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인문학 - 경계 없는 서재에서 찾는 의사의 길
안태환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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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과학자다. 서양의학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또 치료제나 백신, 신약 개발 등도 모두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고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하기 때문일 터다. 의학이 과학이냐, 아니냐는 별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의학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성시되기도 한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공부 역시 다른 과목보다 2년이 길다.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오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는 그만큼 힘든 길을 거쳐야 비로소 탄생한다. 직업으로서도 중요한 직업이다. 대개는 돈도 잘 번다. 월급을 받든 개업의이든 수익이 높다. 의사는 특히 우리 나라에서 굉장히 높은 보수를 받는 직업군으로 분류되지만 대신 의사로서의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다는 평가도 마땅하리라. 그러나 의사는 피곤하다. 특히 정신적으로 매우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환자를 돌보고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대부분의 직업인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척 바쁘다. 의사 1인당 우리나라 의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수가 OECD 최고 수준이라 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는 얘기일 터다. 의사가 바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고수익은 격무의 댓가로 환산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책 『의사의 인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과학자인 의사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즉 의술에 인문학적 소양을 겸하게 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러나 의사인 저자가 인문학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다. 자칫 의사가 인문학 강의를 한다고 하면 쉽지 않은 일일 뿐만 아니라 강의를 듣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싶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교감하며 얻는 깨달음이 가미되니 얘기가 달라진다. 책 사람, 그리고 삶이 일깨워주는 소중한 지혜들, 저자 자신이 마주해온 한 사람 한사람, 자신이 가는 길에 진심인 사람만이 얻는 통찰들이 담겨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유능하지만 속 깊은 의사가 “당신은 저에게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합니다.”라고 나직이 말해주는 것 같다. 환자에 대한 마음이 전해져 우리의 마음도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 책은 환자가 의사의 관심과 존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어린 말과 태도로 환자의 고통과 진심어린 교감을 나누는 것이 돋보인다. 더 나은 치료를 위해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살피는 마음이 존경심을 갖게 한다. 힘든 순간에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어떤 순간에도 희망이 있음을 기억하도록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누구라도 본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의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정작 위로받고 마음의 힘이 커지며 삶의 기쁨과 활력을 더해가는 것은 의사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진짜 의사의 삶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책 「서문」을 통해 의사로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그간의 획일적 입장에서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환자친화적 사고 틀로 변환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줄 것은 기대한다고 밝힌다. 그렇다고 의사의 인문학이 마치 별스러운 대접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직업으로서의 의사의 시선 정도로 봐주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매우 겸손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경험에 따라 의사의 인문학적 소양은 치료에 불가피한 것이고, 이는 분명히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는 일, 쉽지는 않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고 미덥게 마주해야 참된 관계가 형성된다. 치료할 의사와 아픈 환자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통증의 교감, 의사의 절대가치다.”(p.46)

 

“외부로부터 얻어진 마음의 상처에도 굴하지 않는 스스로의 면역력은 흉터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내면의 힘이 단단해지면 마음의 상처에 옹골진 딱지가 내려앉는다. 치료의 시작은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라는 지혜는 틀림없다.”(p.21)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의사의 시간」, 2장 「의사의 인문학」, 3장 「치유의 공동체」, 4장 「일상의 위로」이다. 각 장은 연결돼 있으며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결국은 의사가 되기까지의 어려움, 의사가 되고 난 후 치료하는 어려움, 치료 경력이 쌓인 후 의사로서의 의무와 공헌, 그리고 환자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말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각 장은 소제목으로 나뉘어 관련 글을 언제든 찾기 쉽게 나열해 독자들의 편의를 제공한다. 가령 1장 첫 소제목은 '의사가 서 있는 곳'이다.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환자의 곁'이란 말을 하고 싶은 듯하다.

"아름다워지려 결심한 코 수술의 후유증으로 병원을 돌고 돌아 내게 온 환자는 끊임없는 절망과 슬픔의 변주 속에서 사람들과의 대면조차 버거워했다. 혼자 외롭게 웅크리고 있었을 환자에게 보통 그런 경우는 다소 건조한 의학적 조언에 더해 "잘 치료하면 분명히 나아집니다. 환자분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살포시 건네 본다. (중략) 그래야 치료 효과도 좋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그럴 때 절망을 밀어낸다." 이어 저자는 "절망을 지닌 채 찾아온 환자의 치료 앞에 용기를 갖겠다는 것과 실천으로 환자에 대한 존경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 의사는 서 있기 때문이다."고 말해 의사는 독자의 예측대로 환자의 곁이 아닌 '희망과 절망 사이'에 있다고 강조한다.

