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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온
고승현 지음 / 99퍼센트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 『이데온』은 인류의 숙명인 필멸(必滅)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생명과 진화의 본질을 찾는 이야기다. '가이아'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과 거대한 음모, 그리고 음모 뒤에 감춰진 섬뜩한 진실이 소설 『이데온』의 엔진이다. 『이데온』은 시종일관 궁금증을 자아내며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는 곳으로 안내한다. 마침내 비밀이 드러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의혹의 잔해들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정통 SF의 귀환'이라고 평가 받는 가운데서 과학자들의 우려를 담고 있다. 이는 "인간이 기계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으면 우리는 기계를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띤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즉, 신들은 그들이 만든 최상의 창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섬뜩한 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요즘 본격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AI(인공지능)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앞서 말한 케빈 캘리의 말은 그의 저서 『기술의 충격』에서 인용된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케빈 캘리는 이 저서에서 "기술이라는 단어는 사실 기술의 내포하고 있는수많은 함축적인 의미들을 나타내기에는 한정적이며 지역적이기에 우리 주변에서 요동치는 더 크고 세계적이며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계를 가리키는 단어를 '테크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태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하는 우리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상되는, 우려할 만한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또 이 소설 『이데온』의 시작 부분에는 두 명의 과학자가 더 소개된다. 미국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Brian Randolph Greene)의 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입자에는 목적이 없으며 궁극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소설 『이데온』의 저자가 인용한 점에 독자는 주목한다. 브라이언 그린은 첫 저서 『엘러건트 유니버스』(1999)와 이어 발간한 『우주의 구조』(2005) 등에서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특성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으로 학자들과 독자들의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을 상세하면서도 대단히 쉬운 문장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말이지, 그의 연구 내용은 발전하는 과학 기술의 미래에 밝은 전망만을 담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또 세계적인 복잡계 이론생물학자 스튜어트 A. 카우프만의 "생명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다음 단계의 진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도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다. 이 학자들과 그들의 저서에 대해 독자 역시 알지도 읽지도 못했기 때문에 언급할 수 없으나 소설 『이데온』의 저자 고승현이 책의 앞머리에 이들의 학설과 주장을 인용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인간과 함께 진화하면서 제어 능력이나 기계 인간의 한계를 설정할 것이기 때문에 발전된 미래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무튼 과학 지식이 짧은 독자로서는 소설 『이데온』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작품 의도까지 짚어낼 수 있는 단서는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이 소설을 읽는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데온』은 날줄인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그 안에 씨줄인 열역학법칙, 엔트로피, 그리고 분자배열과 같은 물리학적, 화학적 메커니즘과 함께 진화, 알고리즘 등의 생물학적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다. 이러한 날줄과 씨줄은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질문, 곧 ‘이데온’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었는가? 라는 큰 줄기와 만나게 된다. 『이데온』은 날줄과 씨줄, 그리고 ‘이데온’이라는 거대한 사고체가 품은 비밀스러운 배경이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스펙터클한 SF영화를 보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데온』에는 인간의 본능인 욕망과 타락,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데온』은 위대한 사상가 케빈 켈리의 ‘신들은 그들이 만든 창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완전한 자유와 과도한 통제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화인들은 사각뿔 모양에서 나오는 기이한 힘을 이용하여 자연과 악마와 싸워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가이아의 통치자들이 신화 속 이야기를 토대로 이 건축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피라미드 하우스는 거칠게 쌓아 올린 신화에 등장하는 건축물과 겉모습 말고는 같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p.73)
독자가 알기로는 SF는 가까운 미래냐, 먼 미래냐의 차이만 있을 뿐 '미래를 표현'한다. 그리고 정통 SF와 가까울수록 과학의 힘을 많이 빌린다. 이 때문에 『이데온』을 정통 SF라고 주장하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정통 SF는 자잘한 현실의 문제보다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현재의 과학 수준을 가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그린다. 정통 SF 반대편에는 현실 문제의 반영과 교훈, 그리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소프트 SF가 있다. 소프트 SF는 딱딱한 과학적, 물리적 배경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며, 그 안에서 휴머니즘과 소외된 것들을 찾는다. 지금 한국 SF는 소프트 SF가 강세라고 한다.
