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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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 책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과 저자 리처드 파워스를 모두 처음 만난다. 사실 외국 번역 소설을 우리 소설에 비해 덜 좋아하기도 하지만 관심이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작가들이 '생명'에 대해 다룬다면 감성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모두 들어가지만 외국 소설은 감성적인 것보다는 이성적인 측면에서 소설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조금은 생뚱맞은 표현이지만 글로 나타나는 감성이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이지 않아서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작가들의 글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서가 포함되어 있다. 단어 사용도 그렇고 전체적인 글의 내용도 곰곰 생각해보면 매우 한국적 정서가 잘 배어나온다.

이에 비해 외국 번역물에는 신비스럽지만 정서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만 감성이 배제돼 있다. 굳이 두 부류를 비교한다면 독자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적 정서가 잘 배어 있는 우리 작가의 소설이 좋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런 이유로 외국 소설에 거리를 두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글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해서였다. 물론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실례가 되는 이야기일 줄 모르겠다. 자신의 정서에 안 맞는다고 작품을 멀리하면서 내놓은 궤변이라고 말이다. 자문자답하다 보니 독자도 은연 중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고백하는 느낌이다.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벌어져 나중에는 '그렇구나' 정도의 작품인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한 가지 번역의 힘에 의존했지만 배경 표현이나 상황 설명 등은 아주 베테랑 작가의 느낌이 물씬 난다. 아름다운 글이다.

 


 

출판사 측의 설명대로 이 소설은 우주생물학자와 동물권 활동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슬프고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우주생물학자 시오는 아내 얼리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아홉 살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 '싱글대디'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가진 아들 로빈은 사랑했던 엄마와 반려견을 차례로 잃은 후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 가족의 추억이 깃든 스모키산맥으로 야영을 다녀온 직후, 로빈은 학교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온병으로 때려 다치게 한 일로 정학을 당한다.

엄마의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말에 격분한 탓이다. 시오는 도로 위로 뛰어든 주머니쥐를 피하다 생긴 사고였다고 아들에게 설명해 주지만, 당시 아내가 로빈의 여동생을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류학자가 꿈인 로빈은 동물권활동가였던 엄마가 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돕겠다며 파머스 마켓에 나가 판매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생명체들이 아이의 손끝에서 마법처럼 정교하게 되살아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로빈은 점점 그림에 몰두하며 학업에 관심을 잃어간다. 학교에서는 로빈에게 향정신성 약물치료를 권하지만 아빠 시오는 거부한다. 아홉 살 어린아이에게 약물이 어떤 효과를 미칠지 두렵고, 그게 해결책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으며, 아들의 별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만일 내가 아빠였다면···'이란 생각에 독자와 완전 다른 정서이다. 즉 독자와 아빠 시오의 정서가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의 작가 리처드 파워스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소설 『오버스토리』가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삶을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펼쳐내며 인간 본성과 자연의 세계를 탐구한 대서사시였다면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힘없는 개인을 통해서 아득한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이야기”(p.398)다. 독자가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어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한층 호소력 있게 전한다. “남극에서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나라의 수장들은 대중이 어디까지 속는지 시험했다. 사방에서 작은 전쟁들이 터졌다.”(p.41), “상하이에서는 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피닉스에는 물이 없어졌다. 바이러스성 광우병이 소에서 사람으로 옮겨 갔다.”(p.387)와 같은 뉴스를 통해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켜 번영한 세계는 끝내 멸망을 향해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은 아니다. 어쩌면 현재가 디스토피아이고 여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디스토피아로부터의 해방'과 살 만한 세상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다. 주제와 스토리의 전개, 글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예사의 작가는 아니다. "굉장하다. 통찰력 넘치고 시적인 파워스의 산문은 우리를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힘차게 끌어당긴다."는 《뉴욕타임스》의 격찬도 마땅하게 들린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모두 사로잡는 소설"이라고 평했으며,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는 "과학과 인간성, 희망과 절망을 정교하게 녹여낸 이야기"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역자 이수현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소설 초반에 시오와 로빈은 그레이트 스모키산맥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디오북으로 『엘저넌에게 꽃을』이란 소설을 듣는데, 이 책의 내용을 아는 독자는 이 대목에서 로빈의 결말을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역자는 지적장애인 주인공 찰리가 실험적인 수술을 받아 천재가 되지만, 다시 퇴행하고 마는 이야기'라면서 어쩐지 비슷한 느낌의 결말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배너를 들고 무너져 가는 세상 앞에 나선 아홉 살 소년, 로빈이 꿈꾸었을 미래를 향해 시선을 옮겨 보자. 파괴된 숲과 사라진 새들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 연약한 존재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살피는 이들의 세상, 그리하여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불필요한 고통에서 해방되는 세상···.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독자라면 소용돌이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제까지 만나 보지 못한 특별한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결말을 절망으로 읽을지 희망으로 읽을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 나는 그래도 희망에 걸어 보고 싶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해탈의 상태가 정확히 로빈의 어머니가 순간순간 피워냈던 마음이자, 로빈이 잠시나마 도달했던 마음 상태이며, 로빈의 아버지가 찾을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 소설 속에서와 달리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무사히 우주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아직은 신종 광우병이 세상을 휩쓸지 않았으니까. 바라건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p.397)

