 딥마인드 로고의 연관성을 끌어내는 솜씨는 사뭇 경탄한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내밀어 범죄자에게 더 이상의 변명과 핑계,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노련한 수사관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알파고 로고가 바뀐 것도 모르고 있던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 부분은 알파고의 바뀐 로고가 태극 문양과 같다고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관계자들이 굳이 반론을 펴거나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밤하늘을 인간의 눈으로 올려다보면 성좌들이 나타난다. 컴퓨터 0과 1의 수치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컴퓨터가 제일 못하는 것이 바로 그 북두칠성 찾기, 패턴 인식이다. 패턴화라는 것은 사물의 특징을 추출하고 표현한다는 뜻으로, 사물을 독립된 부분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관계있는 사물들끼리 모아 한 의미로 만드는 것이다. 이 마음의 성좌, 의식의 별자리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 그 신화와 전설이 인간의 지능이요 감정이요 의식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바다와 교신하는 영성이다. - 「태극 고개」 중에서

 

저자 : 이어령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성의 오솔길』 『젊음의 탄생』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문명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가위바위보 문명론』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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