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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종말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ㅣ 잘난 척 인문학
이용범 지음 / 노마드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 『신의 종말』은 제목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끌 만큼 강렬하다. '신의 죽음'을 예언하거나, 심지어는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누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유사 이래 신의 죽음을 얘기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혹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어렸을 때 배우기로는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배운 적이 있다. 독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무심히 듣고 지나간 말이 엄청난 의미의 학문적 수사임을 안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이 책 『신의 종말』을 통해서다. 니체에 대한 다른 철학서도 조금 읽었지만 '신의 죽음'에 대한 것은 별로 다루지 않은 것 같다.(물론 니체의 저서나 니체를 다룬 책에서 언급되었겠지만 독자의 철학 지식은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신의 존재, 죽음, 부활 등을 모두 포함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부를 배제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종말'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은 죽었다(독어 : Gott ist tot, 영어 : God is dead, The Death of God)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로서,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말로 넓게 인용되는 말이다. 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일체의 절대적 가치가 그 본질적 의미를 잃고 허무해짐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최고 가치의 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의 도래를 뜻하는 말이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최고 가치의 상실로 이해하고 이로 인해 유럽에 허무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 즉, 비극적 상황 앞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고귀한 정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즐거운 지식』(Die frohlich Wissenschaft, 1882)의 108장, 125장, 343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안에서 가장 저명한 것은 125장의 기술인데, 해당 부분을 발췌하면,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
이라 한다. 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년)의 모든 부분은, 함축적 언어로 씌인 『즐거운 지식』(1882년)의 사상을 이은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니체의 말인 '신은 죽었다'는 1960년대가 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이 번성한 시대의 미국의 신학자들이 사용했다. 미국의 신학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신은 인간에게 리얼한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로, 신은 죽었다는 의미로 이용한다. 1957년 미국의 신학자 게이브릴 바하니안은 '신은 죽었다'라고 제목을 붙인 저서를 저술했다. 바니한은 그 중에서 무신론을 미국의 대중의 삶의 방법이라 말하고 있다고 위키백과는 기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비종교인인 독자가 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신의 죽음'을 얘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또 어쩌면 기독교 등 종교인들에게 '악마'로 매도될 수 있기 때문에 '신'이라는 단어조차도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신이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도 “삶도 알지 못하거늘 내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겸손해지기도 하고, “내가 존재할 때 나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내게 왔을 때 나는 이미 없다”라는 야스퍼스의 말에 순간 묘하게 초연해진 듯 느끼기도 한다. 또한 “신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부여할 수 없다.
인간만이 자살할 수 있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상념이 스치기도 한다. 이처럼 신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지워진,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나 한 번은 깊게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이고 영성적인 주제를 종교적 입장에서, 철학적 입장에서, 그리고 과학적 입장에서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폭넓은 지식에 놀랐고, 또한 죽음이나 신에 대한 깊은 사유에 고개를 숙인다. 아울러 저자의 신과 죽음에 대한 접근은 널리 사색한 통찰력마저 느껴지는 자세하고도 일관성 있는 이 책에 감사한다. 독자도 신과 죽음에 대해 많은 사유를 더해야겠다는 각오를 이끌어내고,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굳건해진 데 대해 다시 감사를 드린다. 이에 따라 독자의 서평은 '평'이 아니라 '부분 감상문'에 그친다는 점을 독자들께 양해를 구한다.
