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메디슨 - 살리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를 둘러싼 숨막히는 약의 역사
송은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히스토리×메디슨』은 세계 역사를 바꾼 '약'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책으로 분류되어도, 의약사책으로 분류되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양 분야에 대한 저자 송은호의 해박한 지식으로 인류 역사와 약에 얽힌 12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특히 이 책은 약에 의해 뒤바뀐 세계 역사를 다룬다. 약은 원래 질병에 의한 신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상처의 고통이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 고대에는 인간 집단이 국가 단위로 커지고 전쟁도 잦았던 만큼 인간에게 약은 꼭 필요하고 중요했을 것이다.

고대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된 40살 정도였다고 하니, 불로초나 영생 불사의 약은 왕이나 황제, 지배 계층의 최상부에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하고, 구할 가능성이 있지 일반적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 피지배 계층의 대부분 사람들은 음식이나 물, 또는 자연의 오염으로 인한 병의 치료가 더 절실했을 것이다. 당시 의학 수준으로 본다면 작은 상처도 치료되지 않을 경우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을 테니 역시 약은 생명 유지에 절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의 현대 의학이라면 큰 병으로 생각되지 않을 배탈이나 과식, 식생활에서 생긴 질병이라도 치료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상태였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욕심이었겠으나 이런 정도의 욕심은 지배층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왕이나 황제가 꿈꿀 일이지, 일반 사람들이 이런 약을 구한다고 알려지면 역적 행위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독자는 저자가 이 책에 담은 열두 개의 이야기 제목에 모두 퀘스천마크(물음표)를 붙인 이유에 주목해본다. 히틀러가 죽은 이유는 사실 돌팔이 의사 때문이다? 누가 잔 다르크를 마녀로 몰아갔는가? 보르자 가문을 대표하는 독약이 있다? 위대한 성인 간디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만인이 사랑하는 반 고흐의 작품에 숨은 비밀은? 그동안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약’을 통해 세계사를 파헤치는 책인데 왜 의문부호를 붙였을까.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아서일까? 명제가 잘못된 약에 대한 상식에 반대의 내용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의문부호를 붙였을까. 아무튼 독자는 약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약과 관련한 역사 재조명에는 무한한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독자가 약보다는 역사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원래 ‘인문학 하는 약사’로 알려진 분이다. 이 별칭은 아마 전작 『일상을 바꾼 14가지 약 이야기』, 『내가 만든 약이 세상을 구한다면』과 라디오 방송에서 〈메디슨 카운슬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약과 관련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진행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살리고 저자의 약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함께 버무려내는 굉장한 능력을 가졌다. 저자는 ‘약사’라는 전문성에 인문학적 지식을 더하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합쳐 살리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를 둘러싼 숨막히는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는 ‘약’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세계사 속 인물들이 결정적 순간에 선택한 약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들의 삶과 업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새로운 시선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클로즈업해 건져 올려 오늘날 인간 욕망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약이 인간의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려는 게 이 책의 집필 이유다.

 


 

이 책은 지루하고 어려운 역사책이 아니고, 어렵고 외우기 힘든 영어 등 외국어 투성이인 약의 역사도 아니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풀이한 역사 교양서쯤으로 해석해도 되지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약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우리들에 대한 배려라고 독자는 믿는다. 감춰진 역사도 알고, 약에 대한 상식을 더 늘리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약'과 관련된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은 누구도 쉽게 추측하지 못할 비밀과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충분하게 알려준다. 약을 소재로 하는 소설보다 흥미롭고 다른 역사책에서는 소홀히 다룰 수 있는 역사상 주인공들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누구도 몰랐던 약의 숨은 역사 이야기를 가장 먼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열두 가지 이야기에 대한 별도의 「프롤로그」를 책의 머리에 두고 있다. 프롤로그의 제목도 신비감을 자아낸다. '세계사 속 그들이 그 약을 선택한 이유'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 '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자답 시간을 조금 가져봤다. 독자는 약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전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인간이 가장 많이 죽은 원인은 '질병'이라고 말한다. 질병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인간이 죽는 가장 큰 원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학자들의 말-지금까지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 중 절반이 모기가 전염시키는 '말라리아' 때문-을 덧붙인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학자들이 연구해 발표한 내용이라면 못 믿을 이유가 없다.

