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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조선환담 ㅣ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2년 5월
평점 :
21세기에 쓰인 '전설의 고향' 같은 느낌의 책이다. 지금 시대에 쓰였다고 해서 현 시대의 괴담을 쓴 것은 아니지만 옛날, 특히 조선시대의 '환담(幻談)'을 말한다. 1970년대쯤 우리의 흑백 TV에서 무척 인기를 끌었다던 그 이야기들을 독자는 이 책에서 연상한다. 당시 굉장한 인기를 끌어 웬만한 분들은 다 기억하고 있던 드라마다. 지금도 중년 이상의 세대들은 무섭고, 괴기스런 이야기를 들으면 곧잘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네"라고 말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굉장히 오랫동안 방영된 당시 최고 인기 드라마라는 것이다.
어쩌면 산업화 시대에 '안방 극장'이라고 TV 제조·판매 업체들이 선전하던 흑백 TV 시대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들은 얼마 전까지도 컬러로 다시 제작해 방영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여름밤이면 더위 식히기에 이른바 '귀신 이야기'처럼 좋은 것을 없을 터다. 이런 소재들을 21세기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차가 오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아무리 과학이 우리 삶의 전반을 파고들어 괴기스러운 이야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뻔한 이야기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장르의 이야기다. 그것은 호러 영화의 인기를 보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책 『괴담실록』은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저자 괴담실록(필명이고 제목과 같은 '괴담실록'이다)은 출전이 있는 경우 출전을 모두 뒤지고 확인해 이 책에 적용했다. 물론 출전이 없이 구술로 전해져 온 이야기들도 약간의 각색을 더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밝히고 있다. 우리가 전해들은 괴담은 대부분 알고 있는 대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다. 즉 '착하게 살아야 복 받는다' '나쁜 짓을 하다 죽으면 지옥 간다'는 등의 속담처럼 사필귀정의 이야기가 많다. 뻔한 주제에다 조금은 황당하지만 굉장히 그럴 듯한 괴담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흥미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비록 '괴담'이라고 표현을 하였지만, 대부분 옛 기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전설이나 신화, 야사 등으로 재가공 되어 생생한 재미와 교훈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만큼 괴담은 시대의 반영이라고 할 만큼 우리의 생활을 투영하며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시대의 ‘희노애락’을 담은 사회 현상이자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지일 수도 있다. 책의 제목 앞에 붙인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이란 말은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가 괴담실록인데 제목마저 괴담실록이라고 붙이기에는 적절치 않아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의미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확인할 몫이다.
사실 『괴담실록』은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괴담 모음집이자 현대판 '청구야담'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조선과 고려 등 옛 기록과 야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괴담, 기담, 전설 등을 ‘괴담실록 버전’으로 각색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들의 기이한 이야기부터 믿기 힘들만큼 두렵고 신비로운 괴수, 귀신, 운명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호러물이나 시체들이 일어나 살아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옛 중국의 '강시'나 요즘 유행하는 서양의 '좀비'와 같은 존재들이 등장해 서늘함과 긴장감,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이 책에는 역사 속에 남지 못한 패자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들, 그저 삶을 살아가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와 함께 담아내고 있다.이 책은 영상이 익숙한 우리에게 글자로 전달되는 이야기의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책은 괴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저자 나름의 유형별로 묶었다. 모두 4부로 정리한 것이다. 1부 「기이한 역사 속 비범한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는 고려말 충신 정몽주와 관련된 이야기 등 조선의 역사에 등장하는 비범한 인물들과 얽힌 기이한 이야기를 모았다. 정몽주 외에 신립, 한명회 등이 등장해 꿈이나 기이한 현상, 죽음에 이르는 애통함 등이 섞여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룬다. 어쩌면 소문으로 난 이야기를 누군가가 만들어 전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내용이다.
