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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마다
리사 스코토라인 지음, 권도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4월
평점 :
독자는 추리소설을 즐긴 지 2년쯤 된다.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 할 정도로 광적인 애독자들을 많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2년 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단했던 독서를 재개한 기분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젓 손을 많이 댔다. 독서를 하지 않는 기간에도 독자들이 어떤 책을 많이 읽는지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은 많이 점 찍어 두었었다. 이 덕분에 독자의 눈을 기다리는 책들이 워낙 많아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으면서부터 추리소설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겠지만 한국에도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못지않게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후 추리소설은 독자의 애독서 목록에 항상 올라갔다.
덕분에 2년 동안 읽은 책이 30권이 넘는 것 같다. 이 정도 추리소설을 읽다보니 재미는 물론 짜릿한 긴장감이 책 읽는 재미를 더욱 키워줬는지 밤새 읽은 적도 있을 정도다. 이젠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이나 흐름도 '감'이 좀 잡히는 것 같다. 물론 잘 쓰고 못 쓰고의 판단은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독자가 파악한 추리소설에 대한 흐름은 일본이 강하다는 느낌이 먼저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곳은 영·미 쪽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추리소설 독자가 엄청나서 추리소설 작가도 많다고 한다. 독자로서는 부럽긴 하지만 번역 출판되지 않은 것을 읽을 정도로 일어 실력도 없고, 아직 그 정도의 광팬은 아니라서 눈을 자연스럽게 영·미 추리소설에도 눈을 자주 돌렸다. 이때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이 소담출판사가 여성 추리작가 시리즈로 펴낸 첫 번째 책 『블랙 아이드 수잔』이었다. 충격적인 반전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줄리아 히벌린이란 미국 작가의 소설이다.
그는 독자가 전혀 모르는 작가여서 처음 대하는 작품이고 작가였지만 미국 추리소설의 맛을 잘 보여준 것으로 기억된다. 증거의 과학적 수집 등이 인상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미 추리소설도 여러 권을 읽었다. 한 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대부분 여성 작가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은 '소시오패스'라는 점도 특징이다. 일본에선 남성 작가들이 주로 추리소설을 쓴 것 같았는데 영국이나 미국에선 여성 작가들이 대세인 것 같다. 어쩌면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 심리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인가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독자가 읽은 추리소설 분량으로 흐름을 말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이 소설 『15분마다』 이야기도 돌아온다.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 소담출판사 기획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텀이 조금 있었지만 첫 번째 소설에 대한 깊은 인상이 남아 있어 기억해내기 쉬웠다. 출판사 측은 이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악마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테러범이나 살인자, 무자비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악마가 자신들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기차 옆 좌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체육관의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딸과 결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섬찟한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일 것이란 게 독자의 느낌이다.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의 범인은 대체로 소시오패스이고 또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인 사람이 많았다.
소설 내용에 대한 소개글은 더욱 구미를 당긴다. "여성 작가의 손에서 탄생하는 첨예한 심리 묘사와 예측 불가한 반전,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리사 스코토라인의 강렬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오직 가족과 환자밖에 모르는 정신과 의사 에릭의 삶은 소시오패스의 표적이 된 후로 악몽으로 뒤바뀐다. 에릭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환자를 맡는다. 그 환자는 다른 소녀에게 강박적인 짝사랑을 품고 있는 문제아 십 대 소년으로,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 소년이 말한 비밀 때문에 에릭은 그 소녀의 안전이 걱정된다. 그는 의사로서 환자의 비밀을 감춰주고 보호하느냐, 소녀의 안전을 위해 알리느냐 하는 위험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에릭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적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연,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범인은 누구일까?" 독자는 소설을 읽을 때 첫 문장에 주목한다. 대개의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가 듣기로는 추리소설 독자들은 책을 읽을지 말지를 소설의 첫 대목을 읽어보고 결정한다. 단편소설은 대체로 그렇지만 추리소설도 그렇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소시오패스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훨씬 영리하고 자유롭다. 규칙이나, 법률, 감정,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금세 읽을 수 있고, 연락처를 바로 얻어낼 수 있으며,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끔 조정할 수 있다..." 분명 예사롭지 않다. 화자가 소시오패스이다. 주인공이 소시오패스란 말인가. 독자의 궁금증이 더해가기 시작한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이 이유가 있음을 느낀다. 이어지는 부분이 책 읽기를 재촉한다. 이 화자의 말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소름 끼치게도 우리 24명 중 1명의 확률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구의 4%가 소시오패스라니 이건 너무 과장된 말이 아닐까. 그러나 저자는 차근차근 '내가 소시오패스이고, 평범한 이웃이고, 자신들의 딸과 결혼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화자는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소시오패스 검사도 했다고 한다. 해어 테스트(Hare Test)라고 불리는 실제 검사는 오직 숙련된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검사법을 찾아 검사할 때 질문사항을 적어 나간다.
1.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선택하시오 : 현혀 그렇지 않다 / 조금 그렇다 / 그렇다
2. 내가 한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이 비난을 받아도 미안하지 않다.
선택하시오 : 전혀 그렇지 않다 / 조금 그렇다 / 그렇다.
화자는 20개 문항 40점 만점에 38점을 획득했다고 밝힌다. 소시오패스 전공이라면 우등으로 졸업했을 거라는 여유 있는 말과 함께.