저자도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기에 그랬을까? 「프롤로그」를 통해 두 개의 죽음에 대한 저자의 느낌만을 단순하게 정리한다. 하나는 어렸을 적 있을 법한 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스로 경험했던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 썼다. "죽음은 잊히는 법이다. 물에 빠져 죽은 그 아이가 불과 며칠 만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워져 버렸듯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무뎌졌다. 가까운 사람을 땅에 묻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하관(下棺)이었다. 깊이 파인 흙구덩이 속으로 아버지의 시신이 내려질 때 나는 태어난 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떠난다는 것, 떠나 보낸다는 것, 이 세상과의 단절이 그렇게 애절한 것인지 나는 그때까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고 썼다. 저자는 이어 "돌이켜보면, 정작 내가 슬퍼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 또는 아버지의 단절이 아니라 당신이 살았던 삶이었다. 평생 아름다운 생을 맛보지 못하고, 지난한 세월 속에 흐린 고통의 흔적만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의 삶이 너무나 가여웠다. 당신이 살았을 인생에 대한 연민과 회한, 나는 그것이 못 견디도록 슬펐다. 어느 무덥던 여름날 기대수명을 모두 채우고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곧 신은 있었지만, 의미를 상실하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럼 니체가 말하는 그 신이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란 인간의 무지와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구일까? 아니면 신은 정말 눈에 보이지는 않되 우주를 좌우하고 인간의 모든 삶을 좌우하는 것일까? 신의 존재 유무를 두고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시작해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신의 종말』은 “신은 과연 존재할까, 허구일까”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죽음'이란 단순 명쾌한 질문은 인간에게 단순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생각을 거듭해봐도 애매하고 모호하다. 사후세계는 있는가? “사후 세계는 없다!”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생성과 종말,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신이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신의 종말』에서는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에게는 죽음의 예외란 없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는 단순 명쾌한 전제를 놓고 죽음에 이르는 길,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 자살 등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들,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명, 천국과 지옥, 신화와 몽상에 관한 끝없는 담론을 이어간다. 우리 역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죽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종교와 과학의 세계를 오가며 ‘신의 거처’를 알아본다. 근대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역사를 우위에 놓으려 했다.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신의 노여움을 나타낸다는 초자연적 현상도 과학이 설명해냈고, 인류 역사의 기원도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현생인류에서 시작되었음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러나 미래과학이, 우주과학이 그리고 생명과학이, 인류사회학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 우주의 생성과 종말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신과 종교를 부정하려던 과학이 알지 못하는 신비의 세계를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하자, 인간의 욕망이 다시 종교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 인류의 역사가 종교전쟁의 역사, 살육과 광기의 역사, 혼돈과 혼란의 역사를 만든 것도 과학의 영역에서도 증명하지 못하는 종교와 신의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였다.
이 책은 또 과학자들의 대리전을 거쳐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어떻게 이뤄냈는지, 신의 존재 유무를 두고 과학자들은 어떻게 합리적인 도구를 쓰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최첨단 현대 사회에도 종교는 왜 번창하고 있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다. 운전할 때도 미리 목적지, 통행량, 최단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여 분석해서 나가고, 인터넷 쇼핑을 해도 가격과 성능을 면밀하게 따진 후 구매를 결정하고, 여행을 떠날 때도 미리 교통편이며 숙소를 예약한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모두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한다.
지금처럼 똑똑한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 ‘신과 종교’에 대해서만은 합리적이지 않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도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 신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세계적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수천 개의 종교가 있으며 세계 인구 약 80%가 종교를 갖고 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인간이 어쩌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신을 향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 물음을 찾아 신과 종교의 오리진(Origin)을 인용한다. 종교는 어떻게 탄생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믿음이라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캐내며 인간의 종말과 신의 종말을 예견한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환상인 유토피아를 찾아내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인간을 보여준다.
이 책은 5개의 장(章)에 걸쳐 신과 죽음, 영혼과 불멸, 깨달음과 환상, 신화와 복음 등을 다룬다. 이에 종교·과학·생물학·인류학·심리학·유학·문학·의학 등 인류의 학문과 지식 모든 것이 동원된다. 1장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2장 「영혼의 거처」, 3장 「고르디우스의 매듭」, 4장 「신들의 귀환」, 5장 「종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로 나뉜다. 장은 나뉘었지만 각 장은 서로 연결되며, 전혀 다른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신의 종말』이어서 신과 인간, 그들의 삶과 죽음, 각 학문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관계, 의학·심리학에서 보는 영혼과 정신, 또 문학에서 보는 영웅과 인간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죽음' '신' '인간'이라는 명확한 가제에 대한 해답의 문앞까지 다다른 후 저자의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이다.
저자 : 이용범
대전고등학교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5년 제7회『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유형의 아침」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 직장이었던 '문예지리'를 2년여만에 그만둔 후 20여 년 동안 출판 및 홍보기획, 카피라이터, 저술활동 등 프리랜서의 길을 걸었다. 수년 전, 경제부처 정책보좌관으로 잠시 있었다. 최근에는 대학원에 다니며 글을 썼다. 현재 성공회대와 동국대에 출강하고 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586세대로서 오랫동안 ‘왜 모두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의문은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정책보좌관으로 잠시 머무는 동안 ‘시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전작 『인간 딜레마』와 『시장의 신화』는 이러한 탐색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집 『그 겨울의 일지』, 『꿈 없는 날들의 긴 잠』, 장편소설『얼음꽃』, 『열한번째 사과나무』를 펴냈고, 그 외에 『1만년 동안의 화두』, 『사람』, 『인생의 참스승 선비』, 『무소유의 행복』,『불교우화』, 『인간딜레마』, 『시장의 신화: 시장의 탄생』 , 『시장의 신화: 자유주의 신화』,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나는 심리학으로 육아한다』, 『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 등의 책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