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 - 그웬과 아이리스의 런던 미스터리 결혼상담소
앨리슨 몽클레어 저자, 장성주 역자 / 시월이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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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개전 초, 파죽지세였던 독일군에게 영국은 마지막 퍼즐을 꿰맞추는 나라였다. 이때 독일 공군은 1940년에서 1941년에 걸쳐 바다 건너 영국에 대규모 폭격 및 공습을 감행한다. 독일 공군은 무차별 공격을 위해 전략폭격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우리의 대한해협처럼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좁은 바닷길이 도버해협이다. 독일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을 손아귀에 넣을 것으로 본 것이다. 이를 영국 측에서 일컬은 말이 '영국 대공습'이다.

영국의 주요 도시가 모두 전격폭격의 대상이 되었지만, 보통 '전격폭격'이라 하면 그 중 가장 유명한 '런던 대공습(London Blitz)'을 말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은 영국 왕립공군을 궤멸시키고 영국에 상륙(바다사자 작전)하려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이 와중에 독일 공군이 런던을 오폭하자 영국측도 베를린을 보복 폭격했고, 이에 히틀러와 괴링은 민간에 대한 폭격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영국군만 아니라 본토의 민간인들이 대거 폭격을 받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40년 9월 7일에서 1941년 5월 21일 사이에 영국의 주요 도시 16곳에 최소 100 임페리얼 톤(미터 톤의 111.6% 배) 이상의 고폭탄이 투하되었다. 267일간 런던은 71회, 버밍엄, 리버풀, 플리머스는 8회, 브리스틀은 6회, 글래스고는 5회, 사우스햄턴은 4회, 포츠머스와 헐은 3회, 나머지 8개 도시도 최소 1회 이상의 대형 폭격을 겪었다.

당시만 해도 폭격기는 항상 이겨내며,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특히 야간일 수록 더하다는 믿음이 존재했다고 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전략폭격이란 산업시설과 정부기관, 산업시설, 통신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상대가 전쟁에 나설 수단을 빼앗게 된다. 민간 폭격은 사기를 꺾고 남은 공장만으로 생산 저하를 유발한다. 대중의 여론이 고려되는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특히 취약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기나긴 전쟁도 미군 참전, 소련군의 대반격 등으로 전세가 바뀌면서 더 이상의 런던 대공습은 없었다고 한다. 런던 시민들은 전쟁 전과 같은 일상 생할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생계와 산업시설 복구 작업으로 다시 뛰어든다. 우리가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런던 시민들은 폐허로부터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 『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는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런던 중심가에 부서지지 않고 버틴 낡은 건물에 한 사무실이 개소하면서 시작된다. 영리하고 충동적인 아이리스 스파크스와 현실적이고 사려 깊은 그웬덜린 베인브리지가 주인공들이다. 성격도 외모도 딴판인 두 여성은 VI 로켓 폭탄을 맞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이 건물에, 그래서 어떤 희망 같은 게 느껴지는 이곳에 의기투합해 ‘바른 만남 결혼상담소’를 열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성행했던 결혼상담소(결혼 중개)다. 지금은 우리도 젊은 세대가 결혼을 포기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활동도, 상담소 숫자도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호황을 맞아 엄청난 특수를 누렸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두들 서둘러 무너진 일상을, 정상적인 삶을 다시 재건하던 때, 아이리스와 그웬도 그 누구보다 자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탄탄대로 같았던 창업의 순간도 잠시,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새 고객이 피살된 채 발견되고 살해 용의자는 두 사람이 소개해준 남편감 후보로 밝혀진 것. 경찰은 용의자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억울한 용의자의 누명을 벗기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상담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스파크스와 베인브리지는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일이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모험이 될 줄은 까맣게 모른 채로.

 

 

종일 울리는 항의 전화에 그웬과 아이리스는 연신 이런 해명을 되풀이했다. 사무실에 들이닥쳐 집기며 증거가 될 만한 서류들을 헤집어놓은 경찰들과 소문을 듣고 사무실에 잠입한 악성 루머 제조 기자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바른 만남 결혼상담소’의 명예를 걸고 찾은 디키 트로워가, 그 누구보다 멀쩡해 보이던 남편감이 하루아침에 살인 용의자로 지목됐다. 디키 트로워는 출셋길에 오른 회계사였다. 잘난 체하는 구석이 전혀 없고, 숫기 없어 보이지만 남들의 진짜 가치를 꿰뚫어볼 줄 아는 진지함을 갖춘 꽤 괜찮은 남자였다.