 


 

이뿐 만이 아니다. 학자들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결핵' 때문에 인류의 7분의 1이 사망했다. 가까운 2002년에만 전염병으로만 죽은 사람이 1,400만 명으로 집계됐다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우리가 월드컵을 치르고 응원과 환호성에 빠져 있을 때 그해 전염병으로 1,400만 명이 죽었다니 쉽게 믿음이 가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미국에서 1년 만에 40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미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4년 동안 죽은 미군 수를 합친 것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삼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생긴다. 이 같은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아직 학계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대신 여러 가지 설(說)을 말한다. 자연이 늘어난 인구수를 억제하는 방법이라는 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잠들어 있던 병원체가 등장한 것이라는 설, 야생 동물을 잡아먹어서 그렇다는 설 등을 저자는 소개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인류가 마주한 여러 위기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이번 코로나-19의 백신이 유례없이 일찍 만들어 서둘러 접종을 해서 이만큼 감염 확산을 막은 데 기여했다는 데 독자는 동의하지만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니다'고 저자는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감염병이 돌고 백신이 만들어졌으면 변이 바이러스 등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 세계적으로 접종을 실시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쉬운 것 같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민의 87%가 접종했으나 전 세계 인구의 백신 접종률은 65%에 미치지 못해서 갈 길이 멀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아마 백신 개발과 비용을 어느 국가에서 지원해줄 수 없으니 판매할 수밖에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생명과 인류 전체에 대한 위협에도 자본주의 속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제 약은 마법과 비과학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바뀌었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지만 약학이 추구하는 가치는 과거 연금술이 추구하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질병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하고, 필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으며,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삶의 질을 높이고, 활기찬 육체와 총명한 정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 성생활이나 탈모, 여드름 같은 치부마저 약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꾸준히 발전하고 매번 새로운 발견이 등장하는 현대 약학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라고 설명한다. 독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약의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을 꼽고 있다.

책에 따르면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약과 제약 기술, 의학 기술의 토대가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을 살리는 약은 곧 병력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고 군인들의 전투력 유지와도 직결됐다. 지금은 신약을 만들려면 수많은 임상 시험과 까다로운 규정을 거쳐야 하지만, 기관총과 포탄이 끊임없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는 새로운 약을 시험할 수 있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선 실험 절차도 환자 인권도 중요치 않았다. 그 덕분에 수많은 신약이 개발됐다는 잘 알져지지 않은 사실도 전해준다. 사실 전쟁 속 약의 개발 뒤 어두운 면이 있음을 직시한다. 바로 중국 헤이륭장성 하얼빈의 일제 관동군 사하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의 인체 실험'은 우리가 역사을 통해 들은 바다. 미국이 전쟁에 이긴 후 731부대장 및 수뇌부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말도 들은 바 있다. 끔찍한 실험으로 얻은 실험 데이터와 의학 지식을 미군들이 눈독 들였기 때문이다. 처벌 받지 않은 그들은 전후 회사를 만들어 지금 거대 제약회사가 됐다고 한다.

 


 

약은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 좀 더 편한 인생을 살기 위해, 대머리나 발기 부전과 같이 말 못할 고민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약이 꼭 사람을 살리고 돕는 용도로만 쓰였을까? 약의 종류는 무궁무진하고 약이라고 꼭 사람을 살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약도, 독약도 모두 '약'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 약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죽어가던 영웅을 살리고, 소리 없이 은밀하게 적을 죽였으며,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명상가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정치가에게는 권력을, 군인에게는 광기를, 운동 선수에게는 승리를 가져다줬다.

인간의 역사가 '욕망의 역사'라고 한다면 약은 '약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도구'이자 '인간의 사회적·시대적 욕망이 실체화된 존재'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열두 가지 이야기 외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독약,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마법의 묘약을 눈에 넣은 점안액으로 등장한다. 무협지에서는 내공을 올려주는 환으로 만든 알약이 나온다. 영국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는 약사의 경험을 살려 독약이 등장하는 소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신화, 문학,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이야기 속에서 약은 수없이 등장한다. 불멸의 약처럼 때로는 누군가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언가를 얻거나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01 마지막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02 욕망의 끝은 비극이어야만 했는가?

03 누가 그녀를 마녀로 몰아갔는가?

04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독약이 있다?

05 백신의 특허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06 미국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통풍이었다?

07 살인적 스케줄 속에서 그는 무엇으로 견뎠는가?

08 만인이 사랑하는 그의 작품에 비밀이 숨어 있다?

09 우리나라와 국민을 살린 기업은 어디인가?

10 그가 죽은 것은 사실 돌팔이 의사 때문이다?

11 흙에서 생명을 찾은 그의 인생은 어떠했는가?

12 위대한 성인의 추악한 이면을 발견하다?

 

저자 : 송은호

 

현직 약사. 건축학과, 생명공학과, 철학과, 약학과 등 여러 전공을 공부했고, 조선대학교 약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주 인문학 공부 모임인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집행부로 일했으며, 후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문학·철학·예술 분야를 가르치는 ‘청년 인문 살롱’ 프로그램 현대 철학 강사로 활동했다. 평소 약의 기전과 효능뿐만 아니라 약과 관련된 역사, 사회적 이슈,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전하는 데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이토록 흥미로운 약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신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약사라는 직업 특성을 살려 현재 유튜브에서 약의 역사와 정보를 알려주는 〈펭귄약사〉 채널 운영과, 생활 속 약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TBN 부산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메디슨 카운슬러〉 진행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일상을 바꾼 14가지 약 이야기》《내가 만든 약이 세상을 구한다면》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