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받았다 - 예민한 나를 위한 섬세한 대화 처방전
태지원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5월
평점 :
독자는 '유리멘탈'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착한 사람 컴플렉스'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신의학자나 정신과 의사로부터 '판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사석에서 몇 마디 말을 듣고 가능성을 경계하는 조언을 해준 사람은 간호사였다. 자신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들은 바가 있다는 것이다. 혹시 계속 문제가 발생된다면 의사나 심리상담가를 찾아볼 것을 권유했다. 이후 특별한 자각 증상이나 문제가 더 커진 사례가 없어 잊혀졌지만 마지못해 다른 사람에게 이미 해준 보증 등으로 꽤 오랫동안 경제적·심리적 압박으로 심한 마음고생을 겪었다.
이후에는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지만 겪지 않아야 할 경험을 한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일종의 후유증이랄까, 어쩌면 스트레스 증후군처럼 혼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이 여러 번이다. 혹시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 내심 걱정도 하면서 지낸 일은 지금도 악몽처럼 뇌리에 남아 있다. 독자는 이 책 『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받았다』는 제목에 나오는 '개복치'도 무슨 비유로 쓰는지 몰랐다. 심리적으로는 정신의학이나 심리적 건강 측면에서 단 한 번의 이상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건강한 의식과 정신 상태를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정신의학이나 우울증 등이 의심되어 책을 읽은 적도 없다. 표제어의 '개복치'라는 물고기는 알지만 왜 '유리멘탈'이란 단어와 결합해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지 의아해 했다. 책 소개글을 듣고서야 비로소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은 매주 ‘유랑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다양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 저자 태지원이 불안한 마음, 불편한 마음, 소심한 마음, 때론 질투와 원망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예민한 사람, 이른바 ‘유리멘탈 개복치’의 시각에서 풀어낸 에세이다. “그냥 나대로 살 순 없을까?” 뒤끝 없는 시대, 쿨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앓이하는 유리멘탈 개복치, 예민보스를 위한 실존 처방 차원에서 브런치를 진행하고 경험한 일을 나누다 보니 책으로 펴내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각종 증세나 상태, 경험과 치유 방법 등을 썼다. 책에 따르면 ‘유리멘탈’ 혹은 ‘개복치’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 보이나 사소한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신을 유리멘탈이라고 여기며, 나약한 마음과 멘탈로 버티며 살아온 저자는 나름의 대화 처방전을 제시한다. 카카오톡 대화를 끊지 못해 괴로웠던 지난날, 벼락치기조차 실행하지 못해 원망스러웠던 자신을 뒤로 하고 ‘나에게 너그럽게 대하기’ ‘게으른 완벽주의자임을 인정하기’ ‘내 감정을 의심하지 말기’ 등의 사소하고 실용적인 치유 방법을 말한다.
살다 보면 솔직한 게 좋다고, 조언이랍시고 무례한 말을 계속 날리거나, 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경우, 삶의 변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 등 당황과 당혹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개 유리멘탈이거나 섬세한 마음을 지녔다면 이렇게 선을 넘는 사람을 보고도 속으로만 삭이거나 빙빙 돌려 말하기 일쑤다. 자신이 그랬듯이. 상대방의 무례함을 짚어주는 대신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거나 분위기가 불편해질 거 같아서 참다가 후회한 경험이 많은 저자는 다양한 경험담과 나름 터득한 대처법과 적절한 대화법을 알려주며 이 세상의 유리멘탈 개복치에게 전하는 마음속 작은 응원을 함께 담았다.
저자는 말한다. 어느 날, 아무도 날 피곤하게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피곤해졌다거나, 친구와 평범하게 대화하다가 상처를 입거나, 피로감이나 회의감에 종종 빠져든다면 내 안에 ‘예민함’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기에 배려심이 높고, 타인에 대한 기대치 또한 높은 편이며, 완벽주의 성향인 경우도 많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이들은 우울, 외로움, 신경증, 낮은 자존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 태지원은 이런 크고 작은 파편들을 모으니, 비로소 유리멘탈 개복치임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대화 도중 쉽게 지치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는 유리멘탈 개복치와 예민보스’ ‘스스로의 완벽주의로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드는 사람’ ‘대화 자체가 피곤한 사람’ ‘무례함에 사이다킥을 날리지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 ‘내면의 대화에서 무기력해지는 사람’ 등을 위해 어떻게 상처받지 않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지, 타인의 반응에 쉽게 상처받거나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게 해 주는지 조심스럽게 책에 써내려간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가지는 최대의 목표는 피곤함이 덜하고, 덜 지치고, 회의감이 적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참견만 하는 사람에게 왜 솔직하게 받아치지 못했는지, 선한 오지랖에 그저 끄덕이기만 했는지 나중에 집에 와서 이불킥만 날린다고 했다. “왜 그렇게 못된 말을 하세요?”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살게요” 등의 명확한 감정 표현은 유리멘탈 개복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쯤 읽어보니 저자와 독자는 마음이나 심리 상태가 무척 여린 것 같다.(저자는 예민하다고 표현한다) 독자의 착한 사람 컴플렉스나 저자의 유리멘탈 개복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심리 기저가 비슷한 '여림'이다. 저자는 불쾌한 말에 일일이 대응하는 대신, 불편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택했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바라볼 때 ‘어쩌라고’와 ‘아님 말고’ 정신을 마음에 되새겼다고 한다. 이에 비해 독자는 이렇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는 방법을 택했다. 