 


 

2장의 보다 많은 인문학 요소가 드러난다. '인간의 면역은 행복이었다'는 제목의 내용에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 유명한 히포크레테스의 명언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사실, 의사의 '인생은 짧고 의술은 영원하다'라는 의미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해명을 한 뒤 "오늘날 현대의학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퇴치는 요원하다. 환경의 파괴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 출현을 야기했고 여전히 우린 그들과 투쟁 중이다. 전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19'가 그렇다. 전염병이 창궐할수록 의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균열되고 있으며 현대의학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 의학철학을 주목하게 된다. 시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코로나의 역습으로부터 의료인문학 공동체 재구성에 주요한 단초를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의료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배경이기도 하다."고 넌지시 자신의 속엣말을 꺼낸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그리스는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유럽의 작은 나라였던 그리스는 유로존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여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돌덩어리 빼고는 국내외 자산이 각국으로 팔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17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묵작한 이야기다."고 전제한다. 이어 저자는 "이 영화가 인간의 행복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안겨주는 잔잔한 풍경은 위기 속에서도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지혜를 보여준다. 그렇다. 인간의 면역은 행복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사체액설의 정수라 치환해도 과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인문학적 사유를 거쳐 저자가 건져올린 단어는 '면역'과 '행복'이었다.

 


 

독자는 비염 환자다. 때문에 '봄철, 알레르기성 비염에 대한 브리핑'을 관심 있게 읽었다. 저자의 얘기는 단순 비염에 관한 치료부터 수술요법까지 적잖은 얘기를 한다. 독자는 비염으로 병원도 가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복용도 했지만 약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한 질병이다. 거의 콧물을 달고 살다시피 해도 이 책처럼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심코 흐르는 콧물은 의외로 내 몸의 질환을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다. 투명하고 맑은 콧물은 흔히 말하는 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일 가능성이 크다. 주로 호흡기 질환 초기에 많이 나타난다.

2주 이상 콧물이 멈추지 않고 재채기, 눈의 충혈, 가려움증이 동반되면 감기보다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른 질환들을 의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발병하는 원인은 크게 유전적인 영향과 꽃가루나 진드기 등 외부적 영향에서 기인한다. 부모가 알레르기 환자라면 유전될 확률은 무려 50~80%에 달한다고 의학계에서는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비염은 코의 염증이다. 다시 말해 코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질환을 '비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콧물, 코막힘, 재채기, 가려움 등으로 콧속이 충혈되고 콧살이 붓는 환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라고 통칭한다." 이 설명만으로도 독자의 상태와 치료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후 병원에서의 치료 방법, 심한 경우 수술을 병행하기도 한다는 말, 예방, 치료 중 수칙 등에 대해 잔잔하고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의료 현자에서의 저자의 개인적 경험, 자신의 취미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접했던 색다른 경험 등도 모두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 재해석해 환자 치료에 응용하기도 한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것이 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와의 교감은 치료에 그만큼 중요하고 희망적이라는 확신을 준다고 말한다. 과학자로서의 의사가 아닌 인문학자이자 의사로서 하는 말일 게다.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과학에서처럼 눈앞에 바로바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소신대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마땅한 의사의 자세라고 생각이 든다. 독자는 그의 인문학적 지식보다 과학자로서 인문학 지식을 결합시켜 환자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의사의 모습이 더욱 믿음직스럽다.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니코즈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의사로서의 삶의 좌표를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뿐인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방법에 대해 조르바는 조언한다. 이념과 제도로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자신에 집중하며 불합리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이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의료현장에서 질곡의 시간들을 헤쳐 온 위로였으며 힘이었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라는 문장은 카잔차키스가 인류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함축한다. 그것은 박제된 윤리만이 추구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어찌 변하지 않은 가치가 있을 것인가. 변이하는 바이러스를 대하는 현대 의학의 경직성은 없던 것일까. 의술이 권위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p.72~73)

 

저자 : 안태환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2017년에는 한국의 명의 100인에 선정되었다. 현재 프레쉬 이비인후과·성형외과 강남 본원 대표원장이며 중앙일보 ‘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칼럼과 국민일보 ‘안태환 리포트’ 칼럼을 오랜 기간 연재 중이고 TV조선 ‘내 몸을 지키는 기적의 습관’과 ‘백세누리쇼’ 고정 패널로 매주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전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보험이사 및 학술이사를 역임했고 현 대한피부레이저모발학회 회장으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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