 


 

역자는 이어 "『엘저넌에게 꽃을』은 의학의 힘으로는 인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많이 읽힌다. 『새들이 모두 사라진다면』에서 로빈의 고통을 덜어 준 실험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실험도 어떤 면에서는 대상자의 지능을 높인다. 다만 그 지능은 IQ가 아니라 EQ에 가깝다. 실험을 통해 로빈에게 주어진 것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능력, 공감 능력, 그리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이다. 지능이 높아지면서 불행해졌던 찰리와 반대로, 로빈은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진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공감은 더 높아지지만, 그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한 역자의 머릿속에는 딜라이 라마의 말이 떠오른다. "내면에 평화를 얻고 나면, 외부의 문제들은 마음속의 평온에 어떤 영향도 미지치 못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 마음은 무관심이 아니다. 외면이 아니다.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면서도 그 무게에 눌리지 않고 자신을 온존할 수 있은 마음 상태다. 절망하거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며, 아예 튕겨내거나 심하게는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공격하기도 한다. "기후 위기는 가짜다." 같은 현상은 때로 그래서 생겨나며, 누구보다 열렬하게 신념을 갖고 싸우던 사람이 180도 돌아선 전향자가 되는 일도 때로 그렇게 일어난다고 생각을 확장시킨다. 역자의 주장은 이유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지능이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엘저넌에게 꽃을』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성이다."라는 주장이다.

 


 

아빠 시오는 소설 중간에 로빈의 치료와 관,련 아내의 친구였던 신경과학자 ‘마틴 커리어’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는 로빈에게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받아보길 권한다. AI를 이용해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도록 훈련하는 이 기술은 실제로 나와 있다고 한다. 이에 소설은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 상상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 기술이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으로. 로빈은 이 훈련을 통해 어머니의 생전 두뇌 활동 패턴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차츰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진다. 이 점이 독자가 외국 소설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이유다. 역자가 지적했듯이 『엘저넌에게 꽃을』을 인용 비교했듯이 이 소설은 최악의 결말이 오고야 만다. 상당수의 독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원제가 '비윌더먼트(Bewilderment)'이다. 이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당혹'이라고 역자는 설명한다. 책을 덮은 독자가 느낄 감정이 딱 그것이다. 당혹하고,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단어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그 당혹감은 자연에 푹 빠져서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집을 잃고 해매는 모습에서 현상되는 감정이라고 풀이한다. 이 결말을 절망으로 읽을지 희망으로 읽을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해탈의 상태가 정확히 로빈의 어머니가 순간순간 피워냇던 마음이자, 로빈이 잠시나마 도달했던 마음 상태이며, 로빈의 아버지가 찾을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독자는 이 부분에서 소설을 다시 읽어볼 참이다. 전혀 아무 생각 없이 읽어온 느낌이다. 한마디로 '멍'한 느낌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모든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재미, 상상력의 영감까지 많은 것을 선사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녹여낸 작품들을 발표하며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다. 1957년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났다.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방콕으로 이주해 음악과 문학에 심취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 일리노이 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 보스턴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중, 미술관에 전시된 독일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젊은 농부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틀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5년 발표한 첫 소설 『춤추러 가는 세 농부들』, 1995년 인공 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 『갈라테아 2.2』, 2006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에코메이커』 등 지금까지 열세 편의 소설을 출간했다. 특히 2018년 “독창적인 서사 구조가 인간의 경이와 유기성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퓰리처상을 수상한 『오버스토리』는 인간과 숲에 관한 기념비적 소설로, 파워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2021년 신작 장편소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BEWILDERMENT)』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파괴된 행성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불안과 공존의 철학을 담은 이 소설은 평단과 언론의 극찬은 물론,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현재 파워스는 작품의 배경이 된 그레이트 스모키산맥 기슭에 살며 일리노이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 이수현

 

작가이자 번역가로 인류학을 공부했다.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로 번역을 시작하여 SF와 판타지를 비롯한 상상 문학을 많이 옮겼다. 번역서로 『로캐넌의 세계』, 『유배 행성』, 『환영의 도시』, 서부 해안 연대기 시리즈, 에세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세상 끝에서 춤추다』를 비롯해 『피버 드림』,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체체파리의 비법』,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킨』, 『블러드차일드』, 『살인해드립니다』, 『멋진 징조들』, 『노인의 전쟁』, 『꿈꾸는 앵거스』, 『대우주시대』, 『유리 속의 소녀』,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샌드맨 시리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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