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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평점 :
독자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물리'와 '수학'이 싫었다. 대입의 필수과목이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낙제만 면했을 정도로 했다. 당연히 대학은 인문학 계열로 들어갔다. 그러나 왜 중·고등학교에서 물리와 수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쳤는지 지금에서야 깨닫고, 그때 게으름을 피웠던 것이 후회된다.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수학이나 과학이 오히려 더 우리 삶과 가까웠다. 살아오면서 미적분이나 물리의 공식을 이용해 직접 값을 구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 원리는 알았어야 했다는 후회감이 뒤늦게 몰려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자는 약 2500년 전의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그의 학문을 가장 높은 경지의 학문으로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 왔다. 그의 학문의 깊이는 그만큼 심오하고 현실 생활에도 잘 맞는 '실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그의 학문적 업적은 높이 받들어져 왔고,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천하를 떠돌며 제자들을 통해 그의 학문을 널리 알리고 고향에 돌아온 것은 74세 때였다. 그가 남긴 말 중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이다. 나이 50이 되어 '하늘의 명'을 알았고, 60이 되어서야 설령 누가 거슬리는 말을 해도 마음에 거스름이 없었다는 뜻으로 술회한 말이다. 지천명과 이순에 대해 다른 뜻으로도 해석하는 분들이 많지만, 독자는 하늘의 명은 우주 섭리로, 이순은 세상의 이치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한다. 과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우주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 말이 아닐까. 과학에 무슨 공자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독자들이 계시겠지만 이 책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이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라이트먼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소설) 작가이자 ‘과학 저술계의 계관 시인’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이력도 화려하다. 하버드 천체물리학자, 교수, 인문학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경력의 과학자 겸 인문학자이다. 과학과 인문학은 완전 정반대의 학문이라고 얼핏 생각이 들지만 사실 학문은 어떤 분야든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저자는 "작게 쪼개고 쪼개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향하는 무한의 상태와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라는 세계의 어딘가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 이 인류는 양 심연의 끝 사이에 불안하게 서서 전체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이며, 생명, 마음, 자아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하고자 과학을 했나 보다.
그의 책 여기저기에서 그가 과학자가 된 이유가 잘 설명되고 있다. 다만 저자는 생각의 끝에서 우주의 미미한 존재로 순간 살다 가는 나란 존재는 무엇이고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에 천착했던 것 같다. 과학자로서 그는 인문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며 사색하고, 과학적 연구도 꾸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유한함과 무한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저자의 최신 현대 과학 이론에 바탕한 깊이 있는 생각 여행이다. 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아름다운 문학적인 글이면서 곳곳에 녹아 있는 세계적 과학자들의 깊이 있는 아이디어가 독자의 독서 경험과 생각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주는 놀라운 에세이다.
소설가로서도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는데 독자는 불행하게도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다. 다만 그를 접한 독자들이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을 평가하고 과학적 지식이 뒤를 받쳐 신비로운 세게를 그리는 데 독보적이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인문학적 소양이나 글쓰기 능력도 대단하리란 짐작이다. 실제로 이 책은 독자처럼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과학이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첫째로 저자가 가진 탁월한 문학적 비유 능력 덕분일 것이고, 둘째로 이론적이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딱딱한 물리학 지식을 마치 옆 동네 아저씨에게서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상다반사로 녹여내는 특별한 능력 덕분으로 독자는 믿는다.
또한 리처드 파인만, 스티븐 호킹, 앨런 구스, 숀 캐럴, 안드레이 린데, 잭 쇼스택, 제롬 프리드먼, 알렉산더 빌렌킨, 제임스 하틀, 로버트 데시몬, 프리먼 다이슨을 비롯한 천체물리학자, 양자물리학자, 뇌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과학자들과의 특별한 인터뷰가 이 책에는 녹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뉴턴, 데카르트, 블레즈 파스칼 등 인류사적인 업적을 남긴 과학자에서 불교, 힌두교, 고대 철학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특별한 지적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독자들은 수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무한대로 광활한 우주에서부터 무한대로 작은 '아원자' 영역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따로따로 떨어져 보이던 연구물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그 맥락(CONTEXT)까지 꿰뚫어보게 하는 놀라운 지적 경험을 선물한다.
