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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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행성』은 1, 2권 두 권으로 이루어진 전체 3막으로 이루어져 연극처럼 '막(幕)'으로 구성하고 있다. 독립적으로 읽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작품이지만 원래 『고양이』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고양이』에서 시작해 『문명』으로 이어진 모험은 『행성』에서 대단원을 맞는 구조다. 그렇다고 연작소설은 아니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나 고양이 같은 동물, 신이나 천사 같은 초월적 존재를 내세워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그려 왔다. 인간은 조연에 불과하고 주연은 모두 동물이 차지한 이 3부작에서 작가는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고양이』에서 『문명』, 『행성』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중심적인 사상이 인간은 '신의 대리인'으로 지구 행성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도 안 되고, 잘 다스려 지구 생물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것이 존속의 선결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독자의 눈에는 비친다.

『행성』은 앞서 발표한 두 소설에 비해 인간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정치인, 군인, 과학자, 종교인 등 다양한 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살아남은 인류의 총회를 이끄는 의장 힐러리 클린턴, 로봇 공장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창립자 마크 레이버트 등 실존 인물에서 따온 캐릭터들도 재미를 더한다. 이러한 인간 캐릭터들은 때로는 동물 캐릭터들과 비교되어 현재 인간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도 하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결책을 생각해 보게 하기도 한다. 특히 핵폭탄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호전성, 소통보다는 무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인간 캐릭터들의 모습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고양이』와 『문명』이 작품 발표 이후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연결되는 것처럼, 『행성』을 읽다 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던 2020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이 작품에는 그 영향이 짙게 깔려 있다. 『고양이』는 2016년, 『문명』은 2019년 각각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전작(고양이, 문명)들에 비해 『행성』은 디스토피아 성격이 강하다. 같은 해 봄 발표한 초단편소설 「호모 콘피누스」에서 지하에 격리된 신인류를 묘사했던 베르베르는 『행성』에서는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고층 빌딩에 숨어 사는 신인류를 등장시킨다. 전쟁과 테러, 감염병 때문에 인구가 8분의 1로 줄어들고 황폐해진 세계. 시스템이 마비된 도시는 쓰레기와 쥐들로 뒤덮였다.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는 쥐들이 없는 세상을 찾아 〈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신세계로 향한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한 바스테트 일행을 맞이한 것은 알 카포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쥐 군단의 공격. 겨우 목숨을 부지한 바스테트의 눈에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고, 드론 한 대가 날아온다. 놀랍게도 뉴욕에는 약 4만 명의 인간이 쥐를 피해 2백여 개의 고층 빌딩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덤 타워에는 102개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총회가 존재한다. 총회에서는 쥐를 없애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대두하며 갈등이 심해진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은 고양이의 의견이라며 무시할 뿐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쥐 군단의 위협, 무작정 핵폭탄을 쏘려는 인간들, 로봇 고양이 카츠의 등장…… 과연 바스테트는 상상력을 동원해 위기를 돌파하고 이 행성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역시 베르베르의 전작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자주 등장한다. 제목은 같지만 실재하지 않은 '제 14권'이라는 백과사전 권수를 추가했다. 이는 역사적 장소나 인물, 사건 명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이에 사실감을 주기 위해 백과사전을 인용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파리에서 떠난 범선이 뉴욕에 도착한다. 대형 범선 〈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35일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대서양을 건너온 프랑스 고양이들 앞에 뉴욕의 모습은 이미 '아메리칸드림'을 실현시킬 만한 신대륙이 아니다. 쥐들을 피해 찾아온 뉴욕에는 파리보다 더 많은 수의 쥐들이 '고양이 직관으로 백 배는 훨씬 넘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인간은 쥐를 피해 맨해튼의 고층으로 올라가 피신한 상태. 책은 시작하면서 세 고양이에 대해 친절한 소개를 먼저 한다. 독자 편의를 위한 배려이리라. 소설 속 화자인 '나' 바스테트와 '나를 따르는 자들, 즉 대서양을 횡단하는 모험을 함께한 인간과 동물들이다. 그 중에 내 사랑의 파트너인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는 나를 인간 지식에 입문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평화주의자'라고 자신을 포장하지만 실은 겁쟁이에 불과하다. 내 아들인 안젤로, 침착하지 못하고 오만방자한 데다가 폭력적인 어린 녀석이라서 자립성이 희박하다. 또 검을 털에 샛노란 눈을 가진 암고양이 에스메랄다. 꼴도 보기 싫은 경쟁 상대다. 내 짐작이지만, 아니 학신하건대 피타고라스와 그렇고 그런 짓을 했을 게 분명하다.

