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보는 르네상스 미술
노성두 지음 / 스푼북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의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J.Gombrich)는 1950년 출판한 저서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에서 "사실상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이라는 단어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곰브리치는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고 믿었다. 개별작품 해설에 치우치거나, 통시적 사실 나열에 그쳤던 미술사는 곰브리치에 의해 '역사성'을 획득했다. 이 책은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미술 입문서로 자리잡았으며, 세계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600만부나 팔렸다. 또 H.W 젠슨의 동명의 저작도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리며 곰브리치의 저작과 함께 현대 미술학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두 책은 서양미술사의 시대 구분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두 책을 인용했던 책을 읽은 독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연대순 시대 구분은 고대 미노아-미케네-그리스-에투루리아-로마-중세-로마네스크-고딕-비잔틴-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고전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표현주의-20세기 미술로 흘러왔다. 이후 서양미술사는 시대별 구분을 할 때는 대체로 이 연대순의 시대별 구분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가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던 미술교과서도 이 구분에 따라 기술한다. 이 가운데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 미술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실적으로 작품 수도 가장 많다고 한다. 독자도 학교 다닐 때 화가나 작품 수가 많은 데다 영어 표기와 원어 발음이 달라 혼동되고 암기는 암기는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 『단숨에 보는 르네상스 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세와 근대로 혁명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사뿐만 아니라 역사, 음악사 등 서양의 역사 관련 책은 모두 이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것을 명쾌하게 해설해준다. 하지만 문제집 요약본처럼 작가의 특징과 작품 해석과 포인트를 짚어 주지는 않는다. 당시의 사회가 어떠했는지,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작품의 디테일은 어떠한지 설명하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제공하고,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당초에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썼다는 말이다. 그러나 독자가 볼 때는 굉장히 밀도 있고 차분하게 글을 전개시켜 한 번 읽음으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쓰인 것으로 보인다. 독자도 배움의 자세로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자가 앞서 언급한 '서양미술사' 책이 아니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성격 규정과 역할, 어떤 작품이 어떤 의미로 창작됐으며 화가와 작품 중심의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더불어 아름다운 비유를 통한 작품의 묘사는 한층 몰입도 있게 르네상스 시대에 빠져들게 하고, 풍부한 시각 자료를 통해 더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예술이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를 이해한다면 독자들에게는 소장 가치도 큰 귀중한 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저자 노성두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이는 르네상스는 중세 암흑기(신[神] 중심)에서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흥이 예술의 부흥 운동이라는 점에서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인문주의, 휴머니즘 등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르네상스 기(期)에는 거의 모든 미술과 음악, 역사, 사상 등의 가치관이 바뀌어 간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유럽 전체가 통일된 양식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알프스슬 경계로 북쪽과 남쪽 지역은 양식이 발현된 시기와 성격에 차이가 있어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이 북유럽으로 전파되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다. 북유럽에서는 고딕 양식의 극복, 이탈리아에서는 비잔티움 양식의 극복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이 자신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사실도 서로 다른 점이다. 이에 따라 르네상스 미술은 고딕과 비잔티움 미술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해결을 제시한 셈이라도 저자는 말한다.

 


 