그런 그가, 틸리하고 편지를 주고받았고, 만났고, 약속 장소 근처 인적 드문 골목에서 틸리의 심장을 날카로운 도구로 단 한 번 찔러 그녀를 살해했다. 경찰의 말대로라면 그렇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만난 디키 트로워는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항변할 뿐이었다. “제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그 여자 피가 묻은 칼이 발견됐다잖아요. 난 그날 밤 그 여자를 만나지도 못했다고요.” 누가 이 남자에게 이토록 완벽한 덫을 놓은 걸까? 결혼상담소를 찾았던 틸리 라살이 원했던 건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이제껏 만난 인간들하고는 다른 멀쩡한 남자 하나, 그뿐이에요.” 희망을 손에 넣어야 할 밤에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여자. 그녀를 죽인 진범은 누굴까? 사건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범행 동기가 완성된 용의자나 피살 이유가 확실함이 없는 상태로 복잡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끔찍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던 그웬은 그 치료를 빌미 삼아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아간 시어머니로부터 인형처럼, 쥐 죽은 듯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던 그웬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충동적인 아이리스와 우연히 재회한 일이 결혼상담소를 차리자는 다소 황당하고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결혼상담소 개업으로까지 이어졌고, 그 기회를 냉큼 붙잡았다.

전쟁 중 비밀첩보요원으로 활동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했지만 국가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이리스는 이제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내려지는 명령, 남자 상관들의 지시라면 신물이 난다. “내가 너한테 이 정신 나간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한 건, 무엇보다 평생 남자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소리 듣는 게 아주 지겨워 죽을 것 같아서였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살지는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어서였다고. 그랬는데 이제 그게 다 물거품이 될 판이야. 웬 미친놈이 죄 없는 여자를 칼로 찌르는 바람에!”

그웬과 아이리스에겐 이 상담소를 지켜내야 할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해당한 틸리도, 용의자로 지목된 디키도 모두 상담소의 고객 아니던가. “이제 나라를 구하는 건 질렸어. 이 5평짜리 사무실을, 그리고 완벽한 올가미에 걸려든 내 고객을 구할 거야. 우린 지금 궁지에 몰렸고, 난 궁지에 몰리면 싸우는 쪽이야. 그것도 아주 지저분하게!”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 그웬과 아이리스가 틸리의 죽음의 진실에 성큼 다가가면서 거듭 일어나는 연속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히고설킨 인물들은 이 소설의 구조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든다. 틸리 라살이 살해당하기 전까지 일했던 고급 여성복점의 재단사 톨버트, 그 남자가 서랍 속에 은밀하게 수집해둔 틸리의 외설스러운 사진은 그녀의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틸리의 전 남자친구이면서 틸리를 미행해 결혼상담소 사무실을 청소부로 가장하여 방문한 로저 필처는 대체 왜 그녀의 행적을 뒤쫓았던 걸까? 위조 배급표를 유통시키다가 체포당한 적이 있던 틸리는, 위조 배급표를 비롯한 모든 품목의 뒷거래 암시장을 주름잡던 보스 아치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이 촘촘한 인물들과 서사들을 실감 나게 연결하고 매끄럽게 완성시키는 건 무엇보다 생생한 역사 고증에 있다. 저자는 책과 기사문, 사진, 뉴스 필름 등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1930~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런던 생활사를 현실감 있게 복원해냈다. 독자들에게는 흥미거리가 늘어난 셈이다. 특히 그웬과 아이리스의 눈부신 활약에 재치와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능수능란한 대사는 이 소설의 특별한 묘미이기도 하다. 작은 단서들로부터 극적인 시퀀스로 나아가는 미스터리의 정석에 목이 말랐던 추리소설 독자라면 이 책은 단연코 반길 작품이며, 훌륭한 역사 추리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는 첫 권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활약을 담은 시리즈가 3편까지 영국에서 출간되었고, 저자는 4편을 집필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방금 그 반응은 너무 티가 났어요. 남을 감쪽같이 속이려면 자기한테 불리한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무심코 반응하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살인자 훈련소에서 맨 처음 가르치는 게 바로 그거예요.”(p.477)

 

저자 : 앨리슨 몽클레어(ALLISON MONTCLAIR)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손때 묻은 페이퍼백판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과 제임스 본드 영화에 푹 빠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처럼 통탄스러운 가정교육 탓에 자연스레 범죄와 음모, 스파이 이야기에 중독된 작가로 성장했다.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역사 속의 구석진 곳과 감춰진 곳, 분열된 곳을 뒤져보며 기묘한 수수께끼들을 찾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설로 탈바꿈시킨다. 2019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런던에서 결혼상담소를 운영하는 아이리스 스파크스와 그웬덜린 베인브리지가 주인공인 역사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멀쩡한 남자를 찾아드립니다THE RIGHT SORT OF MAN』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아이리스 스파크스-그웬덜린 베인브리지 콤비가 등장하는 『왕실 연애 사건THE ROYAL AFFAIR』과 『악당의 동행THE ROGUE‘S COMPANY』을 연이어 발표했다. 현재 같은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역자 : 장성주

출판 편집자를 거쳐 번역자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토머스 새비지의 『파워 오브 도그』,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 『언더 더 돔』, 〈다크 타워〉 시리즈,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제왕의 위엄』,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우화』, 윌리엄 깁슨의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 레이 브래드버리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메즈 가즈오의 『표류 교실』 등이 있다. 2019년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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