책에 따르면 20세기 들어 현대 과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다. 1920년대 시작된 양자물리학의 대두, 외부 은하의 발견과 팽창하는 우주, 작고 작은 미시 세계 속 DNA 구조의 발견과 세포의 발생 원리까지 파헤치는 생명과학, 기계론과 활력론의 대립 그리고 생물중심주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이래로 현대 과학에 일어난 혁명과도 같은 변화는 한꺼번에 이해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깊고 어려운 주제다. 저자는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하여 이러한 만만치 않은 재료들을 매우 능숙하게 요리한다. 여기서 현대 과학은 더 이상 멀고 낮선 주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간 ‘수식 없는 물리학’, ‘쉬운 말로 풀이한 안내서’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를 에세이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 독자 스스로 과학자의 아이디어와 현대 과학의 눈부신 성과물들을 즐기고 감상하며 사색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쉽게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책은 난해한 현대 과학을 가지고 독자들이 직접 사유하는 철학으로 나아가게끔 돕는 출발점으로 안내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희귀하다고도 할 수 있다. 독자들은 복잡하고 미묘한 내 마음을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미소」에서는 기억의 변덕스러움을 노래하고, 무질서의 놀라운 힘에서는 마음의 자유로움을 사유한다. 우주 생명체의 특수성, 빅뱅 이전의 상태에서부터 시간의 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과학적 해답을 모색하며,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 너머의 진리를 궁구한다.
독자들은 과학자가 아니어도 과학자의 아이디어를 오롯이 체화하여 스스로 사색하도록 안내한다.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이토록 변덕스러운 내 마음이란 과연 구조로 이루어졌을까?’, ‘엔트로피 법칙과 무질서의 힘은 어떻게 인류의 문화적 진보를 이루어냈을까?’,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란 허상일까 실체일까?’ 이런 질문들과 대답들은 저자의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 문학적 비유로 놀랍도록 빛을 내며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그의 글은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밝고 경쾌하며 긍정적이다. 자칫 광활한 우주의 규모에 빗대면, 나란 존재란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그것이 과학적 지식이 파괴하는 생명의 경외로움이라면, 거꾸로 저자는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라는 존재가 더 신비롭고 경외감이 든다고 말한다. 스스로 어려운 문제 속으로 걸어들어가 멋지게 역전극을 펼치며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멋진 한 인간을 보는 즐거움이란? 한참 읽다 보면 슬며시 미소가 새어 나오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신비롭기도 하고, 어려울 것 같은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저자는 직접 부딫쳐 해결해낸다. 그의 인문학적 기지는 과학과는 또 다른 그의 지식의 한계를 무한대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이 책의 원제인 ‘있을 듯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들(PROBABLE IMPOSSIBILITIES, 책 표지에 쓰여 있다)’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4장에도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스토리 창작에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관객이 과거에 빗대어 유추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관객이 개연성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공감과 몰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비행기로도 수십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화상 회의를 하고, 손안에 들어온 컴퓨터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얻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과학자들이 일군 성과가 실제 사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삶의 형태와 문화, 철학까지 바꾸어가는 과학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자면 과학에 모든 학문이 빨려들어가는 현상, 블랙홀 과학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은 정작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해 어디까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천체물리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나와 우주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위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독서는 매우 의미 있고 독자들에게는 귀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독자들은 아마도 각자 의미 있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의 가이드가 막연히 ‘그건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에 기반하지 않고 과학자들의 아이디어, 최첨단 과학의 전문 지식들을 통해 안내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지적 특권이라는 출판사 측의 뻔한 소개글도 예사롭게만 들리지 않는다. 이 특별한 사고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복잡한 현대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약간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에 대한 열망 하나면 충분하다. 이 책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우주, 생명과 마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명상 모음집이다.
저자 : 앨런 라이트먼(ALAN LIGHTMAN)
어릴 때부터 과학과 문학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때 이미 독자적으로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시를 썼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MIT의 인문학 교수이며, MIT 최초로 과학과 인문학 모두에서 동시에 교수직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연구하였으며, 캄보디아 비영리 조직 하프스웰 재단의 창립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20여 편이 넘는 연극과 음악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아인슈타인의 꿈』과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작인 『진단』을 포함한 여섯 편의 소설을 비롯해, 2011년 시드니 어워드 ‘베스트 에세이’를 수상한 『엑시덴탈 유니버스』 외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소설, 에세이, 시집, 과학 저술 분야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활동을 해온 그는 과학을 문학처럼 읽히게 하는 몇 안 되는 작가다. 그의 이번 최신작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의 지적 권위와 소설가로서의 풍부한 표현력이 결합하여, 양자물리학, 우주, 생명과 마음, 의식의 기원, 팽창하는 우주 속 인간의 위치 등 현대 과학의 가장 놀라운 발견에 대한 과학자의 철학적 사색과 명상을 담았다.
역자 : 송근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우주만큼 매력적인 영어 원서를 소개하고 가르치기 위해 대학원에서 국제영어교육 TESOL을 전공했다.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과정을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한 책으로 『더 마블 맨』, 『내 생에 한 번은 상대성이론 이해하기』, 『폭풍의 언덕』,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 등이 있으며, 청소년 교양 과학잡지 『OYLA』의 번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