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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그림 산책 -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명화 에세이
이영춘 지음 / MiraeBook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 『아주 사적인 그림 산책』은 저자 개인의 일상에 대한 단상을 적은 에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에세이와 다른 점은 저자 개인적인 일상의 에피소드, 생각, 감정, 상념 등을 세계 명화와 연결고리를 찾아내 썼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의 생각으로는) 명화나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 등을 잘 알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에세이이다. 저자가 그림 감상을 위해 쓴 해설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방면에 매우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다. 이 책은 그래서 독자의 산책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산책'이다. 독자는 '명화 감상'을 하면서 그림을 익혀두는 것만으로도 좋을 듯하다.
물론 저자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그림을 보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자신처럼 많은 독자들 역시 일상에서 그림의 위로를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 저자는 "지치고 힘들 때에는 백 마디 말보다 다정한 그림 한 점이 더 큰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림 속에 담긴 화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그림이 그려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은 덤이다."라고 밝힌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집필 이유이다. 저자가 일상을 보내면서 그림을 떠올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연결지은 것처럼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독자는 더 꾸준한 그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도 편안함과 소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 「프롤로그」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프롤로그에 한 점의 그림이 있다. 에두아르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이란 작품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잠깐 소개한다.
식탁 위에 놓인 '파 뿌리'. 따 쓰고 남은 파와 뿌리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둔 데 대해 아내에게 짜증이 난다. 조금 전에 다퉜던 듯하다.
하지만 화가 나고 분노 표출 일보 직진이지만 저자에게는 이내 마네의 이 그림이 생각난다. 거장 화가인 마네는 왜 하찮은 식자재인 아스파라거스를 그렸을까?를 떠올리며(마네는 당시 몸이 좋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해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짜증을 쉽게 억누를 수 있다. 갑자기 화를 내려 했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럽다. 그리고 곧 파뿌리에 대한 좋았던 기억도 떠오르며 다툼의 짜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저자의 사유는 더 깊어진다. 소소한 것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저자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내에 대한 화는 사라지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마음만 남는다.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책은 3개의 부(part)로 이뤄져 있다. 1부 「그림을 읽는 일상」, 2부 「그림이 필요한 순간들」, 3부 「따뜻한 그림 한 점의 위로」이다. 각 부의 각 장(chapter)은 앞서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것처럼 명화 한두 점, 당시 화가의 생활이나 건강 등 일상, 그리고 저자 일상의 에피소드나 단상으로 이뤄져 있다. 1부 1장의 경우 〈찢어진 우산으로 본 세상〉에서는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1875년에 그린 「비 내리는 에르」란 작품이 실려 있다. 저자는 출근길에 급하게 나오다 찢어진 우산일 줄 확인도 안 한 채 들고 나왔지만 막상 펴보니 찢어진 우산이라 난감했다.
그러나 찢어진 우산 사이로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의 거리가 아름답게 보였다고 술회한다. 그때 저자의 머릿속에는 이 그림이 떠올랐나보다. 아니면 나중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자는 찢어진 우산 때문에 아름다운 출근길을 처음 발견했고 그 인상이 짜증보다는 미소를 안겨줬을 테니. 이 그림은 독자도 무척 좋아한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빗방울이 파문을 내며 흩어지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본 추억 때문이다. 그 추억이 아름다운 추억이었기 때문에 비 내리는 날 우연히 발견한 조그만 웅덩에 빗물이 떨어질 때도 아름답게 보인다.
이 장에서 저자는 사유는 더 확대되고 더 깊어진다. "기대하지 않은 놀라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비를 막지 못해 쓸모가 없어진 우산 덕분에, 이전과 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함께 연상된 카유토트의 그림은 덤이다. 쓸모없음이 상황에 따라서는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촉촉한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 생각이 났다.