인간들 중 첫 번째로는 내 집사인 나탈리. 나한테 헌신적이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다음은 내 집사의 수컷인 로망 웰즈 교수. 내 정수리에 제3의 눈을 이식하는 수술을 해줘 자신이 집대성한 백과사전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다. 인간치고는 지능이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기타 여러 동행들이 소개된다. 이렇게 희망호에는 고양이 144마리에 인간 112명, 돼지 65마리, 개 52마리, 앵무새 1마리까지 총 274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전작들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유려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냥 읽기만 하면 특별한 문해력이 없어도 쉽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다만 저자의 집필 의도를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한다면 먼저 출판된 세 종의 책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고양이』는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미래를 그린 책이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장편소설로 1, 2권으로 구성됐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타자의 시각을 도입하여, 인간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적절한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저자의 문제의식이 그동안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작품이다. 테러가 일상화되고 내전의 조짐이 보이는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집사인 나탈리와 함께 사는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천재 샴 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한때 실험동물이었던 피타고라스는 머리에 USB 단자가 꽂혀 있어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갖춘 지적인 고양이다. 피타고라스에게서 인류와 고양이의 역사를 배우며 점차 가까워지는 사이, 파리 시내는 테러가 빈발하는 불안한 상황이 되고 결국 내전이 일어난다. 내전으로 황폐화된 도시에는 페스트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사나운 쥐 떼들을 피해 도시를 떠난다. 쥐 떼에 점령당한 도시에서 도망친 고양이들이 불로뉴 숲에 모여, 고양이 군대를 만들어 뺏긴 도시를 탈환하기로 한다. 페스트의 확산과 쥐 떼들을 피하기 위해서 센강의 시뉴섬으로 향하는 고양이 군대. 하지만 쥐 떼의 접근을 차단하려면 섬으로 통하는 다리를 폭파해야 한다.

 


 

또 소설 『문명』의 배경은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다. 이 소설이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2019년에만 해도 흔히 사용되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에 불과했겠지만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는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설정이다. 『문명』은 인류 문명이 벼랑 끝에 다다른 세상을 무대로 『고양이』의 주인공이었던 고양이 바스테트가 모험을 펼치는 소설이다.

고양이들의 일차 목표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쥐 떼의 공격을 물리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인류 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돼지, 소, 개, 비둘기 등 다양한 동물들은 고양이의 아군이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과연 바스테트는 서로 다른 동물종의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내고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베르베르 작품의 그 어떤 주인공보다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장점도 단점도 확실한 그녀. 문명을 세우겠다는 당찬 바스테트의 도전을 함께 지켜보자.

 


 

다음으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다. 독자도 깜짝 놀랐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지만 이 백과사전을 집필할 정도의 자료를 읽고 차근차근 준비했는지 놀랄 만했다. 이 책은 과학, 역사, 문학, 신화, 연금술, 처세와 게임까지 온갖 분야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써 때로는 독자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본질을 꼬집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순수하게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려지는 신기한 해파리(「작은보호탑해파리」), 인간은 왜 자신을 도와준 사람보다 자신이 도와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지(「페리숑 씨의 콤플렉스」), 죽은 후에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미라가 된 강도」), 검투사들은 왜 날렵하기보다는 대개 뚱보였는지(「검투사」), 돌고래가 어떻게 물속에서 잠자고 꿈을 꾸는지(「돌고래의 꿈」)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항목들이 가득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부족들의 놀라운 풍습과 오래된 지혜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 주기도 한다. 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건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베르베르는 신화에 자신의 해석을 가미해 원전과는 미세하게 다른, 하지만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되살려 놓는다. 어느 페이지를 보더라도 흥미진진하고 놀랄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더위와 함께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코로나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는데 불쾌지수란 말이 다시 등장할 때다. 어쨌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 시기를 어떻게 현명하게 넘기느냐다. 위 소설이 해답이 될 수도 있고, 최소한 영감이라도 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지만 그 지식을 펼치기 위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기 위해 지식을 쌓아온 작가니까 독자들은 그저 흡수하면 될 일이다. 쉽게 읽힌다. 소설은 좋지만 과학은 싫다는 분도 읽으면 과학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흥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독자는 베르베르와 동시대 같은 하늘을 보며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며,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소설가이다.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별들의 전쟁」세대에 속하기도 하는 그는 고등학교 때는 만화와 시나리오에 탐닉하면서 『만화 신문』을 발행하였고, 이후 올더스 헉슬리와 H.G. 웰즈를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베르나르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눈높이, 예를 들면 개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300만 년 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오만함을 1억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아남아온 개미들의 눈에 빗대 경고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거대한 잡동사니의 창고이면서 그의 보물 상자이기도 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은 개미들의 문명에서 영감을 받고 만들어진 것으로, 박물학과 형이상학, 공학과 마술, 수학과 신비 신학, 현대의 서사시와 고대의 의례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 형식을 선보인다.

2008년 11월에 출간된 독특한 개성으로 세계를 빚어내는 신들의 이야기 『신』은 집필 기간 9년에 달하는 베르베르 생애 최고의 대작으로, 베르베르가 작품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천착해 온 '영혼의 진화'라는 주제가 마침내 그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 승리자의 역사이며, 진정한 역사의 증인이 있다면 그 답은 단 하나 '신'일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는 『우리는 신』,『신들의 숨결』,『신들의 신비』를 묶어서 6권으로 출간하고 있다. 베르베르는 현재 파리에서 살며 왕성한 창작력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집 『파라다이스 Paradis sur mesure』와『카산드라의 거울』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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