2부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귀신을 점호한다는 얘기, 길몽을 꿔서 오히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 목 잘린 과부, 용의 아내를 둔 아전 등의 이야기가 나와 말 그대로 믿을 수 없지만 안 믿기에는 너무나 그럴 듯해 못 들은 척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도 있고, 한라산에 내린 핏빛 비(혈우, 血雨)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인어의 저주'는 조선 선조 때 이야기로 인어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김외천이라는 무관이 전라도 영광 땅에 군수로 부임해 일어났던 내용이다. 한 연못에서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들이 잡혀 어부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아전을 통해 들은 군수는 그 연못의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로 잡고, 독초를 풀어 잡고, 마지막에 물고기를 모두 잡으라고 명령하자 어부들이 모두 나서 잡아 올렸는데 마지막 잡힌 물고기의 형상을 묘사해 놓았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고기의 생김새가 다른 것들과 달리 기이했다. 그것은 눈처럼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털을 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벌거벗은 여자와도 같았다."(p.171) 이후 며칠간 폭우가 쏟아지고 불길한 느낌에 군수 김외천은 두문불출하다 결국 집에 틀어박혀 죽은 채로 발견된다. 비는 수십 일이 지난 뒤에야 멈추었고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 김외천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기 위해 관을 가지고 영남의 땅으로 향했다. 그런데 영광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천둥이 치더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서 김외천의 식솔들은 갖은 고생 끝에 겨우 개령 땅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관에 있던 아버지의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인간의 무한한 욕심의 결과를 알려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인어의 저주는 저자가 「외전」을 밝히고 외전에 적혀 있는 내용을 상세히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저자가 쓴 김외천의 이야기가 이미 조선시대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조선 중기 김빙령이라는 현령이 인어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보통 인어라 하면 대부분 서양의 인어를 떠올리지만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도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인어의 저주'에 이어붙인 「외전」에 따르면 중국의 고서 『태평광기』에 바다 사람들은 인어의 모습이 사람과 흡사한 것을 보고 못에 가두어 기르고 더불어 교접하였다고 하며, 일본에는 619년 인어를 잡아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어에 대한 묘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기이하게도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앞서 소개한 이야기에도 나왔듯 인어에게서 얻는 기름이 매우 귀하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진시황릉 안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는데 그것이 인어의 기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 등장하는 인어는 사람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생김새가 비슷할 뿐더러 서로 소통도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고 저자는 이 책에 썼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의 일부분을 여기에 실었다. "궁궐과 여러 관리, 진기한 보물들을 매장하고 수은으로 여러 개울과 강 그리고 바다를 만들었으며 인어의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서 영구히 꺼지지 않게 했다."(p.176)
이어 3부 「괴이하고 요사하며 그리고 신기한 조선의 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얘기가 많다. '비오는 날의 외다리 귀신, 독각귀' '낮에 나타나는 귀신, 그슨새' '아들의 목숨을 건 귀신과의 도박' '악취를 사람을 죽이는 귀신, 취생' '머리를 깨서 죽이는 귀신, 두억사니' '조광조 입속으로 들어간 가뭄귀신' 등 독자는 듣도 보도 못한 귀신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4부 「예나 지금이나 무섭고 잔인한 인간의 욕심」에서는 역시 인간의 욕심은 종말을 죽음으로 갚는다는 교훈적이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가운데 '얼굴에 못 박혀 죽은 여종의 저주'는 꽤 긴 이야기로, 최씨 성을 가진 진사의 큰아들이 여종을 인간으로 성 노리개로 희롱하다가 여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결국 아들들이 차례로 죽은 뒤 멸문의 화를 당했다고 한다.
여종의 원혼으로 세 아들을 잃고 뒤늦게 굿을 하는 등 아버지가 죄를 뉘우친 후에야 손자만 목숨을 건졌고 더 이상의 미간의 혹이 나 죽는 병이 후손들에게 미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글의 마지막에 다가올 화를 알고 있었음에도 여종의 원한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멸문한 이후 고을에 이 같은 병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적어놓은 것으로 보아 뒤늦게라도 아들의 죄를 대신 뉘우쳐 원혼을 달래줌으로써 더 큰 화는 면한 것으로 써놓은 것으로 독자들이 교훈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외전」의 내용을 덧붙이지 않고, 최 진사의 가까운 친척인 승지 최한익이 『금계필담(조선 고종 때 서유영이 집필한 야담집)』을 쓴 서유영에게 전한 것이라는 말을 적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괴담집의 출간에 부쳐 이렇게 썼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들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기록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야사와 전설은 패자들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권력 다툼에서 패하고 중심에서 밀려난 그럼에도 살아가야 했던 이들. 애초에 그 다툼에조차 속하지 못했던 평범한 민초들. 전설과 야사에는 그들의 염원과 절망의 이야기가 기이한 사건과 상징물에 투영되어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괴이하고 터무니없지만 어쩌면 그들의 진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 : 괴담실록
동아시아 야사와 전설, 괴담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괴담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과하지 않은 효과음, 묵직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역사적 인물들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부터 괴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다. 유튜브 괴담실록. 인스타그램 @goedamsilok. 페이스북 괴담실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