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세상과 맞서 싸운 이단아들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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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heresy)은 사전에 '어떤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정통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정통자측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으로 풀이돼 있다. 또 국어사전에도 ①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②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③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고립되어 있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서평에 '이단'이란 단어 풀이를 해두는 이유는 이 책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의 부제가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세상과 맞서 싸운 이단아들」이라고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 박홍규도 「머리말」을 통해 "이단아가 무엇이고, 57명을 이단아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동안 그 점을 특별히 의식한 적이 없었고 책을 내면서도 설명할 생각이 없다.

대체로 시대와 세상 또는 나라의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 사람들을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아웃사이더, 소수자, 반항인, 저항인, 예외자 등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잠시 의미를 두고 있다. 사전적 풀이 이외에 특별한 의미를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의 뇌리 속을 스치는 한 인물은 일제강점기 '박열'이 잠시 떠올랐을 뿐이다. '이단아'라고 사전 풀이나 이 책의 저자가 한 말의 뉘앙스에 적합한 인물을 우리나라 사람에서 쉽게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독자의 지식이 부족해서일 터다. 다만 어쩌면 우리의 역사 교육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약간은 씁쓸한 느낌도 있다.

 


 

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이단', '이단아'는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또는 그 사람’을 말한다. 저자는 이들을 아웃사이더, 소수자, 반항인, 저항인, 예외자 등으로 부를 수 있고, 아방가르드(전위), 선구자, 선각자, 예지자, 예언자, 지성인, 사상가 등으로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주류와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기득권과 싸운 의사인 마이클 샤디드는 의대 입학을 제한함으로써 의사협회가 의사의 공급을 줄이고 의사의 수입을 올리는 독점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고, 의사들의 의료 행위를 약탈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의사협회에 반기를 들고 의사들의 ‘의료 이기주의’를 비판했던 것이다. 결국 의사협회는 그의 의사 면허증을 박탈하고 의사협회에서 퇴출시켰다.

또 누구보다 사회적이면서도 반사회적인 반항아였던 헤르만 헤세는 자기 존재를 통해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불멸성을 보여주었다. 즉, 그는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며, 개성은 개인이 찾는 것이지 누구도 그 개성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누구도 누구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모범으로 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저자는 이 책을 2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제 1부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 제 2부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로 분류했다. 했던 일에 따른 분류라고 생각된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이 분류를 마음에 내키지 않은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판단하는 관점도 분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점이 문제될 일을 없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루이즈 미셸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과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히치카스까지,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을 다룬다. 이들은 모두 시대와 세상 또는 나라의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즉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와 기득권과 싸우고,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반전운동을 벌이고, 여성해방을 부르짖고, 평화주의를 외치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환경운동의 선봉을 섰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평생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았다.

루이즈 미셸은 몽마르트르 여성위원회의 수장으로서 혁명정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바리케이드를 쌓고 무장투쟁에 가담했다. 그는 남자들에게 조롱을 당했지만, “남녀가 모든 인간성의 권리를 획득한 뒤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한몫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후 정부군이 파리를 탈환하자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되었다. 1880년 파리코뮌 참가자에게 사면이 내려져 미셸은 파리로 돌아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를 공격하는 혁명 활동과 함께 사형제·동물실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남녀만이 아니라 식민지인이나 비서양인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바란 미셸은 성매매나 결혼은 똑같은 거래관계라고 비판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제인 애덤스와 장 지오노는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가담하지 않은 자유인이었고, 이시도르 파인스타인 스톤은 권력과 거리를 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다. 토리 모리슨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저항했다.

 


 

한국인으로서 현계옥은 만주 벌판에서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다. 영화 〈밀정〉(2016)에서 한계옥을 모델로 했다는 배우 한지민(연계순)은 한계옥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실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계옥은 얼굴과 몸집이 크고 늠름한 모습의 대장부 풍모다. 그녀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전한다. 좁은 기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기보다 광야에서 말달리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린다.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남자현(안옥윤)도 마찬가지다. 가냘픈 서구식 미녀가 아니라 강인한 생활력을 갖춘 우리 이웃 같은 억센 여장부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는 실제의 역사와도 많이 달라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단다.

책에 따르면 현계옥은 1896년 경남 밀양에서 관기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당시 천민이었던 악공 아버지는 딸을 어머니처럼 관기로 키우려고 가르쳤다. 그러나 1908년 관기 제도가 폐지되자, 현계옥은 달성군으로 이주해 노래와 춤을 파는 동기(童妓)가 된다. 기생집에서 일하던 중 그는 노동야학 보조교사인 현정건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현정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 때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던 소설가 현진건의 셋째 형이다. 배제학당을 졸업한 현정건은 상하이에서 무역을 했으며,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또 1920년에는 상하이 고려공산당 등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했던 탓인지 그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사에서도 잊힌 인물이었다.

