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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평점 :
눈은 사람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신체 부위다. 눈은 영혼의 창, 눈이 진심과 교감의 상징을 의미한다. 진심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다. 아이콘택트는 무관계로부터의 해방, 사물화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오늘날 진심을 열어주는 아이콘택트는 사라져가고 있다. 사실 아이 콘택트(Eye contact)는 마주한 두 사람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시선을 일치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서구권의 문화에서 유래하는 관습이다. 눈맞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대화 도중에 다른 사람의 눈을 직접 마주 보는 것은 전통적으로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서구화의 영향으로 그러한 경향이 비교적 완화되었다.
현대의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은 기본적인 규칙으로 간주되고 있다. 90년대 이전 한국이나 일본의 영화에서는 대화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통으로 묘사되곤 하며,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 지역에서 강한 눈맞춤은 상대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되어 긴장을 낳는 경우도 흔하다. 눈맞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주로 구기 종목 등 스포츠 경기시에 눈을 이용한 신호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최근 사회문화적 갈등의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소통의 도구도 다양해지고 일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간편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은 물론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은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등장은 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수많은 시선만 난무하는 사회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선의 변화는 무궁무진해졌다.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선, 유튜브의 댓글 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환영하는 이 새로운 시선들 사이에서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다’의 의미는 걷잡을 수 없이 돌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이 책 『시선 과잉 사회』의 저자 정인규는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관계는 곧 아이콘택트를 통해 얻는 ‘우리’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마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해법으로 자신이 안에서부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계와 진실. 이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개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시선’이다. 저자는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며, 나 한 사람의 시선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관계와 진실이 시작된다.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를 통해 우선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건, 유튜브의 댓글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라고 지적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p.6)
이어 저자는 7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아이콘택트」, 「돌연변이 시선」, 「관음의 보편화」,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눈이 닿지 않는 그곳」까지 시선이 가는 곳은 물론 시선이 가지 않는 곳까지 하나하나 보기를 들어가고 사례와 전문가(철학자, 사회학자 등)의 의견을 함께 분석하며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아이콘택트를 우리말 '눈맞춤'이나 '시선 맞춤' 정도로 옮겨 적지 않고 외래어 그대로 표기한 것에 대해 독자로서는 다소의 불만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지식 수준으로 보아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책에 따르면 태초에 아이콘택트가 있었다. 눈과 눈의 만남으로써 인간관계의 광대한 태피스트리를 수놓은 세 가지 시선, 또는 보기가 탄생했다. 첫째는 알아보기다. 아이콘택트 이전의 눈은 세상의 시야를 독점한다. 주체로서의 상대방을 알아보고 객체로서의 자신을 돌아본 두 사람은 서로 마주함으로써 관계를 시작한다. 아이콘택트의 경우,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을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시선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콘택트에서 오고 가는 시선은 ‘보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관계가 수립된다. 시선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본질이다. 그래서 시선과 시선의 접점은 공동체의 시작과 성장을 담고 있다. 아이콘택트에 대한 성찰은 곧 사회의 DNA에 대한 성찰이다. 아이콘택트는 인간과계의 본질이다. 우리의 심연으로부터 서로를 발견하고 발현한다.
아이콘택트의 부재에 기여하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데이터의 기억에는 관계성이 결여돼 있다. 데이터는 저장할 뿐이다. 데이터의 시대에는 시야의 한계는 무색해진다. 데이터는 시야의 범위만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시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 폰의 얼굴 인식 기능이 얼굴이 아닌 얼굴의 수치를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수량화되는 오늘 우리의 눈은 데이터를 보도록 훈련받고 있다. 지금은 사람의 데이터를 보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보는 것으로 간주된다. 데이터의 시대가 낳은 돌연변이 시선은 사람을 인정하기보다는 인식한다.
소셜 미디어, 웹상 프로필에 출신 학교, 직업, 취미, 사진 등이 데이터가 된다. 그는 언제나 인스타그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존재에 대한 책임, 불안도 느낄 필요가 없다. 우리는 타자를 볼 자유가 없다. 오로지 데이터로만 타자를 접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시선의 객체에 불과하다. 소셜 미디어는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관계의 수림이 아니라 정보의 소비다. 아이콘택트에서 존재했던 무궁무진한 관계 발전 가능성은 없고, 끝없는 소비만 남을 뿐이다.