책에 따르면 예술에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다.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예술 작품을 보면 그 시대의 특징과 문화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술은 이성과 감성을 아우르는 분야이다. 작가의 구상이나 창작욕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지식과 기술은 이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을 공부하는 것은 전인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기나긴 미술의 역사에서 르네상스가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그것은 르네상스가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를 극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 중심의 사상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미술은 거룩하고 신성한 신의 모습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고민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모델북이 아닌 실물 모델을 보고 그리는 사생 미술과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원근법을 발명하고 인체 비례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르네상스는 과거를 계승하면서도 창의적인 시도가 끊이지 않던 혁신의 시대였다. 그러나 저자는 중세 미술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는 않는다. 중세 시대는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고 한다. 라틴어로 계약서나 공정 증서를 작성하는 상인 계급은 중세 말기에나 등장한다는 것을 그 증거로 삼는다. 서기 600년께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시기에 글을 배우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였다. 심지어 카룰루스 왕조를 세운 샤를마뉴 대제도 까막눈이었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 교황이 권장한 종교 미술은 성서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르네상스, 즉 인문주의 운동은 고대 문헌의 발굴과 연구로부터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르네상스를 처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페트라르카는 알프스 골짜기를 뒤지면서, 수도원 지하의 먼지 쌓인 고문서들을 뒤적이며 고대 로마 시대의 흩어진 단편들을 모았다. 여기서 역사상 처음으로 옛 문헌을 고증하여 이를 비평하고 해석하는 학문인 '비교 문헌학'의 체계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페트라르카는 알프스 몽방투 위에 오른 다음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은 시대의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늘과 대지와 바다가 굽어보이는 몽방투 꼭대기에서 불현듯 품속에 간직했던 책을 꺼내 손 가는 대로 펼쳤는데,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높은 산, 바다의 드센 파도, 유장히 흐르는 강물, 대야의 순환과 별들의 공전에 대해서는 감탄하면서 정작 자신의 내면은 들여다볼 줄 모른다."

페트라르카가 꺼내 든 책은 초대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었다. 이 책에는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봄으로써 창조주의 신비와 만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900년이 지난 페트라르카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의 도전에 맞서며 자신의 사유를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세라면 마땅히 신에 대한 도전이자 불신으로 해석될 일이다.

 


 

페트라르카가 연인 라우라에게 바친 소네트 77번은 연인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폴리클레이토스, 그리고 빼어난 명성을 떨친 숱한 예술가들이 / 목을 빼고 수천 년을 찾아본들 / 내 심장 정복한 그녀의아름다움에 비기면 터럭만큼도 미치지 못하리."

저자는 이 시를 "페트라르카는 폴리클레이토스를 들먹이며 그런 거장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라우라가 가졌다고 뽐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폴리클레이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조형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운 기원전 5세기의 조각가이다. 저자는 "성서의 예언자들과 제자들, 천사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고전 문학과 고대 신화의 주인공들, 그리고 고대 미술의 거장들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게 태동된 르네상스는 미술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온다. 이 특별한 변화를 8가지로 여기에 적는다.

① 사생 미술

② 금색의 제한적 사용

③ 원근법의 발명

④ 고대 인체 비례의 재발견

⑤ 고대 건축의 재발견

⑥ 고대 미술의 소재들

⑦ 고대 예술가들의 일화 소재

⑧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모 경쟁

 


 

저자는 르네상스의 특징으로 꼽은 '8가지의 변화' 외에도 르네상스 시대에 3대 거장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및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각 장(章)으로 나누어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특히 유럽의 건축물에서 흔히 보는 '돔'의 형태가 브루넬레스키의 디자인이라고 해서 독자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고대에나 중세에 돔 지붕이 없었나?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저자의 설명에 새로운 건축기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건축술로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돔 지붕을 브루넬레스키가 완성시킨 사실은 처음 배웠다. 이와 함께 메디치가(家)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후원 가문이라고 들었고, 지금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메디치'는 곧 '예술계 후원'으로 통하고 있다. 물론 '메세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피렌체가 메디치를 낳았고, 메디치 없는 피렌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후원의 규모나 열정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았다. 당시 피렌체시(市) 의회는 일개 시민의 신분에 블과했던 메디치가의 코시모에게 국부(나라의 아버지) 칭호를 선사했다고 한다. '국부'는 고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이후 유일하게 메디치의 코시모에게 주어진 명예스러운 칭호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 : 노성두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교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 고전고고학, 이탈리아어문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서양 미술에 대한 100여 권의 책을 쓰고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주요 저서로《유혹하는 모나리자》《성화의 미소》《노성두 이주헌의 명화 읽기》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알베르티의 회화론》《예술가의 전설》《바보배》등이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