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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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전에 읽고 알고 있는 '판도라(Pandora)'는 이 책 『판도라는 죄가 없다』에 나오는 판도라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었고(극히 일부 발췌본)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얻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서 만들게 한 여성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판도라가 온갖 불행을 가두어 둔 상자를 호기심에 못 이겨 여는 바람에 인류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책을 통해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생각 나는 여인이 한 명 더 있다. 성경 속 에덴동산의 '이브'이다. 이브 역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리 인간은 그 벌을 대신해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독자는 어렸을 때 그리스·로마 신화를 수많은 버전으로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발췌본(그때는 발췌본인지도 모르고 읽었다)이고 발음도 달라 아직도 신과 영웅, 여신과 왕비 등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은 몇 안 된다. 그만큼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또 다양하게 해석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 들어 배운 바로는 특히 그리스어가 로마의 라틴어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이 모든 이름들을 그래도 몇몇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사실 로마의 실존 인물인 율리우스 캐사르도 영어로 처음 접했기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라고 알고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킨 문명이다. 제국이 멸망하고 화려한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유럽의 각국,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로마의 문명이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모태로 삼고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1896년경(위) 및 쥘 조제프 르페브르 [판도라] 1882. 출처 :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그리스 문명의 위대함은 별도로 역사나 문학, 철학, 사상 등 각 분야별로 배웠지만 제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먼 문명이었다. 중국의 문명을 받아들인 우리로서는 중국의 문화가 훨씬 가깝고 더 친근했다. 지금의 중국 문화는 옛날 중국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국 문명도 서양에서 만든 공산주의 이론에 의해 다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중국 문명이 어쨌든 우리는 지금 서양 문화와 더 가깝고 더 친근함을 느낀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의 서평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그친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 문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저변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니까.

『판도라는 죄가 없다』의 저자 나탈리 헤인에 따르면 우리가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여성들은 사실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티라노스〉에서 이오카스테의 대사 분량은 10%도 되지 않고, 오이디푸스의 대사 분량은 다른 인물들보다 5배 이상 많다. 우리는 이오카스테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오카스테의 남아 있는 이미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왜일까? 저자는 고대의 그림 작가들은 나이가 많은 여성이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화가들은 대부분 10대나 20대의 여성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그들을 그릴 때는 지치는 법이 없었다. 이오카스테와 같은 40대 이상의 여성들의 그림을 남기는 데에는 남은 열정이 없었다.

 


판도라 인물관계도. 출처 :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저자의 해석의 관점은 약간 다르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예술·철학·과학 분야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판도라와 아마존 등을 제외한 여덟 인물에 간단한 설명을 독자가 임의로 덧붙인다. 저자와 관점이 다른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에 따른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오카스테(Iocaste) 왕비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와 결혼하여 오이디푸스를 낳은 이오카스테는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살을 섞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들을 산 속에 버리게 한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그와 결혼한 이오카스테는 2남 2녀를 낳지만 뒤늦게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헬레네(Helene) 왕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절세의 미녀이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지만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넘어가 함께 트로이로 도주하는 바람에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게 만든다.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메두사(Medusa) 괴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혹은 괴물로, 고르고네스 3자매 중 하나이다. 메두사의 얼굴은 너무나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린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닌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 왕비

그리스 신화에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왕비이다.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 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찾아온 아들 오레스테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에우리디케(Eurydike) 인명이 2명 이상 존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님페이자 전설적인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의 아내이다.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 밖에도 여러 명의 에우리디케가 있다.

파이드라(Phaedra) 왕비

영웅 테세우스의 후처이다. 전 부인의 소생 히폴리토스에 대한 사랑이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데이아(Medea, Medeia) 신화 속 인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이다. 아르고호 원정대를 이끌고 도착한 이아손에게 반해서 아버지인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그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이아손이 자신을 배신하고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하자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독살하고 이아손과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두 아들마저 제 손으로 죽여 이아손에게 복수하였다.

페넬로페(Penelope) 왕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이에 수많은 구혼자들로부터 결혼을 요구받으며 시달렸지만 끝까지 지조를 버리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페넬로페를 구해주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인물 관계도와 사진 2장을 싣는다. 이 관계도 및 사진은 각 해당 자료 하단에 설명에서 밝힌다.

 


 

책의 제목은 '판도라'에 관한 것이지만 실제 10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판도라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저자가 연구해온 여성 문제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적합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저자는 제 1장 「판도라」에서 "수 세기 동안 판도라의 이야기에서 강조된 부분은 인간의 타락에서 그녀가 혼자 도맡은 역할이다."고 말한다.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인간 타락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웠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브'보다 비교해도 지독하게 푸대접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서든, 혹은 악의로든 상자를 열지 않았다. 실제로 그 상자는 헤시오도스가 그리스어로 시(詩)를 쓰고 난 지 2,000년이 훨씬 지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고 말한다.