막대한 유산을 통해 부자가 되었지만 화가를 꿈꿨던 카유보트(1848~1894). 처음에는 자신만의 그림을 통해 이름난 화가가 되고 싶었다. 차별화 전략도 있었다. 당시의 '현실'을 그리는 것이었다. 당시 예술계를 주도했던 화풍은 신화와 역사 속 장면을 그리는 신고전주의였지만 그는 역으로 근대화를 맞이한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도시생활을 주제로 삼았다. 당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면서, 파리는 이전과 다른 근대적 도시가 되었다. 오스만 남작에 의해 개발된 파리는 ㅅ야젤리제 거리의 도로가 포장되고, 곳곳에 공원이 생겼다. 산업화로 인해 삶의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파리 근교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를 카유보트는 그림에 담고 싶었다. 그러한 그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 대목은 저자의 낙관적인 성품이나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사유와 노력 등이 모두 드러나는 부분이다. 거기에 그림에 대한 지식도 잘 드러난다. "카유보트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한 장면처럼, 비 오는 날 파리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전의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을 잘 포착했다. 독특한 구도와 치밀한 구성 속에서 여전히 원근법이 유지되고 있지만, 더 이상 그림은 신화와 역사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여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화가와 평론가, 관람객들은 이런 '현실'을 그렸던 카유보트를 조롱했다. 저속하고 천박한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생각처럼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이 그림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나갔다. 바로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사들이고,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자들은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그렸던 예술가 그룹을 지칭한다. 그들이 첫 전시회를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인상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인상주의'라는 칭호 자체가 조롱에서 나온 칭호했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그들은 예술계를 주도했다.(p.17)
350페이지 가까운 이 책은 이처럼 세계의 명화, 당시 화가들이 주도한 흐름, 화풍은 물론 새로운 시도까지 그들의 삶과 묶어 통찰력 있는 저자의 해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는 세계의 명화로 꼽히는 근현대의 그림이 주로 들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미술계의 흐름에 변화가 생기는 부분까지 저자의 눈과 지식으로 분석해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카메라가 없던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게 그림이고, 그 그림은 왕, 귀족 등 지배계급은 물론 천민 대우을 받던 사회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듯하다.
로마처럼 유럽 제국을 꿈꿨던 나폴레옹에 대한 두 장의 그림((p.198~199)도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서로 다른 화가의 그림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뀐 것으로 추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림이다. 저자는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의 정도 아낌없이 표현한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두고 "별을 바라보며, '고통'을 생각했다. 별(star)의 어원은 '상처(sca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처는 아물면, 더 단단해진다. 별로 그렇다. 밝게 빛나는 별은 그만큼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반 고흐는 정신병으로 입원한 생폴 드 모졸 요양원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것이리라. 그만큼 상처 입은 자신을 마주했기 때문이다."(p.234) 독자에게는 그림에 대한 많은 지식과 화가들의 삶뿐만 아니라 저자의 그림에 대한 지식, 깊은 사유, 삶에 대한 사색 등이 오롯이 전해져 오는 책이다.
"그림으로 인해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내면의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경험을 독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행복은 큰 것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각각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에서 오는 기쁨을 누린다면, 삶이 얼마나 그림처럼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삶 속 가치를 발견한 화가들의 그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비참했으며, 실패가 많았거든요. 그들에게서 위로를 얻고, 그림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림을 보며 내 마음이 흔들렸던 그 순간이 저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p.328)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이영춘
캐리의 친구이자, 강이와 산이의 집사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교사. 저서로는 『영화 속 역사 깊은 이야기 : 한국사 편』(공저), 『미술관에 간 개냥이』 등이 있다.
“ENFP 성향의 초보 아빠다. ‘재기발랄 활동가’로 불리는 MBTI의 유형만큼 공상을 즐겨한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망상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소소한 일상의 탐험가’라고 부르고 싶다. 성향 탓인지 가만히 있질 못한다. 사소한 사물을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대하소설’을 머릿속에 쓰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 그림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는다. 나만의 그림과 화가들은 내 삶의 동반자이자, 가상의 멘토들이다. 나는 내 딸이 힘들고 지칠 때,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세상이지만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