독자로서는 한국의 정통 SF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의 출현은 독자의 기대나 SF 지식이 물거품이 된다. SF 소설계에 따르면 한국 작가가 쓴 정통 SF의 마지막 작품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정통 SF 시장은 홀쭉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데온〉은 한국 정통 SF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데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뛰어넘은 인류가 펼치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인류가 만들어낸 신과, 신이 되려는 창조물,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발버둥 치는 인류의 모습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이 소설 『이데온』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인간과 '이드'가 살아가는 세상이 배경이다. 당연히 먼 미래의 가상 세계다. 이 소설이 SF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다. 인간과 이드가 함께 살고 있는 세계지만 인간보다는 이드가 더 중요한 존재이다. 이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형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동료처럼 느껴지는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이드와 인간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드는 특별한 존재로 사회의 보호를 받고 있다. 에이나인(A9)은 이드를 관찰하고, 이드에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나 범죄를 관리하는 부서이다. 만약 이드를 살해하면 무기징역 이상의 선고가 내려질 수 있는 중대범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드끼리의 다툼으로 일어난 살해는 예외이다. 또 이드를 제외한 종족, 즉 인간을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데 에이쓰리(A3)다. 이렇게 인간과 이드는 다른 차별적 존재로 관리된다.
이런 세상에서 이드 살해사건이 일어난다. '테라'라는 이름을 가진 이드가 레이저건으로 살해당한다. 사건 현장의 영상에서 펭이 테라를 살해한다. 펭은 한때 이드를 관리하던 에이나인 요원이자 팀장이었고 살인사건을 맡은 반장과 듀링의 동료이기도 하다. 펭이 살해한 테라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이드로 연구원이었다. 또 이드인 살람의 제자인데 살람은 이드의 역사를 연구한 최초의 이드 학자이기도 하다. 도망친 펭은 라이아 네오라는 여자와 만난다. 보통의 이름과는 달리 '성'을 가지고 있다. 라이아는 자신이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라고 한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이름과 성을 가지는데 펭 역시 '로저 펭'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알려준다. 라이아가 오래전에 사라졌던 살람 박사의 전설의 책 〈이드의 뿌리〉라는 책을 가지고 펭을 찾아왔고 펭은 이드의 뿌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표까지 내고 찾아나선다. 호모 사피엔스는 가이아 시대의 신화 속에 존재했던 한 종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드의 조상보다 더 불투명한 존재로 책에만 남아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SF에 범죄 추리까지 곁들인 소설로 반전과 결말이 기대된다.
『이데온』은 과학의 도움을 받은 작품이다. 『이데온』의 줄기를 따라가려면 위대한 학자들의 입을 빌려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주 작은 확률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잉태할 수는 있어도 통제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데온』은 어리석게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생명의 진화는 멸균상태가 아닌 거친 야생에서 이뤄진다. 진화의 산물에 손을 대는 순간 파멸은 한 발짝 가까워진다. 『이데온』은 영생을 꿈꾸는 인류가 맞이할 미래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창조’와 ‘진화’, 그리고 ‘욕망’이야말로 『이데온』을 제대로 이해할 키워드다.
"그자들은 우리와 같으면서도 우리와 다르네. 우리처럼 피와 살, 뼈를 가지고 있고 눈과 코, 그리고 귀와 입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 있지. 바로 영생이라네."(p.215)
저자 : 고승현
작가는 출판 관련 일을 하면서 오래전부터 몰래 품어 온 꿈을 착실히 준비해왔다. 무생물에서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생명체의 진화와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변해갈지 관심이 많던 작가는 많은 시간을 들여 자연과학, 생명과학, 분자생물학, 물리학과 관련한 다양한 서적과 매체들을 참고하여 뼈대를 만들었다. 작가는 물리학적 토대 위에 작가만의 상상력을 더해 뼈대에 살을 붙여 나갔고 오랜 집필 끝에 [이데온]을 완성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