에라스뮈스가 헤시오도스의 운문 〈일과 날〉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까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상자는 없었다고 한다. 에라스뮈스는 '항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피토스'를 옮길 만한 단어를 찾고 있었다.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M.L. 웨스트의 설명을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헤시오도스가 쓴 말은 1m 정도 높이의 저장용 도자기 항아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항아리는 바닥 면은 좁고 너른 입구까지 벌어지는 구조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지 않다.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 어디든 좋으니 한 번 둘러보자. 고대 유물 항아리들의 수많은 균열과 수리된 상태를 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대 항아리들의 부서지기 쉬운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웨스트는 에라스뮈스가 판도라와 프쉬케(psyche, 그리스 신화에서 puxos(폭소스), 더 일반적으로는 pyxis(픽시스)로 발음되며, 지하세계를 탐험할 때 상자를 운반함)의 이야기를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저자의 주장도 '혼동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저자는 에라스뮈스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전에 판도라가 예술적으로 재현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비록 화가가 판도라를 악당으로 등장시키고, 그림의 이미지가 그 모습을 반영하더라도 그녀는 항아리와 함께 나타난다. 장 쿠쟁은 1550년 경 그녀를 판도라와 이브가 혼합된 〈에바 프리마 판도라〉로 그렸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다리 사이에 감긴 얇은 천을 제외하면 알몸인 상태로 누워 한 손은 항아리에, 다른 한 손은 인간의 두개골 위에 얹어 놓은 모습이다. 이후에도 그녀가 항아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림들은 더 있다. 헨리 하워드의 1834년 그림 〈판도라의 꽃병 열기〉가 그 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그로부터 약 40년 후쯤 나타날 것이다.

그 무렵 에라스뮈스의 정정본은 집단예술의식에 내면화된 듯이 보인다. 저자는 이처럼 시공을 초월한 예술 공간을 넘나들고, 역사적 사실을 파고 들어 판도라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잘못된 것으로 주장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것도 아니고, 이후 예술가나 역사가, 혹은 그 이외 학자들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판도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이브의 서사 전개 과정에서 아담과 뱀이 많은 비난을 피해갔듯이 제우스, 헤르메스, 에피메테우스 역시 이후 거의 모든 판도라와 관련된 서사에서 책임을 면제 받았다고 기술한다. 저자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역사 문헌적으로도 설득력을 얻고 따라서 역사에서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을 찾을 때면 항상 지침이 되는 원칙은 지나치리만치 '여자를 조심하라((cherchez Is femme)'였다고 강조한다.

 


 

이후 2~9장의 내용은 이처럼 저자의 집요한 연구와 여성들의 희생에 매몰된 이유 연구에 천착해 이 책에 적힌 나머지 9명의 인물들에 대한 여성 비하가 원인이고, 또 결과를 더욱 확실하게 못 박아 남성 중심의 남성 추축 사회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뒷 부분에 논저처럼 별도의 〈결론〉을 마련한다. 책에 다르면 판도라의 항아리에 담긴 것들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올 때 우리는 이것을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 1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고대 작가의 경우 항아리의 내용물이 항상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신화의 일부 버전에서는 좋다. 그러나 그 버전은 선호하는 서사로 널리 퍼지지 못했다. 아마도 상황이 예전만큼 좋지 않다고 믿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종류의 쇠퇴론, 즉 상황은 항상 약간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은 유혹이 더크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항아리를 여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여자 자체가 문제인가? 판도라는 첫 번째 여성이다. 남성들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판도라는 변화의 주체며, 제우스의 의지로 실현한 화신이다. 그녀는 순전히 악마가 아니다. 그녀의 놀라운 평판이 여러분을 믿게 할 것이다. 판도라는 이중적이다. kalon kakon, 아름답고 추악하며, 선이자 재앙(악)이다. 판도라가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복잡한 특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에 있는 모든 여성에게 해당한다. 어떤 이들은 악당으로 그려지고(클리타임네스트, 메데이아), 어떤 이들은 희생자로 그려지고(에우리디케, 페넬로페), 또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괴무처럼 그려진다(메두사). (중략) 우리는 더 이상 영웅과 악당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진심으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앗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질문이 생길 때 - 왜 우리는 여성을 중심에 놓는 그리스 신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 그것은 항상 이상한 가정으로 가득 차 있다. 기본적인 믿음이 여성은 이야기의 주변에 있고, 항상 그래왔다는 것이다. 신화는 언제나 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여성은 작은 역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여러 저자에 의해 쓰인 신화에 ‘진짜’ 혹은 ‘진정한’ 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굳어진 믿음 역시 포함된다.(p.357)

 

저자 : 나탈리 헤인즈(NATALIE HAYNES)

작가이자 방송인인 나탈리 헤인즈는 BBC 라디오 4 프로그램 〈나탈리 헤인즈 스탠드 업 포 더 클래식NATALIE HAYNES STANDS UP FOR THE CLASSICS〉의 시리즈 두 편을 직접 쓰고 진행했다. 2015년 고전을 더 많은 청중에게 전해준 공로로 고전학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이오카스테의 아이들THE CHILDREN OF JOCASTA》, 올해의 스코틀랜드 범죄 도서 후보에 오른 《앰버 퓨리THE AMBER FURY》, 그리고 2020년 여성상2020 WOMEN'S PRIZE FOR FICTION 최종후보작인 《천 척의 배A THOUSAND SHIPS》가 있다.

 

역자 : 이현숙

호주 매쿼리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으로 인터내셔널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였으며 영어 잡지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루이스 헤이의 치유 수업: 나를 위로해주는 마법의 긍정 확언》, 《조금 멀리서 마음의 안부를 묻다》, 《스토리텔링 불변의 법칙》, 《디즈니 픽사 소울 아트북》, 《세계 문화 여행: 러시아》, 《노엘의 다이어리》, 《스타를 찾아서》, 《신데렐라 프로젝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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