나아가 아이콘택트의 소실까지 우려한다. 저자에 따르면 2인칭의 소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2인칭에서 시작했다. 아이콘택트가 깨진 이후 네가 나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과 3인칭으로 먼저 접한 후 2인칭으로 대면하게 된다. 데이터로 그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앎의 과정에서 2인칭은 생략된다. 우리는 누구에 대해 이야기할 뿐,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2인칭이 3인칭으로 대체됨에 따라 깊이, 해석, 그리고 성찰은 사라지게 되었다.
2인칭 관계의 불안과 책임을 회피해 스크린 뒤에서 관음하고 관음당하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신종 사회계약이다. 시선 강간, 음흉한 시선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관음을 원한다. 관음의 성찰은 인간관계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시선, 즉 훔쳐보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관음은 보는 즐거움이 아니다. 관음의 다른 이름은 훔쳐보기다. 보는 대상의 무언가를 훔치는 시선이다. 모든 훔쳐보기는 기본적으로 보는 대상의 프라이버시를 훔친다. 훔쳐보기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지킬 권리, 타자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기회를 빼앗긴다. 훔쳐보기는 금지된 시선이다. 훔쳐보는 이에게 시선을 되돌려줄 수 없다.
디지털 시선에는 흔적이 남긴다. 좋아요, 유튜브 영상, 웹주소, 광고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에 저장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보고 있음이 아닌, 그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유저들은 서로 훔쳐봄으로써 서로를 쓰다듬는다. 이에 따라 저나는 "인간은 훔쳐보기를 실현하기 위해 탈(가면, 주 : 독자)을 발명했다. 탈의 기능은 착용한 사람을 향한 시선의 차단이다. 탈을 쓴 자의 시선은 일방통행을 보장받는다. 아이콘택트를 절단하는 셈이다. 사람 간의 관계 형성에는 상호인지라는 기본 조건, 즉 나를 향한 시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알아보기의 약속이다. 탈은 그 약속을 거부하고, 인간을 캐릭터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급격히 속도를 낸다. "탈의 시대는 곧 관음의 시대를 뜻한다."며 "현대인의 탈을 쓴 자기 자신의 캐릭터로 전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디지털 패션은 많이 입으면 입을수록 노출된다. 많은 패션을 걸치고 있을수록 다양한 무리에 소속될수록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타인의 액세서리화, 더 많은 친구와 팔로워를 축적할수록 나는 인맥 부자가 된다. 탈의 패션의 시대에는 왜 지인을 수집하는가. 네트워킹의 규모 자체가 내 자산이자 정체성이 된다. 내가 축적한 지인은 내 존재감의 성장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그에게 내가 익숙한 정보를 입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좋아요, 클릭, 조회 수로 흔적을 남긴 시선은 그 대상을 더욱 노출시킨다. 시선은 조명이 되어 대상을 밝히고 더 많은 시선, 더 강한 조명을 유도한다. 조명은 인간의 캐릭터화를 가속화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조명 아래의 사람은 정체성의 자유를 잃는다. 따라서 개인은 타인의 시선에 점점 중독된다. 시선이 조명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노출의 목적은 진심이 아니라 관심이다. 진실도 유행을 탄다. 더 많이 보여질수록 더 진실하고 더 존재하는 것이다. 노출은 진실과 존재를 구성하는데, 시선이 그 관계와 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이해에는 박하고 관용에는 관대하다. 2인칭의 부정성이 소실된 가운데 이해는 흡수의 의미로 전락했다. 이물질은 흡수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과는 애초에 교류하지 않는다. 다름은 이해할 필요 없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타자의 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동일자에게 조명을 비춰주고 흡수한다. 소수의 조명으로도 정당한 맥락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는 관용의 벽이 낮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사회는 모든 것을 관용하고자 한다. 조명이 눈을 대체함으로써 아이콘택트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과의 소통은 더 이상 그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봐주는 사람의 존재를 압도한다."(p.121~123)는 주장을 덧붙인다.
저자 : 정인규
1996년생으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일상언어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이를 도덕 심리학과 정치철학에 접목하여 인터넷 문화, 프로파간다 등의 주제를 연구했다. 예일대 최고 권위 문예창작상인 월리스상(Wallace Prize)을 수상했다(2020년). 예일대 학부 철학 에세이 공모전 공동 1등(2019년)과 서양 인문학 심화 코스(Directed Studies Program) 철학 에세이 1등(2015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철학자보다는 철학도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이기에 젊은 학생의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쓸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가르치는 게 배운 사람의 역할이라면, 아직 배워가는 사람의 역할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해보는 게 아닌가? 생활의 편리함이 사유의 수고마저 덜어주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모두가 한 걸음 멈춰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철학의 변혁적 힘과 실천에 대한 열정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