 


 

현계옥은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김원봉에게 폭탄투척법과 권총 사격법을 배운다. 최초의 여성 단원이었던 그는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 마자르를 도와 폭탄 제조와 운반 작업을 수행하기도 햇으나, 1923년쯤 의열단 일은 끝났다. 당시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 주도한 조직인 청년동맹회가 의열단의 암살 활동을 테러리즘으로 매도해 청년동맹회의 중요 멤버인 현정건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의열단을 떠난 현계옥은 청년동맹회에 참여해 현정건과 함께 1926년에 잡지 『여자해방』 발간을 담당했다.

『여자해방』은 3호 정도의 발간으로 그쳤으나, 여성해방과 민족해방,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이라는 삼위일체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한 점에서 당시 국내에서 시작된 정칠성 등의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연결되었다. 또한 그것은 나혜석이나 김명순 등의 연애 중심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학계에서 나혜석을 아나코 페미니즘(무정부 여성주의)의 원조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엠마 골드만에게서 보는 아나코 페니니즘을 나혜석의 그것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중략) 1932년 현정건이 출옥하고 6개월 만에 병으로 죽자 운덕경(현정건의 본처)도 한달 뒤에 음독자살한다. 그리고 현계옥은 몽골 평야에서 야생마처럼 사라진다. 1924년에 세워진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에 가서독립운동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그곳에서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와 함께 소피아 코발렙스카야는 가부장 세계에 저항해 치열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한 이단아였다. 특히 남성 과학자들이 주류인 과학계에서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 자체가 이단이었다. 소피야는 ‘편미분 방정식’, ‘토성의 고리 역학’, ‘타원 적분’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하고 유럽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수학 강사가 되지 못했고, 무료 강의 제안도 거부되었다. 조국 러시아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정치적 견해 때문에 거부당했다. 결국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에서 사강사로 지내고, 5년제 계약교수가 되고, 당시 과학계의 최고상인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보르댕 상을 받았다. 래퍼인 슬릭의 노래처럼 소피아는 “나는 불꽃이다. 붉게 타올라 그 빛으로 앞을 밝힌다”에 맞는 인물이다.

루시 파슨스는 언론과 저술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가정부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주부의 역할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5년 유진 데브스·마더 존스와 함께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을 설립해 산업민주주의를 추구했다. 당시 시카고 경찰은 그를 “폭도 1,000명보다 더 위험한” 사람으로 불렀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 창립총회의 유일한 여성 연설자인 루시는 여성을 ‘노예의 노예’라고 하면서 자신의 독립성과 인간성에 따라 개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 정부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계급차별에 맞서 싸운 루시를 지속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의 자주관리와 이를 통해 사회를 자유연합으로 만들어갈 것을 주장한 생디칼리슴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밖에 레오폴트 코어는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창조적이고, 더 번영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회적 불행은 거대함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작은 나라들로 다시 해체된다면, 작은 규모의 정치 단위가 평화와 안보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국가의 구성으로 돌아가 권력 집단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질병은 추악함, 가난, 범죄, 방치가 아니라 현대국가와 도시 거대주의의 비견할 수 없는 차원에서 오는 추악함, 빈곤, 범죄, 방임이라고 했다. 너무 크면 아름답지도, 올바르지도, 참되지도 않다고 했던 그는 녹색사상, 생태지역주의, 제4세계, 분권주의, 아나키즘 운동 등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로런스 베이커는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었다. 그는 한센병 전문의사와 결혼하고 히말라야의 외딴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산속 골짜기의 황무지 언덕 비탈에 집과 병원을 짓고 16년 동안 그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는 집을 지을 때 현대 기술을 신중하게 채택함으로써 지역 건축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고,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지역 재료의 사용은 건축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건축물을 건설하고 벽돌 등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일에 지역의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도 되살렸다. 또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검소하게 만드는 생태건축을 지향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저자 : 박홍규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동안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내 친구 존 스튜어트 밀』,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저항하는 지성, 고야』, 『놈 촘스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존 스튜어트 밀』,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불편한 인권』(2018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내 친구 톨스토이』, 『함석헌과 간디』(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마키아벨리, 시민정치의 오래된 미래』,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2015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예술, 법을 만나다』,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전』, 『내 친구 빈센트』,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 등을 집필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모리스 예술론』, 『간디 자서전』, 『예술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유한계급론』, 『산업민주주의』, 『간디가 말하는 자치의 정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유토피아』, 『인간의 전환』, 『유토피아 이야기』,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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