신용보증을 서 달라는 사람들에게 딱 잘라 거절하는 말투로 내뱉지 못하고, 일일이 보증 서줄 형편이 안 된다는 식의 설명을 구체적 예까지 설명하며 완곡히 거절해왔다. 저자는 스스로 대처하기 위해 예민함이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몰입의 순간'을 만들었다고 언급한다. 마음을 조금 놓아주는 일, 새로운 형태의 자유를 만들어 주는 일은 유리멘탈 개복치로 살면서 섬세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상대의 반응을 민감하게 살피며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은, 남들이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착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한 감정을 안겨줄까 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상대의 기분은 엄연히 그 사람만의 선택 영역이다. 내가 타인의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오만일 수 있다.(p.21~22)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의 성격이나 대인 관계, 성향, 심지어는 분위기까지 낱낱이 밝히고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느라 대화 주제에 집중하거나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한 이의 무례한 발언에도, 그걸 지적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까 봐 반박하지 못하고 꾹 참는 순간도 있었다. 무례한 발언을 듣거나 재미없는 대화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고, 실제로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만들며 지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면서도, 한 번씩은 반드시 혼자 있어야 하는 나를 이방인처럼 낯설게 보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나의 성향과 버릇, 쉽게 지치는 대화, 별생각 없이 넘겼던 습관이나 행동이 한 줄로 꿰어지는 순간이었다. 유리멘탈 개복치라고 판정받은 그날부터 스스로의 대화 패턴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대화의 상황과 패턴이 무엇인지, 무례한 말폭탄에도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인지 되짚어 보았다. 뿐만 아니라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요동치는 경우도 있다. 내면의 대화 때문에 더 피곤하거나 무기력한 감정에 빠져드는 까닭도 따져 보았다."
저자의 경험과 대처를 위한 깊은 생각과 하나씩 실천하며 깨달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젠 예전의 유리멘탈 개복치가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독자와도 매우 비슷한 성향과 성격이어서 공감이 크게 간 부분이다. 다만 독자는 이제 실천을 할 차례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단련하고, 멘탈을 다스린다고 유리멘탈이 강철멘탈로 바뀔까. 정답은 아니다. 겉으로 무던하고 씩씩한 척을 하고, 강한 멘탈이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살면 움푹한 마음에 들어찬 예민함이 치유될까. 이 또한 아니다. 수많은 다짐을 하지만 주변 사람의 말에, 상황에 갈대보다 심한 마음의 파동이 계속될 때도 있다. 즐겁게 대화를 하다가도 상대의 표정 하나에, 카톡의 마침표 하나에 느닷없이 피곤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저자를 단단히 붙들어 준 말이 있다고 밝힌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살아나가야지.” 유리멘탈에게 처방전 같던 이 말 한마디는 조금 더 멘탈이 단단해질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누구나 조금씩은 흔들릴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고, 그리고 단단하게 서 있을 만큼의 용기를 가지는 것이 유리멘탈 개복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저자는 이 책이 ‘절대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저자가 일상에서 겪었던 멘탈이 깨지는 상황을 견디고, 흔들린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최선의 대화와 대처를 담은 것이다. 흔들리고 조각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유리멘탈 개복치에게 저자는 이런 격려의 말을 전한다. “방패 없이도, 두 발을 땅에 잘 딛고 서 있을 당신에게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저자는 책을 낸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를 내지만 독자는 저자의 격려을 받는 입장에서 한 문장을 가슴 깊이 간직할 생각이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안에 있는 성취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았기에 힘들었다는 사실을."(p.111)
대놓고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건 뻔뻔한 태도라 생각했다.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사람은 사랑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이성적이고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훌륭하고 배려 있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작 남의 욕구를 세심하게 살피느라, 또는 뻔뻔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서 내 욕구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남들에게 배려 있는 나로 남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은 뒤편으로 미루어 놓았다. 내가 원하는 걸 잘 모르니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조차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119~120)
저자 : 태지원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 한국교원대학교 일반 사회교육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서 경제, 사회문화, 역사, 지리 등 다양한 사회 과목을 약 10년간 가르쳤다. 학생들이 자칫 지루하게 생각하거나 암기 과목으로 여기는 사회 과목을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이러한 소망으로 전국사회과교과연구회에서 활동하며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독도를 부탁해』, 『미술관 옆 사회교실』, 『경제 선생님, 스크린에 풍덩』, 『독도 바로알기 대회 한 권으로 끝내기』를 비롯하여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경제법칙』, 『토론하는 십대를 위한 경제+문학 융합 콘서트』,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등의 책을 집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