너무 빠져들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1장의 내용은 저자가 아는 소시오패스의 특징에 대해 화자의 입을 빌려 얘기하고 있다. 소시오패스가 평범한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또 그 사람들이 어떤 특징이나 특질적 마음 상태나 태도를 보이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해브메이어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에릭 패리시 박사다. 이성을 잡아끄는 외모 덕분에 그의 별거 소식은 주변 여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기에 충분했지만 에릭은 하나뿐인 딸 해나와 전처인 케이틀린의 마음을 돌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해나를 위해 아내에게 저렴하게 팔았던 집을 아내가 비싼 값에 판 것과 그림 그리기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해나가 갑자기 소프트볼 연습팀에 참가하게 된 것, 그리고 그 배경에 비워진 자신의 자리를 꿰찬 어느 남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릭은 배신감에 몸부림치게 된다. 이제까지 해나를 위해 케이틀린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희망했지만 케이틀린의 본심을 알게 된 에릭은 해나를 자신이 양육하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사실 주인공 에릭은 가족과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캐릭터가 설정된다. 에릭은 어느날 응급실에서 삶이 얼마남지 않은 할머니로부터 혼자 남게 될 손자 맥스를 상담해 줄것을 의뢰받는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부탁에 자신의 진료실에 온 그와 상담을 한다. 우울증과 강박장애를 가진 맥스는 자살충동까지 겪고 있다. 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분노까지 숨기지 않는다.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말하며 다시 상담하기를 약속한다. 그러나 에릭이 맥스의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만 맥스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상담 때 맥스가 밝혔듯이 에릭은 맥스가 자살 하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맥스를 찾기 위해 경찰에게도 부탁하고, 자신의 친구 로리에게도 부탁하지만 찾을 방법은 없다.
에릭은 맥스가 좋아한다는 르네라는 여자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듣는다. 경찰은 에릭을 경찰서로 데려 와 그가 진료한 맥스에 대한 상담기록을 달라고 하지만 에릭은 의사 윤리상 환자의 상담기록을 내어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경찰서로 끌려온 에릭은 로리의 도움으로 그녀의 동생 형사전문변호사 폴을 변호사로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경찰서를 나온다. 에릭은 맥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살해할 아이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맥스를 찾아다니던 중 맥스가 한 쇼핑몰에서 5명의 아이를 인질로 잡고 15분마다 한 명씩 죽이고 나서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게 된다. 에릭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다가가서 자수하도록 권유하는 데 성공한다. 병원에서는 한 의대생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병원도 맥스와 관련, 의사로서 부적절한 행위라고 정직처분을 내린다. 아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여러 곳에서 에릭은 거절당하지만 '맥스는 범인이 아니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여자아이를 죽인 범인을 직접 찾기 시작하는데, 추적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반전이 거듭된다. 이 소설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반전은 한 번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에릭은 어떻게 할까. 아마 추리소설 독자라면 이 소설이 꽤 두꺼운(650여 페이지) 책이지만 손에서 놓치 못하고 끝까지 읽어나갈 것이다.
“맥스 자보우스키가 르네 베빌라쿠아의 살인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에릭은 망설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맥스와 르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누설하기 싫었다. 맥스의 목숨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긴 하지만 르네의 살인 사건과 엮이게 될 것이다. 에릭은 마음 한편으로 여전히 맥스를 믿고 있었다. 맥스가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으로 유죄를 받게 될 수도 있는 정보를 경찰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에릭이 대답했다. “내가 환자에 대한 기밀 서약의 의무 안에서 말할 수 있는 건, 맥스가 르네 베빌라쿠아의 죽음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p.350)
에릭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폴은 채널을 돌린 뒤 볼륨을 높였다.
라디오에서 뉴마이어 경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말해, 패리시 선생의 변호인의 성명서에 대답을 해주고 싶군요. 우리는 패리시 선생이 의사로서 비밀유지 서약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리시 선생이 어제 아침 래드너에서 교살된 채 발견된 열여섯 살 소녀, 르네 베빌라쿠아가 살해당한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릭은 경감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사건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이토록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에릭이 살인자를 비호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는 우리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의 희생자들과 크나큰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르네 베빌라쿠아 살인 사건의 모든 단서들을 쫓아 수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패리시 선생의 변호사가 의사로서의 특권을 주장했을 때 화가 치솟은 건 맞습니다. 우리는 한 어린 소녀의 죽음을 절대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p.494~495)
저자 : 리사 스코토라인(LISA SCOTTOLINE)
리사 스코토라인은 20여 편 이상의 작품들을 발표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녀의 책은 현재까지 2500만부 넘게 판매되었고, 30개국 이상의 나라에 출간되었다. 그녀는 에드거 상과 《코스모폴리탄》에서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현재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 매주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딸 프란체스카 세리텔라와 공저로 여러 편의 논픽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리사는 전직 변호사로, 현재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여러 애완동물들과 함께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
역자 : 권도희
전문 번역가. 옮긴 작품으로 타나 프렌치 『페이스풀 플레이스』, 요한 테오린 『욀란드의 사계』 시리즈, 애거사 크리스티『비뚤어진 집』, 『움직이는 손가락』, 존 하트 『허쉬』, 존 카첸바크 『하트의 전쟁』, 조지핀 테이 『시간의 딸』, 루크 올넛 『우리가 가진 하늘』, 앨리스 피니 『원래 내 것이었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